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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8월
평점 :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영화 <영웅>을
보고 안중근 읽기 두 번째로 김훈 님의 <하얼빈>을
읽었단다. 정말 오랜만에 김훈 님의 소설을 읽었단다. 아무리
유명하고 훌륭한 작가라도, 읽는 이의 취향과 맞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아빠에게 김훈 님은 그런 작가란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이나 사건을 김훈 특유의 문체, 일명 김훈체로 다시 태어나게 하여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계신 김훈 님.
그런데 아빠는 그 스타일이 맞지 않는 것 같았단다. 오래 전에 <칼의 노래>, <현의 노래> 소설 두 편과 <자전거 여행> 에세이 한 편을 읽은 것이 전부지만, 세 작품 모두 아빠의
취향과는 좀 거리가 있었단다. 독서 기록을 찾아보니 김훈 님의 작품을 마지막으로 읽은 것이 2007년이구나.
십 년이 넘었네. 십 년이 넘었으면 아빠의 독서 성향도 좀 바뀌었을
수도 있고, 십 년이 지났으니 작가 김훈 님의 글쓰기 성향도 좀 바뀌었을 수도 있고, 평전으로만 만나 보던 안중근을 소설을 통해 만나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한 번 읽어봐야겠다 생각했단다. 영화 <영웅>을
보고 나서 읽기 적합한 책이 아닌가 싶었단다.
음, 예전의 김훈 소설에서 보였던 지나친 묘사가 사라지고 아빠가 생각하기에
상당히 간략하게 서술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단다. 음, 뭐랄까, 이야기에 공백이 많은 느낌도 있었어. 아빠가 알고 있는 사실과 다른
점들도 있었는데, 그런 것은 소설이라 그렇게 각색한 것인가. 안중근
의거에 어느 정도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그 동안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조도선, 유동하 같은 인물은 이
소설에 등장조차 하지 않았단다. 지은이의 말에서 조도선, 유동하는
안중근 의거에서 직접 관련성이 낮다고 판단하여 소설에 뺐다고 말씀하셨단다. 음, 우리 나라의 독립을 위해 노력하신, 널리 알려지지 않은 분들도 소설을
통해 소개해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단다.
…
재판장에서 이야기도 이토를 죽인 열다섯 가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도 빠져 있었단다. 아빠가 생각하기에 안중근 의거에 있어서 중요한 두 장면은 하얼빈 기차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장면과
재판장에서 이토를 죽인 열다섯 가지 이유를 말하는 장면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그 장면이 빠져 있어서
아쉬웠단다.
1.
이 책은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 두 사람의 시선에서 그려졌으며, 만난
적 없는 두 사람이 각기 다른 경로로 하얼빈에 도착하여 짧은 만남의 과정이 그려지고 있단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안중근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은 아니란다. 안중근 의거 전 약 1년간의 이야기가 그려지고 있어. 그래서 소설의 제목도 하얼빈 아니겠니.
1905년 을사늑약 이후 국권 회복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상해에 갔던 안중근은 큰 성과 없이 다시 고향에 돌아왔고, 고향 진남포에서 학교를 열어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안씨 문중들과 시국을 논하기도 했어. 전국에서
일고 있는 의병 소식도 접했단다. 안중근는 늘 국권 회복을 위해 자신도 행동에 동참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안중근은 블라디보스토크 행을 결심한단다. 당시 아내 김아려는 셋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던 상태였어. 아빠라면 절대로 가지 못했을 것 같구나. 어린 아이들이 둘이나 있고, 임신한 아내가 있는데 아무리 의로운
길이라고 하지만 가족을 남기고 떠나다니.. 떠나더라도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 같구나.
