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9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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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유명한 작가의 유명한 작품을 이제서야 읽었단다. 유명한 작가는 프랑수아즈 사강. 유명한 작품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프랑수아즈 사강이란 사람을 아빠는 이름만 알고 있었단다. 이름이 프랑수아즈니까 프랑스 사람인가? 했는데 역시 프랑스 사람이네.^^ 원래 본명은 프랑수아즈 쿠아레이고, ‘사강은 필명이라고 하는구나. 그 어렵다고 하는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을 따서 필명을 사강이라고 하였다고 하니, 프랑수아즈 사강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어렵지 않게, 감명 깊게 읽은 모양이구나.

프랑수아즈 사강은 고작 열여덟 살 때 지은 첫 번째 작품인 <슬픔이여 안녕>으로 프랑스 문학비평상을 받았다고 하니, 재능이 대단했나 보구나. 열여덟 살에 소설을 쓰기도 쉽지 않을 텐데, 그것으로 큰 상까지 받았다고 하니 대단하구나. <슬픔이여 안녕>이라는 소설도 읽어보고 싶어지더구나. 리스트에 추가. 이번에 읽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도 이십 대 초반에 쓴 작품이라고 하니, 천재라 불릴 만 하구나.

하지만 천재 작가의 삶만 보여준 것은 아니란다. 자동차 질주를 좋아해서 큰 교통사고로 죽을 위기도 있었고, 도박과 약물중독으로도 스캔들을 몰고 다녔다고 하는구나. 말년에는 탈세 혐의로 금고형을 받고 재산을 몰수 당해서 궁핍한 생활을 이어가다가 2004년 병환으로 죽었다고 하는구나. 천재 작가의 삶의 말로가 해피엔딩이 아니라 안타깝구나.

아빠가 이번에 읽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십 대 초반에 쓴 작품인데, 소설의 주인공은 39살의 여인이란다. 이십 대 초반의 나이에 39살의 여인의 내면을 어찌 잘 알았을까. 아빠가 여자의 심리를 잘 알지 못하지만, 소설을 읽다 보면 39, 딱 그 나이의 감성이 느껴졌단다. 그런데 이십 대 초반의 이 소설을 썼다니아참, 그리고 이 소설의 제목을 들었을 때는 의문문처럼 들렸는데, 지은이는 소설의 제목을 표기할 때 문장 끝에 물음표(?)가 아닌, 마침표 3개로 된 말 줄임표로 표기해 달라고 했다는구나. 소설의 제목이 질문이 아니라는 거지.. 그러니까 브람스를 좋아하라는 권유형이라는 것인가? 프랑스어에도 의문문의 문장 끝에 말줄임표를 끝에 붙이면 다른 뜻이 되는 것인가? 프랑스어를 잘 모르니 잘 모르겠구나. 그런데 이 소설의 본문에서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라고 물음표가 되어 있는 문장이 나오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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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일요일, 자리에서 일어난 폴은 문 아래 편지가 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과거에는 푸른 쪽지라고 시적으로 표현했던 속달우편으로, 그녀는 실제로는 그 편지가 시적으로 여겨졌다. 그도 그럴 것이 맑은 11월의 하늘에 다시 나타난 태양이 그 순간 그녀의 방을 따뜻한 빛과 음영으로 채웠던 것이다. ‘오늘 6시에 플레옐 홀에서 아주 좋은 연주회가 있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어제 일은 죄송했습니다.’ 시몽에게서 온 편지였다. 폴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웃은 것은 두 번째 구절 때문이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그 구절이 그녀를 미소 짓게 했다. 그것은 열일곱 살 무렵 남자아이들에게서 받곤 했던 그런 종류의 질문이었다. 분명 그 후에도 그런 질문을 받았겠지만 대답 같은 걸 한 적이 없었다. 이런 상황, 삶의 이런 단계에서 누가 대답을 기대하겠는가? 그런데 그녀는 과연 브람스를 좋아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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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인공 폴은 39살로 실내 인테리어를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단다. 6년 사귄 남자친구 로제가 있었어. 6년 동안 사귀다 보니 그들의 사랑은 익숙한 사랑이 되어 있었어. 설레임도 없어 보였고, 만남도 습관적인 만남 같았어. 폴은 그런 관계 속에서 외로움도 느끼는 것 같았어. 심지어 로제는 폴 몰래 다른 여자들을 만나고 그랬어. 폴에게 출장 간다는 뻔한 거짓말을 하고 주말에 다른 여자랑 여행가기도 했어. 그런 폴에게도 새로운 남자가 접근해왔단다. 폴이 인테리어를 하기로 한 반덴 베스 부인의 집에 갔는데, 그곳에서 반덴 베스 부인의 아들 시몽을 만났어. 시몽은 폴을 보고 첫눈에 반했단다. 그런데 시몽은 폴보다 한참 어렸단다. 시몽은 폴보다 14살 어린 25살이고, 직업은 변호사였단다.

