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춘단 대학 탐방기
박지리 지음 / 사계절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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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작년에 박지리 님의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을 재미있게 읽고 나서 박지리 님에 대해 알아보다가 안타깝게도 삶을 마감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아빠도 무척 슬퍼했던 기억이 있구나. 왜 그랬을까. 이렇게 좋은 작품을 쓰셨다면, 앞으로도 더 많은 작품을 남기셨을 텐데 말이야. 어쩔 수 없이 남긴 작품들을 하나 둘 찾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박지리 님의 책을 두어 권을 두 샀단다. 그 때 산 책들 중에 이번에 <양춘단 대학 탐방기>라는 책을 읽었단다.

졸린 눈의 뽀글이 파마를 한 사람이 코끼리를 타고 있는 책 표지는 책의 내용이 코믹하면서 유쾌할 것이라는 생각을 들게 했단다. 주인공이 그런 캐릭터였어. 사투리 진하게 쓰고, 다른 사람들 시선 신경 쓰지 않고, 하고픈 말 하고 하고픈 대로 하는 양춘단이 주인공이었어. 하지만 이 소설이 이야기하려는 주제는 유쾌하고 코믹한 이야기가 아니었단다. 여러 가지 사회문제를 담겨 있고, 그런 문제들에 대해 생각을 하게 했단다. 작년에 읽은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이라는 소설과는 전혀 다른 장르이지만, 이 소설도 훌륭하더구나. 천재 작가의 짧은 삶의 안타까움이 다시 한번 떠올랐단다.


1.

영일은 평생 농사일만 한 농사꾼이었단다. 암에 걸려서 수술을 해야 하고, 수술을 하고 나서도 요양이 필요해서 서울에 있는 둘째 아들 종찬이네 집으로 이사를 갔단다. 영일의 아내가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 양춘단이란다.

춘단이 생애를 짧게 이야기를 하자면, 석공의 딸이었는데, 아버지가 엄청난 태몽을 꾸어서 자신의 업을 이어받을 대단한 아들이 태어날 거라 기대를 했는데, 딸이 태어났고 그 아이가 춘단이었어. 초등학교 5학년을 다니던 중 부모님에 의해 학교를 중퇴해야 했어. 춘단은 학교를 더 다니고 싶어서 아버지에게 졸랐지만, 아버지는 꿈쩍도 하지 않았어. 오빠 둘에 남동생 하나, 여동생 하나인 식구들이 모두 공부할 수 없다고 했어. 그렇게 공부에 한이 맺히고 평생 소원이 대학에 가는 것이었단다. 춘단은 아버지를 따라 석공 일도 하고 그랬단다. 춘단은 영일과 결혼하고 나서도 억센 생활력과 친화력으로 마을에서 알아주는 유명인사였단다.

….

서울 아들 집으로 이사를 온 영일과 춘단. 아들 종찬은 2층 양옥집인데, 영일과 춘단은 1층을 썼어. 1층에는 영일과 춘단 말고 고시를 준비하는 법대생이 한 명 하숙을 하고 있었단다. 그 하숙생은 방에서 거의 나오지 않았어. 춘단은 아는 사람 소개로 인근의 대학에서 미화원으로 취직을 했단다. 춘단의 평생 소원인 대학에 가는 것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지. 오빠들, 동생들에게 전화를 해서 자랑을 해댔지. 어찌했든 대학에 간 건 간 거니까 말이야 , ㅎㅎ. 춘단이 간 대학교 이름은 천지대학교. 이 학교의 명물로는 커다란 호수와 커다란 코끼리 상이 있었단다.

학교 미화원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하고 있었어. 좁은 컨테이너나 지하실 같은 곳에서 밥을 먹고, 학생들이나 교직원들에게는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생활해야 했어. 그런데 미화원들 사이에도 알력 다툼이 있은 것 같았지. 처음 온 춘단에게 낙하산으로 들어왔다고 왕따를 시키기도 했어. 춘단은 그런 걸 신경 쓸 사람도 아니고, 혼자 옥상에서 도시락을 먹으려고 했단다.

