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혁명전사 김명시
안재성 지음 / 미디어창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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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안재성이라는 작가가 있는데, 이 분은 우리나라 현대사 속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위인을 찾아 소개를 해주시곤 한단다. 아빠는 그 동안 안재성 님의 책을 세 권 읽었어. <이현상 평전>,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 <경성 트로이카> 세 권에서 다룬 인물들은 일제시대에 사회주의 사상에 기반을 두고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란다. 아직도 사회주의 독립운동가에 대해서 교과서에서 잘 실리지 않기 때문에 학교를 다니면서는 알 수 없는 독립운동가들일 거야. 아빠가 이번에 읽은 안재성 님의 책은 <항일혁명전사 김명시>라는 책으로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김명시라는 분에 관한 이야기란다. 책 표시에 장총을 들고 한쪽 팔뚝에 부상을 입고 있는, 한 젊은 여자의 그림이 있단다. 그러니까 김명시라는 분은 여자 독립운동가인가 보구나. 장총을 들고 있는 모습에 어떤 삶을 사셨을지 궁금하구나. 영화 <암살>도 생각나고 드라마 <미스터 션사인>도 생각나고

김명시라는 이름이 그리 낯설지 않은 것 같아서, 아빠가 읽은 책들 중에서 찾아보니 정운현 님의 <조선의 딸, 총을 들다>라는 책과 임경석 님의 <독립운동 열전>에서 김명시를 짧게 소개해 준 적이 있더구나. 하지만 김명시라는 분께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아. 이번에 읽은 <항일혁명전사 김명시>를 통해서 또 한 명의 멋진 여전사를 만나게 되었구나. 뜨거운 열정으로 삶을 불살랐던 김명시라는 분에 대해 이야기해볼게. 너희들이 공부와 숙제로 바쁘긴 하지만, 혹시 틈이 생기면 이 책을 한번 읽어봐도 좋을 것 같구나.


1.

마산에서 태어난 김명시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혼자 오남매를 키우셨어. 1919년 삼일운동이 일어났을 때 김명시는 13살이었는데, 엄마와 함께 삼일운동에 동참했단다. 김명시의 엄마는 주동자로 몰려 4월 중순까지 감옥에 있다가 풀려났대. 김명시의 어머니도 대단한 분이시고, 그런 어머니의 피를 물려받으신 것 같구나. 1925 4월에는 오빠 김형선과 함께 공산당에 가입을 했단다. 당시만 해서 공산주의는 전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새로운 사상이었어. 이후 스탈린의 공산당, 김일성의 공산당으로 변질되기 전의 공산당으로 많은 지식인들이 관심을 갖고 있은 시절이었단다.

당시  소련공산당의 지원을 받아 세계 여러 나라의 공산주의자들이 모스크바로 유학을 갈 수 있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20명이 모스크바로 유학을 가게 되었고, 그 중에 김명시도 포함되어 있었단다. 조봉암의 아내 김조이도 김명시와 함께 모스크바에 갔단다. 김명시는 모스크바에 있는 동방노력자 공산대학이란 곳에서 공부를 했어. 그리고 그곳에서 권오채와 친해져 연인 관계가 되었단다.

김명시는 우수장학생으로 뽑혀 상해로 파견을 하게 되었어. 애인인 권오채는 모스크바에 남고, 혼자 상해로 가는 것이 안타까웠지만 지금은 더 중요한 것들이 있었어. 당시 상해는 너희들도 알다시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던 곳으로 독립운동의 본거지였고, 우리나라의 공산당원들도 활동을 많이 하는 곳이었단다. 상해에 도착한 김명시는 지령에 따라 조봉암과 찾아가 그와 함께 활동하였단다. 조봉암이라는 분도 독립운동을 하신 유명한 분인데, 그 분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기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이 드는구나. 김명시는 모스크바에서 함께 공부했던 조봉암의 아내 김조이에 대한 안부를 전해주자, 조봉암을 다시 난감해 하면서 상해에서 다른 여자와 생활하고 있다고 했어. 그의 사생활이라고 뭐라 할 수 없었지만, 다소 실망할 수 밖에 없었겠구나. 하지만 조봉암은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신임이 두터운 사람이었어. 상해에 있으면서 오빠 김형선의 소식도 전해들 었단다. 광둥 지방에서 공산당 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어.


