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아빠는 조지 오웰이라는 작가를 좋아한단다. 얼마 전에 고세훈 님의 조지 오웰의 전기를 통해서 그가 살아온 삶의 흔적과 그의 생각을 좀더 폭넓게 알게 되었는데, 고뇌하는, 진보적이면서 자유주의를 가진 지식의 모습이랄까, 그런 이미지의 조지 오웰을 만나게 되었어. 그래서 아빠는 더욱 조지 오웰을 좋아하게 되었단다. 그 동안은 조지 오웰들의 소설들만 읽었는데, 고세훈 님의 <조지 오웰>을 읽고, 오래 전에 사 둔 조지 오웰의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도 언젠가는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얼마 전에 유시민 님과 조수진 변호사님이 진행하는 <알릴레오>라는 유튜브 채널에서 이 책을 소개해 주었단다. 그 영상을 보고 더욱 이 책이 읽고 싶어졌단다. 오래 전 다른 공간을 산, 지식 충만한 사람이 쓴 에세이라고 해서 읽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해서 이 책 읽기를 좀 망설였는데, 유시민 님과 조수진 변호사 님, 그리고 게스트님께서 잘 소개를 해주어 아빠도 읽어볼 만하다는 생각을 하고 이 책을 펼쳐 들었단다.

이 책은 조지 오웰의 에세이 29편을 시대순으로 엮은 것이고, 책 제목 <나는 왜 쓰는가>는 그 중에 한 편이란다. 그러니까 책 전체가 글쓰기에 관한 내용은 아니라는 점.... 각각 독립적인 29편의 에세이라는 점... 그래서 유시민 님께서 이야기한 것처럼 어느 곳을 펼쳐서 읽어도 좋겠더구나. 29편 모두 조지 오웰의 글솜씨와 그의 진보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사상을 엿볼 수 있었어. 하지만 아빠가 당시 시대적 배경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 보니 쉽게 읽히지는 않는 글도 있었단다. 하지만, 조지오웰의 부러운 필력을 느낄 수 있었고, 그의 소설보다 더 많은 그의 삶과 생각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 것 같았단다.

 

1.

조지 오웰은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영국의 식민지였던 버마에서 경찰을 하기도 했었는데, 제국주의 국가에 대한 비판을 하고, 인종 차별에 대한 문제점도 제기하면서도 자신이 식민지 경찰을 하는 모순성에 마음이 무척 불편해했단다. 그런 자신의 처지에 대한 글도 이 책에 실려 있는데, 조지 오웰의 괴로움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 같았어.

======================

(32)

이 모든 것들이 당혹스럽고 언짢았다. 왜냐하면 그 무렵 나는 제국주의가 사악한 것이니 어서 직장을 때려치우고 그로부터 멀어질수록 좋다는 생각을 이미 하고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나는 이론적으로는(물론 남몰래 그랬다) 전적으로 버마인들 편이었고, 그들의 압제자인 영국인들을 전적으로 적대시했다. 내가 하고 있던 일에 대해서는, 내가 설명할 수 있는 그 어떤 정도보다 지독하게 혐오했다. 그런 일을 하다보면 제국의 추악한 짓거리들을 지근거리에서 보게 된다. 악취 지독한 철창에 처박혀 있는 불쌍한 죄수들, 장기 재소자들의 겁먹은 얼굴, 대나무로 매질을 당한 사람들의 터진 엉덩이. 이 모든 게 견딜 수 없는 죄책감으로 나를 짓눌렀다. 하지만 난 그럴싸한 내 나름의 관점을 전혀 갖추지 못했다. 나는 아직 어린데다 부실한 교육을 받았고, 동양에 가 있는 영국인이라면 누구나 그랬듯 내 문제를 철저히 함구한 채 혼자 해결해야 했던 것이다. 심지어 나는 대영제국이 저물어가고 있다는 것도 몰랐고, 그것을 대체해가는 신생 제국들보다는 영국이 훨씬 낫다는 건 더더욱 몰랐다. 내가 알았던 것이라곤 섬기던 제국에 대한 나의 증오와, 도무지 일을 할 수 없게 만들려던 악독하고 자그만 인간들에 대한 나의 분노 사이에 내가 끼어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

조지 오웰이 제국주의를 비판하면서도 자신의 모국인 영국에 대한 애정은 여전히 갖고 있다는 생각을 했어. 그런 글들은 곳곳에서 볼 수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만 소개해 볼게.