그 짧은 만남 뒤로, 시몽은 폴에 푹 빠지고 말았어. 술 먹고 밤에 불쑥 찾아오기도 했는데, 폴은 그 모습이 순수해 보이기도 했지만, 너무 어린 시몽을 남자로 볼 생각이 없었어. 그리고 익숙하지만 편안한 남자친구 로제가 있었잖아. 시몽은 폴이 일하는 곳에 찾아와 점심을 먹자고 했는데, 폴은 그것까지 거절할 수 없어 같이 점심을 먹었단다. 그것이 지루하고 단조로운 폴의 일상에 작은 파장이 이는 것 같았어. 유쾌하고 재미있는 시몽이 싫지만은 아닌 거야. 시몽도 폴의 얼굴에 드리우진 고독을 본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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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44)

그리고 당신, 저는 당신을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합니다. 이 죽음의 이름으로, 사랑을 스쳐 지나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당신을 고발합니다. 당신에게는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지만, 고독 형을 선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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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몽은 폴에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으로 데이트 신청을 했단다. 망설임 끝에 폴은 가기로 했어. 폴도 시몽에 끌리기 시작했단다. 폴은 시몽을 좋아하긴 하지만 불편함 마음도 같이 들었단다. 왜냐하면 시몽의 나이가 너무 어렸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을 거라 생각했거든. 지금 당장 폴은 로제보다 시몽에 더 끌렸고, 로제와 관계도 소원해져서 거의 헤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폴이 시몽과 사랑을 만들어가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지. 하지만 폴에게는 불편한 사랑이었지. 뒤늦게 로제는 폴과 다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고 했는데, 그 때 폴은 냉정하게 내치지 못했단다. 결국 폴은 시몽의 계속된 프로포즈를 거절하고, 로제와 다시 만나게 된단다. 지금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고 좋아하지 않지만 과거부터 계속 익숙한 것을 선택한 것이지.

이 소설에서는 사랑으로 그렸지만, 우리가 무엇인가 선택을 할 때 어느 것에 초점을 두고 선택할까.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가는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지만, 가장 중요한 자기 자신이란다. 아빠도 사실 어떤 행동을 할 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는 편이야. 그것도 많이. 그것이 좋은 행동방식이 아니라고 생각하긴 해. 남들 시선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의 생각이라는 것도 알고 있지. 하지만 행동은 자꾸 그렇게 되는구나. 타고난 거지. 이 소설을 통해 아빠를 돌아보게 되는 계기도 되었단다. 그리고 남들 시선 좀 그만 보라고 내면에 이야기를 해보게 되더구나.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시몽이 폴에게 이야기하는 부분은 이 소설의 하이라이트가 아닌가 싶더라. 남들의 시선 까짓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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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알다시피 나는 경솔한 사람이 아냐. 나는 스물다섯 살이야. 당신보다 먼저 세상을 살진 않았지만, 앞으로 당신이 없는 세상에선 살고 싶지 않아. 당신은 내 인생의 여인이고, 무엇보다도 내게 필요한 사람이야. 나는 알아. 당신이 원한다면 내일이라도 당신과 결혼하겠어.”

난 서른아홉 살이야.” 그녀가 말했다.

삶은 여성지 같은 것도 아니고 낡은 경험 더미도 아니야. 당신은 나보다 열네 해를 더 살았지만, 나는 현재 당신을 사랑하고 있고, 앞으로도 아주 오랫동안 당신을 사랑할 거야. 그뿐이야. 나는 당신이 자신을 천박한 수준, 이를테면 그 심술쟁이 할망구들의 수준으로 비하시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어. 지금 우리의 문제는 로제뿐이야. 다른 건 문제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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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로제는 다시 잘 지내겠다고 했지만 결국 마지막 문장 하나로 그는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 어쩌면 폴 아닌 다른 여자를 만날 약속을 했을 수도

미안해, 일 때문에 저녁 식사를 해야 해. 좀 늦을 것 같은데……”


PS:

책의 첫 문장: 폴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책의 끝 문장: 좀 늦을 것 같은데


"모르지. 어째서 당신은 내가 미래를 준비하느라 현재를 망치기를 바라는 거지? 내가 관심 있는 건 오직 내 현재뿐인데 말이야. 그것만으로도 난 충분해."라고 대답하며 그는 요란하게 절하는 시늉을 했다.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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