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슨 인 케미스트리 1
보니 가머스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인터넷 서점에서 서핑하다가 알게 된 소설 <레슨 인 케미스트리> 1권을 읽었단다. 책 표지를 보면 원색들로 뒤덮여 있고, 빨간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오래된 텔레비전을 들고 있는 독특한 표지였단다. 그런데 이 소설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은이 때문이란다. 지은이는 보니 가머스라는 사람인데, 육십이 넘은 나이에 이 소설로 데뷔를 했다는 구나.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을 갖고 있어서 늘 창작은 하셨겠지만, 육십대에 소설가 데뷔라니, 대단하시구나. 그리고 이 데뷔작은 2020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큰 화제를 몰고 왔고 판권이 25억에 계약되었고, 너희들도 좋아하는 캡틴 마블 브리 라슨이 주인공인 드라마도 찍고 있다는구나.

소설의 내용이 엄청 궁금했단다. 그래서 책을 구입하자마자 읽었단다. 아빠는 책을 사면 보통 몇 달은 묵혀두었다가 읽는 경우가 꽤 있는데, 이 소설은 도착하마자 펼쳐 보았어. 소설은 1950~6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주인공은 여성 화학자란다. 1950~60년대 미국은 여성 차별이 아직 심하던 시기였고, 특히 과학계에서의 여성 차별은 더욱 심했던 것으로 알고 있단다. 그래서 같이 연구한 여성연구자들만 쏙 빼고 노벨상을 수여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알고 있어.

그런 과학계의 여성 화학자 이야기. 제목도 <레슨 인 케이스트리>면 대충 화학 수업이라고 해석하면 되나? 소설 속 주인공이 시종일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지만, 통통 튀는 듯한 전개였단다. 지은이가 카피라이터 출신이라서 그런지, 참신한 대화체도 좋았단다. 예를 들어 자신의 딸의 점심을 빼앗아 먹은 딸의 친구의 아버지한테 던지는 말. 멋지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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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파인 씨, 유감스럽지만 당신 따님의 점심 도시락까지 싸줄 시간과 여유가 내겐 없군요. 우리의 뇌를 일깨우고 가족을 단합시키고 미래를 결정하도록 도와주는 촉매제가 음식이라는 점은 모두가 아는 바죠.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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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그럼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소설의 이야기를 해줄게. 캘빈 에번스라는 젊은 천재 화학자가 있었단다. 캘빈은 어렸을 때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고아가 되어 보육원에서 자랐어. 캘빈은 조정 매니아였고 대학도 조정을 많이 할 수 있는 케임브리지 대학을 들어갔고, 졸업 후 화학 연구를 하면서도 조정을 많이 할 수 있는 동네를 선택했어. 돈을 많이 주는 곳이 아니고 말이야. 그렇게 헤이스팅스 연구소에 오게 되었단다.

캘빈은 늘 혼자 연구를 했고 한마디로 천재 괴짜 화학자였어. 동료들로부터 시기를 받기도 했단다. 캘빈은 젊은 화학자임에도 노벨상 후보에도 여러 번 오르는 등 대단한 성과를 냈어. 그리고 캘빈이 다니는 헤이스팅스 연구소의 동료 화학자인 엘리자베스 조트가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이란다. 엘리자베스의 아버지는 사이코 목사였다가 지금은 감방에 갇혀 있고, 엄마는 바람둥이로 지금은 딴 남자랑 살림을 차려 어디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고, 오빠는 어렸을 때 동성연애자였는데 아빠 때문에 십대에 자살로 삶을 마감했단다. 이런 가족사를 가지고 있는 엘리자베스는 절대로 결혼은 하지 않겠다고 했어. 가족사만 불행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대학원 시절에는 담담 교수도 못된 대학 교수를 만났단다. 박사 과정 중에 담당 교수가 엘리자베스를 강제로 성폭행을 했고, 이 일로 엘리자베스는 박사 과정을 중단해야 했단다. 그 담당교수는 제대로 된 처벌도 받지 않고 말이야. 그 시절이 그렇게 콱 틀어 막힌 시절이었나 보구나.

엘리자베스가 화학자로써는 자존심 세고 남자에게 의지하지 않으려고 했어. 혼자 힘으로 성공을 하려는 열렬 화학자였단다. 하지만 1950년대 여성 과학자의 삶은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단다. 여성 차별이 심해서 연구소 월급도 남자 연구원에 비해 절반도 되지 않았고, 업적을 세워도 남자 연구원의 업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단다. 그런 엘리자베스가 캘빈과 우연한 두 번의 만남 이후 사귀게 되었어. 사귀어도 엘리자베스는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했단다.

캘빈은 화학만큼 좋아하는 것이 있으니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조정이란다. 캘빈은 엘리자베스에게 조정을 같이 하자고 했어. 당시 여자가 조정 같은 운동을 하는 것은 흔치 않은 것인데, 캘빈은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엘리자베스의 역할이 있다고 해서 함께 했단다. 지은이 가니 보거스의 이력을 보니, 조정 선수이기도 했다고 하는데 자신의 경험을 소설에 잘 녹여낸 것 같구나.