======================

(107)

영국은, 자주 인용되는 셰익스피어의 구절처럼 보배 같은 섬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괴벨스 박사의 묘사처럼 지옥인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어떤 집안을, 상당히 고루한 빅토리아 시대의 집안을 닮았다고 할 수 있다. 골칫덩이가 많진 않아도 찬장마다 해골이 넘쳐나는 집안 말이다. 이 집안에는 비굴하게 아첨을 떨어야 하는 부자 친척도, 끔찍이 들러붙는 가난뱅이 친척도 있으며, 집안의 수입원에 대해 함구한다는 단단한 공모가 있다. 또 젊은 사람들은 대체로 좌절을 겪고, 실권은 대부분 무책임한 삼촌들이나 몸져누운 숙모들 손에 있다. 그래도, 집안은 집안이다. 나름의 언어가 있고, 공통의 기억이 있으며, 적이 다가오면 단결한다. 엉뚱한 식구들이 살림을 주무르는 집안-영국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그게 가장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

조지 오웰은 좌파로 분류되는 지식인이었는데, 아빠는 예나 지금이나 좌파 지식인들에 호감이 더 가더구나. 신문이나 언론을 바라보는 시선도 비슷한데, 그것 또한 지금이나 예나 별 차이가 없는가 보구나. 조지 오웰은 당시 언론의 주요 매체인 신문이나 라디오의 거짓 정보를 비판하는 글들이 여럿 있었단다. 그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면이건 앞으로도 영원히 고쳐지지 않는 것이란 말인가. 이런 생각을 하니, 희망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깝구나. 더 이상 언론과 싸우지 말고, 언론을 무시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

(194)

진실은 밝혀질 수도 있겠지만, 거의 모든 신문이 사실을 워낙 거짓으로 알리기 때문에, 거짓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어거나 나름을 견해를 갖추지 못한다 해서 일반 독자를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한 정보가 전반적으로 불확실하기 때문에 황당한 믿음을 고수하기가 훨씬 쉬워진다. 무엇 하나 입증되지도 반증되지도 않기에, 더없이 엄연한 사실도 뻔뻔히 부인해버리는 게 가능해진다. 더구나 민족주의자는 세력, 승리, 패배, 복수에 대해 끊임없이 골몰하면서도 실제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선 다소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 그가 바라는 바는 자기편이 상대편보다 앞서고 있다고 느끼는것이며, 사실이 뒷받침되는지 확인하기보다는 상대편을 묵살해버림으로써 더 쉽게 그럴 수 있다. 모든 민족주의 논쟁은 토론반 학생들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 어떤 논쟁 참가자든 자신이 이겼다고 믿어버리기 때문에 수준을 넘지 못한다. 어떤 논쟁 참가자든 자신이 이겼다고 믿어버리기 때문에 결판이 나는 법이 없다. 그리고 어떤 민족주의자는 정신분열증 환자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실제 세계와 아무 상관이 없는 세력과 정복을 꿈꾸며 제법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

….

이 책을 읽다 보면 조지 오웰의 글쓰기 영역은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단다. 그만큼 세상 돌아가는 것에 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던 것 같아. 그리고 그런 세상의 이슈에 대해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늘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일반적인 사람들의 시선과는 다른 시선으로 바로 보는 것이 좋았단다. 당시 신뢰가 점점 쌓여가는 과학 교육에 대해서도 무조건 좋다는 것이 아니고, 그것에 대한 반대 입장도 생각해서 적었는데, 오늘날 과학 맹신에 가져오는 부작용에 대한 경고처럼 아빠에게는 읽혀졌단다.

======================

(218-219)

확실히 과학교육은 합리적이고 회의적이며 실험적인 사고의 습성을 심어주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어떤 방식’, 즉 부닥치는 어떤 문제에도 적용할 수 있는 방식을 습득하는 것이어야지, 사실을 잔뜩 축적하는 것이기만 해서는 안 된다. 이런 말을 과학교육 옹호론자에게 하면 대게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라고 하면, 언제나 과학교육이란 정밀과학에, 달리 말해 더 많은 사실에 주목하는 일이라는 식의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과학은 한 덩어리의 지식에 불과한 게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방식이라는 생각은 현실에서 강한 반발에 부닥친다. 그렇게 된 데에는 순전히 직업적인 시기심이 어느 정도 작용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과학이 단순히 하나의 방식이나 태도라면, 그래서 사고방식이 충분히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떤 의미에서 과학자라 할 수 있다면, 지금 화학자나 물리학자 등등이 누리고 있는 엄청난 위세는 어찌 되며 아무튼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현명하다는 주장은 또 어찌 되겠는가?

