눈부신 안부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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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몇 주 전에 무거워진 몸을 느끼고 운동을 한다고 산책을 했는데, 그 산책의 끝에 알라딘 중고서점이 있어서 잠깐 들렀다가 너희들 책과 아빠 책을 두어 권씩 샀어. 그런데 한 권만 더 사면 적립금 2000원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어떤 것을 살까 살펴보다가 눈에 들어온 책이 백수린 님의 <눈부신 안부>라는 책이란다. 작년에 인터넷 서점이나 블로그에 많이 노출되어 책 제목은 알고 있던 책이야. 지은이는 백수린이라는 분인데, 아빠는 젊은작가상 수상집에서 단편만 두 편 읽은 작가인데, 작품이 어땠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았어. 이 소설은 다른 사람들의 평도 좋고, 요즘 우리나라 작가들의 책들은 신뢰가 많이 가고 해서 구입해서 적립금 2000원을 받았단다.

순전히 적립금을 채우기 위해서 골랐던 책인데, 정말 재미있게 잘 읽었고, 백수린이라는 작가를 새로 알게 되어 너무 좋았단다. <눈부신 안부> 12년만에 낸 첫 장편소설이라고 하는데, 첫 시작이 무척 좋더구나. 백수린이라는 작가의 작품도 계속 눈여겨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든 소설이었어. 소설은 액자식 구성으로 두 가지 이야기가 오가며 진행되는데, 주된 이야기는 독일에서부터 시작되어 몇 십 년 쭉 이어지는 이야기란다.

, 그럼 이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게.

 

1.

주인공 이해미는 기자로 일하다가 한 달 전에 그만두었어. 오랜만에 전시회에 갔다가 대학 문학동아리 친구인 우재를 우연히 만났어. 친구이긴 하지만 일반적인 남자 사람 친구보다는 조금 가깝고 애인보다는 먼 그런 사이였단다. 사랑과 우정 사이라고 할까. 하지만 우재가 군대를 가고 나서 연락이 조금씩 뜸해졌고, 졸업 후에는 거의 얼굴을 보지 않는 되었어. 선후배나 동기들의 결혼식에서 잠깐 얼굴 보는 사이가 되었어. 마지막으로 얼굴을 본 것도 한참 전이었단다. 그런데 정말 오랜만에 우연히 전시회에서 만나게 된 거지. 둘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서로의 안부를 전했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지금은 모두 싱글이었어. 겉으로는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옛 감정도 조금씩 일어나지 않았을까.

해미는 한 달 전에 기자를 그만 두고 본격적으로 작가를 준비하고 있었고, 우재는 고향인 제주도에 가서 약국을 차릴 준비를 하고 있었단다. 둘은 옛추억을 이야기하다가 우재는 해미도 기억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꺼냈어. 해미가 대학 시절에 이야기하기를 이 다음에 자신의 이모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했다는구나. 해미는 전혀 기억에 없었지만, 작가를 준비하고 있던 해미는 이모의 이야기를 써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

….

해미는 세 자매였는데 서울로 이사 오게 되었어. 그런데 서울에 이사온 지 얼마 안되어 해미의 언니 해리가 그만 가스폭발 사고로 죽고 말았단다. 당시 해리는 중학생의 어린 나이였고, 가스폭발사고가 난 지점은 평상시 해리가 다니지 않는 길이라서 부모님들은 더욱 이 사고를 믿을 수 없었고, 해리에게 왜 그 길을 갔냐고 물어볼 수도 없었어. 이미 별이 되었으니이 가스폭발사고가 1994년에 일어났는데, 소설 속에서 동네 이름은 나오지 않지만 실제로 있었던 아현동 가스폭발사고를 모티브를 한 것 같구나. 서울 도심 한 복판에서 그런 가스폭발사고로 많은 사람들이 죽을 수 있다는 사실에 무척 놀랬던 기억이 아빠도 아직 있단다.

