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기후변화, 대량멸종, 군국주의에 대응하기 위해 최소한으로 필요한 일은 급진적인 문명적 전환이다. 탄소배출권
거래제, 탄소세, ESG, 그린뉴딜 같은 제도적 개혁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재생에너지, 전기차 같은 녹색기술로도 충분치
않다. 자원 추출에서 제조, 운송, 폐기에 이르기까지 산업화된 경제에서 녹색화(탈물질화)의 여지는 극히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장 긴급한 일은 생산성의
엔진을 멈추는 일이다. 2016년 예일대 노드하우스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세계경제가 성장하는 한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시대 이전에 비해 1.5도
이내로 제한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문제는 현재의 시스템은 심각한 정치적, 경제적 혼란을 감수하지 않고는 멈출 수도 없고 되돌리기는 더욱 불가능한 성장역학을 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4)
“핵발전소 사고가 난 곳에, 아무리 안전기준 이내라고 하더라도 오염수를 생태계에 버리는 것을 정당화하기란 매우 어렵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16년 보고서에서 말했다.(<핵발전소 사고 이후의 방사능
폐기물 관리>), 그러나 눈앞에 펼쳐지는 세상은 다르다. 인류는 7등급 핵사고 재난이 발생한 후쿠시마, 바로 그곳에서 130만t의 방사능 폐수가 바다로 투기되는 것을 목격한다. 핵공학자 서균렬 서울대 명예교수는 후쿠시마 오염수가 남해에 도달하는 데에 걸릴 시간을 공무원들과 다르게 말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고발당했다. 나는 그가 ‘명예교수’라는 직함을 더 이상 가지지 못할까 봐 걱정한다. 한국은 달라졌다. 공무원과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과학자가 경찰조사를 받는 곳이 되었다.
(26-27)
그 정점에 한국의 대통령이 있다. 도쿄전력은 일본
법령에서 ‘원자력 사업자’이다. 작년에 오염수 투기 실시계획 허가를 일본 원자력규제청에 신청했다. 신청서에
이렇게 썼다. “방출 후 모니터링에서 방출 방사능 물질 기준을 초과하는 이상치가 검출되는 경우에는 방출을
정지하겠다.” 일본 원자력규제청은 이 내용을 포함해 실시계획을 인가한 것이기 때문에, 만일 도쿄전력이 이 조건을 지키지 않으면 투기 자체가 금지된다. 처벌을
받는다. 법적 의무다. 여기에 더해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는
기준 초과 여부를 측정할 해상 모니터링 장소를 늘리라고 지시했다. 그래서 도쿄 전력은 올해 2월, 이런 내용을 담아 실시계획 변경 인가를 추가로 받았다. 이미 일본의 법령 안에서 결정된 일이다. 그런데 이것을 지금 한국
대통령이 일본 총리에게 요구조건으로 제시하는 중이다. 외면하고 싶은 한국 민주주의의 현실이다.
(38-39)
쫄깃하다 과메기, 김이 모락 꼬막살, 숙취에는 해물짬뽕, 보양 으뜸 장어탕, 톡톡 튀는 생대하, 시원하다 대구탕, 돈 생각해서 동태탕, 새콤달콤 서대회, 쫄깃하다 박대구이, 생일이면 미역국, 기분이다 킹크랩, 회복 촉진 전복죽, 제사장 문어숙회, 땀이 난다 낙지볶음, 맥주에는 노가리, 그 향기 이채롭다 멍게속살, 속을 풀자 조개국물, 여름이다 민어회, 가족여행 대게찜, 승부수다 복어국,
포장마차 홍합탕, 생각난다 가자미식혜, 밥도둑
갈치조림, 애 어른 모두 명란젓, 이런저런 생선구이, 얼큰하다 매운탕, 심심풀이 쥐포,
그리고 끝끝내 어묵까지…
(56)
새만금이라는 이름의 갯벌이 실제 존재하는 줄 알았던 나는 영화를 만들며 그 뜻을 처음 알게
되었다. ‘새만금’이라는 말은 본래 없던 말이다. 만경평야의 만, 김제평야의 금(金), 두 글자를 합친 ‘만금’이라는
말 앞에, 새로운 땅이라는 뜻의 ‘새’ 자를 붙여 만들어진 신조어로, 만경평야와 김제평야를 합친 만큼의
새로운 땅을 만들겠다는 뜻이다. 즉, 새만금은 만경강과 동진강이
서해와 만나는 세계 최대의 갯벌을 무려 33.5km에 이르는 콘크리트 벽으로 막음으로써 만들어지는 땅, 혹은 그 땅을 만들고자 하는 세력의 욕망이 응집된 단어이다. ‘새만금’은 역사에도, 지도에도, 사전에도
없는 단어이다. 그렇기에 ‘새만금 갯벌’이라는 말은 모순이고, 만경강, 동진강
하구의 광활한 갯벌이 있을 뿐이다.
