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운 배 - 제21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개정판
이혁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랜만에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을 읽었단다. 최근 수상작은 아니고, 21회 수상작이니까, 몇 년은 지난 것 같구나. 제목은 <누운 배>. 아빠는 이 책을 몇 년 전에 인터넷 서점에서 알게 되었단다. 책 제목을 처음 봤을 때는 세월호 사건과 관련된 소설인가 싶었단다. 그런데 그건 아니더구나. 어떤 상징적인 의미로 쓰인 말도 아니고, 실제로 배가 누운 것을 소재로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아빠가 조선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지만, 너무 실감나게 잘 풀어나갔단다.

조선업을 하는 회사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어떤 장면은 아빠가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도 공감할 수 있는 그런 내용들이었단다. 배를 설계하고 만들고 판매하고그러다가 크고 작은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하게 되고그럼 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사람들이 움직이는 이런 장면들은 여느 회사에서도 볼 수 있는 장면인 것 같구나. 소설 속 대화를 읽다 보면 회의실에 직접 앉아 있는 기분이 들기도 했고, 회사 경영진들의 답답한 결정을 보면 기시감을 느끼면서도 찐 고구마를 잔뜩 먹은 기분도 들고 그랬단다.

많은 사람들이 몸 담고 있는 회사라는 세계. 우리가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다고 하지만, 회사라는 세계도 민주주의 세계일까? 예전에도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여러 번 있는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단다. <누운 배>라는 소설을 읽다 보면 지은이가 조선소에서 일하지 않고는 쓰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조선업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단다. 작가의 말을 보니 지은이 이혁진 님은 실제로 조선소에서 근무했었다고 하는구나. 아빠가 좋아하는 작가 리스트에 또 한 명 추가를 해야겠구나. 이 책을 덮고 이혁진 님의 책을 두어 권 주문했단다.


1.

중국에 진출한 한국의 신설 조선업 회사. 거대한 배를 처음으로 두 척이나 수주를 받고 만들게 되었단다. 진척율 80% 정도를 보이던 어느 날 두 척 중에 한 척이 기울어지고 있었단다. 전직원 비상 소집으로 소설인 시작되었단다. 주인공 문 기사도 마찬가지로 팀장의 전화를 받고 회사로 복귀했단다. 하지만 경영기획팀 소속인 문 기사는 특별히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단다. 그리고 결국 배는 완전히 옆으로 누워버렸단다.

주인공은 문 기사. 이름이 기사는 아니고 직급이 기사였단다. 이 회사의 직급을 잠깐 소개하자면, 회사에 입사를 하면 먼저 기사라는 직급을 갖게 된단다. 그래서 지은도 성을 함께 붙여 문기사로 불렸다. 소설 속에서 이름이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계속 문기사로만 불려서 아빠도 그냥 문기사라고 부를게. 그 위의 직급은 다른 회사들과 비슷하게 대리, 과장, 부장으로 이어진단다.

문기사는 전직기자 출신으로 이 조선소에서는 경영기획팀에 소속되어 회사 홍보를 비롯하여 여러 잡일을 하고 있었단다. 배가 기울어진 이후에는 보험 업무를 하게 되었단다. 거대한 배가 쓰러진 것은 단순히 생각만 해도 엄청난 손해가 날 것 같구나. 손해를 최소한으로 하기 위해서는 보험회사에서 많은 돈을 뜯어내야 하기 때문에 보험 업무는 무척 중요했단다. 회사는 이번 사고가 천재지변에 의한 것으로 이야기를 풀어갔단다.

이런 일에 전문가인 홍소장이라는 사람도 긴급 섭외했단다. 보험 업무를 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문서와 증빙 서류가 엄청 필요했단다. 하지만 이 회사는 신설 회사이고 해서 제대로 된 문서가 별로 없었단다. 프로세스를 미준수한 것도 여럿 있었어. 보험회사도 돈을 주지 않겠다는 의지가 만만치 않았어. 손해사정사로 미스터 캉이라고 부르는 중국인을 데리고 왔는데, 홍사장과 마스터 캉의 기싸움이 엄청 났단다. 주인공 문 기사도 보험 회사에 제출할 문서와 증빙자료를 조작하는 등 회사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 나갔다. 결국은 이곳도 인맥의 싸움인가? 홍사장과 조선소 회장의 뒷배로 보험 처리가 원하는 대로 될 것 같았단다. 회사 창단 이래 첫 번째 큰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단다.


