썬킴의 세계사 완전 정복 - 패권전쟁으로 이해하는 역사의 흐름
썬킴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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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아빠가 즐겨 드는 팟캐스트가 하나 있어. <썬킴의 세계사 완전 정복>이라고세계사를 이야기해주는 팟캐스트인데, 재미있으면서도 쉽게 잘 설명해주어 즐겨 듣거든. 너희들도 함께 들으면 세계사 상식을 쌓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같이 듣자고 했는데, 너희들 취향은 아닌가 보구나 ㅎㅎ 뭐 어쩔 수 없이 아빠 혼자 들어야지.

<썬킴의 세계사 완전 정복>의 팟캐스트의 기반으로 해서 책이 출간되는데 두 번째 책 <썬킴의 세계사 완전 정복>을 아빠가 이번에 읽었단다. 첫 번째는 <썬킴의 거침없는 세계사>라는 제목을 나왔는데, 이번에는 팟캐스트와 같은 제목으로 책이 나왔구나. 책의 내용은 팟캐스트에서 들었던 내용인데, 들은 지 한참 지나서 내용이 어렴풋했단다. 그런데 책으로 다시 읽으니 팟캐스트에서 들었던 내용들이 다시 기억이 났어. , 복습 효과라고나 할까? 아빠도 복습한다는 생각으로 책을 읽었단다. 메모도 하면서 말이야. 그 메모를 바탕으로 다시 너희들에게 독서 편지를 쓰는데 다시 한번 복습하는 것 같구나. 이렇게 여러 번 복습을 해도 또 얼마 못 가서 다 잊혀지고 마는 두뇌가 서글프구나.

이번 <썬킴의 세계사 완전 정복>이라는 책에서는 미국과 러시아, 한 때 세계의 투탑(two top)이었던 두 나라의 역사를 다루고 있단다. 어떻게 두 나라가 강대국이 되었는지를 이야기해주고 있지.

 

1.

, 그럼 먼저 미국의 역사부터 이야기를 해줄게. 아메리카 대륙을 처음 발견한 것은 1492년 콜럼버스였지만, 그가 발견한 것은 아메리카 대륙의 조금한 섬들이고, 콜럼버스는 죽을 때까지 그 섬들이 아메리카 대륙이 아니고 인도의 섬들이라고 생각했대. 애초에 그가 항해를 나선 것도 인도를 찾아나선 거니까. 그래서 그 섬들을 서인도 제도라고 부르는 것이고. 1584년 영국 윌터 롤리라는 사람이 북미 대륙을 발견하고 자신이 발견한 지역의 이름을 버지니아라는 이름을 붙이고 식민지 건설을 시도하지만 실패하게 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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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4년경, 영국인 탐험가 월터 롤리는 지금의 미국 플로리다주 북구 해안을 탐사하던 중 영국인들이 알지 못했던 새로운 땅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 땅에 당시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의 별명을 따 버지니아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왜 버지니아냐고요? 엘리자베스 1세는 나는 국가와 결혼했다.”라고 선언하고 평생 독신으로 지낸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 때문에 처녀 여왕(virgin queen)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 이 당시 버지니아에는 특정한 경계가 없었기에 지금의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플로리다에 이르는 지역을 대부분 버지니아라고 불렀습니다. 지금의 버지니아주와는 위치가 다르니 기억해 두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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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6년 다시 시도한 끝에 제임스 타운에 첫 식민지를 만들게 돼. 하지만 이것은 환경이 좋지 않아 도착했던 104명 중 38명만 살아남게 돼. 그곳에서 그들은 담배 농사를 하게 되고, 농경지를 확대하다 보니 원주민들과 충돌하게 되고, 원주민들을 많이 죽이게 되는데, 이것이 아메리카 원주민 학살 역사의 시작이란다. 폰카혼타스라는 애니메이션이 있는데, 이 시절 실제 있었던 아메리카 원주민에 관한 이야기라고 하는구나. 담배 농사를 하게 되면서 노동력이 부족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노예제도가 시작되었다고 하는구나. 제임스타운에 정착한 사람들이 아메리카 대륙의 정착민인데, 그들이 원주민들을 학살한 어두운 역사가 있어서 미국의 역사에서는 그들을 배제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하는구나.