그런데 옥상에서 쉬고 있는 한도진이라는 시간 강사를 알게 되었어. 밥도 안 먹은 것 같아서 도시락을 건넸고, 한도진은 몇 번 거절을 하다가 마지 못해 숟가락을 들었단다. 그 다음부터는 춘단은 한도진의 도시락도 따로 싸 왔단다. 한도진의 행동 하나하나 말 하나하나가 처우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시간강사임을 금방 알 수 있더구나. 예전에 시간강사의 처우가 너무 좋지 않아서 자살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랬는데, 요즘에는 좀 좋아졌는지 모르겠구나.


2.

양춘단은 우연히 강의가 진행되고 있는 강의실에 들어갔다가 맨 뒷좌석에 앉았어. 여성학에 대한 강의였는데, 그 동안 당연하다고 살았던 삶이 착취였다고 이야기하고 있었어. 미처 깨닫지 못했던 여성의 삶이 착취였다고 깨닫는 순간을 예상했는데, 춘단은 그 교수와 생각이 다르다고 생각했단다. 식구들을 위해서 한 것들이지, 착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이야. 춘단은 돌아가신 부모님에게 혼잣말로 넋두리를 하곤 하는데, 여성학 강의와 다른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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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워쨌든 나는 내외간, 자슥간에 착취란 말은 쓰고 싶지 않허요. 왠지 나는 그 말이 싫으요, 착취, 착취 해봤자 불쌍한 게 누구요. 결국 나 아니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착취당했다는데 그라믄 나만 바보 되는 거 아닌가. 지들 엄메가 바보라는데 서방이라고 좋겄소 자슥이라고 좋겄소. 그 교수 선생한테 가서 내 생각은 이란디 내가 틀린 것이오, 당신이 틀린 것이오, 그라고 묻고 싶은 맴도 있었지만 워디 가당키나 한 일이오. 을매나 배웠으면 여자가 그 젊은 나이에 교수까지 하고 있을 것이오. 내가 무슨 수로 그런 사람을 당해낼 수 있겄소. 그냥 속이 답답해서 엄메한테나 하는 말이지라. 엄메가 아니면 내가 또 누구한테 이런 말을 하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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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교수의 착취론에 대해 동의를 하지는 않았지만, 그날 저녁 꼰대 남편 영일에게 자신을 평생 착취했다고, 앞으로는 잘 하라고 한 마디 했단다. 역시 양춘단!!!

….

어느날 학교에서 어떤 교수를 고발하는 대자보가 붙었단다. 대자보 내용도 내용이지만, 정말 오랜만에 붙은 대자보를 신기하게들 보았단다. 아빠가 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대자보를 붙일 공간이 없을 정도로 많이 붙였는데, 요즘은 대학 문화도 많이 바뀌었나 보구나. 컴퓨터에 스마트폰까지 있는 마당에 대자보를 쓰는 것은 너무 비효율적이겠다. 아무튼 그 대자보 사건 이후 학교 벽 이곳 저곳에 그 교수를 고발하는 낙서가 이어졌어. 미화원들 관리하는 소장이 있는데, 소장은 미화들 중에서 특별대를 조직하고 낙서 지우는 일을 하게 했어. 춘단도 특별대에 뽑혀 열심히 낙서를 지웠단다.

….

춘단은 집에서는 하숙생에게도 잘 해주려고 했어. 하숙생이 세상과 담을 쌓은 듯 행동했지만, 밥은 꼭 챙겨주려고 했고, 집안 행사에도 데려가서 맛있는 것을 먹게 하려고 했어. 그 하숙생이 오지는 않았지만 말이야. 그 하숙생 이름은 서성환이었는데, 어느날 새벽에 춘단과 영일의 방문을 노크했어. 고향 집에 일이 있다고 고향에 내려가야 한다면서 불쑥 사라지면 걱정하실 것 같아서 인사를 드린다고 했어. 말은 없었지만, 인성은 착한 사람이었던 것 같아.