2.

그런데 당시 중국 상황이 좋지 않았어.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 사이에 내전이 일어나고 있었지. 조선 공산당원들은 독립을 위해서는 그런 중국의 내전 상황이 달갑지 않았지만, 중국 공산당을 지원해주어야 했어. 모스크바에 있던 권오채도 중국공산당을 지원하기 위해서 중국으로 넘어왔고, 상해에 찾아와 김명시와 다시 만났단다. 1928년 코민테른에서 조선공산당 해체가 결정되었어. 조선공산당은 해체되고 중국 공산당에 합류할 것이 결정된 거지. 상해와 만주 지역에서 활동하던 조선공산당원들의 반발이 심했어. 우리나라가 나라로써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된 거니, 화가 났을 것 같구나. 김명시는 홍남표와 함께 만주지역에 가서 조선공산당 해체에 대해 당원에서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일을 하게 되었는데, 반발이 커서 쉽지 않았단다. 이후 중국공산당에 합류하여 중국의 내전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그러면서 비참한 인민의 삶을 직접 목격하였단다.

임무를 마치고 다시 상해로 돌아왔는데 슬픈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어. 연인인 권오채가 감옥에서 온갖 고문을 받다가 죽었다는 소식이었어. 무척 힘든 시간이었어. 김명시는 상해에 머무르면서 다른 공산당원들과 교류하였는데, 이때 교류했던 이들 중에 박헌영, 김단야, 주세죽, 고명자 등이 있었어. 이 분들은 아빠가 재미있게 읽은 조선희 님의 <세 여자>라는 책에 등장하는 분들이라 더 반갑더구나.

국내 공산당 재건을 위해 이상훈과 함께 국내 잠입을 하게 된단다. 7년만에 다시 온 조국이었어. 인천에 있는 성냥 공장에서 노동운동을 지원하는 일을 맡았는데, 갑자기 다른 명령을 받고 이동하게 되었고, 이때 고명자를 만나게 되는데, 고명시가 말하길, 김명시의 국내 잠입을 일본에서 알게 되어 수배령이 내려졌다고 다시 상해로 도망가라고 했어. 오빠인 김형선도 수배령이 내려져서 함께 도망가라고 했어. 하지만 도망가는 중에 일본경찰에 붙잡혀 신의주형무소에서 갇히게 되었단다. 온갖 고문이 이어졌고 힘든 감옥살이였어. 무려 7년이나 감옥에 있다가 1939년에 출옥했단다. 오빠 김형선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중이었고, 엄마는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어.

….

멀리 소련에서는 스탈린의 독재와 횡포 소식이 전해졌는데, 김명시에게는 믿기지 않는 소식이었을 거야. 공산주의 사상이 그들에게 희망이었는데, 한 사람의 독재로 그렇게 변질되고 말았으니 말이야.


3.

감옥에서 나온 김명시는 조선의용대에 참여했어. 팔로군에서 옛 동료인 김무정이 김명시를 찾는다는 소식이 전해듣고 김명시는 팔로군으로 이동하여 김무정과 해후한단다. 다시 조선의용군의 지휘관 자격으로 활동하는 김명시.

조선의용대, 조선의용군같은 부대를 다른 용어를 사용하는 줄 알았는데, 조금 다른 것 같구나. 조선의용대는 국민당이 지원했었고, 조선의용대의 화북지대 수속이 조선의용군으로 이름을 바꾸는데, 조선의용군은 공산당 지원을 받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조선의용군의 총사령관은 김무정이 맡게 되는데, 김무정과 만난 이후 김명시는 이 조선의용군의 지휘관이 된 거야. 위 내용은 이 책에 나온 것을 바탕으로 정리한 것인데, 조선의용대와 조선의용군의 차이를 좀더 찾아봐야겠구나.

