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체스는 하늘과 땅 사이 무함마드의 관처럼 이 범주들 사이를 부유하는 학문이요 예술이며, 대립하는 모든 것들을 유일하게 연결해주는 것이 아니던가? 즉 태곳적인 것이면서도 영원히 새로운 것이요, 그 구도가 메커니즘적이면서도 판타지를 통해서만 작동하며, 기하학적으로 일정 공간에 제한되어 있으면서도 그 조합에서는 무제한적이고 항상 자기 발전적이며 번식력이 없다. ()로 이끄는 생각, 무에 이르는 수학, 작품 없는 예술, 실체 없는 건축, 그럼에도 명백하게 그 존재 자체가 어떤 책이나 작품보다 영속적이며, 모든 민족과 모든 시대에 속하는 유일한 게임이면서도, 지루함을 죽이고  감각들을 예리하게 하며 영혼에 긴장감을 주기 위해 신이 이 땅에 가져온 게임이라는 것을 아무도 모른다. 이 게임에서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가? 어떤 아이들이라도 기본 규칙을 배울 수 있고, 체스에 서투른 사람이라도 누구나 자신을 게임에서 시험해볼 수 있다.


(60-61)

당신이 게임들 중, 특히 체스를 둘 때의 정신 상태에 대해 어느 정도까지 생각해보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피상적으로 생각해보아도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은, 체스란 우연과는 동떨어진 순전히 두뇌싸움인지라 자기 자신과 맞서서 게임을 한다는 건 부조리하다는 거죠. 체스의 매력은 기본적으로 두 사람의 상이한 두뇌에서 전략이 나온다는 데 있거든요. 이를테면 이런 두뇌싸움에서는 검은 말이 그때그때 흰 말의 술수를 알 수 없고 항상 추측할 뿐이며 그걸 막으려고 하지요. 반면에 흰 말은 검은 말의 숨은 의도를 앞질러 내다보며 방해하려고 애쓴다는 데 그 매력이 있거든요. 그런데 검은 말과 흰 말이 동일한 사람이라면 모순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겁니다. 하나의 두뇌가 뭔가를 알아야 하는 동시에 또 몰라야 하는 상황 말입니다. 다시 말해 상대인 흰 말의 역할을 하면서 일 분 전에 검은 말로서 의도했던 바를 완전히 잊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그러한 이중적인 사고는 사실 의식의 완전히 분열을 전제로 합니다. 기계장치처럼 뇌의 기능을 임의로 열었다 닫았다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자기 자신을 상대로 게임을 하려는 것이 체스에서는 자신의 그림자를 뛰어넘으려는 것과 같은 역설을 의미합니다.


(116)

사랑하는 그대여, 당신에게 그 순간의 절망을 어떻게 묘사해야 할까요? 당신이 저를 알아보지 못하는 이 운명을 고통스럽게 느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당신이 저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알아보지 못할 거라는 그런 운명을 전 한평생 견뎌왔고, 그 운명과 더불어 죽게 될 테지요. 어떻게 제가 이 절망을 묘사할 수 있을까요! 보세요. 인스부르크에서 보낸 그 이 년 동안 매 순간 당신을 생각했습니다. 빈에서 우리가 다시 만나는 상상 이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낸 그 시절, 전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가장 행복한 순간뿐 아니라 가능한 최악의 순간까지도 꿈꾸었습니다.


(117)

얼굴에 비치는 나이는 명암에 따라 묘하게 변하고, 입는 옷에 따라 달라지기도 합니다. 체념한 이들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답니다. 그러나 아직 소녀였던 저는 당신의 망각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당신을 끊임없이, 그리고 쉼 없이 생각하고 있으니 당신도 저를 종종 생각하고 기다려줘야 한다는 헛된 마음을 품었기 때문일 겁니다. 제가 당신에게 미미한 존재이며, 저에 대한 어떤 기억도 당신에게 남아 있지 않다고 확신했다면, 제가 어떻게 숨인들 쉴 수 있었겠습니까! 당신이 마음속에 저를 알아볼만한 그 어떤 것도 없으며, 당신 삶의 거미줄 같은 기억 한 오라기도 저와 연결된 것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신의 눈길 앞에서 정신이 퍼뜩 들었습니다. 그것이 현실로 떨어지는 최초의 추락이었고, 제 운명을 예감하는 최초의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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