2.

그런데 다음 해 신년 인사에서 회장은 뜬금없이 누워 있는 배를 세우겠다고 발표를 했단다. 이미 보험회사에서 어느 정도 손해 배상을 받았는데 왜 배를 세워? 배를 세우는 일은 그 일이 가능하다고 해도 세우는 배용과 수리하는 비용, 그리고 인건비 등을 다 더하면 배 값보다 크다는 것이 실무자들과 전문가들의 의견이었단다. 하지만 신년회에 참석한 경영진은 누구도 반대 의사를 보이지 않았단다. 이 회사는 회장의 권력이 막강한 그런 회사였던 거야. 독재라고 볼 수 있지.

==========================

(84)

아무리 그렇더라도 귀가 있고 생각이 있으면 임원들의 횡설수설을 모를 리 없지 않은가? 상관없었다. 회장은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틀릴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것이 회장의 힘이고 지위고 회장을 둘러싼 찬란한 광배였다. 회장은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강력하게 군림했다. 임원들이 가짜를 말해도 회장이 진짜라면 진짜가 되고 진짜를 말해도 회장이 가짜라면 가짜였다. 사고 원인을 결정한 사람도 회장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당연했다. 그런 것이었다. 그렇게 돌아가는 것이었다.

==========================

이런 회사 방침에 불만 있는 이들은 하나둘 퇴사를 하게 되고, 회장이 영입한 임원들은 무능력한 자들이고 아래 실무자들만 달달 볶는 스타일이었단다. 외부 영입 임원들 포함 임원들 수는 늘어나는데 사정이 어렵다면서 직원들 연봉은 협상 없이 지난해와 동결 결정되었단다. 그야말로 독재가 따로 없구나. 문 기사의 직속상사 팀장도 무능한 임원과 갈등으로 퇴사를 하였단다. 그러면서 팀이 해체되어 문 기사는 생산기획팀으로 옮겼어.

전 세계적으로 금융환란이 일어났단다. 조선업계도 위기가 불어 닥쳤어. 환율이 올라서 중국 내에서 생활하는 것도 어려워지기 시작했어. 가뜩이나 월급도 동결되었는데 말이야. 불만이 가득한 채권단은 사장을 자르고 새로운 사장을 선임했단다. 조선업에서 잔뼈가 굵은 황철주라는 사장이란다. 이전 사장은 회장의 바지 사장이라고 하면 이번 사장은 야심을 넘어 야욕이 넘치는 사람이었단다. 새로운 사장이 오면 보통 허니문 기간이 있는데, 황사장은 처음부터 사람들을 속된 말로 조졌단다. 특히 임원들을 더욱 강하게 몰아 부쳤어. 무능한 임원들 밑에서 일하는 실무자들은 속이 시원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

(161)

황 사장이 입을 열었다. “오늘 회의를 기준으로 삼기 바랍니다. 이전에도, 또 다른 회사에서도 똑같이 해왔다는 말 같잖은 소리는 집어치우십시오. 모른다, 확인하겠다, 말만 하지 말고 미리 준비해서 들어들 오세요. 이 회의는 주간 공정 회의입니다. 회의 이름에 걸맞게 지난주 생산 실적을 확인, 정리하고 다가올 한 주의 생산을 제고할 방안을 미리 세운다는 관점에서 준비들 해오세요. 이 회의에 참석한 여러분은 모두 관리자고 책임잡니다. 1 1초가 귀한 사람들입니다. 설명 같은 변명, 변명 같은 핑계, 핑계 같은 거짓말, 불순하고 무책임한 잡설로 자신의 시간을 허비하고 남의 시간을 뺏는 일이 없도록 하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황 사장은 수첩을 덮었다.

