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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긴 꽃잎
이사벨 아옌데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22년 2월
평점 :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몇 년 전에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의
전기를 읽은 적이 있단다. 칠레의 민주화와 개혁을 이끌었던 분이었지.
아옌데 대통령은 반군 쿠데타 세력에 맞서 싸우다가 대통령궁을 끝까지 지키다가 자살로 삶을 마감을 했단다. 아옌데 대통령이 죽고 나서 가족 친지들은 모두 망명을 떠나게 되었다고 했어.
그런데 얼마 전에 우연히 아빠가 책 한 권을 봤는데 지은이의 성이 아옌데였어. 이사벨 아옌데. 아옌데 대통령이 생각나서 지은이의 이력을 읽어보니, 아옌데 대통령의
조카더구나. 몇 년 전에 아옌데 대통령에 대한 책을 읽고 검색을 해봤을 때 친척 중에 소설가가 있었다는
기억도 살짝 나는 것 같았어.
아무튼,
아옌데 대통령을 좋게 생각했던 아빠는 그의 조카가 쓴 소설책이 어떤 것들이 있나 검색해 보았단다. 우리나라에
출간된 책들이 꽤 있고, 평들도 다들 좋았단다. 그래서 아빠가
몇 권 샀는데, 그 중에 가장 최근에 출간된 <바다의
긴 꽃잎>이란 책을 읽었단다. 바다의 긴 꽃잎? 제목이 독특하다고 생각했는데, 칠레의 유명한 정치인이자 시인인 네루다가
자신의 조국 칠레를 표현한 말이라고 하더구나. 칠레라는 나라가 남아메리카 대륙에 위치하고 태평양에 맞닿아
있으면서 남북으로 길게 위치하고 있잖니. 그 모습을 긴 꽃잎으로 비유한 것이로구나.
책 제목에서 알다시피 이 책은 칠레 현대사가
담겨 있다고 했어. 몇 년 전에 읽은 아옌데 대통령의 전기를 통해 칠레 현대사를 대충 알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소설을 통해서 다시 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낯선
공간과 낯선 시간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서 읽기 어려우면 어쩌나, 생각했는데 정말 재미있게 읽었단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지은이의 글솜씨도 좋았고, 읽기 편하게 잘 번역한
옮긴이의 글솜씨도 좋았단다.
1.
자, 그럼
책 속의 이야기를 해볼게. 때는 1938년 스페인. 음, 칠레의 역사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스페인부터 시작하네. 1938년 스페인이라면 한창 내전을 겪고 있던 시절이란다. 아빠도
잘 모르지만, 소설 속에 나온 것을 바탕으로 스페인의 사정을 이야기해줄게.
1936년 총선 때 좌파정당연합인 인민전선이 승리하여 정권을 잡게 되었단다. 하지만, 몇 달 뒤인 1936년 7월 프랑코가 이끄는 우파와 군인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켰어. 그래서
두 세력은 전쟁을 하게 된 것이 스페인 내전이란다. 그 내전은
1939년 4월 프랑코의 우파가 승리함으로 끝났고, 이후
프랑코의 장기 독재 집권을 하게 되었어.
…
아무튼 다시 1938년으로 돌아와서… 의대생 빅토르 달마우가 이 소설의 주인공이란다. 아버지 마르셀루이스 달마우는 음대 교수였고, 어머니 카르메라는 분이고, 동생 기옘이 있었어. 빅토르 집안 좌파를 지지하는 가족이었고, 동생 기옘은 급진 좌파로 전쟁에 지원해서 참가하기도 했단다. 빅토르는
지원까지는 아니고 징병되어 군의관으로 참가했어. 아버지의 음대 제자 중에 로세르 브르게라라는 사람이
있어. 로세르는 집이 가난했었는데 우연이 어떤 부잣집의 후원을 받아 음악을 공부할 수 있었어. 로세르는 피아노에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었어. 집이 가난하여 마땅히
머물 곳이 없었는데, 아버지 마르셀루이스는 자신의 집에 머물도록 했어.