블라디보스크까지 가는 방법은 일단 부산까지 갔다가 배를 타고 원산을 거쳐 가는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하더구나. 음, 바로 원산 가서 배 타고 가면 안되나? 아무튼 안중근은 먼저 경성으로 가서 동생 안정근을 만나고 가족들의 안위를 부탁하고 부산, 원산을 거쳐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게 된단다. 연해주 지역에서 의병대롤
조직하여 참모중장을 맡은 안중근. 전투 중에 사로잡은 포로들을 살려주었다가 큰 어려움을 겪는단다. 그 포로들이 일본군을 데리고 와서 반격을 하여 안중근 의병대에 큰 타격을 주고, 의병대는 와해되고 말았거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또 다른 방법을 도모하면서 지냈는데,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으로 온다는 소식을 듣게 된단다. 그리고 의병대 동료 우덕순을 찾아가 그 소식을 전해주고, 우덕순과
함께 이토 히로부미를 죽일 계획을 세운단다.
2.
이토 히로부미는 대한제국을 잡아먹기 위해서, 자신의 이미지를 좋게
하려고 갖은 노력을 한단다. 대한제국의 황제인 순종과 함께 기차를 타고 한반도 여기저기 순행을 한단다. 그의 교묘한 전략이란다. 이토 히로부미는 러시아 재무장관을 만나기로 했단다. 러일 전쟁에서 일본이 러시아를 상대로 이기기는 했지만, 일본이 대한제국을
침략하기 위해서는 러시아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거든. 그래서 대한제국의 지배권을 인정받기 위한 자리였을
거야. 이토 히로부미는 자신을 누군가 노릴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은 것 같아. 하얼빈까지 가는 길을 자신의 좋은 이미지를 만드는 기회로 삼았거든. 중간중간
들러서 학교를 방문하여 학생들에게 선물을 전달하는 이벤트도 마련했어. 대련, 여순, 채가구를 거쳐 하얼빈으로 향했단다.
3.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기로 결심한 다음 지인 정대호에게 가족들을 하얼빈으로 데려오게 했단다. 이제 막 태어난 갓난아이까지 셋을 모두 데려오기 어려워 큰 딸 현생은 서울의 수녀원에 맡기기로 했어. 아직 어린데 가족과 떨어져 지낼 현생이 너무 불쌍하구나. 안중근은
유덕순과 함께 하얼빈 역을 탐사하였고, 혹시 모르니 그 앞 역인 채가구 역도 탐사하였단다. 이토 히로부미가 채가구에서 내릴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유덕순은 채가구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죽을 준비를 하고
있었단다.
그리고 1909년 10월 26일 아침 9시 30분. 이토 히로부미는 하얼빈에 내린단다. 안중근은 한 치 오차도 없이
이토 히로부미에게 총격을 가해서 작전이 성공한단다. 이토 히로부미의 얼굴을 모르고 있던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에게 세 발을 쏘고 나머지 총알들로 주변 인사를 쏘았단다. 곧바로 현장에서 러시아 경찰에게 잡히게
되고 “코레아 후라”라고 외쳤단다. 이 소설에서는 이 의거 장면을 아주 담담하면서도 특별한 감정이나 극적인 요소를 담지 않고 신문 기사처럼 사실
위주로 서술한 점이 지은이 김훈 님의 문체가 잘 나타난 부분인 것 같았단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소설
전체가 그런 식으로 쓰신 것 같아.
곧바로 일본 경찰에 넘겨진 안중근. 그에게 가장 궁금한 점은 이토
히로부미가 죽었느냐는 점과 이토 히로부미가 조선 사람한테 맞은 것을 알고 있느냐는 점이었단다. 일본
경찰은 그런 사실을 안중근에게 알려주지 않았지만, 안중근도 자신의 의거가 성공했다는 것을 알게 된단다. 채가구에서 준비하고 있던 우덕순도 잡혀 왔단다. 안중근의 가족들은
의거 성공 하루 다음날인 10월 27일 하얼빈에 도착했는데, 곧 경찰의 신문이 있었단다. 아내 김아려는 끝까지 자신의 남편이
이미 죽었다고 이야기했지만, 어린 아들은 거짓말을 하지 못했단다.
….