==========================

일을 하다 보면 회사 내 조직 간 상충되는 일이 있단다. 그렇다 보면 다른 조직 핑계되면서 일정이 밀릴 수 밖에 없다고 이야기를 하지. 이전 사장 같았으면 그럼 조정된 일정으로 다시 계획을 수립했지만, 황사장 앞에서는 그것이 안되었단다. 책임과 고통을 분담해서 일정을 맞춰야 한다. 일정을 맞추기 위해서 필요한 것을 찾아서,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임원의 역할이다. 이런 식으로 임원을 다그쳤단다.

==========================

(166-167)

황 사장은 자신의 책상 양옆으로 앉아 있는 임원들을 봤다. “회사가 어려워지면 회사의 모든 사람이 그 고통을 나눠 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고통을 나누는 게 책임을 나눠 진다는 건 아닙니다. 회사가 어려워진다면 잘못은 내게 있고 또 각자 가지 분야에서 최고참이자 전문가인 임원들, 우리 경영진에 잘못이 있습니다. 책임 역시 내 책임이고 우리 경영진의 책임입니다. 수십 년 일해온 우리가 각자 자신이 맡은 일조차 장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뒤집어 말해 돌발 상황과 변수를 통제하지 못하고 다른 부서가 일하는 것에 자기 일을 맞춰나가겠다고 하는 이 상황이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내 일의 주도권을 남에게, 외부 요인에 내줬다는 게 명백한데도 그걸 되찾을 거라고, 되찾아야 한다고 어떻게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실패와 지연에 적응하고 익숙해질 수 있습니까?” 회의실 안은 적막했다.

==========================

….

회사의 전반적인 부조리도 바꾸려고 했단다. 임원 전용 식당을 폐쇄하고, 사장 스스로 중국인 지원 식당에서 밥을 먹고 개선점이 있으면 바로 고쳤어.


3.

문 기사는 우연히 황사장의 신문 인터뷰를 도와주는 일을 하게 되었어. 문 기사가 전직 기자 출신이라서 일을 맡게 되었지. 사장님을 독대하고 사장의 비전을 들었는데, 독불장군 같기는 하지만 황사장의 혁신은 명확하고 시원했단다. 이 인터뷰 내용을 문 기사가 정리해서 보여드렸더니 황사장은 문 기사의 글 솜씨에 마음에 들어 했어. 그래서 문 기사에게 새로운 일을 맡겼단다. 임원 회의에 참석해서 회의 내용을 정리해서 담당자에게 전달하고 진행 사항을 체크하는 일이야.

그리고 황사장은 혁신팀을 만들어 활동도 했어. 연말이 되기 전에 생산력을 2.5배까지 늘리는 것이 주 목표인데, 이게 말이 쉽지, 이를 위해서는 또 누군가는 뺑이쳐야했단다. 임원들과 팀원들 중심으로 황사장에 대한 불만이 쌓여갔어. 특히 회장 라인의 임원들과 갈등이 심했는데, 어느 날은 대놓고 대판 말싸움이긴 하지만 대판 싸우기도 했단다.  이렇다 보니 사장도 자신의 몸도 사리게 되는 정치적 결정을 하는 경우도 있어. 그 중에 하나가 누운 배를 다시 세워 수리하는 일이었단다. 황사장이 오면서 다른 배들을 건조하고 제작하느라 뒷전에 밀렸던 회장님의 무모한 야심이었는데, 그 이야기가 다시 돌았고, 황사장도 거절하지 못하고 배를 세우기로 했단다. 예상했던 것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어. 우여곡절 끝에 몇 달 몇 일을 밤색 작업 끝에 2년간 바닷속에 잠겨 있던 배의 반대편이 드러났단다. 예상보다 손상은 엄청났단다. 바다에 잠겼던 부분은 거의 녹아 내린 수준이었고, 그냥 봐도 재건조는 불가능한 수준이었어.

….

