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은둔자
캐럴라인 냅 지음, 김명남 옮김 / 바다출판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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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이번에 읽은 책은 제목 때문에 예전부터 눈 여겨보던 책이란다. 명랑한 은둔자라니은둔을 하면서 명랑할 수 있는 사람. 이 책 제목처럼 아빠도 이걸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 있으면서 혼자서 놀기. 방 안에 틀어박혀 있으면서 혼자서 할 것들이 정말 많아서, 지루하지도 않고 외롭지도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물론 방안에 책들도 많고 스마트폰도 있고, 컴퓨터도 하나 있어야겠지만 말이야. 그러니까 우리집의 서재 같은 공간이라면 명랑한 은둔자가 될 수 있다는 거지.

이 책은 안타깝게도 지은이 캐럴라인 냅의 유고작이라고 하는구나. 마흔둘에 적은 나이로 불치병으로 세상을 등진 지은이 캐럴라인 냅. 아빠는 이 사람의 책을 이번에 처음 읽어 본 것인데,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이라는 베스트셀러를 쓴 사람이라고 하는구나.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이라는 책도 블로그나 인터넷 서점에서 책 겉표지만 여러 번 본 적이 있는데, 이 책의 지은이였구나. 옮긴이의 말에서 지은이 캐럴라인 냅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해 주었는데 캘럴라인 냅이 엄청난 알코올 중독자였으며, 그걸 이겨내는 과정을 쓴 책이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이라고 했단다.

아빠가 이번에 읽은 <명랑한 은둔자>라는 책이 너무 좋았단다. MBTI에서 첫 번째 인자가 강한 “I”인 아빠가 공감하는 내용도 많았지만, 글들이 재미있고 유머도 있으면서 생각거리도 많이 던져 주었단다. <명랑한 은둔자>를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그의 또 다른 대표작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도 읽어볼 생각이다. 리스트 추가.


1.

<명랑한 은둔자>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캐럴라인 냅의 유고작으로, 그가 생전에 남긴 에세이들 중에 좋은 것만 추려낸 에세이 베스트 모음이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구나. 이 책을 통해서 캐럴라인 냅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대충 그려지더구나. 어떤 일이나 사물, 생각, 행동 등에 한번 꽂히면 중독될 만큼 빠져드는 사람? 앞서 이야기했지만 술에 중독되었다고 했잖아. 그래서 이 책에도 술에 관한 이야기들이 여럿 나온단다. 술 중독을 이겨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이 아닐까 싶구나. 아빠도 젊은 시절에는 술을 어느 정도 마실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술을 많이 마시기도 했지만, 나이를 좀더 먹고 나서는 술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 되었단다. 술이 뭔가 해결해 준다는 생각은 들지 않고, 머리만 아프게 하거든. 요즘은 가끔 시원한 맥주 한 두잔 마시는 정도? 아무튼 캐럴라인의 술의 중독을 이겨내서 쓴 글들이 좋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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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

술은 그토록 알 수 없는 수수께끼입니다. 우리가 술에 절어 있을 때는 술이 유일한 해결책인 듯, 술이 자신을 산산조각 나지 않게 붙잡아주는 접착제인 듯 느껴지죠. 하지만 사실은 술이 문제의 근원이죠. 술은 우리가 꼼짝달싹하지 못하도록 발바닥을 바닥에 붙여놓는 접착제죠. 그날 아침, 저는 어째서인지 몰라도 그 사실을 깨우쳤습니다. 어쩌면 퍼뜩 머릿속을 스친 생각에 불과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 순간의 생각이 점차 자라서 결국 저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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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

술은 재미나 친밀감 같은 감정을 경험하고 있다는 환상을 만들어줄 순 있을지라도 그런 감정들은 진짜로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화학물질 덕분에 변한 나는 술집에서 친구들과 술김에 흉금을 터놓는 대화를 오래 나누었다. 하지만 술을 마셨을 때 진짜 나는-어떤 면에서는 자신감 있고 다른 면에서는 겁 많은 나, 강한 동시에 약한 나-마음속에서 뒷전으로 물러났고, 그래서 안전해졌을지는 몰라도 기본적으로 혼자였다. 술을 끊는 것은 어두운 곳에 있다가 밝은 곳으로 나오는 것, 혹은 망가진 TV 안테나를 고치는 것과 비슷한 경험이었다. 시야가 더 밝아졌고, 다른 사람들하고는 세상하고든 접촉이 더 또렷하고 확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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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럴라인은 먹지 않는 것에도 중독되어 거식증에도 걸렸었다고 하는구나. 몸무게가 38킬로그램까지 빠졌다가 나중에 회복을 했다고 했어. 그뿐만 아니라 담배에도 심하게 중독되었는데, 옮긴이의 말처럼 안타깝게 일찍 세상을 등지지 않았다면 나중에 담배도 끊고 나서 그것에 대한 책도 쓰지 않았을까 싶구나. 그런 책이 세상에 없어서 안타깝구나. 그리고 또 하나의 중독. 이 책을 관통하는 은둔, 고립, 고독에도 중독된 사람 같아 보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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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우리는 고립을 지리와 상황의 결과로 여기곤 한다. 혼자가 된 과부, 남편은 죽고 아이들은 다 자란 여자, 그는 고립된 사람이다. 늙고 쇠약한 사람, 아예 물리적으로 바깥세상에 나갈 수 없는 사람, 그들은 고립된 사람이다. 하지만 고립은 또한 마음의 상태일 수 있고, 실제로 종종 그렇다. 칩거해야 한다는 생각이 선택을 결정짓는 상태인 것이다. 마치 당신이 심연으로 추락하는 것처럼, 나는 고립으로 추락한다. 어둡고 비자발적인 추락은 가속이 붙어, 내가 저지하기 거의 불가능한 상태가 된다. 나는 혼자 있기를 선택하고, 그 선택을 연속 열 번이나 열다섯 번이나 스무 번쯤 하고 나면, 더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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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캐럴라인이 말하길 고독은 차분하지만 고립은 무섭다고 했어. 그리고 고립에 빠지기도 하지만 고독을 즐기려는 노력도 했고, 사교적인 생활도 노력한 것 같았어. 고독을 즐기면서 사교적인 생활을 하는 것을 쌍둥이 기술이라고 했고, 자신은 이제 막 시작했다고 했거든그것이 완성되지 못하고 삶을 마감하여 안타깝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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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5)