그 대신 1620년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온 102명의 청교도들을 첫 정착민으로 여기려고 한대. 그들은 보스턴 플리머스 지역에 도착을 해서 그곳을 뉴잉글랜드라고 불렀어. 그들이 도착한 시기가 겨울이고 식량이 없어서 힘들어했는데 원주민들의 도움을 주어 살아났단다. 다음해인 1621년 추수를 한 곡식들을 원주민들에게 고맙다고 전달해 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추수감사절의 시작이라고 하는구나. 하지만 정착민들과 원주민들이 서로 돕는 아름다운 모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단다. 그로부터 약 50년 후 정착민들은 원주민들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른단다. 땅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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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과 굶주림으로 힘들었던 청교도들은 원주민들에게 얼마나 고마운 마음이 들까요? 그래서 다음 해인 1621, 옥수수를 수확한 청교도들이 고마운 마음을 담아 원주민들에게 칠면조 등을 잡아서 잔치를 베풀어 줍니다. 이것이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의 시작이라고 미국인들은 주장합니다. 아주 아름다운 미덕으로 포장해 매년 114번째 목요일이 되면 전국적으로 칠면조를 잡아 가족끼리 기도를 하며 그날의 아름다운 미덕을 기리고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대부분이 아는 미국 추수감사절의 아름다운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50년 후, 청교도 정착민들의 태도가 돌변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도움을 주었던 원주민들을 모조리 학살합니다. 왜 갑자기 은인들을 학살했느냐고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점차 영국에서 사람들은 밀려 들어오고, 땅은 부족했습니다. 제임스타운의 경우와 똑같이 자신들이 살 땅을 차지하기 위해 원주민과 충돌한 것입니다. 청교도들을 도운 원주민들은 왐파노아그족(Wampanoag)이란 부족이었는데 1675, 중무장한 영국인들에게 거의 몰살당해요. 이 부분은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미국이 숨기고 싶어 하는 건국 초기의 흑역사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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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영국이 북미대륙에서 식민지 건설을 박차를 가하자 프랑스도 식민지 건설에 뛰어들게 돼. 1754년 프랑스인 자크 자르티에와 그의 일행들은 캐나다 퀘백에 도착했단다. 그곳은 겨울에 너무 춥다 보니 프랑스인들은 미시시피강의 서쪽을 따라 남으로 내려왔어. 그리고 그곳을 자신들의 땅이라고 하고, 루이 14세의 이름을 따서 루이지애나라고 했단다. 그 당시 영국은 미시시피강의 동쪽에 자리잡고 있었지. 미시시피강을 두고 동쪽은 영국, 서쪽은 프랑스. 뭔가 이뤄질 것 같지 않니? 그래 맞아 그들은 둘이 전쟁을 하게 돼. 원주민들에 호의적이었던 프랑스인들은 원주민들의 도움을 받게 돼. 하지만 영국 본토로부터 막강 군대를 후원 받은 영국이 승리를 하게 된단다.

영국 본토에서는 이 전쟁에 들어간 돈이 많았다면서 식민지로부터 많은 세금을 받아갔단다. 그러자 식민지 정착민들은 반발을 하게 되었고, 그런 시위는 계속 이어져 보스턴에 들어온 차()를 바다에 버리는 일까지 벌어졌단다. 영국 사람들은 홍차를 즐겨 마셔서 이 홍차가 없으면 안 되는 사람들이거든. 원래 차는 밀수업자들이 몰래 반입해서 싸게 먹을 수 있었어. 그런데 영국 정부는 동인도회사에 차에 대한 독점권을 주고, 차에 많은 세금을 붙여서 팔았단다. 이에 정착민들이 화가 나서 보스턴에 들어온 동인도회사의 차를 바다에 다 버린 것이란다. 이것을 발단으로 독립 전쟁이 시작되었단다.

