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1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1년 10월
평점 :
품절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2001 6 26.

이 날이 무슨 날이냐고? ^^ 조정래 님의 대하소설 아리랑 1권을 읽기 시작한 날이란다. 아빠가 책을 읽을 때 읽기 시작한 날을 책의 앞면지에 적어두어서 그 날짜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거란다. 2001 6, 아빠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일기를 썼으면 좋았겠는데, 그 당시에는 일기나 다이어리 정리를 하지 않았단다. 그래서 정확히 무엇을 하고 지냈는지 잘 모르겠구나. 2001 6월이면 회사 들어간 지 얼마 안된 시점이고, 친구들과 함께 자취를 하던 시절이구나. 그렇다면 그 친구들과 술 한 잔 걸치고 있을 확률이 높겠구나. ^^

그때 읽고 나서 한번도 펼쳐보지 않은 조정래 님의 <아리랑>. 이번에 책을 다시 펴보니 책이 누렇게 다 바래 있구나. 하기여 20년의 세월이 어디라고책날개에 있는 사진 속 조정래 님도 참 젊으시구나. 작가도 늙으시고, 독자도 늙고, 책도 늙고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지는구나. 작년에 강준만 님의 <한국 근대사 산책( 10)>을 읽고 나서, 그 시절을 소설로 이야기한 조정래 님의 <아리랑( 12)>이 생각나서 읽어보겠다고 생각하고 책을 찾아 꺼내든 것인데, 만감이 교차하고 추억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구나. 이것도 책의 힘이 아닐까 싶구나.

아빠가 <태백산맥>은 두 번 읽고, 필사하면서 한 번 더 읽어서 세 번을 읽었는데, <아리랑>은 이번이 두 번째 읽는 것이란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20여 년 전에 읽어서 굵직한 이야기만 대충 생각이 난단다. 그 당시에는 메모를 안 하고 읽었는데, 이번에는 메모도 하고 줄거리도 잘 적어놓아야겠구나. <아리랑> 1권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깨닫는 것인데, 조정래 님의 <아리랑>은 정말 훌륭한 소설이자 역사서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당시의 사건 사고와 인물 구성을 어찌 이렇게 잘 구성을 하셨는지

, 그럼 아리랑 1권의 이야기를 해줄게.


1

아리랑은 모두 12권이고 4부로 되어 있단다. 1, 2, 3권은 제 1 , 한반도라는 제목이란다. 1권은  1904년 김제 죽산면이라는 마을에서 시작한단다. 감골댁의 남편은 동학혁명에 참여했다가 병이 들었고 그 병을 고치려고 빚까지 지면서 약을 먹었지만 그만 죽고 말았어. 그 빚을 갚기 위해 맏아들 방영근은 하와이로 이민을 가게 되었어. 하와이에 가면 20원을 준다고 해서 빚 18원을 갚고, 남은 2원으로는 동생 보름이를 시집 보낼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말이 이민이지, 하와이로 가는 것은 노예로 팔려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단다. 하와이에 도착을 했더니, 노예보다 힘든 생활의 연속이었어. 1년 먼저 온 사람한테 이야기를 들어보니 완전히 속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 그들은 돈에 팔려 하와이에 온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거지. 그들은 새벽 4시부터 일어나 저녁 늦게까지 쉬지 않고 일해야 했고, 조금만 잘못하거나 실수를 하면 감독관이 채찍질을 해댔어.

