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거서 크리스티 읽기 - 역사가가 찾은 16가지 단서
설혜심 지음 / 휴머니스트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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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3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 아빠가 이번에 읽은 <애거서 크리스티 읽기>라는 책은 코로나 때문에 나온 책이라고 할 수 있구나. 코로나와 애거사와 무슨 상관이냐고? 이 책을 쓰신 설혜심 님은 역사학자이신데, 코로나 초창기 사회적 거리 두기가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을 때,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서 <명탐정 푸아로> <미스 마플>이라는 드라마를 다 보셨다고 하더구나. 그러면서 그 두 드라마의 원작을 역사학자의 시선으로 색다른 점을 발견해 보고 싶다고 하셨어. 그리고 그 결과물이 바로 이번에 읽은 <애거서 크리스티 읽기>라는 책이란다.

고전 소설을 읽다 보면 그 소설 속에서 당시의 생활상 등을 엿볼 수 있는데, 그런 것처럼 설혜심 님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 속에서 당대 생활상이나 문화적인 요소들을 뽑아 설명해 주셨단다. 당시에는 그저 일상을 적은 것이지만, 그것이 오랜 시간이 흘러 그 시대를 이해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지. 애거서 크리스티가 주로 활동하던 시기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이라고 하는데, 그 당시의 사회와 문화를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다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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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자면 추리소설은 사회사에서 아주 유용하고도 풍부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이미 1952년 윌리엄 서머싯 몸이 추리소설이 향후 사회사가들에게 매우 귀한 자료로 활용될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고 콜린 왓슨은 역사가들의 과제란 추리소설처럼 대중적인 작품에서 사람들의 가치관과 태도를 발견하는 일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왓슨의 주장은 대중에 천착해왔으면서도 정작 대중의 기호에는 무심했던 학계의 엘리트주의에 경종을 울리는 말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이 작업은 ‘B급 문학을 역사연구소의 소재로 활용해보는 모험적 시도라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이 책이 20세기 영국의 역사, 특히 전간기(戰間期, 1차 세계대전 종결 후부터 제2차 세계대전 발발까지의 시기)의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역사가로서 아주 기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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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당시 영국인들은 민족적 우월성을 가지고 있던 시기였단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별칭을 갖고 있을 만큼 우월성을 가질 만은 하겠구나. 그것이 침략주의에 의해 만들어진 우월성일지라도소설 속에서는 영국인의 민족적 우월성을 의식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비꼬기도 했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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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게도 애거서는 영국인이 가진 민족적 우월성을 의식하고 있었고, 때때로 그것을 작품 속에서 비꼬기도 했다. ‘섬나라 근성같은 단어를 콕 짚어 쓰면서 말이다. <비둘기 속의 고양이>에는 그런 애거서의 인식이 잘 표현된 대목이 있다. 먼 나라를 다녀온 섯클리프 부인은 영국에 올 때마다 비가 내려서 우울하기 짝이 없다고 불평한다. 하지만 딸 제니퍼는 거리의 사람들이 모두 영어로 얘기하고, 정말 맛있는 차와 버터나 잼을 바른 빵, 제대로 된 케이크가 있는 곳에 돌아와 좋기만 하다고 대답한다. 섯클리프 부인은 난 네게 그 섬나라 근성이 좀 없었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며 면박을 준다. 집에 있는 것이 그토록 좋으면 그 먼 페르시아만까지의 여행이 무슨 도움이 되느냐면서 말이다. 또 있다. <벙어리 목격자>에서 푸아로가 영국인들은 영국인 의사만이 세계에서 유일한 의사들이라고 믿고 있죠. 섬나라 근성이에요라는 부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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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애거서 크리스티가 만들어낸 캐릭터 중에 가장 유명한 사람은 아무래도 푸아로가 아닐까 싶구나. 아빠가 어렸을 때 읽은 책에서는 포와로라고 했는데, 이 책에서는 푸아로라고 했으니, 푸아로라고 할게. 애거서 크리스티는 영국 사람이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캐릭터 푸아로는 영국인이 아니고 벨기에인이라고 하는구나. 그리고 많은 사람이 프랑스인이라고 오해를 하고당시 영국에서는 벨기에 난민들이 많았고 그들을 동정심을 가지고 대해서 주인공이 벨기에 출신이라는 것에 영국 사람들이 크게 거부감을 갖지는 않았다고 하는구나. 만약 프랑스인이었다면 많은 거부감으로 가져 그렇게 유명한 캐릭터가 되지는 못했을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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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네 마을 사람들은 모두 동정심을 가지고 벨기에 난민들을 친절하게 보살펴주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다지 고마워하는 것 같지 않았고 오히려 이것저것 불평을 늘어놓기 일쑤였다. 그런 모습을 본 탓에 애거서가 푸아로를 까달스러운 캐릭터로 설정하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벨기에 사람인 푸아로는 영국 독자들에게 별다른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졌다. 아마도 벨기에의 존재감이 약했던 탓이리라. 실제로 어떤 학자는 당시 대중의 상상력 속에 벨기에는 무시해도 좋을 만한 그저 통과하는 나라였다고 설명한다. 종종 프랑스인으로 오해받았던 푸아로가 자신이 벨기에인이라고 밝히기만 하면 언제나 별다른 문제 없이 넘어갔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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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아로 시리즈가 그렇게 성공할 것이라 생각지 못하고, 첫 번째 작품에서 푸아로의 나이를 너무 많게 설정해서 나중에는 그 나이가 너무 많아져서 난감하기도 했다고 하더구나. 나중에는 소설 속에서 나이를 굳이 밝히지 않았겠지?


