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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8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1년 10월
평점 :
품절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조금만 방심하면 밀린 독서편지가
쌓이게 되는구나. 연휴 후 첫날이라서 좀 피곤하지만, 밀린
독서편지를 생각하니 컴퓨터를 켜야겠더구나..^^ 빨리 오늘 하나를 끝내야겠다. 오늘은 조정래 님의 <아리랑>
8권을 이야기해줄 차례구나. 바로 시작할게.
…
8권의 이야기는 합방된 지
15년이 지난 후부터, 그러니까 1925년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단다. 의열단에 가입한 방대근은 상하이로 왔단다. 다른
의열단 단원인 윤주협, 이상태와 함께 작전 수행을 위해 국내진입 작전을 지시 받았어. 의열단원들은 자신의 임무가 곧 삶의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일을 벌이기 전에 멋진 옷을 입고 사진을 찍곤
하는데, 방대근, 윤주협,
이상태도 함께 사진을 찍었단다. 나라를 빼앗기지 않았다면 다들 멋진 젊은이로 사랑도 하고
자신이 원하는 일에 열정을 쏟을 텐데… 그들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내놓는 일을 하고 있단다.
방대근이 걱정하는 것은 국내
잠입 임무를 하다가 죽으면 양치성을 죽이지 못한 것이 한이 되는 것이었어. 그만큼 방대근에게 양치성은
철천지 원수였던 거야. 국내에 성공적으로 잠입한 방대근은 국내에서 비밀 활동중인 김철호와 접선을 한
후, 군산으로 가서 손판석 아저씨를 만났단다. 그런데 그곳에서
뜻밖에 보름이 누나를 만나게 되었어. 이게 도대체 몇 년 만에 만남인가. 대근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일, 만주에 수국이 누나가 있다는 이야기도
전하며 정말 오랜만에 회포도 풀었단다.
이렇게 방대근의 이야기로 8권은 시작했단다.
1.
군산 지역에서는 노동자들의 파업이
이어졌어. 외눈박이 백남일 생각나지? 백남일은 정미소 노동자의
임금을 대폭 삭감해 버렸단다. 그러자 정미소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섰어.
그러자 백남일은 다른 사람들을 채용했단다. 그러자 노동자 연합 조합에서 채로 채용한 사람들을
몰아내고, 백남일의 정미소 노동자와 함께 농성을 했단다. 백남일이
경찰에 신고하여 농성하던 노동자들은 경찰서에 갇히게 되었어. 노동자들만 불쌍하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것은 다 노동자들 뒤에서 고서완, 정도규, 유승현 등이 알려준 대로 한 거야.
다음날, 백남일의 정미소에 또다른 노동자들이 와서 농성을 하고 또 경찰은 농성한 노동자들을 경찰서에 가두었어. 그렇게 되자, 일본 사람들이 경찰서에 와서, 자신들의 노동자들을 경찰서에 가두어 자신들 정미소가 제대로 안 돌아간다고 항의를 했단다. 일본인들 사장들이 와서 그렇게 항의를 하니 경찰들도 노동자들을 어쩔 수 없이 풀어주었어. 백남일은 어쩔 수 없이 다시 정미소의 노동자들을 복직시키고 눈물을 머금고 임금 삭감은 없던 일로 했단다. 고서완, 정도규, 유승현의
작전 승리로구나. 노동자들도 이번 동정파업의 성공을 겪고 고서완, 정도규, 유승현 등의 공산주의 사상을 더 따르게 되었어.
…
한편 박건식은 3.1운동 후 경찰에 쫓기는 몸이 되어 고향을 떠나 목포까지 내려와 힘들게 지냈단다. 건식의 어머니 대목댁은 손주의 학비를 조금이라도 보태겠다고 행상을 했는데, 그만
일본 순사들이 강압적인 폭행에 허리를 심하게 다치고 말았단다. 방에서 꼼짝 달싹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어. 효자인 건식은 어머니 병을 치료하기 위해 빚까지 써가면서 약을 쓰고 치료했지만 대목댁의 상태는 더욱 안 좋아졌단다. 집안 사정이 안 좋은데 자신 때문에 더 안 좋아지게 되자 대목은 자살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마지막으로 아들의 출근길, 손주의 등굣길을 배웅해주고, 며느리가 집을 사이 한 많은 삶을 스스로 끊고 말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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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권의 마지막에서 차득보는 동생 옥녀를 다시 만났잖아. 이제 차득보는 옥녀와 함께 지냈단다. 그렇게 찾고 싶었던 동생을
만나 다시 지내고 있지만, 차득보의 마음 한 켠에는 늘 찬 바람이 불었단다. 자신이 사랑했던 월엽이 다른 사람과 결혼해서 아기까지 낳았기 때문이야. 아직도
월엽을 잊지 못하는 차득보는 시간만 되면 월엽이 사는 마을에 가서 멀리서나마 몰래 월엽을 보고오곤 했단다. 차득보의
심정은 이해가 가긴 했지만, 이젠 깨끗하게 잊을 때도 되었고, 그의
행동이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되었던 거야. 보다 못한 공허 스님은 차득보의 행동에 대해 차득보에게
크게 혼을 냈단다. 그제서야 차득보도 정신을 차린 듯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했어. 공허 스님은 그렇게 혼을 내면서도 차득보와 어울리는 짝을 찾아 주기로 했단다.