그들이 하는 일은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는 것인데, 방영근의 동료 주만상은 사탕수수 가시에 찔렸다가 치료는커녕 제대로 쉬지도 못해서 상처가 덧나서 죽고 말았단다. 그렇다고 탈출을 할 수도 없었어. 외딴섬 하와이에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도 없었지. 하와이 이민은 불법 노동력 착취였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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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이민은 노동력 충당을 위해 하와이 사탕수수농장협회에서 주한미국공사 알렌을 통해 교섭하게 한 것이었다. 고종은 1902 11월에 수민원(綏民院)을 설치하게 하고, 12 22일 인천항에서 121명을 떠나 보냈다. 그러나 <백성을 편안케 한다>는 뜻인 수민원은 처음부터 그 직무를 유기하고 있었다. 이민자 121명 중 반 이상이 미국 선교사 존스의 <대한사람이 인간의 천국인 미국에 이민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은혜>라는 설교에 회유된 영동교회 교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뒤로도 여러 선교사들이 각 개항장을 중신으로 사람들을 모집하러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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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로 팔려가면서 돈 20원을 받았고, 18원은 빚 갖는데 쓰고 2원은 동생 결혼 비용으로 쓰려고 했잖아. 그런데 그 2원을 대륙회사에 다지는 장칠문이라는 자가 중간에서 꿀꺽했단다. 감골댁의 이웃 지삼출이 이를 따지러 갔다가 장칠문과 주먹다짐을 하게 되었고, 그 일로 지삼출은 일본 헌병대에 끌려가 철창 신세가 되었어. 통변이 와서 감옥 말고 철도 공사을 하는 게 낫지 않냐고 꼬셔서 지삼출은 철도 공사하는 곳에 끌려가서 일하게 되었단다. 일제는 우리나라의 자원을 일본에 빼돌리려고 철도를 개설하고 있었거든.. 철도 공사를 한다고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 지삼출처럼 끌려와서 일을 했단다.


2.

<아리랑>의 주요 배경은 김제와 군산이란다. 호남평야에서 걷어들인 쌀과 곡식을 일본으로 빼돌리기 위해 군산항을 이용하면서 일본사람들이 많이 살게 되었단다. 지은이 조정래 님께서 군산을 표현한 부분이 있는데, 군산을 제대로 가본 적은 없지만 참 아름다운 곳이라고 생각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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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구에 바닷물이 가득 실려 있을 때 군산 쪽에서 바라다보면 건너편의 낮춤한 산줄기는 바닷물에 그대로 비쳐드는 듯한 정취를 자아냈다. 섬들을 품고 서쪽으로 펼쳐진 바다, 아슴하게 멀고 긴 수평선, 그리고 그 산줄기는 서로 어우러져 그지없이 아담하고 고운 풍광을 이루고 있었다. 그 풍광은 어느 때나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겨 머물게 하는 힘을 지녔지만 특히 빼어난 아름다움으로 치장할 때는 따로 있었다. 물안개가 잠포록이 끼었을 때, 노을이 자욱하게 피어나는 이른 아침이면 그 풍광은 한없이 신비스러웠고, 노을이 황금빛 현란함으로 타오를 때면 그 풍광은 더없이 황홀했으며, 빛이 사위어가는 달이 적막 속에 기울어져 가고 있을 즈음이면 그 풍광은 그지없이 환상적이었다. 그러나 비가 내리는 날은 비가 내리는 대로 애상적이었고, 눈이 내리는 날은 눈이 내리는 대로 허무적이었다.

그리고 산줄기는 끊긴 듯 이어진 듯하며 동쪽으로 어미줄기를 찾아 뻗어가고 있었는데, 그 오른쪽으로 들판이 널따랗게 펼쳐져 나갔다. 바다와 대칭을 이루고 있는 그 벌판 가운데로 기다란 몸짓을 지으며 유유하게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금강이었다. 몇백리인지 모르게 굽이굽이 흘러내린 금강이 제 몸을 바다에 풀어 맡기는 지점에서 오른쪽 포구에 장항이 자리잡았고 왼쪽 포구로 군산이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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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자리 잡은 일본 사람들과 일제 앞잡이들이 논을 야금야금 사 모으기 시작했어. 일본인들은 만경과 김제의 논을 시세보다 비싸게 주다 보니 잘 모르는 농민들은 그 돈을 팔고 소작 짓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여 덥석 팔곤 했단다.