======================

 

2.

그가 세상사에 비판에 대한 글들을 쓴다고 해서 그의 글에 감성과 순수함이 없는 것은 아니었단다. 봄이 찾아오는 것에 대해 적은 그의 글을 보면, 그의 순수한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단다. 하지만 평범한 순수함은 아니고 남들과 다른 독특한 것에서 봄을 느끼는 것이 평범하지 않은 순수함 같아서 좋았단다. 남들 같으면 새싹이 돋아나거나 봄바람이나 봄꽃에서 봄이 오는 것을 주로 느낄 텐데, 조지 오웰은 두꺼비로부터 봄을 오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하는구나. 조지 오웰의 남다른 시각을 닮고 싶구나.

======================

(277)

제비보다 먼저, 수선화보다 먼저, 아네모네보다 조금 늦게, 두꺼비는 봄이 다시 찾아온 것에 대해 나름의 경의를 표한다. 지난 가을부터 들어가 누워 있던 땅속 구멍에서 나와 가장 가까이 있는 적당한 물웅덩이 쪽으로 최대한 빨리 기어가는 것이다. 무언가가(땅속의 어떤 떨림인지 아니면 그냥 온도가 몇 도 올라서인지 잘은 모르지만) 두꺼비에게 깨어날 때가 되었다고 말해준 것이다. 그런가 하면 몇 마리는 내내 잠만 자다 한 해를 아예 빼먹기도 하는 것 같다. 한여름에 땅을 파다가 멀쩡한 모습으로 잠들어 있는 두꺼비를 몇 번이고 본 적이 있으니 말이다.

======================

이 책의 제목으로 뽑은 <나는 왜 쓰는가>라는 에세이에서는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한 조지 오웰의 생각이 담겨 있었단다. 순전한 이기심,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 그리고 정치적 목적이라고 이야기했단다. 각각의 자세한 설명도 있어서 그 글을 읽다 보면, 아빠가 지금 이 리뷰 편지를 쓰는 이유도 그 중에 하나에 속한다는 것을 알겠더구나. 조지 오웰이 이야기한 글쓰기의 이유 중에 정치적 목적은 조지 오웰과 같은 영향력 있는 지식인라면 더욱 정치적 목적이 크다고 생각이 든단다. 그 또한 어떤 글이든 정치적 성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했고, 잘 쓴 글들은 여지없이 정치적 목적이 담겨 있다고 이야기했단다.

======================

(300)

모든 작가는 허영심이 많고 이기적으로 게으르며, 글 쓰는 동기의 맨 밑바닥은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책을 쓴다는 건 고통스러운 병을 오래 앓는 것처럼 끔찍하고 힘겨운 싸움이다. 거역할 수 도 이해할 수도 없는 어떤 귀신에게 끌려다니지 않는 한 절대 할 수 없는 작업이다. 아마 그 귀신은 아기가 관심을 가져달라고 마구 울어대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본능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 자기만의 개별성을 지우려는 노력을 부단히 하지 않는다면 읽을 만한 글을 절대 쓸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좋은 산문은 유리창과 같다. 나는 내가 글을 쓰는 동기들 중에 어떤 게 가장 강한 것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떤 게 가장 따를 만한 것인지는 안다. 내 작업들을 돌이켜보건대 내가 맥없이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다.

======================

그 외에도 좋은 글들이 많이 실려 있어서 너희들에게 더 소개해 주고 싶지만, 밀린 독서 편지를 보니, 되도록 짧게 마치고 또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구나. Shon이 이 책의 표지를 보더니, 참 재미없을 것 같다는 평을 냈는데, 지금이야 그렇겠지만 나중에 커서는 너희들도 조지 오웰을 좋아했으면 좋겠구나. 그래서 이 책도 읽어봤으면 좋겠어. 글의 내용 뿐만 아니라, 조지 오웰이 어떤 식으로 글을 써 내려갔는지도 살펴보면서 말이야.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늦은 오후였다.

책의 끝 문장: 그러나 그를 정치인으로만 볼 때, 그리고 우리 시대의 다른 유력 정치인들과 비교해볼 때, 그가 남긴 향기는 얼마나 많은가!