아무튼 그렇게 해리가 죽고 집안 분위기는 무척 안 좋아졌어. 엄마와 아빠 사이도 멀어지고, 아빠는 부산으로 발령받아 홀로 부산에서 지내게 되었어. 엄마도 서울에서 살고 있는 것이 하루하루가 고통이었어. 그래서 엄마는 해미와 동생 해나를 데리고 독일로 유학 가기로 했단다. 가스폭발사고를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살면서 공부를 하다 보면 잊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겠지. 그래서 해미는 1995 13살 때 엄마와 해나와 함께 독일로 갔단다. 왜 독일이냐면, 해미의 이모가 독일에 살고 계셨거든.

 

2.

독일에 도착해서 이모와 만나고 자리를 잡을 동안 이모와 함께 생활했어. 이모는 의사로 일하셨는데, 처음부터 의사는 아니었고, 간호사로 일하다가 의사가 되셨단다. 1970년대 우리나라는 우리나라의 젊은 노동력을 해외에 보내면서 외화벌이를 했단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독일로 보낸 광부와 간호사였단다. 당시 독일에서는 광부와 간호사라는 직업을 꺼렸기 때문에 그 부족 인원을 우리나라 광부와 간호사들에 채웠던 거란다. 일을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신 분들도 있지만, 많은 분들께 독일에 정착을 하셨단다. 어찌 보면 우리나라 현대사의 슬픈 단면을 보여주는 역사야.

해미의 이모도 파독 간호사였다가 나중에 더 공부를 하셔서 의사가 되신 거야. 그래서 독일에 계신 이모의 지인분들은 대부분 전현직 간호사란다. 해미는 이모의 지인분들의 아이들과 친구가 되었어. 그 중에 레나와 한수가 특히 친한 친구였단다. 한수의 부모님은 이혼을 해서 엄마와 둘이 살고 있었어. 해미는 한수의 엄마를 선자 이모라고 불렀단다. 선자 이모가 뇌종양 투병 중이신데, 한수는 엄마를 위해서 엄마의 첫사랑을 찾아주고 싶어했어. 그러면 엄마가 그 병을 이겨낼 거라 생각했지. 그런데 한수는 그 일을 엄마 몰래 하려고 했고, 해미와 레나에게 도움을 청했단다. 그래서 해미와 레나와 한수는 탐정처럼 조사를 했어. 몰래 선자 이모의 일기장을 훔쳐 보기도 했고, 해미가 소설을 쓴다고 이야기하면서 이모들을 인터뷰를 해서 단서를 찾으려고 했어. 하지만 제대로 된 단서는 찾을 수 없었고, 엄마의 첫사랑의 이니셜이 K.H.라는 것만 알게 되었단다.

….

독일에서 2년여 시간을 지내다가 국내 사정이 갑작스레 바뀌면서 갑자기 귀국을 해야 했단다. 1997년말 외환위기가 찾아오면서 아버지의 경제사정도 안 좋아지면서 귀국을 할 수밖에 없었고, 식구들은 다시 만나 부산에서 생활하였단다. 해미는 한국에 와서도 레나와 한수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여전히 선자 이모의 첫사랑을 찾으려고 했어. 그런 와중에 선자 이모의 뇌종양은 재발되어 입원하였고 병세는 더욱 악화되었단다. 결국 선자 이모는 돌아가시고, 한수는 선자 이모의 이종 사촌 말자 이모네 집에서 지내게 되었어.

 

3.

다시 오늘날 이야기를 해줄게. 제주도에 자리 잡은 우재를 서울에 올라올 때마다 해미에게 연락해서 만났단다. 해미는 한창 독일의 이모들에 관한 글을 쓰고 있었어. 이모들의 글을 쓰다 보니 파독 간호사에 대해 조사를 하였고, 당시 국내 사회문제에 대해 관심도 갖게 되었어. 그리고 오래 전에 한수가 보내준 선자 이모의 일기들을 다시 읽다가 문득 당시에는 찾지 못한 선자 이모의 첫사랑 K.H.를 다시 찾아보려고 했어. 일기를 다시 꼼꼼히 읽어보니 어렸을 때 무심히 넘어간 것들에서 K.H.의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이 있었어. K.H.는 작가 지망생이었고, 다니던 교회도 알게 되어 연락도 해보았지만, K.H.의 약자를 가진 사람은 찾을 수 없었어.

