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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6 - 제2부 민족혼 ㅣ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조정래 님의 <아리랑> 6권을 이야기해줄게.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아리랑>은
너희들도 나중에 꼭 읽으면 좋겠구나. <아리랑>을
통해 일제 시대 역사를 알 수도 있는 좋은 기회는 당연한 것이고, 우리나라 지리에 대한 묘사도 정말
아름답게 하시는 것 같단다. 그런 부분이 여러 곳 나오는데, 오늘은
백두산과 압록강에 대한 묘사한 부분을 소개해 줄게. 어떻게 하면 이런 문장을 뽑아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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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양쪽
강변에 완만하고 묵직한 자태로 뻗어나가고 있는 산줄기는 진초록으로 치장한 몸을 압록강에 그림자로 담그고 있었다.
느린 파도의 굽이침처럼 봉우리 봉우리를 이루어나가고 있는 그 긴 산줄기는 동쪽으로 가면서 점점 높아지고 억세지면서 그 모습을 아스라하게
감추고 있었다. 그 산줄기를 따라서 따라서 가면 이르게 되는 곳, 그곳이
백두산이었다. 그러니까 압록강 양쪽으로 뻗어내리고 있는 산줄기는 사방팔방으로 뻗치고 있는 백두산의 서쪽
일부 자태였고, 압록강 철교 부근에서 자취를 감추는 산줄기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드리워진 백두산의
머리카락 그 한오라기 끝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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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다 보면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는데, 우리나라 함경도에 프랑스 파리 식으로 만든 도시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단다. 물론 아빠가 <아리랑>을 20여 년 전에 한번 읽었으니 그때도 알았을 텐데, 다 까먹어 버렸으니
처음 알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지. 나남의 옛 사진을 좀 찾아봤는데, 서양식
건물이 몇 개 있는 것 같은데, 파리식으로 보일만한 사진은 찾기 어렵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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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나남은
프랑스의 수도 파리식으로 꾸며졌다고 했다. 나남은 그야말로 군대가 중심이고 군이니 주인인 도시였다. 군사업무를 총괄하는 건물이 시가지 중앙에 크게 자리잡고 있었고, 바로
그 옆에 있는 원형공원을 중심으로 해서 일곱 개의 도로가 방사선으로 곧게 뻗어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도로들에서 다시 가지를 치며 다른 도로가 뻗어나가기도 했다. 나남은 억센 산줄기 많기로 유명한 함경북고의
산들로 에워싸여 있는 자연요새 같은 분지였다. 그 궁벽한 오지에 어찌 그리 멋들어진 서양식 건물들을
즐비하게 세워 도시를 이루어낸 것인지 양치성은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그런데 나남에서는 조선사람들의
집이라고는 기와집이든 초가집이든 간에 단 한 채도 찾을 수가 없었다. 온통 서양식 관공서들과 일본식
상점이나 집들로 차 있는 것을 양치성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군산이 개명한 줄 알았는데 군산은 나남에
댈 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의문은 한마디의 설명으로 쉽게 풀렸다. 일본군이 처음 나남에 주둔한 것은 노일전쟁이 끝나면서였고, 그때
나남은 조선사람들 30호 정도가 마을을 이루고 산 한촌이었다는 것이었다. 그 뒤로 10년 세월 동안에 순전히 일본사람들 손으로 새 도시가