그렇게 캘빈과 엘리자베스는 사랑도 하고 연구도 하고 조정도 하면서 잘 지냈단다. 그런 그들에게 유기견 한 마리가 찾아왔는데, 그들은 그 개에게 여섯시 삼십분이라는 독특한 이름을 주었단다. 여섯시 삼십분은 엄청 똑똑한 개였단다. 그들의 행복한 시간이 오래갔으면 좋았겠지만, 캘빈은 여섯시삼십분과 아침 조깅을 하다가 차에 치여 그만 죽고 말았단다. 엘리자베스는 심한 충격과 슬픔에 빠지게 되었단다.


2.

캘빈이 그렇게 갑자기 가버렸는데, 그냥 가버린 것이 아니고 엄청난 걸 하나 주고 갔단다. 캘빈이 죽었다는 슬픔이 가시기도 전에 엘리자베스는 자신이 임신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비혼주의자에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엘리자베스. 엘리자베스는 그 아이를 낳기로 했단다. 그런데 엘리자베스가 다니고 있던 헤이스팅스 연구소는 임신한 미혼모는 해고를 시킨다면서 엘리자베스는 해고당했단다. 엘리자베스는 남자가 결혼 전에도 임신을 시키면 해고당하냐면서 반박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단다.

엘리자베스는 돈을 못 버는 것보다 더 억울한 것은 화학 연구를 못하는 것이었어. 그래서 집의 부엌을 개조해서 연구실로 만들었단다. 집에 그렇게 머무르고 있었는데, 연구소 사람들이 찾아와서 엘리자베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러 왔어. 엘리자베스는 그들에게 도움을 주었는데, 나중에는 수고비조로 돈을 받게 되어 그것으로 생활하게 되었어. 그리고 시간이 지나 딸을 낳게 되었고 이름을 매들린으로 했단다.

원치 않던 임신에 준비 없는 출산으로 갑작스러운 육아 전쟁으로 엄청 고생을 하게 된단다. 여자 혼자서 아기를 돌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란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이웃집 아주머니 헤리엇 슬로운이 찾아와서 엘리자베스를 공감해주면서 육아에 대한 이런 조언을 해주었단다. 나중에는 헤리엇이 아기를 직접 돌봐주기도 했단다. 헤리엇에게도 매들린을 돌보는 것은 무료한 삶에 새로운 삶의 원동력이 되었단다. 헤리엇이 매들린을 돌봐주게 되자, 캘빈이 죽고 나서 그만두었던 조정도 가끔 다시 하게 되었어. 매들린은 아빠와 엄마를 닮아 엄청 똑똑해서 다섯 살에 <모비 딕> 같은 어려운 책들도 읽었어. 아빠가 읽는 책들에 <모비 딕>은 참 여러 번 등장하는구나. 아빠도 꼭 읽어봐야겠구나. 이 책에서는 <모비 딕>을 간단 명료하게 설명을 해주는데, 누구랑 혹시, 그럴 일은 없을 확률이 훨씬 높지만, <모비 딕>에 대해 이야기할 일이 있으면, 이 책에서 소개한 한 문장을 써먹어보면 좋겠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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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

좀 이따가 메이슨 박사님 진료 예약이 있어. 그 전에 이 책을 반납하려고. 네가 <모비 딕>을 좋아할 것 같아. 인간이 어떻게 다른 생명체를 계속해서 과소평가하는지 알려주는 이야기거든. 위험을 무릅써가면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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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엘리자베스가 헤이스팅스 연구소에 복직을 하게 되었단다. 화학진화 분야에 거금을 투자하려는 익명의 투자자가 있었는데, 화학진화가 엘리자베스가 전문이었거든. 그리고 그 익명의 투자자는 엘리자베스의 논문을 보고 화학진화에 투자하기로 한 것이고, 늘 그 논문의 저자에 대해 안부를 헤이스팅스 연구소에 물어보았단다. 헤이스팅스의 도나티 과장은 엘리자베스를 엄청나게 싫어하는 사람인데, 상황이 이렇게 되자 돈을 받지 위해서는 엘리자베스를 다시 고용하지 않을 수 없었어. 그런데 도나티 과장은 엘리자베스를 엄청 싫어하니까 엘리자베스를 연구원이 아닌 보조연구원으로 복직시켰단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엘리자베스는 화를 내면서 자신을 화학연구원으로 대우해 달라고 했어. 물론 엘리자베스는 자신에게 투자하고 있다는 익명의 투자자가 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지. 중간에서 도나티 과장이 돈을 잘 빼돌리고 있는 거지. 그것뿐만 아니라, 엘리자베스의 논문도 도나티 과장이 훔쳐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어.

