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산고 -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에게 미래는 없다, 박경리 유고 산문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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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박경리는, 아니 박경리 선생님은 우리나라 소설가 중에 엄청 유명하신 분에 한 분이란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그의 작품들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읽고들 있어. 아빠도 모르게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절로 나오는구나. 아빠는 박경리 선생님의 작품은 대표작인 <토지>와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만 읽어보았단다. 최근 새로 출간된 <토지>는 모두 20권으로 엮어서 나왔는데, 아빠가 읽은 버전은 21권짜리였단다. 언제 읽었는지 확인해 보니, , 20년이 넘었구나. 다시 한번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21권짜리다 보니 큰 마음을 먹어야겠구나. 사두고 한 번도 읽지 않은 책들도 쌓여 있고 말이야. 박경리 선생님의 책들도 여럿 사 두었는데 아직 열어보지 못했구나.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도 좋았던 기억이 있구나. 아빠가 그 책을 읽고 쓴 리뷰를 다시 읽어보았단다. , 이 책도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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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읽은 박경리 선생님의 <일본산고>는 알라딘 인터넷 서점 신간 코너에서 알게 된 책이란다.  나는 철두철미 반일 작가입니다라고 적힌 책 띠의 문구가 너무 강렬해서 클릭을 할 수 밖에 없었단다. 책 제목에 있는 산고라는 말은 한자로 散考라고 쓰는데 사전에서 찾아보면 나오지 않는 말이란다. 한자의 뜻을 풀이해 보면 일본에 대해 간간히 생각해 봤던 글정도로 생각할 수 있단다. 그러니까 박경리 선생님이 일본에 대해 쓴 글들을 모아 놓은 글이라고 생각하면 된단다. 생전에 발표한 글들도 있고, 미발표된 글들도 포함되어 있다고 하는구나. 예전에도 같은 제목으로 출간된 적이 있는데, 이번에 개정판으로 나온 것이란다.


1.

일본은 자신들이 저지른 과거의 잘못에 대해 반성도 하지 않고 사과도 하지 않고 있단다.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피해국가들에 진정한 사과를 한다면 대외적인 국가 이미지도 좋아지고 외교 관계도 좋아져서 경제적으로 더 이득이 될 것 같은데, 왜 안 하는지 그걸 모르겠구나. 반성이나 사과를 안 했을 때 자신들에게 어떤 이득이 가는지 잘 모르겠구나. 정말 자신들이 잘못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가? 그것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고, 최근에는 우리나라에 친일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때가 기회가 싶은지 반성, 사과는커녕 욱일기를 매단 군함을 몰고 우리나라에 오기도 했단다.

박경리 선생님은 1926년에 태어셨고, 꽃다운 나이를 일제시대에 보내셨으니, 일본의 만행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는 분일 거야. 해방 이후 당연히 전범국인 일본의 사과가 이어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전혀 다른 행태를 보이니 얼마나 답답해 하셨을까. 그런 내용들이 이 책 전반에 걸쳐 있었단다. 일본 역사를 통해서 일본 국가권력의 몰염치한 태도의 원인을 찾기도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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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7)