혼자 있다는 것, 그 모든 다양한 형태는-혼자 살거나, 싱글이거나, 배우자나 가족이나 친구들과 떨어져 지내는 시간을 갖거나-연습이 필요한 기술이다. 고독은 어려운 일이다. 자신을 돌볼 의욕이 있어야 하고, 자신을 달래고 즐겁게 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사교적인 생활을 가꾸는 것도 역시 어려운 일이다.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기꺼이 취약해질 줄 알아야 한다. 캐럴린 하일브런이 그 쌍둥이 기술을 터득하는 데는 60년이 걸렸다. 내 친구 그레이스는 40대 중반인 지금 그 목표에 다가가고 있다. 20년 동안 혼자 살아온 그는 이제 프라이버시와 교유의 균형을 예전보다 더 자주 달성할 줄 안다. 나로 말하면, 이제 겨우 시작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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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고독과 고립을 오가던 캐럴라인 냅이었지만, 가족에 대한 사랑은 누구보다 진했단다. 비록 자신의 아이는 없었지만 조카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단다. 캐럴라인 냅은 이란성 쌍둥이 언니가 있었는데, 둘은 전혀 다른 성격과 외모를 가졌다고 했어. 늘 고독했던 캐럴라인과 달리 언니는 사교적이면서 활달했거든. 그 언니의 아이들을 무척 좋아했고, 그런 조카를 보면서 자신의 아이도 있으면 좋겠다고 하더구나. 사실 사랑스러운 아이를 보고, 아이를 갖고 싶지 않다고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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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내가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니다. 작은 인간 발전기 같은 록산이라는 이름의 두 살 조카를 볼 때면 나는 모성애 덩어리가 된다. 아이를 붙잡아서 껴안고 싶고, 그 자그만 얼굴과 손에 뽀뽀하고 싶다. 두 살 아기들이 즐기는 무한 반복 게임을 몇 시간이고 할 수 있다. (내가 아이를 쫓아서 30번 빙글빙글 돌고, 아이가 나를 쫓아서 30번 빙글빙글 돌고) 아이가 특히나 아이답고 사랑스러운 행동을 할 때면-낮잠을 자려고 침대에 웅크리고 누웠거나, 잠시 낯가림하며 제 아빠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려 있을 때-심장이 녹아내린다. 홀딱 반하겠네, 나도 아이가 있으면 좋겠어.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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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자신의 부모님에 대한 글들도 많이 실려 있었단다. 늙어가는 부모님을 보고 드는 생각을 적은 글은 아빠도 많이 했던 생각들이라 공감이 많이 갔단다. 점점 늙고 쇠약해 가는 부모님들. 두 분 중에 먼저 한 분이 돌아가신다면 나머지 한 분께서 잘 생활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그리고는 잘 못해드린 지난 시절들의 생각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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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최근에 부모님 댁을 방문했을 때 부모님이 전보다 더 늙고 약해지신 듯 보인 적 있는가?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 적 있는가? 젠장,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어머니 혼자 남으면 어쩌지? 아니면 이런 생각. 어머니가 아버지보다 먼저 돌아가시면 어쩌지? 아버지가 혼자 생활하실 줄이나 아나?

사람들이 흔히 부모님에게 느끼는 죄책감, 그러니까 당신이 부모에게 좋은 자식이 아니었다는 걱정이 들 때가 있나? 혹은 만약 부모님이 아프실 경우에 당신이 좋은 자식 노릇을 하지 못하리라는 걱정이?

모두 그렇다고 답했다고?

