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저널 그날 조선 편 6 - 인조에서 경종까지 역사저널 그날 조선편 6
역사저널 그날 제작팀 지음, 신병주 감수 / 민음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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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광인효현숙경영

정순헌철고순

요즘 너희들이 이것을 노래에 맞춰 부르고 있더구나예나 지금이나 조선시대 26명의 왕을 순서대로 외우는 것은 앞 한 자씩 따서 일곱 개씩 묶어서 외우는 이 방법이 최고인 것 같구나. 아빠가 가끔씩 읽는 <역사저널 그날> 시리즈. 이번에는 제6권을 읽었단다. 왕으로 따지면 셋째 줄 광인효현숙경영에서 인효현숙경이렇게 다섯 명의 왕이 살던 시기를 다루게 된단다.

아빠가 조선시대 왕 중에 안 좋아하는 왕을 뽑으라고 하면 가장 먼저 손에 뽑는 왕이 인조란다. 지난 5권에서 인조의 무능함을 잘 볼 수 있는 병자호란의 이야기가 있었는데, 이번 6권에서는 병자호란 이후부터 시작한단다. 병자호란에서 조선은 왕세자인 소현 세자가 8년간 청나라 볼모라 잡혀가 당시 청나라 수도인 심양에 머무르게 된단다. 그 긴 세월 힘든 외지 생활을 하고 돌아왔을 때 감격이 얼마나 대단했을까. 하지만, 돌아온 지 두 달 만에 죽고 말았단다. 조선 왕가의 여러 의문사 중에 가장 독살이 명백해 보이는 죽음이 바로 소현 세자의 죽음이 아니었을까 싶단다. 심지어 조선왕조실록 마저 독살의 의심된다고 써 있다고 했어.

그렇다면 누가? 가장 강력한 용의자는 소현 세자의 아버지 인조라고 하는구나. 소현 세자가 8년간 볼모로 있었지만, 소현 세자는 청나라로부터 인정을 받았고, 심지어 조선의 왕도 소현 세자로 바꾸려는 말도 서슴지 않고 했대. 그래서 인조는 소현 세자를 아들이 아닌, 정치적 적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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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허태구)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는 조선을 통제하고 압박하는 수단으로 심양에 볼모로 와 있던 소현 세자를 활용합니다. 인조가 말을 안 들으면 왕위 교체론을 들먹이면서 인조를 긴장시키죠. 인조는 삼전도에서 항복하면서 반정의 명분을 스스로 허물지 않았습니까? 이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광해군을 몰아낸 친명배금(親明排金)이라는 명분으로 누군가가 다시 반정, 즉 쿠데타를 일으켜도 하등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죠. 게다가 소현 세자의 장인, 즉 강빈의 친정아버지 강석기가 척화파의 지지와 신망을 받았습니다. 정치적 구도가 이렇게 짜인 이상 부자간의 정이 아무리 애틋했다고 하더라도 인조와 소현 세자의 관계는 아주 작은 불씨와 오해에도 큰 분란으로 악화될 소지가 다분히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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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 세자가 죽은 다음 보인 인조의 행보도 소현 세자의 죽음 뒤에 인조가 있나? 하는 의심을 사게 했단다. 장례식도 대충 하고, 상복도 얼마 안 입고 바로 벗어버렸다는 거야. 아들이 젊은 나이에 횡사를 했는데 말이야. 그리고 후계자도 이상했어. 원래 세자가 죽으면 세자의 아들 즉 세손이 서열 1위가 되는데, 인조는 둘째 아들 봉림대군을 세자로 정했다고 하는구나. 이러니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고, 심증은 있는데 물증은 없는 경우가 되었단다. 소현 세자가 심양과 북경에 있으면서 신식 문물을 많이 접하고 왕으로 재질을 많이 쌓게 되었다고 하는데, 소현 세자가 왕이 되었다면 후기 조선의 모습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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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그날) 훌륭한 리더였다는 희망을 버리고 싶지 않았던 거죠. 지금까지 했던 얘기를 종합해 보면 볼모를 자처했던 희생정신, 용골대에게 호통친 담력, 서양의 과학과 문물을 받아들이는 개방성, 거기다가 사업 수완까지 있네요. 그래서 소현세자가 왕이 되고, 봉림대군이 뒤에서 무()를 좀 키워서 받쳐 줬다면 지금 우리가 아는 조선보다는 좀 나은 조선이 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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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시기에 조선을 서양에 소개한 유명한 사람이 한 명 등장한단다. 바로 그 유명한 하멜. 그는 네델란드 동인도 회사 소속으로 일본으로 가던 배가 폭풍우를 만나 제주도에 표류하게 되는데 모두 36명이었단다. 아빠는 하멜이 조선에 표류했을 때 이렇게 많은 사람이 같이 왔는지는 몰랐어. 그들이 처음 왔을 때 말이 안 통했는데, 당시 조선에는 조선인으로 귀화한 네덜란드 사람 박연이 있어서 그를 통해서 하멜 무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어. 박연은 귀화하고 26년이나 조선에서 살고 있었는데, 조선에서 오래 살아서 모국어를 까먹어 하멜을 처음 만났을 때는 하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기도 했다는구나.