안중근이 재판 받는 장면도 아주 짧게 넘어갔단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조도선과 유동하는 소설 속에서 완전히 배제되어 유덕순과 단둘이 재판을 받는 것으로 소설에서는 그려지고 있단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안중근, 유덕순, 조도선, 유동하가 재판장에 함께 앉아 있는 사진도 찾아볼 수 있는데, 지은이께서 이 장면을 너무 각색을 하신 것 같아 아빠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단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조도선, 유동하도 독립을 위해 희생을 감수했는데, 그들을 통째로 편집하시다니…
그에 반해 빌렘 신부와 뮈텔 주교가 천주교 입장에서 가톨릭 신자였던 안중근을 비판하는 것은 비중 있게 실었으면서
말이야. 뮈텔 주교는 안중근의 고해성사까지 반대를 했는데, 빌렘
신부는 안중근과 오랜 인연이 있어서 안중근이 갇혀 있는 여순에 와서 고해성사를 하게 된단다. 안중근은
그렇게 하늘의 별이 되었단다.
….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간략하고 공백이 많은 이야기 전개가 아쉬웠단다. 역사소설이라는 것이 역사적인 사실들을 기반으로 비어져 있는 부분을 소설가의 상상력으로 채워 나가는 것이 일반적인
방식인데, 김훈 님은 오히려 역사적인 사실까지 빼가면서 빠른 전개를 통해 안중근의 마지막 일 년을 그리셨단다. 그것이 김훈 님의 방식인 것 같은데,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여전히
김훈 님의 소설은 아빠의 취향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것 같구나. 우리 집에 오래 전에 사둔 김훈 님의 <남한산성>도 있는데, 이건
언제 읽게 될지 모르겠구나.
자, 오늘은 여기까지. 이상.
PS:
책의 첫 문장: 1908년 1월 17일, 일본 제국 천황 메이지는 도쿄의 황궁에서 대한제국 황태자
이은을 접견했다.
책의 끝 문장: 주여 망자에게 평안을 주소서
사진은 대체로 지시 사항을 담아내고 있었다. 이토는 사진을 꼼꼼히 들여다보았다. 순종의 표정은 미소도 아니고 찡그림도 아니고, 그 양쪽을 다 섞은 것도 같았다. 이토는 비서관을 불러서 같은 앵글로 찍은 다른 사진을 찾아오라고 지시했다. 다른 사진에서도 순종의 표정은 마찬가지로 모호했다. 다시 찍을 수는 없었다. 미흡하기는 하지만 이 사진을 공포하면 정책 효과가 클 것이었다. 이 사진이 조선 민심의 상처를 자극하겠지만 위력으로 압도하는 힘이 있을 것이고, 그보다도 폭민과 양민 사이에 장벽을 쌓아서 폭민들을 고립시키는 결과를 낼 것이라고 이토는 판단했다. 남행의 성과는 작지 않았는데, 그 크기는 서서히 나타날 것이었다. - P47
김아려는 대문에서 남편과 작별했다. 분도는 방안에서 잠들어 있었다. 헤어질 때 무슨 말을 했는지 김아려는 기억하지 못했다. 안중근은 문중 사내 몇 명과 함께 새벽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멀어지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면서 김아려는 남편이 결코 땅의 속박에서 풀려나지 못하리라는 예감에 눈물을 흘렸다. 마을 어귀까지 따라온 사내들은 개울가에서 돌아갔다. - P69
총구를 고정시키는 일은 언제나 불가능했다. 총을 쥔 자가 살아 있는 인간이므로 총구는 늘 흔들렸다. 가늠쇠 너머에 표적은 확실히 존재하고 있었지만, 표적으로 시력을 집중할수록 표적은 희미해졌다. 표적에 닿지 못하는 한줄기 시선이 가늠쇠 너머에서 안개에 가려져 있었다. 보이는 조준선과 보이지 않는 사이에서 총구는 늘 흔들렸고, 오른손 검지손가락 둘째 마디는 방아쇠를 거머쥐고 머뭇거렸다.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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