이 누운 배를 세우는데 많은 인력과 장비를 투입해서 그런지, 새로 만들고 있던 배에서 또 사고가 났단다. 진수를 진행하고 있던 배 한 척이 배로 떠밀려갔고 그 충격으로 배 뒷쪽이 가라앉았어. 다급히 수습하여 피해를 최소화했지만, 최소화한 피해도 이미 막심한 피해였단다. 이 일을 책임지고 황사장이 사퇴를 했단다. 사장이 영입했던 사람들도 줄줄이 사퇴를 했단다. 갑자기 사장이 공석이 되고, 이 공석으로 노리려는 임원들이 몇몇 있었단다. 이런 회사의 미래를 불을 보듯 뻔한 것 같았단다. 자꾸 쓰러지는 배들이 이 회사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구나.

==========================

(326)

분명한 것은 일을 일로 하지 않는 회사는, 야합과 담합으로, 협잡과 인습으로, 사람에게 일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일에 사람을 끼워 맞춰가며 시키는 회사는 몰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이치였다.

==========================

결국 문 기사, 아니 이제는 진급한 문 대리도 회사를 그만 두었단다. 그리고 자신이 오래 전 하고 싶었던 글쓰기를 다시 하기로 마음 먹으면서 이 소설은 끝이 났단다.

….

이 소설에는 아빠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도 여기저기 실려 있었단다. 아빠가 책을 읽으면 인상적인 부분을 발췌하는데, 이 책에는 발췌한 부분이 꽤 많았단다. 예전에 아빠가 월급이라는 것이 아빠의 시간을 팔아서 받은 돈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이 책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있더구나. 월급을 받으면서 젊음을 잃는다고그러고 보니 아빠도 20년 월급을 받고 나니 어느덧 아무도 모르게 젊음이 사라져 버린 것 같구나. 괜히 서글퍼지는구나. 오늘은 이만.

==========================

(301)

월급이란 젊음을 동대문 시장의 포목처럼 끊어다 팔아 얻는 것이다. 월급을 받을수록 나는 젊음을 잃는다. 늙어간다. 가능성과 원기를 잃는 것이다. 존재가 가난해진다. 젊음이 인생의 금화라던 황 사장의 말 역시 수사가 아니다. 이대로 10, 20년 또 어느 회사에서 삶을 보내든 그 회사가 모두 이렇다면 내 인생의 금화는 결국 몇 푼 월급으로, 지폐로 바뀌어 녹아버릴 테고 나는 그저 노인이 돼 있을 터였다. 그다음은 끔찍하다. 명예퇴직, 권고퇴직, 그런 말 아닌 말로 수십 년 회사 일에만 길들고 늙은 사람인 채 양계장에서 풀어준 노계처럼 세상에 나올 것이다.

==========================


PS,

책의 첫 문장: 배가 쓰러지니 어서 회사로 들어오라는 팀장의 전화를 받았다.

책의 끝 문장: 아직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백지 같았다.


입회해 회의실 안쪽 가장 큰 책상 뒤에 앉았다. 임원들이 차례로 일어나 발표를 시작했다. 무엇을 어떻게 혁신하겠다는 것인지 내용은 하나도 없었고 핵심 관리 지표라는 것도 모두 타 회사 자료에서 베꼈는지 회사 실정과 전혀 동떨어져 있었다. 중언부언에 말끝마다 혁신, 혁신, 혁신 모두 그뿐이었다. 말밖에 안 되는 말이 중력 없이 떠돌았고 드러낸 것보다 감춘 것이 더 많은 실적 수치들은 속이 텅 빈 전망을 쌓아 올렸다. 하지만 회장은 아무 불만도,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다. 질문조차 하지 않았다. 수량 넉넉한 호수처럼 관대하게 웃었고, 횡설수설하는 임원들을 지켜보며 이따금 알아듣겠다는 듯 고래를 끄덕였다. 회의는 원만히 이어졌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P74