….

큰 이모가 오랜만에 한국에 오시게 되어 혼자 지내고 있는 해미와도 2주간 함께 지내게 되었단다. 오랜만에 이모를 만나니 옛날 독일에서 지낸 생활도 기억이 났어. 레나가 변호사가 되었다는 소식도 듣고, 이모가 레나의 연락처를 알고 있어 정말 오랜만에 영상통화도 했단다. 그리고 한수는 예전에 연락이 끊겼다고 했어.

….

해미는 예전의 일들을 생각해 보았어. 선자 이모가 돌아가시기 전 한수가 전화했는데,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엄마의 첫사랑을 꼭 찾아달라고 했어. 한수가 여러 번 전화를 계속 해서 해미는 얼떨결에 선자 이모의 첫사랑을 찾았다고 거짓말을 했단다. 그런데 결혼을 해서 만날 수는 없고 편지를 전해주겠다는 말을 했다고 했어. 해미는 선자 이모의 일기를 참고하여 자신이 K.H인 척 하고 편지를 써서 선자 이모에게 보냈지만 죄책감을 느꼈단다. 그 죄책감 때문에 한수뿐만 아니라 레나에게도 연락을 하지 않았어. 그때 한수가 보낸 편지도 읽어보지 않았는데, 이제서야 그 편지를 꺼내보니, 선자 이모는 그 편지를 받고 무척 기뻐했다고 했고, K.H.에게 편지를 전해달라며 선자이모의 편지도 함께 보냈단다.

….

이제라도 해미는 다시 K.H를 찾으려고 조그마한 단서로 이곳 저곳에 연락을 했단다. 그리고 결국 K.H.라는 사람이 천근호라는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 그리고 또 여기저기 연락하여 만날 수 있었는데, 뜻밖의 분이셨어. 해미는 선자 이모의 첫사랑이라고 해서, 이름이 천근호라고 해서, 당연히 남자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분은 여자였단다. 지금은 할머니가 되셨어. 해미는 선자 이모가 돌아가시기 전에 천근호 할머니에게 쓰신 편지를 밀봉한 상태 그대로 전해 드렸단다. 그 편지봉투에서 세월에 많이 묻어 있었지만, 얼마나 값지고 눈부신 안부가 담긴 편지였겠니. 천근호 할머니도 그 편지를 보시고 얼마나 감회가 새로웠겠니. 십대 서로 마음에 두고 있던 이와 헤어지고 나서 할머니가 되어서 그 사람의 편지를 다시 읽는 기분, 울컥할 것 같구나. 해미는 편지를 전해주고 돌아왔단다.

그리고 며칠 뒤 천근호 할머니로부터 고맙다는 편지와 함께 선자 이모가 해미의 편지가 거짓인 것을 알고도 천근호 할머니한테 정성스럽게 쓴 편지를 스캔해서 보내주었단다. 천근호 할머니는 선자 이모와 사랑을 비밀로 하고 평생 간직하겠다고 했어. 그러니 더 이상 연락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셨어. 슬프고도 따뜻하고 아름답고 눈부신 결말이로구나.

해미는 우재를 만나러 제주로도 떠나면서 소설은 끝이 났구나. 해미는 아마 선자 이모와 천근호 할머니 사이를 생각하면서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한 선택을 했을 거라 생각한단다.

자기 자신에 맞는 소설이 있는 법인데, 이 소설은 완전 아빠 취향의 소설이었단다. 한 편의 잔잔한 영화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그런 소설이었어. 너희들도 이 책을 한번 읽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현대사의 상식도 쌓고, 마음에 힐링도 쌓고

 

PS,

책의 첫 문장: 야자수.

책의 끝 문장: 나는 지금 막 도착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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