꾸며졌으니 한옥이 있을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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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본격적으로 <아리랑> 6권의 이야기를 해줄게. 6권이 제2부 민족혼의 하이라이트가 아닐까 싶구나. 일본 정보부 소속 양치성은 장사꾼으로 위장하여 만주로 떠난단다. 만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독립군 조직을 색출하기 위함이지. 그 만주땅에는 송수익도 가명으로 독립운동을 하고 있었어. 대놓고 독립운동을 할 수 없어서, 겉으로는 대종교로 활동하면서 실제로는
독립운동을 하고 있었어. 국내에서 살기 어려워진 백성들이 만주로 밀려들었는데, 이 중에는 밀정도 있었어. 그래서 새로 오는 사람들은 아주 철저하게
조사를 했고, 밀정으로 밝혀진 이들은 가차없이 죽였단다. 백성들이
만주에 정착한 마을은 통하현, 유하현, 해룡현 등으로 계속
늘어났단다. 그 와중에 대종교 교주였던 나철의 자살 사건이 있어서 독립운동이 위축되기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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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나철은
유서 <순명삼조(殉命三條>를 통해 자신이 왜 목숨을 바치는지를 밝히고 있었다. 첫째 배달민족의
번성이 걸린 대교를 위해 죽는 것이며, 둘째 한배님의 은혜를 갚지 못한 죄로 한배님을 위해 죽는 것이며, 셋째 온 천하의 동포 형제자매가 암흑세상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대신 죽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계기로 하여 대종교가 더욱 번창하고, 그 힘으로
일본을 물리쳐 배달민족이 광명을 되찾기를 소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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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국내에서는 군자금 조달을 하려는 노력이 이어졌어. 박상진이라는 사람은
대한광복단을 만들어 친일 부자들에게 경고 편지를 보내고 강제로 돈을 빼앗는 과감성을 보이기도 했어. 주색잡기에
빠진 정재규도 그 경고편지를 받았단다. 그 편지를 받고 겁을 잔뜩 집어 먹은 정재규는 주재소를 찾아가
신고를 하고 신변 보호 요청을 했어. 주재소는 이에 서무룡 일당을 보내주었단다. 서무룡 기억나지? 깡패 집단을 만들고 자신이 오야붕이 된 사람. 도둑을 지키겠다고 집안에 깡패 무리들을 끌어들인 거야. 서무룡 일당들은
정재규의 집에 와서 오히려 온갖 횡포를 부리고, 집을 지켜준다고 큰 돈을 요구하기도 했어. 정재규는 울며 겨자 먹기로 서무룡의 요구를 들어주었단다. 박상진의
대한광복단은 대구에서 육혈포 강도단 사건으로 친일 부자들을 죽이기도 했지만 안타깝게도 얼마 못 가 체포 당하고 말았단다.
1.
일제의 탄압은 점점 심해져서
사사건건 통제를 했어. 당시 전국에 서당이 만여 곳이었는데, 일제는
‘서당 폐쇄법’으로 강력 규제를 했단다. 서당을 중심으로 민족의식을 높이려던 노력도 더 이상 할 수 없었어.
…
불쌍한 보름이도 생각나지? 장칠문이 첩으로 두었다가 일본의 사찰과장 세키야에게 빼앗겼잖아. 보름이를
서무룡이도 탐내고 있었는데, 서무룡은 보름이가 혼자 있을 때를 틈 타 찾아와 겁탈했단다. 정말 나쁜 사람들이란다. 불쌍한 보름이는 세키야의 아이를 임신했어.
…
정재규, 정상규, 정도규 삼형제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려줄게. 크게 바뀐 건 없어. 정재규는 여전히 주색잡기로 정신을 못 차리고, 정상규는 재산을 불리는데 혈안이 되어 소작인들을 엄청 괴롭혀서 소문이 났지.
정도규는 이 두 형들을 못 마땅해했고, 자신은 일본에 유학을 하면서 다른 유학생들과 비밀리에
독립운동을 했단다.
…
다시 만주의 밀정 양치성 이야기를
해줄게. 양치성은 밀정 검사를 통과해서 송수익이 살고 있는 마을 잠입에 성공했단다. 장사꾼을 위장하여 그 마을을 수시로 드나들었어. 그런데 그 사악한
밀정도 보는 눈이 있는데, 그만 수국을 보고 첫눈에 반해버렸단다. 자신이
밀정 일로 그 마을에 오는지, 수국을 보러 오는지 스스로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어. 수국에 반한 사람은 양치성 뿐만 아니라, 수국의 동생 방대근의 친구인
김시국도 수국을 좋아했단다. 김시국은 수국에게 고백을 했지만 수국은 거절했어. 예전에 그 일 이후 남자들을 너무 무서워하고 거부했단다.
한편, 송수익은 방대근, 김시국 등과 함께 무기를 얻기 위해 연해주에 왔단다. 당시 연해주는 러시아 혁명 이후 백군과 적군이 내전을 벌이고 있어서 혼란의 시기였어. 연해주에서 공산주의 활동을 하던 조선 청년들도 이 내전으로 혼란을 가져왔어.