나와 같은 입장이 된 것을 환영한다. 당신이 그동안 누리던 부모님 은혜의 시기가 이제 끝난 것이다. 부모님 은혜의 시기란 당신이 부모에게 복종하지 않아도 될 만큼은 나이가 들었지만 아직 부모를 걱정할 만큼은 나이가 들지 않은 시기, 그 짧은 기간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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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캐럴라인 냅의 부모님들은 일년을 두고 돌아가셨단다. 아버지를 잃은 상실감, 어머니를 잃은 상실감이 캐럴라인의 글들에 애절하게 담겨 있었단다.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시고 일 년 뒤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부모님이 떠난 빈 집을 비우는 것에 대해 적은 글은 아빠나 언젠가 그런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눈물이 울컥 하더구나. 사람의 삶이라는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힘든 일을 겪게 되는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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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145)

화가였던 어머니의 화실을 비우는 일이 가장 힘든 부분이었던 듯싶다. 화실은 갑자기 끝난 어머니의 인생을 생생히 떠올리게 하는 물리적 공간이었다. 어머니는 죽기 직전까지 그곳에서 일했다. 탁자와 붓과 페인트는 늘 그랬던 모습대로 준비되어 있었다. 진행 중인 작은 작품들, 스케치와 메모, 콜라주 재료, 색칠된 종이 무더기가 여기저기 있었다. 나는 그 방이 텅 빈 모습을 보는 게 싫었다. 그것은 잔인하고 부자연스러운 일로 느껴졌고, 그래서 나는 겨우 일 분도 보지 못하고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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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작가의 에세이는 그들의 문화와 생각의 차이가 있어서 읽기 어렵거나 읽더라도 공감이 가지 않는 경우들이 종종 있는데, 캐럴라인 냅의 글들은 많은 부분 공감이 가는 내용들이 많아 좋았단다. 아무래도 아빠가 “I” 성향이 강한 사람이라 그럴 수도 있지만 말이야. 이 책을 추천할 때는 추천 받을 사람의 성향을 연구해보고 추천해야 할 것 같구나. 오늘은 이상.


PS:

책의 첫 문장: 속삭임은 두 주째, 혹은 세 주째 쯤에 시작된다.

책의 끝 문장: 날개가 된 나의 팔, 이것이 바로 해방의 정의라고, 나는 믿는다.


고독은 차분하고 고요하지만, 고립은 무섭다. 고독은 우리가 만족스럽게 쬐는 것이지만, 고립은 우리가 하릴없이 빠져 있는 것이다. - P19

해석. 물론 이것이 핵심이고, 착각에 이르는 문이다. 수줍어하는 사람들은 과묵함의 망토 뒤에 숨은 채 상대가 스스로 관계에 대해서 품는 두려움이나 편견이나 자기 인식을 투사하는 빈 화면으로 기능한다. 만약 그 상대가(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이) 타인에게 호감을 사고 싶다고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수줍어하는 사람의 태도가 그에게는 자신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만약 그 상태가 자신이 타인의 기대에 부합하는지 혹은 매력적으로 보이는지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수줍어하는 사람의 불편함이나 과묵함이 그에게는 자신이 주루해서 그러는 거라고 보일 수 있다. 수줍음은 오해로 통하는 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수줍음을 타는 내 친구 하나는 이렇게 한마디로 요약한다. "침묵은 로르샤흐 테스트야." - P34

나는 인생의 대부분을 타인의 애정이란 내가 얻어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어. 사랑받으려면 시험을 통과하고, 지적 후프를 뛰어넘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보여야 한다고 여겼어. 그러니 그저 존재하기만 해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것도 깊이 사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너를 통해 알게 된 것이 내게는 놀라운 일이야. 이것이 네가 내게 준 선물이란다. 네 존재만큼이나 소중한 선물이란다. - P94

이것이 삶임을 깨닫는 데도 긴 시간이 걸린다. 우리는 모두 나이 들수록 삶이 더 어려워지는 게 아니라 더 쉬워진다는 신화를 믿으며 자라는데(그리고 이것은 진짜 신화일 뿐이다), 나이 드는 부모의 모습만큼 그 믿음이 사실이 아님을 잘 보여주는 것은 많지 않다. 실제로는 우리가 아니 들수록 잃은 것이 많아진다. 점점 더 크고 버거운 과제가 나타난다. 실수를 되돌리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 P123

화를 터뜨리는 편이 언제나 효과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화를 내면 반드시 문제가 해결된다거나 상처가 낫는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지 않아도 나쁜 상황이 열을 내면 더 나빠지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나는 싸움을 잘 고르는 것 못지않게 대상을 잘 고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와 정신적으로 치고받을 의향과 능력이 있는 사람은 누구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누구인가? 화내는 것이 효과가 있으려면-어느 쪽에게든 생산적이거나 유익하려면-관련된 두 사람이 기본적으로 서로 신뢰해야 한다. 두 사람 모두 괴로운 시기를 견뎌보겠다고 생각할 만큼 그 관계를 중시해야 한다. 이상한 일이지만, 분노라는 동전의 뒷면은 친밀함일 때가 많다. 분노를 표현하는 것이 겁나면서도 때로 가치 있는 일인 것은 그 때문이리라. - P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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