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MIDNIGHT 세트 - 전10권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프란츠 카프카 외 지음, 김예령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평점 :
품절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시리즈 MIDNIGHT 세트 다섯 번째는 똘스또이의 유명한 작품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란다. 유명한 작품이지만, 아빠는 읽지 않은 책이라서 이번에 처음 읽었는데, 짧지만 여운이 많이 남는 그런 소설이었단다. 러시아 작가의 이름은 출판사마다 다르게 쓰는데, ‘열린책들은 보통 된소리로 많이 이용을 한단다. 그래서 다른 출판사에서는 보통 톨스토이라고 많이 쓰는데, ‘열린책들은 똘스또이라고 적고 있구나. 러시아 사람들이 직접 발음하는 것을 들어보지 못해서 어떤 것이 원어 발음에 더 가까운지 모르겠구나. 갑자기 궁금해지는구나. 어떤 것이 더 원어 발음에 가까운지


1.

판사 이반 일리치는 비교적 젊은 나이인 마흔 다섯 살에 죽고 말았단다. 동료 판사들이 장례식에 참석을 했어. 그들은 그의 죽음을 추모하기도 했지만, 그의 죽음으로 인한 인사 이동에 더 관심을 두었단다. 참으로 냉정한 세상이구나. 똘스또이가 살았던 당시 러시아의 세계도 이미 이런 사회였구나. 이반 일리치는 유족으로 아내 쁘라스조비아 표도르브나, 딸 하나, 아들 하나가 있었단다. 그의 짧은 인생이 어땠는지 이야기해줄게.

이반 일리치는 삼형제 중에 둘째로 태어났어. 모범생으로 늘 예의 바르고 사교적이고 유머도 있었단다. 한 마디로 집안의 자랑이었지. 학교를 마치고는 법조계에서 5년 동안 일하고 예심판사로 일했는데 존경 받는 판사였단다. 그리고 사랑스러운 쁘라스조비아 표도르브나를 만나 결혼을 했어. 그야말로 순탄한 인생이구나. 그런데 결혼을 하고 첫 아이를 임신하기 전까지 행복했었지만 임신 이후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내와 사이가 멀어지기 시작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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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2)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 그리고 부부 간 애정이 넘쳐 나고 가구며 그릇이며 침구며 모두 새롭기만 했던 신혼 시절은 아내가 임신하기 전까지만 해도 매우 행복하게 흘러가서, 이반 일리치는 결혼이란 것이 자신이 전에 누리던 생활, 즉 편안하고 유쾌하며 즐거운 데다 사회의 인정을 받는 고상한 생황을 망치기는커녕 오히려 즐거움을 배가시켜 준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러나 아내가 임신한 지 몇 개월도 지나지 않아 무언가 전혀 생각지 못한, 새롭고, 불쾌하고, 힘들고, 고상하지 못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전혀 예기치 못한, 도저히 벗어날 길이 없는 그런 종류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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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싸움이 잦아지면서 집보다 일에 더 신경 쓰게 되었어. 아내와 사이가 멀어지면 그걸 해결할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것을 회피한 이반의 선택은 좀 잘못된 것 같구나. 일을 그리 열심히 하다 보니 인정을 받아 남들보다 빠르게 검사보에 승진을 하고 얼마 안 있어 검사로 승진했어. 하지만 그 이후 판사 승진은 좀 늦어졌단다. 17년 동안 검사를 하면서 자신이 노르던 판사 자리를 동료들에게 빼앗기는 아픔도 맛보게 되었단다.

당시 러시아 사회의 법조계에서 경쟁이 치열했던 것 같더구나. 결국 이반 일리치도 판사로 승진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아내와 사이도 좋아졌어. 집도 새로 구하게 되었어. 이반 일리치는 어렸을 때부터 그랬던 것처럼 사교적이고 공과 사를 잘 구분하는 그런 판사가 되었단다. 그런데 승진 때문에 좋아진 아내와 사이는 오래 가지 않았단다.

….


2.