옥녀는 돈을 벌기 위해 남원에서
열린 소리대회에 참가하여 일등을 했단다. 그렇게 번 돈은 오빠에게 주고 논을 사라고 주었어. 차득보는 동생의 그런 마음에 미안함과 고마움을 함께 느끼며 논을 사서 생활 형편이 나아졌단다. 아무래도 자작농보다 자립농이 훨씬 나았지.
…
2.
동경에서 유학중인 송중원은 친구인
허탁과 함께 공산주의 모임을 참가했어. 당시 일본에서는 공산주의를 불법으로 선언하고 엄중한 감시가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모임은 늘 비밀리에 이루어졌단다. 동경 유학생 중에 이경욱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도 공산주의
모임 멤버였어. 이경욱을 전에도 한번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 이경욱은
악질 친일파 이동만의 아들인데 이경욱은 그런 아버지를 부끄러워하고 자신이 친일파 아들이라는 것에 죄책감을 갖고 있던 사람이야. 그래서 그 죄값을 치르기 위해 더욱 열심히 독립운동을 하고 공산주의 활동을 했단다.
어느날 허탁이 실수로 일본인
아이를 자전거로 쳐서 다치는 일이 일어났어. 일본인 아이의 아버지가 자신의 아이를 친 사람이 조선인이라는
것을 용서를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력해서 경찰서에 갇힌 채 며칠 동안 나오질 못했단다. 뒤늦게 이
소식을 들은 그들의 동료 유학생 박영애는 자신이 해결하갰다고 큰소리를 쳤고, 정말 며칠 뒤 허탁이 풀려나게
되었단다. 철없는 유학생 캐릭터인 박영애의 집안은 엄청난 배경이 있는 것 같더구나.
…
하와이 상황도 이야기해줄게. 하와이 노동자들에게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어. 임시정부 대통령 이승만의
탄핵 소식이었단다. 교포들이 모은 독립자금을 자신이 착복했다는 것 포함하여 여러 가지 이유로 탄핵되었다는
소식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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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임시대통령 <리승만>의 범과 사실을 심리하고 대한민국 임시헌법 제4장 제21조 제14항에
의하여서 탄핵 면직에 해당함을 판정함.
<리승만> 범과의 사실
一. 임시대통령 <리승만>이
그 직임에 피선된 지 7년에 임시대통령의 선서를 이행하지 않았으며 정부의 행정을 집정하지 않었고 각원들과
불목하여 정책을 세워보지 못하였다.
二. 임시대통령 <리승만>이
대미 외교사업을 목적하고 설립한 구미위원부를 가지고 국무원과 충돌하였고 아무때나 자의로 법령을 발포하여서 질서를 혼란하게 하였으며 정부의 처사가
자기 의사에 맞지 않으면 동지자들을 선동하여 정부를 반항하였다.
三. 임시대통령 <리승만>은
그 직임이 국내 13도 대표가 임명한 것이라 하여 신성불가침의 태도를 갖이고 임시 의정원 결의를 무시하며
대통령 직임을 <황제>로 간주하여 <국부>라 하며 <평생
직업>을 만들려는 행동으로써 민주주의 정신을 말살하였아.
四. 임시대통령 <리승만>이
미주에 앉어서 구미위원부로 하여금 재미 동포의 인구세와 정부 후원금과 공채표 발매금들을 전부 수합하여 자의로 처단하고 정부에 재정보고를 제출하지
않어서 재정 범포가 어느 정도까지 달하였는지 아지 못하게 하였다.