식민지 정착민들과 영군 본토 사이의 전쟁. 결국 식민지 정착민들이 승리를 하면서 그들은 더 이상 영국의 식민지가 아니고, 미국이라는 새로운 나라로 거듭나게 된단다. 이때 미국은 아메리카 대륙 동부 연안을 중심으로 13개 주로 이루어져 있었단다. 처음 수도는 뉴욕 맨해튼이었는데, 워싱턴 DC로 수도를 옮겼어. 수도의 이름은 독립전쟁을 승리를 이끌고 초대 대통령이 된 워싱턴이라는 이름과 처음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라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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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71)

1790년 본격적으로 이 늪지대에 새 수도 건설이 시작됩니다. 이제 새 수도의 이름을 정할 시간,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을 기리기 위해 워싱턴이란 이름을 일단 붙이고 그 뒤에 D.C.란 타이틀을 하나 더 추가합니다. 여기서 D.C.District of Columbia의 준말인데 우리 말로 번역하면 콜롬비아 특별구라는 뜻입니다. 콜롬비아는 당시 유럽 대륙에서 미국을 부르는 또 하나의 별명이었답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발견한 콜럼버스의 땅이란 뜻이었지요. 결국 미국 수도 이름은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과 미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의 이름이 들어간 워싱턴 D.C.로 정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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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미국은 땅을 점점 넓혀가게 되는데, 1817년 먼저 프랑스 땅이었던 루이지애나를 돈을 주고 사게 된단다. 돈이 궁했던 프랑스가 아주 싼 값에 넘겨버린 거지.

한편 이 즈음 유럽에서는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전운이 감돌았단다. 이때 영국의 탈영병들이 미국으로 도망 오는 일이 생기는데, 이 일로 인해 영국과 미국 사이의 갈등이 고조되었단다. 결국 전쟁까지 가게 되는데, 우열을 가리지 못하고 합의하에 전쟁은 끝이 났단다. 이것이 2차 독립 전쟁이라고 하는구나. 1차 때와 달리 2차 독립 전쟁 때는 영국에서는 전력을 다했는데도 미국을 이기지 못했단다. 미국은 그만큼 짧은 시간에 막강한 힘도 갖게 된 거야.

2차 독립 전쟁이 끝나고 미국은 다시 영토를 확장해 나갔단다. 텍사스가 원래 멕시코의 땅이었는데, 독립선언을 하고 텍사스란 나라가 되었단다. 그런데 얼마 후 텍사스는 미국에 합병되어 텍사스도 미국 땅이 되었단다. 때는 1845년이었어. 이제 서부 지역 캘리포니아로 눈을 돌리는 미국. 캘리포니아 역시 멕시코 땅이었어. 이번에는 전쟁이었단다. 미국과 멕시코는 전쟁을 벌였고, 이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하여 캘리포니아를 비롯하여 서부 대부분의 땅이 미국의 땅이 되었단다. 1848년이었지.

 

3.

이렇게 확장만 해 가던 미국에도 위기가 찾아왔단다. 남북전쟁으로 더 유명한 미국 내전이란다. 남북전쟁은 영어로 내전이라는 뜻의 civil war라고 하는데, 너희들은 어벤저스 영화 제목으로 더 익숙하겠구나. 당시 미국 북부는 철강의 중심지로 거듭나서 오대호까지 운하를 뚫어서 대서양까지 곧바로 배로 이동이 가능했어. 일자리도 많아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어. 한편 남부는 목화 농장을 중심으로 해서 많은 노동력이 필요해서 이전부터 많은 노예들을 이용하고 있었단다. 북부 지역은 자신들의 철강 중공업 보호를 위해 수입 관세를 대폭 높여서 유럽에서 들어오는 철강을 견제하였는데, 이렇게 되자 유럽에서는 그것에 맞서 미국에서 유럽으로 들어오는 주요 수입 품목인 목화에 관세를 엄청 높이게 되었어. 그렇게 되니 미국 남부에서는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되었지.