생각해 보면 개인의 사고를 그토록 붙들어 맨 일본의 국가권력은 놀랍다. 그것도 장구하게 유지해 왔다는 것이 더욱 놀랍고 유례없는 일이다. 그러나 바로 그러했기 때문에 기능과 세기(細技)가 우수하면서도 일본은 항상 남의 틀과 본을 훔쳐 오거나 얻어 와서 갈고 닦고 할밖에 없었다. 본과 틀이 없는 나라, 그들의 정치 이념은 창조의 활력이 위축된 민족을 만들었던 것이다. 오늘이라고 다를 것이 없다. 날조된 역사 교과서는 여전히 피해받은 국가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어 있고 고래심줄 같은 몰염치는 그것을 시정하지 않은 채 뻗치고 있는 것이다. 가는 시냇물처럼 이어져 온 일본의 맑은 줄기, 선병질적이리만큼 맑은 양심의 인사(人士), 학자들이 소리를 내어 보지만 날이 갈수록 작아지는 목소리, 반대로 높아져 가고 있는 우익의 고함은 우리의 근심이며 공포다. 일본의 장래를 위해서도 비극이다. 아닌 것을 그렇다 하여 분명한 것이 차츰 부풀어 거대해질 때 우리가, 인류가, 누구보다 일본이 자신이 환란을 겪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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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선생님은 일본에 대한 이런 생각을 갖고 계셨기에 일본 기자와 인터뷰를 할 때도 자신 있게 자신을 반일작가라고 이야기를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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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나는 내 자신을 소개하기를 철두철미 반일(反日) 작가다.” 두 사람은 약간 놀라는 것 같았다. 왜 충격을 받을까? 전에도 그런 얘기는 했었고 일본인들은 가만히 듣는 것 같았다. 그러나 깨달았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것을. 반일을 당연하다고 본 그들은 이제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느끼게 된 것이다. 그들과 나는 꽤 오랜 시간 얘기를 했다. 남경(南京, 난징) 학살 사건에 관한 말이 나왔을 때 그들의 안색은 변했고 실은 겁이 많은 것이 일본 사람 아니냐 했을 때는 당혹하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손님에게 너무 무례했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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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라는 국가에 대한 비판의 강도는 읽는 이로 하여금 시원하게 해 주시는구나. 오늘날 정부는 일본에 눈치를 보는 짓과 말만 해서 창피했는데 말이야. 반성과 사과 없는 일본에 예()를 차리지 말라는 호통이 시원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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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일본인에게는 예()를 차리지 말라. 아첨하는 약자로 오해 받기 쉽고 그러면 밟아버리려 든다. 일본인에게는 곰배상을 차리지 말라. 그들에게는 곰배상이 없고 마음의 여유도 없고 상대의 성의를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의 힘을 상차림에서 저울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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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일본을 이웃으로 둔 것은 우리 민족의 불운이었다. 일본이 이웃에 폐를 끼치는 한 우리는 민족주의자일 수밖에 없다. 피해를 주지 않을 때 비로소 우리는 민족을 떠나 인간으로서 인류로서 손을 잡을 것이며 민족주의도 필요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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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최근에 기후 변화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걱정이란다.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의 온도를 1.5도 상승을 막으면 아직 희망이 있다고 하는데, 요즘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전세계 날씨들을 살펴보면 이미 늦은 건 아닌가 싶어 걱정이구나. 박경리 선생님도 생전에 이런 인간들의 환경 파괴에 대한 비판의 말씀도 하셨단다. 인간들은 지금 탈출할 수 없는 자신의 집에 불을 붙이고 부채질까지 하고 있는 모양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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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인간들의 지칠 줄 모르는 파괴와 약탈로 아시다시피 지구는 지금 만신창이가 돼 있습니다. 설령 지구가 멸망한다 하더라도 자업자득, 어디 봄의 죄이겠습니까. 소생시켜 놓은 생명들이 참살을 당하고 멸종이 된들 봄에게는 임무 밖의 일이지요. 다만 길손일 뿐, 노쇠해 가는 길손일 것만 같습니다. 어쩌면 그도 인간이 저질러서 맞이하게 될 재난에 희생되어 처지일 수도 있고 지구와 생명들과 운명을 같이하게 될지도 모르지요. 노쇠한 봄이라는 말은 물론 합당하지 않습니다. 늙는다는 것은 세월의 조화인데 계절 자체가 세월이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은 늙고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궁지에 몰아넣고 오도 가도 못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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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내 생각에는 말입니다. 인간의 이성은, 또 창조적 열정은 균형을 잡고 균형을 잡아주어 존재하게 하지만 인간의 욕망과 탐욕은 균형을 잡아주어 존재하게 하지만 인간의 욕망과 탐욕은 균형을 파괴하고 존재를 흔들리게 하는 것으로 바로 오늘, 현재가 그 같은 것을 여실하게 증명하고 있습니다. 지구 도처에서 균형을 망가뜨리고 있지 않습니까. 땅이 죽어간다거나 물이 썩어간다거나. 이젠 그것이 대단한 일도 아니게 되었습니다. 보다 가공할 일은 오존층이 찢기어 점점 넓어져 가고 있다는 것, 환경호르몬에 관한 것, 지구온난화 현상, 여차하면 자멸의 무기 핵폭탄 등. 이것들이 하늘이 내린 재앙이라 하겠습니까? 지구의 사막화, 도처에서 범람하는 물, 이런 상황이 천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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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선생님도 오래 전부터 인간의 야욕에 의해 황폐화되는 지구를 경고했지만, 우매한 지구인들은 결국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것 같구나. 아직도 늦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믿어보고 우리도 작은 것이라도 지구온난화를 늦출 수 있는 것들을 실천하자꾸나.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해방 후, 1950년 일본서 초판을 발행한 <세계문예사전 동양 편>을 보면 문예사조 항목에 무려 26페이지가 일본 문학을 위해 할애되어 있고 중국 문학이 12페이지, 인도 문학이 약 5페이지, 아라비아 페르샤 남방아세아가 각각 1페이지 안팎, 다음은 일본 주변 문학으로 묶었는데 아이누, 유구(류쿠), 대만 순으로, 그중에서도 맨 끄트머리에 조선 문학(朝鮮文學)이라 하여 한 페이지를 쓰고 있다.