어느날 집의 커튼을 달다가 의자에서 떨어져 옆구리를 부딪혔는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단다. 그런데 그 일 이후 옆구리 통증이 점점 심해졌어. 통증이 사라지지 않아서 그는 병원에 갔고, 의사는 그의 병에 대해 정확히 이야기하지 않고, 형식적으로 이야기를 했어. 그냥 전문가의 말만 믿으라고. 법원이나 병원이나 똑같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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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그는 의사를 찾아갔다. 모든 게 예상한 대로였다. 병원에서 으레 벌어지는 상투적인 일들이 여기서도 그대로 벌어졌다. 진료 순서를 기다리는 것도, 그리고 이반 일리치 자신이 법정에서 짓는 것과 똑같아서 전혀 낯설지 않은 저 근엄한 척 무게 잡는 의사의 표정도 예상과 똑같았다. 이곳저곳 두드려 보기, 청진기 대보기, 뻔한 답변을 요구하는 중요치 않은 질문 던지기도 마찬가지였다. <우리에게 맡기세요, 우리가 전부 다 알아서 합니다.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무엇이든 다 잘합니다. 누구든 다 똑같이 잘해 드립니다>라고 말하는 듯한 심각한 표정도 똑같았다. 모든 것이 법정에서 벌어지는 것과 똑같았다. 그가 법정에서 피고를 앞에 두고 짓는 표정을, 이 저명한 의사가 그의 앞에서 똑같이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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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옆구리 통증은 나아지지 않았어. 점점 심해지면서 입맛도 떨어졌어. 자신도 큰 병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일을 열중하다 보면 고통을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고통은 점점 심해졌단다. 이럴 때일수록 가족들이 그와 함께 있어주면 좋으련만 가족들은 그의 병을 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았어. 아내와 딸은 그만 빼고 놀러 다니고 그랬으니까 말이야. 이반 일리치는 여러 의사들을 만났지만 다들 비슷한 처방으로 주었고 제대로 고칠 수 있다는 의사는 만나지 못했어.

이반 일리치는 점점 자신의 죽음을 걱정하기 시작했단다. 그는 더 이상 일도 할 수 없었어. 침대에 누워 꼼짝할 수 없는 상황까지 되었지. 그가 이렇게 아프게 되자 사람들이 문병을 뫘단다. 그러나 그들의 문병은 그에게 위로가 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 하는 뻔한 거짓말에 고통을 받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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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85)

사람들의 거짓말은 그를 고문했다. 그들은 모두가 알고 있고 그도 알고 있는 사실을 인정해 주려 들지 않았다. 이반 일리치의 끔찍한 상태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이반 일리치 자신도 그 거짓말에 동참하게 만들려고 했다. 거짓, 거짓, 그의 죽음을 코앞에 두고도 행해지는 이 거짓, 무시무시하고 장엄한 죽음의 의식을 한낱 문병이니 커튼이니 식사에 나온 철갑상어니 하는 것들로 격하시키는 이런 거짓이 이반 일리치를 무섭도록 고통스럽게 했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 앞에서 우스꽝스러운 짓거리를 벌일 때면 <거짓말은 그만둬. 내가 곧 죽는다는 건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있잖아. 그러니 제발, 거짓말만은 좀 그만둬>라고 여러 번 소리를 지를 뻔했지만 이상하게도 단 한 번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그럴 기력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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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도 모두 그 앞에서 괜찮을 거라고 거짓말을 하고, 그를 보살펴주고 있는 젊은 하인 게라심만이 진심으로 그를 대했단다. 그도 이젠 알았어.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지난 생활을 생각했어. 후회만 가득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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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105)