그런데 아버지 마르셀루이스는 얼마 후
돌아가시게 되었단다. 그래도 로세르는 계속 집에 머물렀어. 군대
갔던 기옘이 티푸스 병에 걸려서 집에 왔을 때, 로세르와 기옘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어. 하지만 기옘의 사상은 사랑보다 더 강했지. 기옘은 병이 낫자 다시
전쟁터로 돌아갔고 얼마 안 있어 빅토르는 기옘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단다. 하지만, 빅토르는 이 소식을 가족들에게 이야기하지 못했어. 더욱이 로세르는
임신을 하고 있는 상태였거든.
..
1939년 1월 프랑코 장군이 승기를 잡았고, 좌파 세력들은 패배를 눈앞에 두고 있었어. 그래서 바르셀로나를 탈출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단다. 스페인에 남아 있어봤자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었거든.
많은 사람들이 바르셀로나에서 국경을 넘어 프랑스로 도망을 갔단다. 하지만 1월 추위는 장난이 아니었어. 빅토르는 부상병 치료를 해야 하기 때문에
자신이 군대에서 먼저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어. 그래서 친구인 아이토르에 부탁을 했어. 어머니 카르메와 로세르를 데리고 먼저 국경을 넘어가라고 말이야.
아이토르는 카르메, 로세르를 데리고 프랑스로 향했단다. 가던 길에 빅토르의 어머니 카르메는
자신은 짐만 된다고 생각하고 죽을 결심을 하고 밤에 그들을 떠났단다. 아이토르와 로세르는 프랑스로 향했어. 그런데 프랑스도 갑작스럽게 밀려드는 난민들을 어쩌지 못하고 국경을 닫아버렸어.
국제 여론이 안 좋아지자, 여자, 아이, 노인들만 받아주었단다. 그래서 아이토르와 로세르는 헤어지게 되었어. 로세르만 프랑스에 들어와 수용소에 머무르게 되었단다. 그 수용소에서
로세르는 빅토르의 옛 동료였던 간호병 엘리자베뜨를 만나게 되었고, 엘리자베뜨의 도움을 받아 정착을 할
수 있었단다.
…
빅토르도 뒤늦게 국경을 넘어와서 스페인
난민 수용소에서 의료진으로 일하게 되었어. 빅토르는 아이토르와 만나게 되는데, 어머니가 사라졌다는 소식과 로세르가 아이를 낳고 잘 지낸다는 소식을 접했어.
빅토르는 로세르를 만나러 갔어. 그리고 그제서야 기옘의 전사 소식을 알려주었단다.
2.
프랑스도 그리 안전한 곳은 아니었어. 세계2차 대전의 전운이 감돌고 있었지. 그 와중에 칠레에서 이민을 받아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앞서 이야기했던
칠레의 유명한 시인 네루다가 당시에는 외교관이었는데 네루다가 프랑스 영사관에서 이민 갈 사람들을 면접했어. 그런데
이민은 가족만 가능하다고 했어. 빅토르는 로세르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가짜로 결혼을 하고 칠레로 가기로
했단다. 그리고 로세르와 기옘 사이 낳은 아가의 이름을 빅토르의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마르셀이라고 했어.
빅토르와 로세르, 마르셀은 배를 타고 긴 항해 끝에 칠레에 도착을 했단다. 펠리페라는
사람을 알게 되고, 그의 도움으로 당분간 그의 집에 머물게 되었어. 펠리페라는
사람도 주요 인물이니 이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할게. 펠리페의 아버지 이시드로는 칠레의 큰 사업가였어. 아버지 이시드로는 철저한 보수파였고, 펠리페는 진보 세력이다 보니
정치적 견해로 갈등이 많았단다. 우리나라도 그런 가족들이 많잖니. 펠리페는
급진 진보파 모임인 광란자 살롱에도 자주 나갔고 그곳에서 네루다를 만나 친분을 쌓기도 했어. 스페인
난민을 받아들이려는 여론을 조성하기도 했단다.