五. 임시대통령 <리승만>이
민중단체의 지도자들과 충돌하여 정부의 고립상태를 주출하고 재미 한인사회의 인심을 선동하여서 파쟁을 계속 하므로 독립운동에 막대한 지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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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식은 하와이 노동자들을
분노케 했단다. 그들이 피땀 흘려 번 돈을 나라를 위해 모은 성금을 자신이 꿀꺽 했으니 그 심정들이
이야기가 갔단다. 그들의 울분을 누가 달래줄 것인가. 이승만에
대한 그들의 배신감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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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최고로
많이 배워 박사라는 사람이 어찌 그럴 수가 있는가? 아니, 독립운동을
한다는 사람이 어찌 그럴 수가 있는가? 독립운동이란 자기 목숨 바쳐 나라를 구하는 일 아닌가? 그 일이 어렵고 장해서 뼈빠지게 번 돈을 아낌없이 내놓지 않았던가? 우리같이
무식한 것들도 다 아는 그 일을 이승만이란 사람은 몰랐는가? 그 유식하고 유식한 사람이 몰랐을 리가
있는가? 그런데 왜 독립자금을 제멋대로 범포해 버린 것일까? 그게
도대체 어찌 된 맘보일까? 그 사람은 독립운동을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한 것이 아니고 자기 입신출세를
위해서 한 것인가? 어찌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는가?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인가? 많이 배우고, 독립운동을 한다는 사람들 중에 이승만 같은 사람은 또 없을까? 개는
믿어도 사람은 못 믿을 짐승이라고 하던데 그게 정말 아닌가? 사람을 어디까지 믿어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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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승만으로 추종하던 소설
속 등장인물이 있었지. 남용석의 아내였던 말녀. 말녀는 이름도
선미로 바꾸었단다.. 선미의 불성실한 태도와 남편을 무시하는 행동은 방영근의 따끔한 훈시에도 먹혀 들지
않았어. 결국 남용석과 선미는 이혼을 했어.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 아니고 선미는 남용석으로부터 계속 위자료를 받아내고, 혹시 한 달 위자료를 보내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하여 남용석은 경찰서에도 여러 번 갔었단다. 그들이 이런 결말에 방영근도 남용석에게 무척 미안해했단다. 이 결혼이 성사되는데 방영근이 큰 역할을 했으니 말이야. 남용석은
계속된 선미의 괴롭힘에 결국 선미를 죽이고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비극이 되었단다.
3.
다시 독립운동이 활발한 만주
이야기를 해줄게. 송수익과 지삼출은 대종교 모임에 참가했어. 대종교
모임은 겉으로는 종교 활동인 것처럼 보였지만, 비밀리에 독립운동을 하는 것이었어. 당시 만주에도 젊은 층 중심으로 공산주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어. 그리고
그 이전에도 공화주의 노선과 복벽주의 노선으로 대립이 있기도 했단다. 거기에 공산주의까지 또 생긴 격이니
독립운동 노선 갈등은 더 심해졌단다. 송수익은 왕을 다시 세우자고 하는 복벽주의는 절대로 인정할 수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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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150)
복벽주의와
공화주의가 끝내 합일체가 이룰 수 없었던 것은 너무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걸 독립운동 전선의 분열이라거나
독립운동 세력의 파쟁이라고 하는 것은 몰상식한 공론(空論)에
지나지 않았다. 하나뿐인 목숨들을 내걸고 나라를 되찾자는 것은 나라를 탈취한 자들만 원수로 삼는 것이
아니었다. 나라를 빼앗긴 자들의 잘못까지도 단죄하자는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목숨 바쳐 되찾은 새 나라의 국체는 마땅히 백성들이 주인이 되는 공화주의가 아니고서는 안되었다. 그런데 복벽주의자들은 또 나라 빼앗긴 죄인들의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것은
용납되어서는 안되는 망동이었다. 상해임시정부가 탄생한 절대적 의미는 국체를 공화주의로 세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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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치성으로 도망친 수국이는 서간도에서
다시 생활하고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양치성의 수하가 와서 수국이와 함께 있던 솜리댁(천수동의 아내)를 납치해 갔단다. 양치성의
목표는 오직 수국이었기 때문에 솜리댁은 중간에 그들에 의해 죽고 말았어. 수국은 기회를 보고 있다가
자신을 데리고 가던 놈을 죽이고 다시 탈출해서 돌아왔단다. 양치성이란 놈은 천벌을 받아야 할 텐데.. 그때 양치성은 군산에 와서 송수익 가족을 들쑤셨단다. 만주에서
송수익이 살아 있는 것을 확인한 양치성은 송수익 가족들을 하나둘 경찰서에 잡아서 고문을 했단다. 송수익의
장남 송중원은 모진 고문에도 끝내 송수익에 대해 불지 않아 1년 6개월형을
받아 감옥에 투옥되었단다. 송수익의 아내 안씨는 모진 고문으로 중풍에 걸리게 되었고, 정신도 온전치 못한 상태가 되었어. 송수익의 차남인 송가원과 중원의
아내인 하엽이 안씨를 보살펴드렸지만, 안씨의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단다.