2.

이 책에서는 소설을 통해 알아보는 당시의 역사뿐만 아니라 애거서 크리스티가 살아온 삶도 이야기해주어 좋았단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사진을 생각하면 대부분 인터넷에서 자주 보게 되는 할머니 때의 사진을 머릿속에 떠오르게 되는데, 이 책에서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어린 시절, 젊은 시절의 사진도 실려 있었어. 그런 사진들을 보니 신선하면서도 사진을 통해서 애거서 크리스티가 젊은 시절 어떤 생활을 했는지 상상해 볼 수 있어 좋았단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오빠와 언니와 달리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대. 그래서 독학과 독서로 지식을 습득했다고 하더구나. 그리고 당연하게도 추리 소설을 엄청 좋아했대. 1차 세계대전 때는 간호사와 약제사로 전쟁에 참여했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이때의 약제사의 경험이 있어서 독극물을 소재로 한 소설들이 많았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집을 좋아해서 집을 소재로 한 소설들도 많았다고 했어. 아빠가 작년인가 읽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도 생각해보니 집을 소재로 했던 것 같구나.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들을 보면 배, 기차, 비행기 등 교통 수단 내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을 다룬 경우도 있단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이 워낙 유명해서 애거서 크리스티가 가장 좋아하는 교통수단을 기차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기차는 아니고 자동차라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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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154)

그렇다면 애거서가 제일 좋아했던 교통수단은 기차였을까? 아니다. 애거서는 스포츠카 광팬이었다. 애거서는 자동차에 열광했다. 어린 시절 파리에 갔을 때 처음으로 자동차를 보고 위대한 기계시대의 선구자를 접하게 되었다고 기록했다. 하지만 자기집은 부자가 아니었기에 마차도 없었고 자동차는 꿈도 꾸지 못했다. 결혼 후 만삭으로 런던의 버스정류장에서 사람들에게 떠밀려 다닐 때는 단 하루라도 차를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생각했다. 자서전에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길게 적을 만큼 자동차는 애거서에게 정말 소중한 어떤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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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역시 직접 차를 운전하기도 했는데, 한 번은 애거서의 빈 차만 길가에 남겨져 있고 애거서가 사라진 사건도 있었다고 하는구나. 무려 11일 뒤에 다시 홀연히 나타났고 그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함구했다고 하는데, 어떤 일이 있었을까? 당시 애거서는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아 이혼을 준비하고 있던 시기라고 하는데, 힘들어서 잠시 사라졌던 것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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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소설 속 역사를 이야기해주는 것이라고 했잖아.. 지은이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 속에서 알 수 있는 당시 16가지의 이야기를 해주고 있지만, 아빠는 그보다 애거서 크리스티라는 사람을 좀더 알게 되어 좋았단다. 그리고 아빠가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애거서 크리스티의 명탐정 푸아로 시리즈는 즐겨 읽었는데, 이 책에서도 간간히 소개된 미스 마플 시리즈는 읽어본 기억이 없구나. 마플이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도 한번 읽어보고 싶구나. ,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보어전쟁으로 국민 영웅으로 떠오른 로버트 베이든 파월은 전쟁을 겪으며 향후 영제국을 지켜낼 인재양성이 절실하다고 판단했다.