연해주의 이런 혼란으로 무기를 목표량에 한참 미치지 못했단다. 만주에서는 독립운동은 점점
무르익고 있었고 1918년 11월 18일 만주에서 독립선언을 발표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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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만주땅의
가을은 너무 짧아 9월로 접어들면서 며칠 간 가을빛이 스치는 것 같으면서 나뭇잎들이 와짝 단풍이 들었다. 그 단풍들도 며칠이 못가 낙엽 지며 10월의 문턱에서 얼음이 얼었다. 그리고 설한풍이 몰려오는 11월의 만주땅에 뜻밖의 열풍이 일어났다. 독립지사 39명의 이름으로
<대한독립선언서>가 발표된 것이었다. 그
독립선언서는 만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박은식 신채호 박규식을 대표로 하여 중국 전역을, 이동휘 이범윤 등을 대표로 하여 노령 일대를, 박용만 안창호 이승만을
대표로 하여 미주지역까지 포괄하는 그야말로 범민족적 대표성을 확보한 최초의 대한독립선언서였던 것이다. 1918년 11월 13일 터져오른 함성이었다.
사람들은 그 선언을 무오(戊午)독립선언이라고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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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919년 2월 8일에서는
도쿄에서 유학생들 중심으로 독립선언을 발표했단다. 이때 주도한 백관수라는 사람인데, 그가 남긴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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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백관수 : ……오족(吾族)은 생존의
권리를 위하여 모든 자유행동을 수(受)하여 최후의 일인까지
자유를 위하여 열혈의 투쟁을 불사할 것이다. …… 일본이 만약 오족의 정당한 요구에 응치 않으면 오족은
일본에 대하여 영원히 혈전을 선언하겠다. …… 자(玆)에 오족은 일본 또는 세계 각국이 오족에게 민족자결의 기회를 부여할 것을 요구하여 만불성(萬不成)하면 오족은 생존을 위하여 자유행동을 취하여 오족의 독립을
기성(期成)할 것을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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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6권에는
삼일운동에 대한 전개 과정을 상세히 잘 이야기해주고 있단다. 삼일운동은 어느날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란다. 앞서 이야기했던 만주에서의 독립선언, 도쿄에서의 독립선언이 영향을
주었고, 국내외 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준비가 있었기 때문에 3.1운동이
일어날 수 있었던 거야. 드디어 1919년 3월 1일 종로에서 3.1 운동의
횃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단다. 33인의 민족대표들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으나 실제 백성들이 모여 있는
종로에는 나타나지 않았단다. 그들의 비겁함은 아빠가 작년에 읽은
<만세열전>에서도 이야기 주었지. 그래서
학생들 중심으로 만세 운동이 전개되었어.
공허 스님도 그 현장에 있다가
이 큰 물결을 전국으로 퍼트려야겠다고 생각하여 군산으로 독립선언서를 들고 내려갔단다. 공허 스님이 군산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군산의 학생들을 중심으로 만세 운동을 하고 있었어. 송수익의 첫째 아들인 송중원도
만세 운동에 참가했어. 이 만세운동은 전국적으로 퍼지게 되었는데, 대부분
학생들과 농민들이 주축이 되어 전개되었다고 하는구나.
땅을 일제에 빼앗겨 되찾는 것을
도모하고 있던 박건식, 김춘배도 만세 운동을 통해서 땅을 되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단다. 무리들을 이끌고 주재소까지 밀고 갔는데 일본 경찰들도 강경 대응하였어.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김춘배도 칼에 찔려 죽고 말았단다. 뿐만
아니라 경찰에 잡힌 만세꾼들은 공개 처형을 당했단다. 만세꾼들도 밤에 친일파 지주들을 습격하곤 했단다. 호남 친화회 회장인 악질 백종두도 습격을 당해 중상을 입고 며칠 지나 숨지고 말았단다. 소설 속에서라도 친일파들이 이렇게 처단되는 것이 시원하더구나.
2.
수국의 미모는
중국인 지주까지 반하게 하여 수국을 첩으로 삼으려고 했어. 송수익이 잘 설득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단다. 결국 감골댁, 수국, 방대근은
야반도주하기로 했단다. 송수익이 추천장을 써주어 대근의 식구들은 북간도 용정으로 또 이주했단다. 방대근은 대한정의단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했고, 감골댁와 수국도
대한정의단의 살림을 도와주었어.