그렇게 노예제와 관세 문제로 남부와 북부는 갈등을 겪게 되었고, 결국 둘로 나뉘어 전쟁까지 벌이게 되었단다. 노예제를 지지하는 남부는 모두 11개 주였고, 노예제를 반대하는 북부도 모두 11개 주였어. 노예 해방론자라고 하면 가장 먼저 링컨을 떠올리겠지만, 그 외에 존 브라운이라는 사람도 기억하면 좋겠구나. 존 브라운은 남부의 노예를 빼돌리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고 하는구나. 그는 노예를 빼돌려 북부 지역으로 보내거나 원래 그들의 고향인 아프리카로 보내주기도 했대. 그렇게 아프리카로 돌아간 이들이 나라도 세웠대. 라이베리아라는 나라가 그렇게 만들어졌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그들의 국기는 미국 성조기와 아주 비슷하게 생겼어. 나름 고마움의 표시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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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7년엔 노예해방론자들이 아예 흑인 노예 수만 명을 배에 태워 다시 그들의 고향인 서아프리카로 돌려 보냅니다. 이들에 의해 미국을 탈출한 수만 명의 흑인 노예들은 서아프리카에 새로운 나라를 만듭니다. 이것이 1822년 서아프리카에 설립되어 1947년에 독립한 라이베리아(Liberia)’에요. 라이베리아의 국기를 보면 미국 성조기와 아주 비슷한데요. 자기들을 탈출시키고 고향 아프리카에 그들만의 나라를 만들어 준 미국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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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전쟁의 상황을 한번 살펴보자꾸나. 남부는 북부에 비해 군사력이 좀 약했어. 전면전이 어렵다고 생각한 남부는 워싱턴 DC를 우회해서 공격하려고 했지. 하지만 북부도 그것을 알아채고 그 길을 차단하고 전투를 벌였는데 그것이 그 유명한 게티즈버그 전투란다. 남부군 7만과 북부군 10만의 격돌. 이 전투에서 남북부군 합쳐 5만명이 죽고 남부군이 패배하게 되었단다. 그리고 이곳에서 링컨으로 그 유명한 게티즈버그 연설을 하게 된단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

18631119일이었지. 전쟁은 좀더 이어졌지만 전세는 북부로 완전히 기울어졌어. 186549일 남부는 최종 항복을 하고 링컨은 종전 선언인 리치몬드 선언을 했어. 그리고 414일에 백악관으로 돌아왔는데 그날 저녁 존 부스라는 사람에 의해 총에 맞고, 다음날인 415일에 죽고 만단다. 그렇게 남북전쟁은 링컨 대통령의 죽음과 함께 슬프게 끝이 났구나.

1869년 대륙횡단철도가 개통되었단다. 그동안 서부 지역은 사람들이 많지 않았는데, 이 대륙횡단철도가 개통되면서 사람들과 물류의 대이동이 시작되었단다. 그렇게 서부지역으로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그곳에 있던 원주민들은 또 학살당하고 쫓겨나게 되었단다. 원주민들의 역사는 눈물의 역사로구나.

