팅커스
폴 하딩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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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이 번에 읽은 책은 두께도 얇고 평도 좋아 그리 어렵지 않은 소설일 거라 생각했는데 읽기 쉽지 않았단다. 소설이지만 재미를 찾는 소설이 아니었어. 그 책은 폴 하딩이라는 처음 보는 작가의 <팅커스>라는 제목의 소설이란다. 팅커스의 철자는 tinkers 이고, 그 뜻을 찾아보니 땜쟁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단다. 책을 읽어보니 소설의 주인공의 아버지의 직업과 관련된 단어인 듯싶구나.

뒤늦게 인터넷 서점에 적혀 있는 이 책의 소개를 읽어보았단다. 책의 내용보다 더 파란만장한 책의 사연이 있었더구나. 책 안의 내용보다 책 자체의 사연이 더 극적이더구나. 지은이 폴 하딩은 음악을 하는 밴드의 드러머였다고 하는구나. 그러다가 밴드가 해체되고 글을 쓰기 시작했고, 10년 동안 무명 시절을 겪었다고 하는구나. 그 정도 무명 시절을 겪다 보면 포기할 뻔 한데, 그는 포기하지 않고 첫 장편 소설을 썼다고 하는구나. 하지만 여러 출판사로부터 출간을 거절당했대. 이유는 느리고, 명상적이고 잔잔하다는 이유였다고 하는구나. 다행히 어느 독립출판사에서 받아주어 소설을 출간하게 되었대. 이후 그의 소설은 입소문으로 알려지게 되면서, 비평가들과 언론사에서도 알게 되었고 퓰리처상까지 수상하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그 책이 바로 아빠가 이번에 읽은 <팅커스>라는 책이란다.

이 책 소개에서 아빠가 공감했던 부분은 처음에 여러 출판사가 출간을 거절한 이유 느리고, 명상적이고 잔잔하다라는 부분이란다. 아빠가 이 책을 읽고 느낀 부분을 짤막하게 잘 설명한 것 같구나. 소설 꽤나 읽는 사람들에게는 이 책이 뛰어나게 느껴졌겠지만, 아빠 같이 소설 꽤나 읽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읽기 쉽지 않았단다. 소설이 시간 순서대로 전개되는 것도 아니고, 죽음을 앞둔 이의 의식이 닿는 시간과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했단다. 작년에 힘들게 읽은 소설 <소리와 분노>가 떠오를 정도였단다. 이 책이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졌다고 하지만, 아빠는 이 책을 누군가에 추천해주지는 못할 것 같구나. 아직 아빠의 소설 읽는 능력을 더 쌓아야겠구나.


1.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첫 문장 때문이었단다. 주인공 조지 워싱턴 크로즈비라는 사람이 죽기 여드레 전부터 환각에 빠지기 시작했다. 주마등(走馬燈)이라는 말이 있단다. 장식용 등의 일종으로 그 등에 사람이나 말의 그림이 있는데, 마치 말이 달리는 것처럼 보이는 등이란다. 그런데 보통 죽음의 위기에 빠졌을 때 자신의 삶이 영화처럼 머릿속에 보이는 경우를 두고 주마등을 보는 것 같다는 표현을 하곤 한단다. 사람들이 죽기 전에 사람의 삶 전체가 빠르게 떠오르는 것을 빗대어서도 이야기를 하지.

소설 <팅커스>의 첫 문장을 읽고 나서 주마등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단다. 그리고 소설이 자신의 길고 길었던 삶을 다시 재조명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그런 소설일 거라고 생각하고 책을 펼쳤단다. 하지만 소설은 그런 질서정연한 기억들이 적혀 있는 책이 아니었단다. 주인공 조지 워싱턴 크로즈비가 죽기 팔 일 전부터 의식을 되찾았다가 잃었다가 하면서 의식 속에서 떠오른 자신의 삶 속에 일부 장면들을 시간 순서 없이 이야기해주는 형식의 소설이란다. 가장 많이 떠오르는 장면은 아버지 하워드 크로즈비에 관한 이야기란다.

주인공의 삶에 좋든 안 좋든 가장 영향을 끼친 사람이 그의 아버지였던 것 같구나. 수레를 끌고 다니면서 여러 가지 장사도 하고 땜쟁이 일도 있던 아버지 하워드. 아버지는 간질이라고 하는 불치병을 앓고 있었단다. 그래서 조지뿐만 아니라 가족들 모두 고생을 많이 하고 했어. 처음에는 아이들 앞에서는 간질 발작을 숨기려고 노력했지만, 그것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잖니. 어느날, 크리스마스였던 것 같은데, 아버지는 식구들 앞에서 발작을 심하게 되고 조지는 그로 인해 다치기도 했단다. 조지뿐만 아니라 아이들은 아버지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어. 어린 조지는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집을 나가기도 되고, 가족들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인 아버지도 집을 떠나게 된단다. 나중에 시간이 흐르고 나서 아버지와 조지가 다시 만나서 잔잔한 대화를 나누는 장면으로 소설은 끝이 났단다.