조선 사람들은 하멜의 무리를 환대를 해주지는 않았단다. 그들은 조선의 이곳 저곳을 끌려 다니면서 노동에 참여도 해야만 했어. 그러면서 죽은 이들도 꽤 되고 말이야. 하멜에 조선에 머물렀다가 돌아갔다고 해서 환대를 받으면서 잠시 머물다 간 줄 알았는데, 생고생을 하면서 무려 13년이나 있다가 극적으로 탈출했다고 하더구나. 당시 하멜과 조선을 탈출한 사람은 고작 여덟 명뿐이었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고국에 돌아가서 조선에서 경험을 바탕으로 <하멜 표류기>를 쓰게 된 건데, 그 책이 크게 히트를 쳤다는구나. 이 책도 제대로 한번 읽어봤으면 좋겠구나.

….

나선정벌이라는 말이 있어. 아빠도 학교 시간에 들어본 것 같긴 한데 정확히 어떤 것인지 몰랐단다. 청나라는 러시아와 전쟁을 벌이고 있었는데 계속 지게 되자, 조선에 지원병을 보내라는 요청, 아니 명령을 내렸어. 조선을 그걸 거부할 힘이 없어서, 조총부대 200여명을 파견했다고 하는구나. 두 차례에 걸쳐 참전했는데 두 차례 모두 큰 승리를 했대. 그 전쟁은 나선정벌이라고 하는구나. 여기서 나선(羅禪)은 러시아인을 음역한 것이라 하는구나. 아무튼 그 나선정벌의 승리에 기여를 한 것이 바로 조선의 조총부대였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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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박금수) 전투 결과를 보면 러시아군의 배는 총 11척 중 7척이 불에 탑니다. 그리고 러시아 지휘관 스테파노프를 포함해서 총 220여 명이 전사합니다. 조청 연합군의 피해는 전사 120여 명인데, 그중 조선군 전사자는 총 8명밖에 안 되는 일방적인 결과였고요. 이상으로 2차 나선정벌의 전투 경과보고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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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들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와도 나라에서는 그들에게 보상도 해주지 않았어. 청나라를 위해 싸운 거니까 말이야. 나라에서 싸우라고 시켜 놓고 말이야. 그래도 당시 전쟁기록을 <북정록>이라는 일기에 상세히 적은 신유 장군이 있어서 당시 상황과 그들의 업적을 알 수 있다고 하는구나. 신유 장군은 처음 알게 된 분인데, 오랫동안 기억해야겠구나.