한편,
이시도르는 부인 라우라, 딸 오펠리아와 유럽 여행을 떠났어. 이시도르는 사업 구상을 위해 떠난 것이고, 딸 오펠리아는 유럽에서
유학을 시키려고 했어. 그런데 그들이 유럽에 도착한 지 얼마 안되어 세계2차대전이 일어나서 간신이 배를 구하고 다시 칠레로 돌아왔단다. 가족들이
유럽에 가 있을 동안 펠리페가 빅토르와 로세르를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왔던 거야. 펠리페 집의 유모인
후아나는 주인이 없는 동안 난민들을 데리고 온 것을 꺼림칙하게 생각했었지만, 어린 마르셀에 푹 빠지고
말았단다. 빅토르는 칠레에서 의대 공부를 이어서 하고, 로세르는
피아니스트로 활동하기 시작했단다. 빅토르와 로세르가 가짜 부부라고 했잖아. 남들에게는 진짜 부부 행세를 했지만, 둘이 있을 때는 예를 잘 지켰단다. 그들의 최대 관심사는 마르셀을 잘 보살피는 것이었어.
…
얼마 후 펠리페의 가족들이 유럽에 돌아왔고, 오펠리아는 빅토르를 보고 한 눈에 반했단다. 오펠리아는 약혼녀가
있고, 빅토르는 유부남인데 말이야.
…
빅토르와 로세르는 돈벌이를 위해서 술집을
차리고 펠리페의 집에서 나왔단다. 오펠리아가 빅토로를 보고 한 눈에 반했다고 했잖아. 그건 빅토르도 마찬가지였어. 빅토르가 펠리페의 집을 나온 지 1년이 지나고 그들은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 바로 사랑에 빠지게 되었단다. 둘만의
비밀 사랑을 아주 뜨겁게 했단다. 오펠리아는 파혼까지 했어. 오펠리아의
아버지는 오펠리아를 집에서 나가지 못하게 하고 감금했단다. 얼마 뒤 자신이 임신한 것을 알게 되었고, 빅토르를 향한 자신의 사랑이 한 순간 불꽃이었음을 알고 후회를 하였단다. 하지만
아이는 낳고 싶어했어. 그래서 오펠리아의 아버지 이시드로는 오펠리아를 한동안 수녀원에 숨기고, 아이를 낳으면 입양 보내려는 작전을 세웠단다. 오펠리아는 임신 후반에
계속 몸이 좋지 않아서 약을 먹고 정신을 잃기도 했어. 결국 오펠리아는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단다. 아무래도 아버지가 빼돌린 것 같더구나.
오펠리아는 몸이 회복된 다음 이전 약혼자인
마티우스를 다시 만나게 되고 마티우스는 오펠리아를 용서해 주고, 그들은 얼마 후 결혼을 하게 되었단다.
…
빅토르도 갑자기 사라진 오펠리아의 사정을
몰랐어. 그리고 눈에서 멀어지니 마음에서도 멀어지게 되었지. 다시
의학 공부를 열심해 해서 드디어 의사가 되었단다. 로세르는 피아니스트로 성공을 해서 공연을 자주 다녔단다. 그러다가 빅토르의 어머니가 스페인에 살아 계시다는 소식을 들었어. 그렇게
어머니와 다시 만나게 되고 어머니를 칠레로 모셔왔단다. 다시 만난 가족들… 그들은 칠레에서 정착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3.
살바도르 아옌데가 칠레의 대통령이 되었단다. 정권을 잃은 야당과 그들을 지지하는 우파 세력들은 태업을 주도했어. 그렇다
보니 물가는 계속 오르고 사회는 혼란에 빠졌단다. 그런데 이것은 미국이 뒤에서 우파 세력을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해주고 있었던 거야. 혼란스러운 사회를 보고 있자니 빅토르는 스페인 내전이 일어나기 전의 스페인이
떠올랐단다. 비슷한 상황이었던 거지. 결국 미국의 지원을
받은 우파는 군사쿠데타를 일으키고 아옌데 대통령은 대통령궁을 끝까지 사수하다가 죽고 말았단다. 그리고
측근들은 대부분 숙청당했어.