그런 와중에 고문정치의 시작을 알리는 제1차한일협약이 맺어졌단다. 이 협약으로 일본이 우리나라에서 직접 정치를 할 수 있게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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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기쁨에 넘치는 고문정치의 시작이란 제1차 한일협약이었다. 러시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재빨리 군대를 한양에 진입시킨 다음 무력의 위협 아래 한일의정서를 조인하여 조선 안에 군사기지를 확보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그것이 2월의 일이었다. 그 뒤로 러시아군을 계속 궁지로 몰아넣으며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게 되자 그들은 그 기세를 조선정부로 확대시켰다. 재정고문과 외교고문을 초빙하라는 강요였다. 결국 정부는 그 강압에 굴복하여 협정서 체결에 도장을 찍고 말았다. 1904 8 22일이었다. 그 협정에 따라 재정고문에 일본인 메가다가, 외교고문에는 미국인 스티븐스가 앉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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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협약 이후 전국 각지에 친일단체인 일진회가 만들어졌고, 군산에도 일진회 군산지부가 생겼는데, 군산지부의 회장을 백종두라는 친일파가 맡았단다. 백종두는 아전관리 출신으로 양반이 되고 싶어 안달인 사람이고, 일제가 조선에 들어온 것을 기회라고 생각했단다.  일진회의 조직은 점점 확대되었고, 앞서 이야기했던 장칠문도 일진회 간부가 되었어. 이런 친일 단체 일진회를 대항하기 위해 이준이라는 사람이 헌정연구회라는 조직을 만들기도 했다는구나.


3.

친일파만 있는 것은 아니고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겠다고 나선 지식인들도 있는데 그 중에 한 명이 송수익이라는 사람이란다. 송수익은 지역 주민들이 궁금한 점을 물어보면 답변해주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같이 해결해 주려고 노력했단다. 얼마 전까지 집에서 동네 아이들을 가르쳐서 송수익 선생님이라고들 불렀단다. 그런데 학교는 일본에 의해 강제 해산되고 말았어. 송수식은 농민들이 일본 사람들에게 땅을 팔려는 것을 알고 만류하기도 했단다. 그런데 이 일로 송수익은 일본 헌병대에게 끌려가고 말았단다. 다행히 송씨 문중의 힘으로 풀려나게 되었단다. 말 한마디 했다고 헌병대 끌려가는 세상이 되었단다. 이 때가 을사늑약이 맺어지기 전인데, 벌써 이렇게 일본 헌병이 판치는 세상이었으니, 우리나라가 일제에 점령당한 것은 36년이 아니라 40년이 훌쩍 넘은 긴 세월이구나..

….

1905년에는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 군대가 군산으로 쏟아져 들어왔대. 더 많은 일본 사람들이 불법으로 우리나라에 정착을 하고 있는 것이지. 도대체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결국 일은 벌어졌단다. 을사오적에 의해 을사늑약이 맺어지고 우리나라 외교권은 완전히 일본에 넘어갔어. 그런데 을사늑약이 맺어진 것도 많은 이들이 모르고 있었단다. 나중에 장지연이 <황성신문> <시일야방성대곡>을 써서 백성들도 알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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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1)

그런데 마침내 을사보호조약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장지연이 <황성신문>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을 쓴 것이다.

비분에 찬 그 글을 먼저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의 가슴을 쳤고, 그런 사람들의 입을 통해 글을 모르는 일반인들에게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동양 삼국의 평화를 솔선주선하기로 나선 이토가 천만 꿈밖에 어찌 오조약을 내놓았는가. 개가죽을 쓴 우리 대신들은 일신의 영달만 위해 황제폐하와 2천만 동포를 배반하고 4천년 강토를 외인에게 주었도다. 슬프도다! 우리 2천만 동포여, 살아야 할거나 죽어야 할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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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당함을 호소하기 위해 민영환, 조병세, 이명재 등은 자결을 하였고, 최익현, 임병찬 등은 의병을 일으켰단다. 송수익도 을사늑약 소식을 듣고 친구 신세호를 찾아갔단다. 그리고 의병 활동을 도모하려고 했는데, 신세호는 의병이 정답이 아니라고 생각했어. 그러면서 임병서라는 사람을 소개해 주었단다. 송수익은 임병서와 함께 의병을 조직하기로 했어. 지삼출 등 많은 농민들도 의병을 하겠다고 자진했단다. 을사늑약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전국 곳곳에서 의병들이 많이 생겨났단다. 썩어빠진 관리들이 외교권을 넘겨주었지만, 우리 백성들은 그것에 동의하지 않았어. 저항으로 그것을 보여준 것이란다.