그렇게 아버지와 다시 만나 서로 이해하는 장면을 끝으로 주인공 조지의 삶도 마감을 하게 된 것 같구나. 결국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한 장면을 떠올리고 마지막 숨을 거두었구나. 이 정도가 아빠가 이해한 이 책의 내용이란다. 그것도 정확하다고, 제대로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구나.

….

이 책에서 가장 공감이 가는 부분이 하나 있다면 이 소설의 주요 스토리도 아니고, 소설에서 빠져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부분이란다. 그럼에도 공감이 가고, 웃음을 자아낼 수 있는 부분이었어. 바로 이 부분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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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예전 비누도 아무 문제 없었는데.

물론 없었죠. 하지만 이게 더 좋아요.

예전 비누도 아무 문제 없었다니까. 그런데 어떻게 이게 더 좋을 수가 있어요?

. 더 잘 닦입니다.

전에도 잘 닦였어요.

이게 더 잘 닦여요더 빠르고.

, 그냥 보통 비누가 든 상자를 가져갈래요.

이제는 이게 보통 비누예요.

예전의 그 보통 비누를 살 우 없단 말인가요?

이게 보통 비누라니까요. 장담합니다.

아니. 나는 새 비누를 써보고 싶지 않아요.

이건 새 비누가 아니에요.

알았어요. 크로즈비 씨. 당신 말대로 해요.

저기요. 부인. 1페니를 더 내셔야 하는데요.

1페니를 더? 왜요?

비누가 좋아져서 1페니가 올랐거든요.

파란 상자에 든 다른 비누를 사면서 1페니를 더 내라고요? 그럼 그냥 예전의 그 보통 비누를 살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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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자본주의 시장논리는 오늘날에도 여전하잖니. 기존 것도 잘 쓰고 있는데, 뭘 바꿨는지도 모르는데 가격이 올라가 있는 그런 상황 말이야. 이번에 읽은 <팅커스>라는 책도 개정판을 내면서 책 가격이 12,000원에서 14,800원으로 올랐더구나.


PS:

책의 첫 문장: 조지 워싱턴 크로즈비는 죽기 여드레 전부터 환각에 빠지기 시작했다.

책의 끝 문장: 잘 있어라.


죽기 백서른 두 시간 전 조지는 붕괴하는 우주의 소란에서 깨어나 밤의 어둠과 적막 속에서 눈을 떴다. 악몽의 왁자지껄한 소음이 희미해지자 그는 그 적막을 이해할 수 없었다. 거실에는 긴 소파 옆의 작은 탁자에 올려놓은 자그마한 백랍 램프 하나에만 불이 밝혀져 있었다. 긴 소파는 병원 침대와 평행으로 놓여 있었다. 소파 반대편 끝 쪽에 손자 하나가 앉아 탁자 위 불빛에 몸을 기울인 채 책을 읽고 있었다. - P35

아내가 침대에서 일어나 그에게로 왔다. 그녀는 그가 죽어가는 동안 매일 밤 몇 시간씩 얕은 잠을 잤다. 그녀는 테두리에 짙푸른 파이핑 장식이 달린 옅은 파란색 면 가운을 입고 있었다. 슬리퍼가 복도 나무 바닥에서 질질 끌리는 소리를 냈다. 그녀가 좁은 보폭으로 걸으며 잠과 피로 때문에 발을 약간 끌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실 바닥을 덮은 페르시아 바닥깔개 위에 오르자 끌리는 소리가 멈추었다. 그녀는 그의 머리 옆에 서서 그를 향해 몸을 기울이고 얼굴을 쓰다듬었다. 아, 조지, 당신은 내 마음의 몸을 기울이고 얼굴을 쓰다듬었다. 아, 조지, 당신은 내 마음의 기쁨이에요. 우리 함께 멋진 인생을 살지 않았나요? 우리는 함께 온 세계를 돌아다녔죠. -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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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 2023-03-09 1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알라딘에서 책 쇼핑하다가 우연히 리뷰를 보게 됐는데 정말 멋지시네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라니.. 괜히 제가 감동했네요. ㅎㅎ 따님과 아드님이 정말 행복하실 것 같아요. :)

bookholic 2023-03-10 00:17   좋아요 0 | URL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책 읽고 이왕 리뷰를 쓰는 것, 아이들한테 이야기해준다는 생각으로 쓰면 좀더 쓰기 편할 것 같아서 편지 형식으로 쓰고 있습니다...^^
도도 님, 즐겁고 편안한 봄날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