미국은 영토 확장을 다시 한번 하게 되는데, 알래스카 땅을 러시아로부터 싼 값에 구입하는데, 얼어서 아무 쓸모 없는 땅을 샀다고 당시에는 여론이 좋지 않았지만, 나중에 석유가 발견되면서 그야말로 대박을 쳤단다. 이 즈음부터 미국도 제국주의 노선을 걷게 된단다. 북미 대륙 바깥의 식민지 건설에도 눈을 돌리기 시작했어. 쿠바에서 스페인과 격돌하여 미국 스페인 전쟁이 벌여졌는데, 이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하여 괌, 하와이, 필리핀 등 태평양의 여러 섬들을 차지하게 된단다. 그리고 미국은 아시아로 눈을 돌린단다. 청나라에서 목사들을 죽인 의화단 사건이 있는데, 이 사건을 핑계로 미국은 청나라를 간섭하게 되고, 러일전쟁 당시 뒤에서 일본을 지원하여 일본 승리에 일조하게 된단다.

일본이 러일전쟁을 승리하고 나서 미국과 일본은 가쓰라 태프트 밀약을 맺는데, 이 밀약을 통해 일본은 대한제국을 차지하고 미국은 필리핀을 차지하는 것을 서로 인정하게 된단다. 미국은 이후 1차 세계대전에 참전을 하면서 세계 강국으로 발돋움하게 된단다. 그렇게 미국은 세계 최강국 중 하나가 된 거야.


4.

자 이번에는 러시아의 역사를 알아보자꾸나. 나폴레옹이 유럽에서 활약하던 시기부터 이야기를 해야겠구나. 나폴레옹이 영국을 제재하기 위해서 영국봉쇄령을 내린 적이 있는데, 러시아는 이에 반발하여 영국과 농산물 교류를 했단다. 이에 화가 난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략하게 되는데,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은 많은 희생을 한 끝에 모스크바를 점령하게 된단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추위와 러시아군의 반격으로 60만 군인들 중에 30만명만 돌아오는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된단다. 이 일로 나폴레옹은 엘바 섬으로 유배를 가게 돼.

러시아에서도 전쟁의 후유증이 컸어. 특히 농노들의 불만이 커지고 농노해방을 외치는 사람들이 많았어. 그런 와중에 마르크시즘이 들어오게 된단다. ‘인민 속으로라는 뜻의 브나로드 운동이 일어났다가 실패했지만, 이 실패 이후 더욱 개혁의 움직임이 커졌어. 이 운동을 이끄는 이들은 당시 러시아 황제인 알렉산드로 2세를 암살하려고 했으나, 여섯 번 시도를 했는데 여섯 번 모두 실패하였단다. 결국 암살에 성공하여 알렉산드로 2세가 죽고 알렉산드로 3세가 즉위했는데 그 또한 알렉산드로 2세와 다른 것이 없었어.

그를 뒤이어 1894년 니콜라이 2세가 즉위를 했어. 이 황제는 조선과도 연관이 있는데, 그가 즉위할 때 조선에서도 그의 즉위를 축하하는 축하사절단을 보냈대. 당시 국내 사정이 어려웠기 때문에 도와달라고 간 거라고 하는구나. 국내 사정이 어땠는지 좀 이야기를 해보면청일전쟁 후 명성황후는 러시아와 친분을 쌓게 된단다. 그런데 당시 일본은 청일전쟁으로 얻은 랴오둥 반도를 러시아에게 빼앗겨 러시아에 감정이 안 좋은 상태였어. 그런데 명성황후가 러시아와 친분을 쌓자 열 받아 명성황후를 시해하게 된 거야. 일본은 러시아에 빼앗긴 랴오둥 반도를 다시 차지하기 위해 1904년 뤼순항에 정박해 있던 러시아 함대를 기습한단다.

준비가 안 된 러시아 함대는 밀리게 되고, 이에 발트해에 있던 최강 러시아 함대를 파견하기로 한다. 하지만 발트해에서 일본까지 오려면 너무 멀어. 대서양과 인도양을 거쳐 도착을 하긴 했는데, 긴 항해로 지치고 군비로 부족해진 상태야. 그런 상태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던 일본군과 싸웠으니, 결국 지고 말았지. 러일전쟁 이후 포츠머스 조약이 성사되고, 조선의 모든 권한을 일본이 갖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어. 그래서 그 해(1905)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만단다.