빅토르는 예전부터 네루다를 통해 아옌데
대통령과 친분이 있었어. 그 이야기는 빅토르는 안전하지 않다는 거야.
그 사건이 일어났을 때 아들 마르셀은 미국에서 유학 중이었고, 로세르는 외국에서 연주 중이라서
칠레 국내에는 빅토르 혼자였어. 이웃집의 신고를 빅토르는 잡혀가게 되고 감금되었어. 가족들에게 연락도 하지 못하고 갇히게 되었는데, 무려 11개월이나 갇히게 되었어. 우연히 심장마비로 쓰러진 지휘관을 살려주게
되었는데, 그 덕에 집행유예로 풀려나게 되었단다.
빅토르와 로세르는 베네수엘라로 망명하기로
했어. 또다시 망명이라니… 스페인을 떠나 칠레가 정착하며
행복한 생활을 하나 싶었는데, 이제 칠레 사람 다 되었다고 생각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다시 제2의 고향 칠레를 떠났단다. 그곳에서 빅토르는 의사로, 로세르는 피아니스트로 다시 시작했단다. 이제 그 둘은 서로 의지하며
살아갔어. 그러면서 서로 진정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
…
스페인에서 오랫동안 독재를 하던 프랑코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단다. 스페인 입국도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다고 했어. 빅토르와 로세르는 40년 만에 스페인에 돌아왔단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칠레 사람이었어. 스페인 생활을 적응하지 못하고, 몇 달 만에 다시 베네수엘라로 돌아왔단다. 그들이 돌아가야 할 조국이
있다면 그것은 칠레였던 거지.
1980년대 들어서면서 칠레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어. 망명객들이 속속 칠레로 돌아오기 시작했지. 빅토르와 로세르도 칠레로
돌아왔어. 빅토르는 철거촌에서 의료 봉사를 하면서 지냈단다. 그런데
세월은 그들도 가만두지 않았단다. 로세르가 그만 암에 걸렸어. 빅토르는
로세르가 가는 마지막 길을 함께 했단다. 로세르가 죽고 나서 빅토르는 쓸쓸한 생활을 했어. 그런데 어느날 한 여성이 찾아왔어. 자신이 52살이고, 이름은 잉그리드라고 했어. 그러면서 덧붙인 충격적인 말. 빅토르, 당신의 딸입니다. 빅토르는 그제서야 오래 전에 오펠리아가 임신을
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그리고 그 아이가 죽지 않고 잘 살고 있었던 거야. 잉그리드는 자신의 부모를 원망하지 않았어. 52살이면 원망할 나이도
지났지, 뭐.. 생존해 계시는 아버지를 만난 것에 대해 기뻐했단다.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단다.
…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인데, 그 사람의 역사에 스페인과 칠레의 굴곡진 현대사가 모두 담겨 있구나. 몇
년 전에 칠레가 민주화 시위로 뉴스에 자주 등장했는데,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네. 다시 사회가 안정화되어 잘 살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몇 년 전에
읽은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 전기와 이번에 읽은 <바다의 긴 꽃잎>때문인지 칠레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좋았단다. 그 먼 나라를
가 볼 일이 없겠지만 말이야. 칠레 하면 축구를 잘 하는 나라로 알려졌는데, 이번 월드컵에는 본선 진출에 실패했었단다. 다음에 혹시 칠레 축구를
볼 일이 있으면 칠레를 응원해야겠구나.
PS:
책의 첫 문장: 어린 병사는 비베론 부대 소속이었다.
책의 끝 문장: 그것은 새로운 항해이며, 그렇게 그는 끝까지 갈 생각이었다.