또 한 분 기억해야 할 사람이 있는데 바로 대동법을 실행시키는데 큰 공을 세운 김육이라는 분이란다. 이 분은 다른 책에서도 자주 뵌 분이긴 하지만 업적은 정확히 몰랐는데, 대동법 하면 김육이라고 할 정도로 대동법 실행에 큰 공을 세운 사람이라고 하는구나. 서민들이 얼마나 고마워했냐면, 그가 죽고 나서 그에게 보답하자면서 십시일반 돈을 모아 기념비까지 세웠다고 하는구나. 대동법은 부패한 조세제도를 서민을 위해 혁신적으로 바꾼 개혁 제도란다. 오늘날 정치인들이 보고 배워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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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신동주) 그렇죠. 대동법이 시행되면서 세금을 다 쌀로 바치니까 국가에 필요한 물품을 직접 제작해야 할 필요가 생깁니다. 그러다 보니 수공업과 상업이 발달하면서 유통경제가 발달하죠. 또한 유통 과정에서는 당연히 화폐가 필요합니다. 이런 방면에서 김육은 선구적 모습을 보였죠. 십전통보라는 화폐를 주조해서 유통하려 했고, 수차도 보급하는 등 개혁적이고 실용적인 성과가 상당히 많아요. 이런 내용을 보면 ? 조선 후기 실학자의 모습 아니야?’라는 생각이 탁 들잖아요. 보통 실학자들은 재야의 약자들이에요. 정치권에서 소외되었던 사람들인데, 김육은 영의정까지 맡으면서 최고 핵심의 자리에서 실용적이고 개혁적인 여러 가지 정책을 시행했다는 점에서 세상에 미쳤던 효과가 훨씬 더 컸다는 점을 주목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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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여인천하로 유명한 숙종. 그의 재위기간이 무려 46년이나 되는데 주변에 극적인 여자들이 많아서 드라마에 출연해도 늘 조연으로 나오는 숙종. 이 책에서는 그를 주연으로 생각해고 그의 업적을 이야기해보자 했단다. 숙종은 조선의 왕 중에 가장 정통성이 있는 왕이라고 했어. 왕비에게서 태어난 맏아들로 왕을 이어받아 어린 나이에도 강력한 왕권을 행사했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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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조선의 왕 중에서 정통성으로 가장 우위에 있는 왕은 누구일까? 스물일곱 명의 조선 왕 중에서 적장자는 문종과 단종, 연산군, 인종, 현종, 숙종, 순종으로 총 일곱 명이다. 그리고 적장자 출신의 왕 중에서 가장 존재감이 있는 왕은 현종과 명성왕후의 외아들로 태어난 숙종이다. 숙종이 즉위했을 당시 조선은 중기부터 시작된 당쟁이 절정에 오른 시기였고, 그만큼 신하들의 위상이 컸다. 그러나 열네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지만, 숙종은 결코 신권에 휘둘리지 않았다. 오히려 정통성을 바탕으로 강력한 왕권을 행사해 나가는 왕의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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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살에 왕위에 올라 당시 서인의 거두 예순여덟 살 송시열과 맞장을 뜨기도 했으니 대단하시네. 당시 당파싸움이 한창이던 때였는데, 숙종은 그 당파싸움을 이용하여 왕권을 강화했어. 서인과 손을 잡기도 하고 남인과 손을 잡기로 했지. 아무튼 그의 가장 큰 숙제는 왕권 강화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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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노대환) 숙종은 기본적으로 왕권을 강화한다는 것이 본인의 지상 과제입니다. 그래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남인과 손을 잡든 서인과 손을 잡든, 아니면 자신의 외척과 손을 잡든 문제가 아닙니다. 숙종은 상대방을 견제할 수 있다면 어느 세력과도 손을 잡을 수 있죠. 그런데 남인이 결정적으로 발목을 잡힌 이유는 우리 이제 북벌하자. 북벌하려면 새로운 군사 기구가 필요하지 않겠냐.”라며 도체찰사부라는 것을 만들자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이게 괘씸하게 보인 거죠. ‘이 녀석들이 병권까지 도전하는구나.’ 이건 숙종에게 못마땅한 것이니 어떻게 보면 남인 스스로 발목을 잡힌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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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백두산까지 국토를 확장하고, 조선의 땅이라고 못박은 백두산 정계비를 세운 것도 숙종이라고 하는구나. 숙종이 여인천하 속에서 작은 왕이 아니었던 야심 많은 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좋은 기회였단다.