생각 있는 사람이라면 누가나 지금 우리 사회와 같은 곳에 살면서 변화를 바라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0년 동안 나는 자본주의 사회의 본성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버마에서 영국 제국주의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목격했고, 영국에 와서는 빈곤과 실업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나로서는 그런 시스템에 맞서 싸운다는 게, 주로 독서 대중에서 영향을 끼쳤으면 하는 책들을 쓰는 것이었다. 물론 나는 계속해서 그렇게 하겠지만, 지금 같은 시기에는 책을 쓰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사태의 진전이 점점 빨라지고 있으며, 한때는 한 세대 뒤의 위험 같아 보이던 것들이 우리를 정면으로 노려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적극적인 사회주의가 되어야 한다. 사회주의에 공감하는 데 그쳐서도 안 되고, 언제나 활발한 적들의 술수에 놀아나서도 한 된다. - P64

애국주의, 즉 국민적 충심이 갖는 압도적 힘을 인식하지 못하는 한, 오늘의 세계를 제대로 볼 수는 없다. 애국주의는 상황에 따라 무력해질 수도 있고, 문명의 어느 단계에서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긍정적’인 힘으로서 그에 필적할 만한 것은 없다. 기독교와 국제 사회주의는 애국주의에 비하면 지푸라기처럼 연약하다.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그들의 나라에서 권좌에 오른 가장 큰 비결은, 그들은 이 사실을 파악했고 그들의 적들은 그러지 못했다는 데 있다. - P88

군대 생활의 본질적인 공포는(군인이 되어본 사람이라면 군대 생활의 본질적 공포라는 게 무엇인지 알 것이다) 어떤 성격의 전쟁에서 싸우게 되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군기 같은 것은 어떤 군대든 궁극적으로는 마찬가지다. 명령은 복종해야 하고 필요하면 처벌로써 강요되며, 장교와 사병의 관계는 상급자와 하급자의 관계일 수밖에 없다. <서부전선 이상 없다> 같은 책들에 나오는 전쟁 묘사는 대체로 정확하다. 총탄은 맞으면 아프고, 시체는 썩어 악취를 풍기고, 총격전이 벌어지면 너무 무서워 바지를 적시기도 한다. 어떤 군대가 만들어지게 된 사회적 배경이 그 군대의 훈련과 전술과 전반적인 능력에 영향을 끼치며, 정의 편이라는 의식이 사기를 북돋우는 것도 사실이다. - P134

기록된 역사 대부분은 어떤 식이든 거짓이라는 말이 유행인 건 나도 안다. 나는 역사가 대체로 부정확하고 편향된 것이라는 말을 기꺼이 믿는 쪽이다. 한데 우리 시대에 와서 특이한 점은, 역사가 진실하게 기록될 ‘수도’ 있다는 개념 자체를 포기한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거나, 자기 글을 무의식적으로 윤색하거나, 실수가 많을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진실을 애써 추구했다. 단 어느 쪽이든 ‘사실’은 존재하며, 어느 정도 밝혀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을 만한 사실이 늘 상당 부분 있었다. - P148

문명의 역사는 대체로 무기의 역사이기도 하다는 주장은 이제는 흔한 말이 되어버렸다. 특히 화약의 발명과 부르주아에 의한 봉건제 전복의 연관성은 누차 지적된 바 있다. 물론 예외가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다음과 같은 규칙이 일반적인 사실로 판명될 것이라 생각한다. 즉, 가장 강력한 무기가 싸고 단순한 시대에는 서민들에게도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예컨대 탱크나 전함이나 폭격기는 본질적으로 압제적인 무기인 반면에, 소총이나 머스킷총이나 긴 활이나 수류탄은 본질적으로 민주적인 무기인 셈이다. 복잡한 무기는 강자를 더 강하게 만들고, 단순한 무기는(보복이 따르지 않는 한) 약자에게 갈고리발톱이 된다. - P210

언제나 강자가 약자에게 승리를 거두었던 것이다. 미덕은 이기는 데 있었다. 즉, 미덕이란 남들보다 더 크고, 강하고, 잘생기고, 부유하고, 인기 좋고, 세련되고, 거리낌 없는 데 있었다. 달리 말해 남을 지배하고,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하고, 바보 같아 보이게 하며, 모든 면에서 남보다 앞서는 데 있었던 것이다. 삶이란 본래 위아래가 있어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그 자체가 옳은 일이었다. 강자가 있어 그들은 이겨 마땅하고 언제나 이겼으며, 약자가 있어 그들은 져 마땅하고 언제나, 끝없이 지기만 했다. - P419

정치에선 둘 중 어느 쪽이 덜 악한지를 판단하는 것 이상은 결코 있을 수 없으며, 악마나 미치광이처럼 행동해야만 가까스로 탈출할 수 있는 상황들이 있다. - P44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