문서라는 것은 얼마나 우스운 것인가? 문서란 엉성하고 허술한 현실에서 부스스 떨어져 내린 각질에 불과했다. 하지만 누가 문서를 우습게 보는가? 아무도 없다. 모든 사람이 문서를 자기 머리 위에 올려놓는다.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이 현실을, 회사를, 정부나 국가를, 종교를 자기 머리 위에 올려놓는다. 누운 배 한 척이 그렇게 됐듯 사실이라는 것은, 참이나 거짓이라는 것은 힘으로 흔들 수 있었다. 세상은 성기고 흐릿한 실체였다. 그것을 움켜쥔 힘만이 억세고 선명했다. 힘은 우스운 것이 아니었다. 아마리 우스운 것도 우습지 않게 만드는 것이 힘이었다. - P99

성질 괄괄하고, 억센 부산 사투리를 쓰고, 돌려 말해야 할 것 같으면 차라리 입을 다물고, 현장 안 나간 지 보름이 지나도록 턱 끈 자국이 지워지지 않을 만큼 밖으로 쏘다니며 일하던 남자에게 있는 것은 결국 정이었다. 그 남자가 회사를 그만둔다는 것은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수많은 사건 사고를 겪고 당하면서 그것을 이해하려고 애쓰거나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덮어둔 채 버티고 견딜 수 있게 해주던 그 정이, 정나미가 떨어졌다는 뜻이었다. - P116

결국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과거입니다. 이미 일어나고 지나간 것을 어떻게 바꾸는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할 테지만 나는 다르게 봅니다. 과거야말로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겁니다. 링 위에서 똑바로 못 했다면 이유가 뭐겠습니까? 링에 오르기 전까지, 링 밑에서 똑바로 안 했기 때문입니다. 현재를 견디고 헤쳐나가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과거, 되레 우리 발목을 잡고 억압하는 과거, 인습, 껍데기뿐인 규정과 규제, 타성, 그런 것들이야말로 바꿀 수 있고 바꿔야 하는 겁니다. 우리가 현재를 돌파하는 데 도움 주는 것들, 전통, 통찰, 지혜라고 부르는 것, 아니 더 쉽게 말해서 지금도 쓸모 있는 것, 실용적이고 구체적인 것, 많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옳고 올바르다고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것만 과거에 남겨둬야 합니다. - P177

그게 말입니까? 잘못은 한 사람이 저지르고 수습은 왜 열 사람이 나눠 합니까? 임원이라서요? 생각들 똑바로 하세요! 임원이기 때문에 한 사람도 수습할 일 없게 일해야 하는 겁니다! 당신들이 똑바로 안 하면 당신들 밑에 있는 수십 명이 바로 당신 하나 때문에 개고생, 헛고생을 해야 한단 말입니다! 이사 행세, 상무 행세, 뭐든 다 아는 척 거들먹거리면서 대접이나 받고 특권이나 누리라고 회사가 그 많은 연봉을 당신들에게 지급한다고 생각합니까? 당신들부터 똑바로 하세요! - P241

나는 계속 일했다.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었고 산정으로 밀어 올리면 굴러떨어지고 다시 밀어 올리면 다시 굴러떨어지는, 아무 희망도 보람도 주지 않는 시시포스의 바위처럼 매일 굴러떨어졌다. 젊은 카뮈는 매일 굴러떨어지는 바위의 부조리와 그것을 각성하면서도 그치지 않는 투쟁에 관해 썼다. 투쟁을 통해 부조리를 비웃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유일한 미덕이고 행복이라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그 바위는 결국 모든 것을 깔아뭉갠다. 신이 아닌, 노쇠할 수밖에 없는 인간은 결국 바위를 이기지 못한다. 어리석음도, 각성도, 비웃음도, 경멸도, 희망도, 젊음도 굴러떨어지는 바위의 요란한 소리에 묻힌다. 쾅쾅쾅! 늙은 인간을 깔아뭉갠 바위만이 저 끝, 힘이 다해 더 굴러갈 수 없는 곳에 멈춘다. 모든 것이 침묵한다. - P302

분명한 것은 일을 일로 하지 않는 회사는, 야합과 담합으로, 협잡과 인습으로, 사람에게 일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일에 사람을 끼워 맞춰가며 시키는 회사는 몰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이치였다. - P32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