조선의용군의 지휘관이 된 김명시는 중국공산당과 함께 항일투쟁에 힘썼단다. 그들의 노력들이 커다란 독립운동 줄기에 보태져서 1945 8월 해방 소식을 듣게 되었어. 조국에 돌아온 김명시. 하지만 1948년 공산당 혐의로 체포되고 말았단다. 젊은 시절 내내 독립운동을 하고 해방된 조국에 돌아왔건만 기다리고 있던 것이 사상 검열에 의한 감옥행이라니얼마나 억울하고 분했을까.

더 가슴 아픈 소식은 김명시가 얼마 후에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는 소식이었어. 당시 나이는 42살이었대. 이 자살 소식을 누가 믿겠니. 항일 투쟁에 젊음을 바친 여전사가 그깟 일로 자살을 하다니자신의 주장을 펼치면서 자신의 체포의 부당함을 주장했을 텐데 말이야. 해방 후 우리나라의 역사는 더 아픈 역사로 가득 찬 것이 안타까울 뿐이로구나.

김명시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대부분 안 좋은 결말이었어. 오빠인 김형선도 감옥에서 받은 고문 후유증으로 출옥 후 얼마 안되어 병에 들어 죽었고, 동생 형윤은 광복 직전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하는구나. 그들의 이런 노력을 후세의 사람들이 알아주어야 할 텐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2022년에 김명시는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고 하는구나. 그것이 모든 것을 보상해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다행이구나. 우리들도 꼭 기억하자꾸나. 항일혁명전사 김명시.


PS,

책의 첫 문장: 썰매를 끄는 개인지 늑대인지 알 수 없는 회색 짐승 서너 마리가 눈의 바다를 헤매고 있었다.

책의 끝 문장: 김명시 일가와 동지들이 그토록 원하던 해방이 되고 무려 77년이 지난 후였다.


김명시의 말에 늦잠을 자던 알료샤가 슬그머니 목을 빼고 바라보았다. 세 여자의 대화 속에 레닌이나 스탈린이란 단어만 나오면 잔뜩 긴장하던 알료샤였다. 하지만 고리키라는 이름이 나오면 슬며시 미소를 띠었다. 세 여자가 고리키의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면 알아듣지 못하면서도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던 했다. 알료사뿐만이 아니었다. 혁명 소설가 고리키에 대한 러시아인의 특별한 사랑은 석류 알갱이처럼 붉고 투명한 연어알절임과 당근 빛깔이 나는 묽은 야채수프를 좋아하는 것만큼이나 일상적인 것 같았다. 세 여자가 열차 식당칸에서 고리키 이야기를 하자 주변의 러시아인들도 알아듣고는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소련은 역시 레닌의 나라였다. 관공서 어디를 가도 1년 전에 사망한 레닌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 P11

"내가 보기엔 당신네 공산당도 오십보백보요. 나는 사서삼경도 못 읽는 촌부이지만 당신네들이 자유시에서 조선인 독립군을 수천 명이나 학살했다는 얘기를 들었소. 당신네들은 이번에 중국인 지주들을 때려죽이자는데, 아니 지금 우리가 못사는 게 정녕 그 사람들 때문이란 말이오? 오히려 반대가 아니오? 그 사람들 아니면 우리는 벌써 첫해에 굶어 죽었을 거요. 일본 놈들을 물리치자는 말까지는 알아듣겠지만 그 이상은 도통 이해를 할 수가 없소이다. 나는 자기네가 권력을 잡으면 다 될 것같이 떠드는 사람들 하나도 못 믿겠소이다. 어느 놈 할 것 없이 백성의 고통을 팔아서 권세를 누리려는 것뿐이오." -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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