그렇다고 숙종의 여인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빼먹고 갈 수 없었지. 인현왕후와 장희빈, 그리고 그 밖에 여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이야기는 아빠가 그 이전에도 여러 책 리뷰에서 이야기를 해주었기 때문에 오늘은 생략할게.

장희빈이 결국 사약을 먹었지만 그의 아들은 결국 왕위에 오르는데 바로 경종이었단다. 숙종이 왕위에 오랫동안 머무르다 보니 경종은 세자 시절이 조선의 왕 중에 가장 길었다고 하는구나. 무려 30. 왕 위에 오른 경종은 노론의 막강한 힘을 막아내야 했어. 노론은 후자가 없는 경종을 압박하며 동생을 세제로 삼으라고 했고, 그 세제에게 대리청정을 시키라고 했어. 젊은 왕이 버젓이 살아 있는데 겁도 없이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은 노론이 그만큼 막강하다는 거였지. 경종은 반란을 꾸몄다는 이유로 반대파를 죽이기도 했지만, 심성이 착한지라 세제를 죽이지는 못했어. 그러다가 젊은 나이에 그만 죽고 말았단다. 그 이후 왕위에 오른 이가 바로 경종의 동생으로 세제로 있던 영조였단다.

여기까지가 <역사저널 그날 6>의 이야기란다. 역사책을 읽을 때는 참 재미있게 읽는데, 그 기억이 오래 가지 않아서 너무 안타깝구나. 너희들에게 이야기해주려고 해도 기억이 뒤죽박죽슬프다. 나이를 먹으면 정말 기억능력이 점점 떨어지는 건가?


PS:

책의 첫 문장: 1637 1 30, 인조는 삼전도로 나아가 청 태종 앞에 무릎을 꿇었다.

책의 끝 문장: 이어달리기할 때 제일 많이 하는 실수가 배턴을 전달하다가 놓치는 건데, 배턴 터치를 정확하게 해 준 공로는 우리가 인정해줘야 할 것 같아요.


(계승범) 조선 측 전사자가 생기지 않습니까? 그래서 신유가 거의 분노하다시피 하면서 일기를 쓴 게 나오는데, 원래는 원거리에서 불화살을 쏴서 적의 함선을 일단 불태우고 그다음에 소통하러 가려 했습니다. 그런데 청나라 총사령관이 러시아 함선에 적재되어 있을 값나가는 물건들이 아깝다면서 불태우지 말고 배 위에 올라가서 러시아군을 직접 제압하라고 지시하죠. 그러니까 청나라 군대와 같이 움직이던 조선권도 선종에 있던 부대가 근접전을 벌이다가 전사자가 많이 생기고요. 신유가 그걸 보고 저 장수의 탐욕만 없었으면 죽지 않았을 우리 병사가 죽었다며 울분을 토합니다. - P112

(최태성) 조선이 건국되고 난 뒤인 15세기를 이끌었던 세력이 훈구파였죠. 이 훈구파가 16세기에 사람에 의해서 물러납니다. 그리고 사림은 인사권을 놓고 동인과 서인으로 분당되는데, 이후 정여립 모반 사건과 정철의 건저의 같은 사건이 일어나면서 동인이 정권을 잡습니다. 그런데 동인도 서인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를 놓고 강경파인 북인과 온건파인 남인으로 나뉩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북인이 광해군과 연결되었잖아요. 그래서 광해군이 인조반정으로 실각하면서 북인도 몰락합니다. 이제 남은 건 남인과 서인이죠. 현종 때의 예송 논쟁과 숙종 때의 환국 정치를 거치면서 이 두 세력이 충돌하는데, 최종적인 승자는 바로 서인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서인도 남인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에 따라서 강경파인 노론과 온건파인 소론으로 나뉘는데, 노론을 이끌던 대표적 인물이 바로 송시열이었고, 소론을 이끌던 인물이 윤증이었습니다. -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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