송수익의 친구이자 사돈인 신세호도 경찰서에 끌려가 고문을 받고 나와 몇 달 동안 꼼짝달싹하지 못하다가 몇 달 만에 겨우 거동을 할
수 있었단다.
…
삼형제의 이야기도 해주어야겠구나. 정재규는 여전히 도박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땅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고, 정상규는 소작인들을 쥐어짜면서 논을 점점 불려가고 있었고, 특히
형 정재규가 내놓은 땅을 몰래 사고 있었단다. 정도규는 앞서도 잠깐 이야기했지만 공산주의를 받아들여
소작인들과 노동자들 배후에서 소작쟁의와 파업을 일으키고 있었단다.
한편 악덕 친일파 이동만은 55세 생일 잔치를 크게 벌였단다. 아들 이경욱은 아버지의 이런 행동을
크게 불만을 갖고 있었지. 이동만은 일본의 주요 인사들도 초대하고 노래패들도 불러서 공연을 했는데, 이때 옥녀가 와서 노래를 불렀는데, 그 자리에 있던 경욱은 옥녀를
보고 첫눈에 반해 버렸단다. 하지만 옥녀를 보고 첫눈에 반한 것은 경욱뿐만 아니라, 이동만도 반하고 일본인 사찰과장 고마다도 반했단다. 고마다는 어떻게든
옥녀를 자신이 차지하겠다고 마음먹었어. 돈을 계속 올려 불렀는데 옥녀는 한결같이 거절을 했는데, 결국 득보를 감옥에 처넣고 옥녀를 협박했단다. 결국 득보를 풀어주는
조건으로 옥녀는 자신의 정절을 고마다에게 빼앗기고 말았단다.
이경욱은 대학 졸업 후 판검사
되기 위한 고시 준비를 했어. 그런데 이것이 아버지의 뜻이기 때문에 껄끄럽게 생각했는데 스승 고서완의
조언, 그러니까 판검사가 되어 조선 백성들을 위해 힘을 써 달라는 말에 이경욱은 고시 준비를 하게 돼. 하지만 이경욱의 머릿속에는 온통 옥녀가 가득 찼단다. 사라진 옥녀를
찾기 위해 수소문을 했지만 독공하러 지리산에 들어갔다는 소식뿐 정확히 어디 있는지는 몰랐어.
4.
만주에서 독립운동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이 나타났으니, 바로 중국 내부 사정이란다. 중국은
공산주의 바람이 크게 불어 광동에서 중국공산당 혁명이 일어났고, 이는 중국 공산주의자들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공산주의자들도 많이 참가했어. 우리나라 사람들도 많이 참가를 했는데, 연해주에서 활동하던 이광민과 윤철훈도 참가를 했단다. 그런데 중국
국민당의 장개석은 이 중국공산당 혁명을 쿠데타로 선언하고 공산주의자들을 숙청하게 되었어. 이렇게 되자
이에 참가했던 조선공산당 멤버들도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어. 윤철훈은 다시 연해주로 가기로 했고, 이광민은 상해에서 남기로 했단다. 그리고 방대근을 소개로 만나 의열단에
가입하기로 했어.
송중원은 친구인 허탁도 중국공산당
혁명 운동에 참가했었는데 국내로 돌아가기 전 만주에 들러 송중원의 아버지 송수익을 만나게 되었단다. 송수익에
어쩔 수 없이 식구들의 안 좋은 소식을 전했는데, 아무 표정 변화 없던 송수익은 밤에 혼자 만주 벌판에서
몰래 흐느껴 울었단다. 독립운동가 이전에 평범한 남편이자 아버지였던 거지.