그는 로세르의 사진 한 장을 가지고 있었다. 지갑에 넣어 둔 유일한 사진이었다. 로세르가 피아노 옆에 서 있었다. 어쩌면 연주회 중일 수도 있었다. 그녀는 짙은 색 소박한 블라우스에 평소보다 긴 치마를 입고 있었다. 반소매에 목에는 레이스가 달린 옷은 몸매를 감추는 촌스러운 교복 같았다. 그 흑백사진에서 로세르는 아마득하고 흐릿했다. 멋도 없고, 나이도 불분명하고, 무표정한 여인의 모습이었다. 그녀의 호박색 눈과 검은 머리카락, 조각처럼 곧은 코, 표정이 담긴 눈썹, 돌출된 귀, 기다란 손가락, 그녀에게서 나는 비누 향. 느닷없이 그를 덮쳐 고통스럽게도 하고 잠 못 이루게도 하는 섬세한 표정은 애써 떠올려야 했다. 그리고 이런 표정을 떠올리다 보면 깜빡 방심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 P55
그들은 칠레가 몹시 가난한 나라로 광물, 그중에서도 특히 구리에 경제를 의존하고 있지만, 정착해서 성공할 수 있는 비옥한 땅도 많고, 어업에 종사할 수 있는 수천 킬로미터의 해안도 있고, 무수히 많은 숲과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지역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달과 같은 북쪽 황무지부터 남쪽의 빙하까지 칠레의 자연은 경이로웠다. 칠레 사람들은 한순간에 모든 걸 무너뜨려 사망자와 이재민이 속출하는 지진 같은 자연재해와 가난에 길들여져 있었다. 하지만 망명자들에게는 자기네가 살아왔던 과거와 프랑코 권력하에 있는 스페인의 미래에 비하면 칠레는 불행 중 다행이었다. 칠레 사람들은 그들이 많은 것을 받을 테니 보답할 준비나 하라고 했다. 칠레 사람들은 전체적으로 가난하지만 인색하지 않고, 오히려 친절하고 너그러웠다. 칠레 사람들은 늘 두 팔 벌려 자기네 집을 열어 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오늘은 나를 위해, 내일은 너를 위해." 그것이 슬로건이었다. - P180
쿠바 혁명에 영감을 받은 지지자 몇몇은 진정한 혁명을 이뤄 평화롭게 미국 제국주의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무기를 들고 싸워야만 그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아옌데에게 혁명은 견고한 칠레 민주주의에 넉넉히 들어맞았고, 그는 칠레의 헌법을 존중했다. 그는 노동자들이 들고일어나 한 손에 자기네 운명을 움켜쥘 수 있도록, 모든 것을 고발하고 설명하고 제안하고 행동으로 옮기도록 요구하는 것이 문제라고 마지막까지 믿었다. 또한 그는 적들의 힘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공인일 때 아옌데는 약간 우쭐해하며 근엄하게 행동해 적들에게 건방지다는 트집도 잡혔지만, 사적인 자리에서는 수수하고 농담도 잘하는 편이었다. 그는 자기가 한 말은 반드시 지켰다. 그로서는 배신은 상상도 할 수 없었고, 그로 인해 마지막에 가서는 그 자신을 잃게 되었다. - P316
빅토르는 임종이 임박한 마지막 순간의 로세르의 말을 듣는 것 같았다. 그때 그녀는 우리 인간은 모여 사는 생명체이고, 우리는 고독이 아니라 서로 주고받기 위해 프로그램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그가 혼자 살면 안 된다며, 심지어 그를 위해 애인까지 정해 주며 집요하게 굴었다. 빅토르는 느닷없이 매체를 정감 있게 떠올렸다. 그에게 고양이를 선물하고 텃밭의 토마토와 허브를 가져다주는, 마음이 열린 옆집 사람, 뚱뚱한 요정들을 조각하는 꽤 자그마한 여자였다. 빅토르는 딸이 떠나자마자 오징어 먹물 파에야와 크레마 카탈라나 남은 것을 메체에게 가져다주기로 했다. 그것을 새로운 항해이며, 그렇게 그는 끝까지 갈 생각이었다. - P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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