그런데 얼마 뒤 집에 경찰들이 들이닥쳤단다. 춘단과 영일, 아들 종찬도 경찰 조사를 받았어. 알고 보니 하숙생의 본명은 장대열이었고, 뉴스에도 났던 YD공장의 폭력 시위를 주도했던 사람이라는 거야. 하숙생은 공부하고 있던 것이 아니라 도망 중이었던 거야. 그리고 거처가 들통이 나서 다른 곳으로 또 도망간 것이고 말이야. 시간강사도 그렇고 하숙생도 그렇고 안타까운 사람들뿐이냐.


3.

새로운 소장이 왔단다. 그런데 이 소장은 완전 꼴통이었어. 자기보다 나이 많은 미화원들에게 군대식으로 기합도 주었어. 시급도 최저 수준인 4800원에서 4300원으로 줄였어. 미화원들 불만은 커지고, 그 불만을 공문으로 대학에 보냈는데, 대학에서는 자기네 소관이 아니라면서 소장에게 그 편지를 전달했다는 거야. , 대학 관계자도 열 받게 하네.

그 편지를 받은 소장은 다시 불호령을 내면서 더 독하게 대했단다. 미화원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코끼리 상에서 시위를 했단다. 모든 미화원들이 참석했지만, 양춘단만 불참했어. 불참 이유는 자신은 500원보다 대학에 오는 것 자체가 좋다고 했어. 미화원들의 소식이 전해지면서 학생회에서도 미화원들 지지선원을 하고 돕겠다고 했어. 그렇게 미화원들이 청소를 하지 않자, 학교는 쓰레기 천국이 되었단다. 화장실은 막히고 쓰레기통 주변은 악취가 진동하고, 강의실도 엉망이 되고

양춘단이 혼자 청소하기에는 역부족이었어. 미화원들의 시위가 길어졌지만 청소업체나 학교 측 어디도 그들을 의견을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단다. 그러던 어느 주말 학교에 학생들이 거의 없을 때 공권력을 투입하여 미화원들의 시위를 진압했어. 진압 과정에 코끼리 상에 올라간 미화원 한 분이 떨어지면서 부상을 입기도 했단다. 이후 청소업체가 바뀌는 것으로 사태는 마무리되었고, 이전 미화원들은 모두 실직당했단다. 그렇게 미화원이 실직당했지만, 아무도 알아주는 이는 없었어. 춘단만 시위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단다.

….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동안 춘단은 옥상에서 도시락을 먹으면서 시간강사 한도진과도 많이 친해졌단다. 한도진이 살아온 이야기도 들었어. 공부 잘하는 자랑스러운 박사 아들이었지만, 교수 되기는 쉽지 않고 시간강사로 살아가고 있는 이야기.

학기가 바뀌고는 시간이 맞지 않아 춘단은 한도진과 밥을 같이 먹지 못했단다. 그렇게 한동안 연락이 끊겼던 한도진은 의외의 장소 의외의 모습으로 나타났단다. 학교의 명물인 호수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거야. 시간강사의 힘든 삶을 스스로 끝을 낸 거란다. 춘단은 큰 충격을 받았으면서도 그의 선택을 이해하기 쉽지 않았단다. 사실 자신의 큰 아들도 대학생 때 학생운동을 많이 하고, 나중에 결국 자살로 삶을 마감했었어. 그래서 한도진을 더욱 아들처럼 대해주었을 텐데, 한도진 마저 자신의 아들과 똑 같은 선택을 했으니, 정말 충격이 컸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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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4-285)