…
만주에서의 독립운동은 점점 어려워졌단다. 특히 만주의 군벌인 장작림이 조선총독부와 손을 잡고 조선사람들을 탄압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야. 점점 독립의 길이 험난해주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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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2-293)
만주를
지배하는 봉건군벌 장작림은 조선총독부와 2년 전에 삼시협정을 체결하고 만주의 조선사람들을 공개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작년 4월에는 혼란한 정국을 틈타
중앙권력을 장악하려고 대병력을 이끌고 북경을 치고 들어갔다. 뒤이어 국공합작으로 북벌전쟁이 시작되자
장작림은 공산당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냈다. 그는 자기의 세력권 안에서 공산주의자들을 없애라는 소탕령을
내렸다. 그 명령에 따라 만주에서는 폭력과 체포의 회오리바람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특히 조선사람들은 그 거친 바람에 심하게 휘말렸다. 조선사람들 중에
공산주의들이 많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중국경찰들은 조선사람들을 걸핏하면 잡아가고 닥치는 대로 폭력을
휘둘렀다. 조선독립을 놓고 한동안 우호적이었던 관계가 깨져나가고 있었다. 특히 부패한 중국관헌들은 공산당 일소를 빌미로 무고한 조선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들이며 박해를 가했다. 그리고 돈을 받아먹고는 풀어주었다. 타락한 관헌들에게 공산주의자
소탕령은 더없이 좋은 치부의 기회였다. 그런데 중국관헌들의 그런 횡포에 대해 독립운동 단체들이나 독립군들은
속수무책이었다. 그들과 맞서 싸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땅에 머무는 처지에서 총질을 했다간 그나마 발붙일 곳이 없어지는 것이었다. 그저 할 수 있는 일이 신속하게
뒷손을 써서 잡혀간 사람들을 빼내는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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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대충 <아리랑> 8권의 이야기란다. 아빠가 피곤해서 짧게 하려고 했으나, 하다 보니 오타 투성이임에도
불구하고 손가락에 힘이 생기는구나. 일제강점기의 이야기는 늘 이렇게 가슴 아프고, 화가 나는 일들만 있구나. 하지만 그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나라를
위해 애쓰시던 분들이 있어 오늘의 우리나라가 있다고 생각한단다. 유명한 독립운동가들뿐만 아니라 그들을
도와 독립의 밑거름이 된 분들께 늘 고마움을 잊지 말자꾸나..
자,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상해는 분명 중국땅이었다.
책의 끝 문장: 그에 맞서기라도 하듯 조선총독부에서는 사상운동의 단속을
더욱 강화하는 내용으로 치안유지법을 개정했다.
"예, 이제 하는 말이지만, 3*1운동의 민족대표 33인의 취조와 재판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그때 많은 것을 생각했었습니다. 33인 중에서 고문을 끝까지 꿋꿋하게 이겨내고, 재판정에서도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고 당당하게 내세운 사람은 한용운 선생 한 분뿐이었다는 게 참 충격이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꺾였다는 것에 놀랐고, 만약 내가 그 처지였다면 어찌 되었을 것인가, 나도 두려움에 떨며 꺾였을 것인가, 아니면 한용운 선생처럼 꿋꿋했을 것인가, 많이 생각했었지요. 그런데 어느 순간에는 한용운 선생이 될 것 같기도 했고, 또 어느 순간에는 꺾이고 말 것 같기도 했고, 영 종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보다는 꽤 강해진 것 같습니다만, 변절한 사람들을 볼 때마다 저를 살펴보곤 하게 됩니다." - P57
"보시오 지 동지, 어디 독립운동을 독립군만 하는 것이오? 이 만주땅에 조선농부들이 없고서야 독립군들이 어찌 있을 수 있소. 농부들이 피땀 흘려 뒷바라지하니까 독립군들이 앞으로 나서서 싸울 수 있는 것 아니오. 그러니 내가 늘상 하는 말이지만, 농부들도 독립운동을 하는 거란 말이오. 다람 앞으로 나선 것하고 뒤에 있는 것하고 차이가 있을 뿐이오. 또 독립운동이 어디 한두 가지요? 왜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이 소학교 선생을 하겠소? 우리 대종교 활동은 또 뭐요? 친일모리배들을 빼놓고는 만주에 사는 우리 동포들은 모두가 독립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오. 그러니 만복이도 제 능력에 맞춰 일을 고르면 될 것 아니겠소. 공부에 더 열중하게 해서 소학교 선생을 시켜도 좋고, 대종교 일을 보게 해도 좋지 않겠오?" - P144
"우리는 조선사람이다. 그런데 왜 중국의 싸움에 나섰겠는가. 그건 전체 아시아사람들의 자유를 찾기 위해서다. 전 아시아사람들이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차별없이 잘살려면 중국에서는 군벌들을 타도해야 하고, 조선에서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을 무찔러야 한다. 지금 2천만 조선사람들은 우리가 중국군벌을 타도하고 조선으로 오기를 기다리며 싸울 준비를 하고 있다. 자아, 당신들은 어째야 하겠는가. 군벌들은 당신들의 재산과 곡식을 빼앗아갔고, 탄압하고 괴롭혔다. 이제 우리는 당신들의 원수인 군벌들을 없애려고 총을 들고 나섰다. 당신들은 아무것도 무서워하지 말고 우리를 도와야 한다. 우리는 영원히 당신들의 편이다." - 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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