 

5.

, 이 즈음 러시아 현대사에 중요한 인물 레닌이 등장한단다. 원래 이름은 블라디미르 일리치 율리아노프. 레닌의 형은 알렉산드로 3세 암살 사건으로 연루되어 교수형을 당했단다. 레빈은 형이 역적으로 몰리면서 학교에서도 퇴학을 당했어. 이후 본격적으로 마르크스 사상에 빠졌고, 페테르부르크로 갔단다.

190519일 일요일, 먹을 것이 없어 빵을 달라면서 시위를 하는 시민들. 그런데 그들이 받은 것은 빵이 아니고 총격이었단다. 피의 일요일이라고 불렀어. 이때부터 민심은 더욱 악화되었단다. . 그러다가 1917223일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는데, 이번에는 시민들뿐만 아니라 군인들도 함께 동참했단다. 군인들은 황제 편을 드는 장교들을 죽이고 시민편에 섰어. 결국 니콜라이 2세를 죽이고 혁명이 성공하는 듯 했단다. 당시 혁명을 주도했던 이들은 시민들뿐만 아니라 자본가들도 있었는데, 니콜라이 2세를 몰아내고 그 자본가들이 권력을 잡았단다. 자본가들은 자신들이 임시정부를 만들더니 다시 만행을 저질렀단다. 황제에서 자본가들로 바뀌었을 뿐 일반 시민들은 여전히 어려움의 연속이었단다.

이때 스위스에서 망명 중인 레닌이 귀국을 한단다. 그런데 이것을 적극적으로 도와준 나라가 있으니 바로 독일이란다. 당시 러시아가 독일의 적국으로 제1차세계대전에 참가하고 있었는데, 레닌이 러시아에서 혁명을 하게 되면 전쟁에서 빠지겠다고 했거든. 레닌이 러시아에 도착을 했고, 군대들도 레닌을 지지했단다. 그 군대들이 자본가들의 임시정부를 공격하여 혁명의 마침표를 찍게 된단다. 191710월이었어. 레닌은 수도를 모스크바로 옮기고 소비에트 연방을 탄생시킨단다. 소비에트 연방은 한동안 미국과 세계 2강의 강력한 나라가 된단다.

여기까지가 책의 이야기란다. , 한참 이야기했는데 제대로 설명했는지 모르겠구나. 소비에트 연방, 즉 소련은 100년도 못 가서 붕괴하고 다시 여러 나라로 된단다. 러시아는 예전부터 못한 파워를 갖게 되었지. 거기에 무식한 지도자가 작년에는 우크라이나를 쳐들어가 전쟁을 일으켜서, 공공의 적이 되어 버렸단다. 일 년이 넘었는데 끝나지 않은 전쟁에 체면도 구길 대로 구겼는데, 더 이상 끌지 말고 이제 조용히 물러나야 하지 않나 싶구나. 러시아 시민들은 악랄한 독재를 하는 황제들을 가만히 두지 않는 시민들인데, 푸틴은 무섭지도 않은가 보구나.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

<썬킴의 세계사 완전정복>이라는 팟캐스트는 여전히 인기가 좋은 것 같으니 책도 계속 출간될 것 같구나. 앞으로도 팟캐스트로 한 번 듣고 책으로 복습해야겠구나.


PS:

책의 첫 문장: 퀴즈를 하나 내겠습니다.

책의 끝 문장: 짧지만 많은 내용을 다룬 러시아의 역사 이야기였습니다.