책의 끝 문장: 애거서가 소설 속에 녹여 넣은 영원한 영국을 이제는 좀 더 냉정한 시선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애거서는 집을 오랜 수명을 지닌, 반드시 보존해야만 할 생명체처럼 묘사하곤 한다. 집은 주인공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지켜내야 할 최고의 유산이다. 그런 애착을 강력한 모티브로 삼은 작품이 <엔드하우스의 비극>이다. 주인공 닉 버클리는 황폐해가는 엔드하우스를 지키려고 안간힘을 쓴다. 형편이 좋지 않았던 탓에 상속세를 내기 위해 그 집을 저당까지 잡혀야 했다. 닉은 "나는 그 집을 사랑해요. 팔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한다. 그녀의 사촌오빠이자 변호사인 찰스 바이스는 닉이 집에 대해 "광적인 애착"을 가졌다고 비웃는다. 하지만 닉이 절대 유별난 것은 아니다. 그녀는 조상 대대로 살아온 집조차 지키기 힘들게 된 영국 중상류의 초상일 뿐이다. - P42

흥미롭게도 병역법은 자녀가 있는 홀아비와 ‘보호 직업군(혹은 예비 직업군)’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징집에서 면제해주었다. 보호 직업군은 ‘국가적 차원에서 중요성을 인정받는 직업군’으로 성직자, 의사, 교사, 열차기관사, 농부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기에는 징집면제보다 더 강한 ‘병역배제’의 개념이 적용되어 채탄, 조선업 등 특정 직업군에 종사하는 사람은 설사 자신이 원할지라도 군 복무를 할 수 없었다. 농업 역시 보호 직업군이었는데, 농부뿐만 아니라 농업을 공부하는 학생도 징집에서 배제되었기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에서는 농과대학에 입학하지 위한 경쟁이 치열했다. - P68

마녀는 보통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특별한 지식을 통해 일상사의 궂은일을 해결해주는 존재였다. 전쟁터에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가족의 생사를 점쳐주고 너무나 미운 사람을 해코지할 방법을 알려주며, 짝사랑의 상대가 자기를 사랑하게 만드는 ‘미약’을 주기도 했다. 원치 않은 임신으로 배가 불러올 때 그것을 중단시킬 비밀스러운 약초를 주는 것도 마녀의 중요한 역할이었다. <움직이는 손가락>에는 그런 습속을 넌지시 암시하는 장면이 있다. 동네에서 마녀로 불리는 클리트 부인은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약초를 뜯으러 나가는데 일부러 동네 사람들 모두가 그 사실을 알게 한다는 것이다. 마플은 은근슬쩍 "그리고 아마도 어리석은 처녀들은 그녀를 찾아가서 도움을 받으려 할 테지요?"라고 내뱉고야 만다. - P205

미시사는 1970년대 서구 곳곳에서 ‘거시사’에 대항하여 나타나기 시작한 연구방법론이다. 거시사는 서구의 ‘근대’가 만든 역사서술로, 대개 국가를 중심으로 한 역사다. 그렇기에 국가 권력의 중심축이던 정치와 경제를 그 핵심에 놓는다. 그런데 일군의 학자들이 기존 권력이 억압했던 주변적 요소들에 관심을 기울일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즉 지배층이 아닌 이름 없는 사람들의 삶을 복원하고자 한 것이다. 거시사가 국민 일반의 공통점을 주목했다면 미시사는 인간 개개인의 다양한 행위, 동기, 전략 등을 찾아보려 했다. 미시사가들은 그런 작업이 ‘탐정의 실마리를 찾는 것’과 흡사하다고 주장했다. 그래서일까. 애거서의 추리소설에는 미시사를 설명할 수 있는 단초들로 가득하다. - P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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