여자에 눈이
멀면 세상 끝까지 쫓아오는가 보구나. 먼저 방대근의 친구 김시국이 수국을 찾아왔단다. 수국은 여전히 김시국의 구애를 거절했어. 얼마 후에는 장사꾼으로
위장한 양치성까지 찾아왔단다. 양치성은 김치국이 수국에 마음에 품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를 납치해서
죽여버렸단다.
…
만세 운동은 국내뿐만 아니라
만주까지 퍼졌단다. 3.1운동 이후 서간도와 북간도에서는 많은 독립단체들이 생겨났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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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
본국에서 3.1 만세가 일어나고 그 불길이 서간도로 옮겨 붙자 북간도의 여러 단체들은 만세시위를 계획했다. 그 단체들은 대종교의 중광단, 기독교계의 간민회, 공자를 모시는 공교도, 성리교 단체 등이었다. 그들은 시위가 벌어진 그날 저녁 연길현 국자가에서 통일조직으로 조선독립기성회를 결성했다. 그리고 4월에 접어들어 명칭을 대한국민회로 바꾸면서 조직을 개편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기독교인들이 간부직을 장악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중광단에서는 그 사태를 묵과하지 않았다. 외래 종교에 대해서 비판적인
대종교들로서는 기독교인들의 그런 독주를 용납할 수 없었고, 또 그동안 많은 학교를 세우고 무오독립선언을
추진하는 등 북간도의 독립운동을 주도해 왔던 중광단의 명예를 지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래서 중광단은 5월에 대한국민회를 탈퇴하여 대한정의단을 결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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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독립단체들이 생기도 하니, 지향하는 바도 다른 경우도 있는데, 그 단체들 중에는 나라를 되찾으려는
목표가 다시 임금을 받들기 위해서라는 단체도 있었어. 그런 걸 복벽주의자들이었는데, 송수익은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이 임금 중심의 나라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새로운 나라는 백성들이
주인이 되는 나라여야 한다고 생각했어. 아빠도 송수익의 생각이 맞다고 생각한다.
만주에서 불이 붙은 독립 운동은
무장투쟁으로까지 이어졌단다. 홍범도 장군이 이끈 봉오동 전투의 승리는 많은 백성들의 가슴을 뛰게 했단다. 봉오동 전투에서 패배한 일본은 비겁한 복수를 했단다. 원래 일본
경찰은 만주에 직접 들어오지 못하는데, 훈춘 사건을 조작하여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핑계로 일본 경찰과
군인들이 만주로 들어와서 독립군들을 토벌하기 시작한 거야. 이때 많은 독립군들이 죽었단다. 송수식의 부하이자 필녀의 남편이었던 배두성도 이때 죽고 말았단다.
하지만 이런 일제의 만행에도
여의치 않고 독립군은 또 하나의 전투를 준비했는데 바로 청산리 전투였단다. 홍범도 장군과 김좌진 장군
등이 주도한 이 전투에서도 일본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단다. 방대근도 북로군정서 소속으로 이 전투에
참가했단다. 청산리 전투 이후에 일본은 더 잔혹한 복수를 감행했단다.
조선 민간인들을 마구 죽인 거야. 1920년이 육십갑자로 경신년이었기 때문에 일제의 이
만행을 경신참변이라고 부른단다. 양치성은 이 때가 수국이를 차지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어. 수국의 어머니 감골댁을 죽이고 수국이를 뒤로 빼돌린 다음 자신이 보호해준다는 척 하면서 수국을 차지하게 된
거야. 소설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지 모르겠지만, 양치성이란
놈은 제발 고통스럽게 죄값을 치렀으면 좋겠구나.