그 즈음 매들린의 점심을 빼앗아 먹는 매들린의 친구의 아버지에게 항의하러 갔는데, 매들린의 친구의 아버지에게 캐스팅을 당했단다. 매들린의 친구의 아버지는 파인 월터라는 사람인데, 방송국 PD였는데, 당당한 여성 화학자이고 미모도 갖춘 엘리자베스는 신선한 캐릭터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어. 프로그램은 오후 시간대에 진행하는 요리 프로그램이었어. 과학과 요리를 접목한 프로그림으로 오후 4 30  나른한 오후 시간대 일명 오후의 저기압대가 끝날 즈음 시작하는 프로그램을 해보자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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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342)

저녁 식사를 만드는 거죠. 바로 거기서 당신이 필요한 겁니다. 당신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4 30분에 시작해요. 시청자들이 오후의 저기압대에서 슬슬 나오기 시작할 때죠. 연구에 따르면 대다수의 가정주부가 이 시간대에 가장 심한 압박을 느낀다더라구요.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너무 많은 걸 해내야 하거든요. 저녁도 짓고 상도 차리고 애들도 데려오고 등 일은 끝이 없다고요. 하지만 여전히 기진맥진하고 우울한 시간이죠. 그래서 이 특정 시간대의 책임이 막중한 거랍니다. 누가 나와서 무슨 말을 하든 반드시 기운을 북돋워줘야 해요. 당신이 시청자를 즐겁게 해줘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에요. 진심으로 하는 말이에요. 사람들을 다시 일상으로 끌어내줘요. 엘리자베스. 다시 정신을 차리게 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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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궁하고 연구소에서 푸대접을 받고 있던 엘리자베스는 파인의 제안에 오케이를 했단다. 그런데 프로그램 포맷에 있어 엘리자베스와 파인은 서로 의견 충돌이 있었어. 요리에 초점을 맞추자는 파인에 반해, 엘리자베스는 과학에 더 초점을 맞추자고 했고, 그래서 실험 가운을 입고 방송을 하겠다고 했단다. 중재 끝에 서로 조금씩 양보를 하고 방송이 시작되었단다.

1권의 이야기는 대충 여기까지란다. 2권에서는 엘리자베스가 방송을 하면서 일어나는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펼쳐지게 된단다. 그 이야기는 조만간에 또 해줄게. 오늘은 그럼 이상.


PS:

책의 첫 문장: 그 옛날 1961년은 여자들이 오후마다 셔츠웨이스트 원피스 차림으로 이웃집 정원에 모여 수다를 떨던 때였다.

책의 끝 문장: 뒤에 덧붙인 이 말이 사실로 밝혀지리라는 걸, 그는 꿈에도 몰랐다.


엘리자베스가 앞치마를 두르고 촬영장에 들어간 첫날부터 그녀에겐 ‘뭔가’가 있다는 게 확실히 느껴졌다. 그 ‘뭔가’는 뭐라 말하기 어려우면서도 분명하게 드러나는 자질이었다. 또한 그녀는 아주 실용적인 사람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 솔직해도 너무 솔직하고, 헛소리라고는 절대로 하지 않는 사람이라서 다들 이 여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 다른 요리 프로그램에서는 사람 좋아 보이는 요리사들이 셰리주를 꿀꺽꿀꺽 마시며 방송을 유쾌하게 진행했지만, 엘리자베스 조트는 진지했다. 좀처럼 미소도 짓지 않았다. 농담하는 법도 결코 없었다. 그녀의 요리는 그녀만큼이나 있는 그대로였고, 아주 현실적이었다. - P21

"캘빈, 내가 배운 게 하나 있어.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복잡한 문제를 풀 때 언제나 간단한 해결책을 간절히 바란다는 점이야.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고, 설명할 수 없고, 변할 수 없는 걸 믿는 편이 훨씬 쉽거든. 실제로 보이고 만져지고 설명할 수 있는 걸 믿기는 오히려 어려워. 말하자면 실재하는 자기 자신을 믿기가 어렵다는 말이지." - P75

물론 화학자이니만큼 캘빈은 징크스에 집착하는 행위가 전혀 과학적이지 않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건 미신일 뿐이다. 음, 그렇다면 좋겠지. 하지만 인생이란 결과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시험할 수 있는 가설이 아니었다. 무언가는 반드시 폭발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캘빈은 엘리자베스에게 위협이 될 만한 게 뭔지 항상 경계해왔다. 오늘 아침에도 그녀는 조정을 하다가 죽을 뻔했다. - P137

"하지만 우리는 대개 일 때문에 낮잠을 생략하죠. 그러니까 제 말은 미국인이 그렇다는 뜻이에요. 멕시코 사람들은 이런 문제가 없어요. 프랑스나 이탈리아나 다른 어느 나라를 가도 점심시간에 우리보다 술을 훨씬 많이 마시고요. 인간의 생산성이 자연적으로 오후에 떨어진다는 건 엄연한 사실이에요. TV 업계에서는 이걸 가리켜 ‘오후의 저기압대’라고 부르죠. 뭔가 의미 있는 걸 하기엔 너무 늦은 시간인데, 그렇다고 집에 가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에요. 주부나 4학년 어린애나 벽돌공이나 사업가나 전부 마찬가지죠. 나른하지 않은 사람이 없어요. 오후 1시 31분부터 4시 45분까지는 소위 말해 생산적인 삶이라는 게 사라져버려요. 이 시간은 사실상 죽음의 시간대란 말입니다." - P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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