(60)
잼버리대회가 파행 속에 열린 곳은 해창갯벌을 매립한 매립지이다. 그 한편은 매립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고 장승들이 서 있다. 3년
전, 잼버리대회를 위해 장승과 컨테이너를 다 치우라 했었지만, 시민들은
힘을 모아 장승들을 지켜냈다. 20년 동안 갯벌 복원의 염원을 담아 장승을 세우고, 비바람에 쓰러지면 일으켜 세운다. 삼보일배 출발지이자 갯벌 살림의
성지인 해창갯벌에, 어제 200명의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장승을 세웠다. 우리는 함께 울고, 함께 음식을 나누고, 함께 노래하고 춤추고 웃었다. 그리고 <수라>의 엔딩곡인 ‘아름다운
것들’을 다 같이 부르며 갯벌의 보전과 부활을 기도했다. 국민 1308명이 원고가 되어 새만금공항 기본계획 철회를 위한 소송을 진행 중이다.
9월 14일 서울행정법원에서 3차 공판이 열릴
예정이다. 아름다움을 목격한 사람들이 이제 증인이 되어 나설 때이다.
(108)
전세계적으로 기후위기 등 무분별한 환경파괴를 국제법상 ‘에코사이드(ecocide)’로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생태학살’이라는 말이 점점 더 많은 환경 운동 현장에서
들리고 있다. 환경파괴를 형법상 범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요구가 왜 등장했을까? 그 방식이 실제로 가능할까? 이미 환경파괴를 범죄로 처벌하는 나라가
있을까?
(125)
인간의 시간은 문명화 이후의 시간으로 제한될 수 없다. 1만
년도 채 되지 않은 문명의 시간은 인간 역사 400만 년 이상의 시간을 쓰레기 취급했다. 인간 형성의 99.9%의 시간은
0.1%도 안되는 신석기혁명 이후 형성된 인간성에 억압당해 폐기되었다. 인간적 가능성은
한없이 협소해졌고 자연과 생명에 대한 감각 또한 형편없이 조악해졌다. 유구한 생명활동의 시간 속에서
형성되어온 고귀한 인간적 자질은 버려야 할 야만성으로 취급되었다. 인간은 대부분의 시간을 수렵채집인으로
살았다. 현대인은 그 시간을 고상하고 성숙한 인간이 되기 위한 유아기로 취급한다. 하지만 인간 역사 속에서 인간성이 성장하고 진보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202)
세 번째는, 아마도 지겨울 만큼 반복해서 들은 이야기일
테지만, 재생 불가능한 에너지, 특히 액화상태의 화석연료들이
공급의 한계에 부딪혔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른바 녹색혁명의 성취하고 하는 것은 전적으로 화석연료에 의존한 것이었고, 지금도
전 세계 농업은 화석연료를 더더욱 많이 사용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토양이 지속적으로 황폐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토양침식으로 인해 상실되고 있는 자연적 비옥도의 총량은 기본적으로 화석연료로 벌충할
수 있는 것보다 크다. 바로 이것은 산업국들의 불안정하기 짝이 없는 농업경제의 실상이며, 한계점은 사람들이 예측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도래할 수 있다. 에너지
학자들은 2008년에서 2020년 사이에 전 세계 석유생산이
정점에 도달하고 이후에는 영구적으로 감소 추세로 돌아서서, 이번 세기 후반부에 이르면 연간 농업생산량이
지금에 비해서 10%까지 떨어질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