…
요즘 들어 더욱 친일파들이 더
극성인 것 같아 열 받는단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는 말이 없는데, 정부 인사들이나 정치인들 중에 역사를 잊은 이들이 많은 것 같아 걱정이 되더구나.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
PS,
책의 첫 문장: 압록강은 여름답게 강폭이 넓어져 물결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책의 끝 문장: 독립군이 밀산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풍문과 함께
사람들은 그 대학살을 경신참변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동회는 향촌 어디에서나 저마다 운영하는 마을사람들의 모임이었다. 동네마다 당산나무가 있듯 동회가 없는 마을은 없었다. 동회에서는 마을을 위해 서로 힘을 모아야 하는 대소사에서부터 공동의 질서와 규율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모임이었다. 동네제사 날짜, 계모음, 두레와 품앗이 순서, 농로나 수로 보수의 부역, 명절놀이 계획, 예절과 풍기, 각종 부고, 남녀 품삯, 구휼 같은 것을 결정해서 서로서로 힘을 합쳐 돕고 마을이 화목하고 평온하게 유지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 여러가지 마을일들을 결정하는 기본이 되는 규범이 바로 향약이었다. - P84
윤철훈은 앉음새를 고치며 목례를 차리고는, "제가 동지들을 만나고자 한 뜻을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여기 연해주는 사태가 급박합니다. 일본군은 반혁명군인 백군을 지원하는 동시에 우리 조선 사람들을 회유하고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조선사람들이 택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적군을 지원하면서 일본군을 치는 빨치산투쟁을 전개하는 것입니다. 그건 소비에트 혁명을 돕는 길인 동시에 우리 조선을 위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일본군들을 연해주에서 몰아내야만 우리의 독립투쟁지를 회복하게 됩니다. 또한 우리가 혁명을 도와야 혁명이 완수되면 소비에트는 식민지 약소민족의 해방선언에 입각해 우리의 독립을 한층 더 적극적으로 돕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청년단을 조직했고, 단원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침 동지들이 오셨다기에 인사도 드릴 겸 해서 찾아뵌 것입니다." - P109
"예, 그 말언 맞구만요. 허나 독립단체라고 혀서 다 똑겉지가 않다는 것얼 명백허니 알아둬야 헐 것이구만요. 시방 독립운 단체덜언 서로 다른 두 가지 주의 주장을 내세우고 있는디, 그것이 무엇인고 허니 보황주의허고 공화주의로구만요. 요것이 무신 뜻이냐 허면 우리가 뺏긴 나라럴 되찾자고 독립투쟁얼 허기넌 허는디, 누구럴 위허는 어떤 나라럴 세울 것이야 허는 중대서럴 논허는 것이올시다. 다른 말로 복벽주의라고도 하는 보황주의넌 나라에 주인언 임금이니 독립운동도 임금얼 다시 받들기 위해 해햐 헌다는 것이고, 공화주의넌 그 반대로 나라에 주인언 백성이니 독립운동도 온 백성의 뜻얼 받드는 나라럴 세우기 위해 해야 헌다는 것이오. 우리 군정부에서넌 공화주의럴 내세우는 것이고, 아까 그 대한독립단언 복벽주의럴 내세움스로 여러분덜얼 끌어갈라고 헌 것이구만요. 그러니 쌈이 안 일어날 수가 있겄소?" - P203
11월의 만주는 한겨울이었다. 북풍은 칼날이었고, 하늘도 땅도 다 얼어붙어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엮어내는 소문이나 소식들은 전혀 얼어붙을 줄을 모르고 싱싱하게 살아움직이고 있었다. 서간도의 군정부가 명칭을 바꾸었다는 소식이 전해져 왔다. 새로 붙인 이르이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라고 했다. 그 까닭인즉 상해임시정부에서 여운형을 파견하여 군정부도 상해임시정부에 통합해 줄 것을 요청했고, 군정부의 총재 이상룡은 하나의 민족이 두 개의 정부를 가져서야 되겠느냐고 간부들을 설득하여 <군정부>라는 명칭을 양보한 것이라 했다. 그것은 곧 상해임시정부를 유일 정부로 인정함과 아울러 그 위상을 높여주는 조처였던 것이다. - P219
그 노랫소리는 금방 독립군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많은 목소리들이 그 노랫소리에 합해졌다.
기다리던 독립전쟁 돌아왔다네
노랫소리는 모든 독립군들의 마음을 끌어잡으며 뒤흔들고 있었다. 노래는 마침내 합창이 되었다.
이때를 기다리고 십년 동안데 갈았던 날랜 칼을 시험할 날이 나아가세 대한민국 독립군사야 자유독립 광복함이 오늘이로다 정의의 태극 깃발 날리는 곳에 적의 군대 낙엽같이 쓰러지리라
탄환이 빗발같이 퍼붓더라도 창과 칼이 네 앞을 가로막아도 대한의 용장한 독립군사야 나아가고 나아가고 다시 나아가라 최후의 네 핏방울 떨어지는 날 최후의 네 살점이 떨어지는 날 네 그리던 조상나라 다시 살리라 네 그리던 자유꽃이 다시 피리라 -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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