여기까지 1권의 대략적인 이야기란다. 두 번째 읽는 것이지만, 거의 처음 읽는 기분이구나. 이 시절의 책을 읽다 보면 분노지수가 올라가는데, 좀 진정하면서 하면서 읽어야겠구나. 조정래 님의 <아리랑>은 쭉 12권을 읽는 것이 아니라, 주말마다 한 권씩 읽으려고 한단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기도 하겠지만, 두 번째 읽는 거니까그리고 주말에 읽어야 좀더 집중해서 읽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초록빛으로 가득한 들녘끝은 아슴하게 멀었다.

책의 끝 문장: 구성지고 눈물겹고 서럽고 사무치고 한스러운 가락을 이끌며 상여는 붉은 벌판끝으로 느리게 사라져 가고 있었다.


지삼출이나 감골댁이 보부상에 대해 똑같이 거부감을 나타내는 데는 그럴 만한 연유가 있었다. 그때 갑오년에 수많은 농민들이 호남평야를 중심으로 해서 들고일어났고, 공주까지 쳐올라간 농민군들이 신식무기를 가진 일본군과 싸우다가 밀리기 시작하면서 농민군들은 어쩔 수 없이 산으로 섬으로 피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군과 관군은 먼저 산으로 들어간 농민군들로부터 뒤쫓기 시작했다. 그때 그들의 길잡이 노릇을 해서 수없이 많은 농민군들을 죽이게 한 것이 바로 보부상들이었다.
등짐을 하고 산길을 따라 이쪽 지방과 저쪽 지방을 문지방 넘듯 넘나드는 보부상들은 산길을 샅샅이 아는데다가, 산속의 정보 또한 신속하게 잘 탐지했다. 그뿐만 아니라 산을 타는 발까지 포수 뺨치게 빨라서 그런 길잡이로는 더없이 안성맞춤이었던 것이다.
- P18

"재산을 더 모을라고 허지 마라. 땅으로 재산을 모으는 것은 결국 농부들의 살을 깎고 피를 빠는 일이다. 세상에 그보다 더 큰 죄가 어디 있느냐. 재산을 탐하면 마음이 썩는다. 마음이 썩으면 죄짓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죄짓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는 자가 어찌 바르게 살 수 있겠느냐. 내가 남기는 전답을 주색잡기 하지 않고 간수만 제대로 하면 네 권속 입고 먹는 것은 족하다. 재산을 탐하지 말고 바르게 살도록 마음을 가꾸기에 게을리 하지 마라. 그것이 바른 사람의 길이고, 옳은 양반의 길이다."
그 탄식을 꾸짖기라도 하듯 쟁쟁히 들려오는 아버지의 말씀이었다.
- P225

임금을 호위하던 시종무관장 민영환이 할복자결을 했다. 전 의정부대신 조병세가 자결했다. 전 참판 이명재가 자결했다.
그 연이은 자결의 소문은 겨울바람을 타고 산지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배를 갈라 붉은 피 쏟으며 죽었다는 그 소문들은 그전의 어떤 소문들보다도 뜨겁고 거센 파도가 되어 사람이 사는 곳이면 퍼지지 않은 데가 없었다.
그런데, 그 소문들은 단순히 나라 잃은 비분으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만이 아니었다. 민영환이 흘린 피는 방을 넘치고 마루를 흘러 토방으로 떨어져 내렸는데 그 자리에 푸르른 대나무가 솟아났다고 했고, 조병세가 목숨을 끊자 그가 기르던 난초들이 일제히 꽃을 피웠다고 하는가 하면, 이명재가 숨을 거두면서 뜰의 매화나무가 사흘 밤을 통곡했다는 것이었다.
그건 충절을 상징하는 매난국죽에 근거를 둔 이야기들이었다.
- 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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