책의 끝 문장: 또 그것이 의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종교나 도적의 본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그런 것들은 적시적소에 써먹은 도구에 불과하고 어떤 권력이든 도구화하려는 속성은 있게 마련이지만 일본처럼 철저한 경우는 드물 것이다. 일사불란하게 그런 그들에게 내세관이 희박한 것은 당연하다. 그들은 유한(有限)을 잘 소화시켜 온 민족이다. 유한은 인간의 숙명이지만 그러나 인간이기 때문에, 생명이 오는 곳 생명이 가는 곳, 그 한(恨) 때문에 사람은 유한 밖으로 나가려 몸부림치는 것이며 그 몸부림은 신의 축복인 창조의 능력으로 나타난다. 신의 축복이 없는 나라 일본, 역사상 한 번 기회가 있었다. 시마바라의 난으로까지 몰고 갔으나 섬멸되고 만 천주교도들, 답회령(踏繪令)으로 수없는 순교자를 냈던 그때, 아마테라스를 뛰어넘고 영혼의 구제로 향한 죽음들이 있었다. - P39

물질로 환산할 수 없는 피해였지만 그들은 거의 보상하지 않았다.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통분이 무슨 사과인가? 그러고도 욕을 안 먹겠다는 것은 뻔뻔스러운 일이다. 가와무라 씨는 한글세대는 반일이라는 대전제를 전면에 세우고 있으나 구체적 체험과 연구 관찰이라는 기회를 가지지 못하고 다만 반일이라는 민족교육으로 길러진 지식과 근본적 이미지에 의해 일본을 단죄, 규탄하는 태도를 가지기 일쑤다 했는데 동감이다. 그러나 동감의 뉘앙스는 상당히 다르다. 도식적인 교육을 떠나 생생한 역사적 사실 역사적 입김에 접할 수 있다면 한글세대는 무조건 감정적 시비를 떠나 조목조목 따지고 넘어가는 사상적 강화(强化)를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일본의 전후세대도 우리 한글세대에 대한 불만을 사실에 입각하여 반박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을 관찰하고 연구해야만 한다. 대로(大路)는 결코 일방통행일 수 없기 때문이다. - P62

전쟁은 문화의 어머니요 어쩌고 하는 말도 생각이 난다. 일본 지식인들의 대부분은 한국인의 분노를 지겹고 불쾌하고 귀찮아한다. 언제까지 이럴 것이냐, 하면서도 철도를 놓아주었느니, 학교를 세워주었느니, 아무도 그것을 부탁한 바 없는 일을 좀스럽고 쩨쩨하게 늘어놓는 데 대해서는 말이 없다. 간간이 들려오는 침략이 아니라는 망언에 대해서도 무반응이다. 그들의 계속되는 망언은 괜찮아도 한국인의 분노는 왜 지겨운가. 사리를 명백하게 하지 않는 이상 잘못은 되풀이된다. 과거지사보다 미래를 내다보는 데서 오는 근심이다. 장차 세계에서, 인류라는 차원에서 일본은 어떤 모습으로 있을 것인가. 인류에 속하는 일본인 역시 오늘 군비 확장의 의미를 깊이 새겨보아야 할 것이다. 자결하지 못하는 모친의 목을 조르는 아들의 비극이 없기 위하여. - P76

언제였는지 일본인의 저축열에 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기사를 읽었을 때 일본인은 저금통장을 위하여 세상에 태어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사람은 결코 저금통장을 위해 태어나지는 않았습니다. 살기 위해 태어난 것입니다. 사는 데 필요하기 때문에 저금통장이 필요한 것이지 저금통장을 위해 삶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쿠타가와의 예술지상주의가 만일 저금통장을 위한 삶 같은 것이라면 그것은 전적으로 허위인 것입니다. 착각이거나 아쿠타가와뿐만 아니라 일본인의 의식구조는 반생명적인 경향이 농후하며 그것이 체제에서 굳어져 버린 것이고 보면 분재와도 같이, 축소되고 불구적인 정신세계를 떠나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국체를 부정하고 진실에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 P93

이삼 년 종안 나는 우리 뒷동산에 계단을 하나씩 하나씩 쌓아 올리는 일을 계속하여 육십오 계단이라는 꼬불꼬불 계단이 만들어졌습니다. 비록 만리장성은 아닐지라도 내 손자가 오르내리는 기쁨의 자리가 되었고, 오른다는 것 무한히 오른다는 것 무한히 간다는 것…… 나는 그 계단을 끝내고서 생각했습니다. 마지막 계단 위에 산이 계속되고 또 울타리가 없다면 계단은 계속하여 쌓아 올려졌을 거라고. 그리고 시시포스의 바위를 생각했지요. 부정적, 근원적으로 부정적인 인생과 문학 행위. 아마도 긍정적이었다면 갈 길은 없었을 것이요, 배불리 먹고 눈물이 없고 죽음이 없고 사랑도 없고 존재뿐인 삶은 비인간 로보트가 아니겠습니까.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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