사람의 운명이란 건,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하룻밤만의 생각으로 내리는 결정일까. 아니면 먼 훗날, 소중한 무언가를 지킬 수 없는 순간에 맞닥뜨리게 되면, 부모도 모르게, 형제도 모르게, 친구도 모르게 자신의 발목을 자르고 스스로 뛰어내겠다고 신에게만 조용히 고백하면서 살아온 사람들의 오래된 결심일까. 만약 그런 것이라면 삶에 미련을 가지도록 달콤한 말들로 꾀어보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얼굴이 상해 보인다, 무슨 고민이 있느냐, 다 괜찮아질 것이다, 정도의 서툰 걱정이 무슨 위안이 될 수 있을까. 그 깊고 차가운 물 앞에 섰을 때는 이미 이 밤이 나의 마지막 밤이라고 결정지어놓은 것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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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이 있고, 춘단은 청소일을 그만 두고 집에서만 지냈단다. 한도진의 죽음을 막지 못한 것에 자책하면서 말이야. 그런데 어느날 한도진으로부터 소포가 왔어. 소포는 한도진이 남긴 일기였는데, 그 일기에는 천지대학교의 부정비리와 자신이 받은 부당처우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단다. 한도진은 왜 일기를 자신에게 보냈을까. 춘단은 미화원으로 다시 학교에 출근했어. 춘단은 한도진이 쓴 내용을 몰래 학교 화장실에 썼단다. 학교에서는 귀신이 나타나서 글을 쓴다고 했어.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어느 퇴근길에 강도의 습격을 받았는데 가방을 도난 당하고 말았어. 그 가방에 한도진의 일기가 있었는데…. 일기를 집에 두고 내용만 따로 적어서 가지고 가시지아무튼 나중에 경찰에 의해 가방은 찾았으나, 일기장은 사라지고 말았단다. 누가 그랬는지도 밝혀지지 않았어. 양춘단도 이젠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어.

춘단은 마지막으로 대학에 복수를 계획한단다. 아주 오래 걸리고 아무도 눈치 챌 수 없는 복수. 천지대학교의 상징이자 명물인 코끼리 상…. 그걸 복수의 대상으로 한단다. 춘단의 길고 오랜 계획은 결국

….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소설의 주제가 그리 가볍지만 않단다. 뉴스에서 볼 법한 내용들을 소재로 했어. 대학교 미화원들에 대한 부당 처우에 대한 것도 뉴스에 본 적이 있고, 시간 강사들의 자살 소식은 한때 안타깝지만 뉴스의 단골이기도 했어. 하숙생처럼 노동자들의 부당함을 대신해서 싸워주는 것도 실제 있었던 일들이고소설 속에서도 이런 문제들이 시원하게 해결되지 못했단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불완전한 시스템이란다. 이 소설이 쓰여졌을 때보다 더 부조리한 것들이 늘었을 수도 있어. 그런 잘못된 부분을 하나하나 고쳐나가는 것이 정치인들이 할 일인데, 우리나라 정치인들에게는 그런 희망을 걸면 안 된단다. 늘 자기 밥그릇 챙기는데만 관심있는 부류들. 최근에도 말도 안되는 사고들이 반복하고 있잖니. 각자도생 해야 하는 시대우리는 불운의 시대를 살고 있단다.

오늘은 이만하련다.


PS,

책의 첫 문장: 엄메 아베여, 춘단이 오늘 대학교 댕겨왔습니다.

책의 끝 문장: 혼자 지낼 만허요?


"지금 저기에서 제일 가슴 아픈 사람은요, 사장도 아니고 주주도 아니고 인근 음식점 주인도 아니고, 바로 자기 일터에다 불을 질러야 하는 저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어르신께서 뭔가 단단히 착각을 하고 계신 것 같네요. 자기 권리를 모르는 사람은 종이 되는 겁니다. 싸우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 종이 된다고요." - P134

"그 형사 하는 말이, 하숙생은 원체 세상에 불만이 많은 인물이라 여그랑은 완전히 다른 꿈나라 같은 세상을 그리워해서 그런 짓거리를 한고 다닌다는디, 저가 살아본 적도 없는 세상을 워떻게 그리워한다는 건지 나는 그게 이해가 안 가는 거라. 한 번이라도 겪어봤어야 그리워하든 보고 잪아 하든 하는 거 아니오? 아, 우리가 먹는 이 밥만 해도 그렇지 않소? 뭐가 먹고 잪아도 어릴 때 한두 번씩 해먹던 음식이나 그리워하지 생판 먹어본 적도 없는 음식을 뭔 맛인 줄 알고 그리워하겄소?" -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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