결혼…… 뜻하지 않게 했던 것. 환멸, 아내의 입 냄새, 애욕, 위선! 이 생명력 없는 업무, 그리고 돈 걱정, 그렇게 보낸 1, 2, 그리고 10, 20. 언제나 똑 같은 삶. 살면 살수록 생명은 사라져 가는 삶. 그래, 나는 산에 올라가고 있다고 상상했지. 하지만 일정한 속도로 내려오고 있었던 거야. 그래, 그랬었던 거야. 분명 사람들 눈에 나는 올라가고 있었어. 하지만 정확하게 그만큼씩 삶은 내 발아래서 멀어져 가고 있었던 거야…… 그래, 다 끝났어. 죽는 것만 남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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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서야 자신은 인생을 잘못 살았다고 생각했어. 그는 죽음을 앞두고 너무 안 좋은 것만 생각하는 것 같구나. 그도 분명 삶의 좋았던 시절과 좋았던 기억들이 있을 텐데 말이야. 아무래도 마흔 다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죽을 병에 걸려서 원망하는 마음이 더 컸던 모양이구나. 이 책을 읽는 많은 사람들이 이반 일리치에 공감하지 않았을까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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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전에는 절대 그럴 리 없다고 여겼던 생각, 즉 자신이 인생을 잘못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것이 어쩌면 진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것이 어쩌면 진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높으신 분들이 옳다고 여기는 것에 저항하고 싶어 했던 한때의 희미한 충동, 그러나 머릿속에 떠오르자마자 곧바로 떨쳐내 버리곤 했던 그 충동만이 진짜이고, 그 나머지는 모두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의 업무, 그가 삶을 살아온 방식, 가족, 사회와 직장에서의 이해관계 같은 것들이 모두 잘못된 것일지도 몰랐다. 이반 일리치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이 모든 것들을 변호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돌연 자신이 변호하려고 하는 이 모든 것들이 모두 허접하기 그지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변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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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고 나서 먼 훗날 죽음 앞에서 어떤 생각들이 떠오를까 생각해 보았단다.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여전히 죽음은 두렵구나. 만약 죽을 줄만 알았던 이반 일리치가 기적적으로 회복해서 다시 삶을 이어갔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 전의 삶과는 다른 삶을 살아갔을 것 같구나. 우리는 이반 일리치의 경험을 교훈 삼아서 그가 다시 살아날 때 어떻게 살아갈지를 생각해 보고 그런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구나. 뒤늦게 후회하지 말고 말이야.


PS:

책의 첫 문장: 커다란 법원 건물에서 멜빈스끼 사건을 심리하던 판사들과 검사들은 휴정 시간이 되자 이반 예고로비치 셰베끄의 집무실에 모여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끄라소프 사건에 대해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책의 끝 문장: 그는 그렇게 죽었다.


그는 그 생각의 자리에서 새로운 생각들을 차례로 불러들였다. 그렇게 해서라도 의지할 데를 찾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죽음에 대해 잊어버릴 수 있도록 자신을 지켜 주던 지난날의 사고방식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때 죽음에 대한 생각으로부터 그를 보호해 주고 감싸 주고 지켜 주던 예전의 모든 생각들이 이제는 더 이상 효과가 없었다. 그래 들어 이반 일리치는 죽음에 대한 생각을 차단해 주던 이전의 감정 상태를 복구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일하자, 일을. 나는 일 덕분에 사는 사람 아닌가> 하고 중얼거리곤 했다. - P75

<너한테 필요한 게 무엇이냐?> 그가 맨 처음 들은 가장 확실하고 분명한 소리를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이랬다. <필요한 게 뭐냐고? 무엇이 필요하지?> 그는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무엇이냐고? 더 이상 고통받지 않는 것. 사는 것.>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리고 그는 통증조차 못 느낄 정도로 온 정신을 집중하여 귀를 기울였다.

<사는 것이라고? 어떻게 사는 걸 말하는 거지?> 영혼의 목소리가 물었다.

<그래, 사는 것. 예전처럼 편안하고 행복하게.>

<예전엔 그렇게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았어?> 목소리가 물었다. 그는 머릿속에서 자신의 즐거웠던 삶 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순간들을 하나씩 되새겨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즐거웠던 삶에서의 좋았던 순간들이 이제 완전히 다르게 느껴졌다.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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