그럼 현재 미국인들이 자기 조상이라고 생각하는 ‘첫 북미 대륙 정착민’은 과연 누구일까요? 그들은 바로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영국 플리머스 항구를 출발해 약 65일 뒤 지금의 보스턴 부근 매사추세츠주 플리머스에 도착한 102명의 청교도인이랍니다. 이들은 오늘날의 뉴욕이 있는 허드슨강을 목적지로 영국에서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도착한 곳은 현재 보스턴 지역인 플리머스였습니다. 목직지가 달라졌으나 플리머스에 도착한 이들은 그곳을 ‘새로운 영국’이라는 뜻의 뉴잉글랜드(New England)라고 이름 짓고 일단 살아보기로 합니다. - P29

카르티에가 프랑스령이라 선언한 지역이 바로 지금의 퀘백 지방입니다. 그래서 캐나다에서는 대부분 영어를 쓰지만 퀘벡에서는 아직도 프랑스어를 씁니다. 퀘백의 중심 도시 몬트리올에는 중앙 광장이 있는데요. 바로 ‘자크 카르티에 광장’입니다. 프랑스어가 쓰인다는 걸 잘 알 수 있지요. 카르티에가 그 동네 원주민에게 이곳의 이름을 물었더니 원주민은 ‘카나다, 카나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래서 카르티에는 그곳의 이름을 카나다로 알고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어요. 사실 그곳 원주민 말로 ‘마을’이란 뜻이었거든요. 결국 그 카나다가 나라 이름인 캐나다(Canada)가 되었답니다. - P50

미국 백인들은 수족을 학살한 것도 모자라 더욱 잔인한 일을 벌입니다. 미국 사우스다코타주에 가보면 러시모어산이 있는데, 그 산에 역대 미국 대통령 네 명의 얼굴이 크게 조각되어 있어요. 관광지로도 유명하고 우리나라에서도 미국 중서부 단체 여행 중 꼭 방문하는 미국의 성지거든요. 그런데 그 백인 대통령의 얼굴이 새겨져 있는 러시모어산은 바로 수족의 터전이었고 그 산은 수족의 성지(聖地)였던 것입니다. 백인들이 자신들에게 덤비고 얼굴을 새겨 넣은 겁니다. 수족의 입장에선 부족의 성스럽고 상징적인 산에 백인 정복자 네 명의 얼굴이 새겨진 것이지요. 이건 마치 광화문 광장에 이토 히로부미 동상을 세운 것과 마찬가지로, 수족에게 치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 P137

러시아 역사 가운데 여러분과 함께 시작할 시대는 로마노프 황족이 군림하던 ‘로마노프 황조’시대랍니다. 로마노프는 조선을 다스렸던 전주 이씨와 같이 당시 러시아를 다스리던 왕족의 이름이랍니다. 유럽 변두리 국가였던 러시아가 본격적으로 유럽사에 당당한 주요 국가로 등장한 시기도 이 로마노프 황조 때였어요. 이 로마노프 황조, 우리와도 관계가 깊어요. 고종이 수도 서울 안에서 도망간 러시아 외교 공관은 로마노프 황조의 외교 공관이었고, 한반도 주도권을 놓고 일본과 대판 싸운 러일전쟁도 로마노프 황조 때 일어났답니다. 그리고 러시아 혁명으로 쫄딱 망한, 즉 러시아 역사의 마지막 황조 또한 로마노프 황조입니다. - P170

쇼스타코비치가 1957년에 작곡한 <교향곡 제11번>은 총 4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전곡 연주에 한 시간이 넘을 정도로 장대하고 거대한 음악 작품입니다. 여섯 개의 혁명가를 인용한 것 또한 이 작품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쇼스타코비치는 이 곡의 악장마다 ‘궁전 앞 광장’, ‘1월 9일’, ‘추도’, ‘경종’ 등 피의 일요일 사건의 순서를 나타내는 부제를 붙였습니다. 1악장은 피의 일요일 사건이 일어나기 전 민중의 모습, 2악장은 학살 장면, 3악장은 희생자를 위한 진혼곡, 4악장은 비극을 딛고 일어나 전진하는 민중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피의 일요일 사건이 낯설고 멀게 만 느껴진다면,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들어보면 어떨까요? -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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