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NOON 세트 여덟 번째 책은 바로 도스또예프스키의 <백야>라는 중편이란다. 출판사 열린책들은 도스또예프스키에 진심인 출판사란다. 도스또예프스키 전집 시리즈를 다양한 판본으로 여러 번 냈으며 작년에는 도스또예프스키 탄생 200주년 판본으로 무지막지한 양장본까지 출간했으니 말이다. 아빠도
이 기념판을 샀는데, 아직까지는 장식용으로 제 몫을 잘 하고 있단다.
그렇게 도스또예프스키에 진심인 열린책들에서 기념판에 도스또예프스키를 빼놓을 수 없지.
그의 수 많은 작품 중에 <백야>라는 중편 소설이 열린책들 35주년 기념을 함께 했단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도스또예프스키는 대표작 몇 편 읽은 것이 전부이지만, 호감이
가는 작가라서 언젠가는 그의 작품들을 하나씩 찾아 읽을 생각이란다. 이번에 읽은 <백야>는 중편의 사랑이야기로구나. 책의 속지에 제목이 적혀 있는 페이지에 제목 아래 “감상적 소설, 어느 몽상가의 회상 중에서…”라고 적혀 있었단다. 이 말이 소설의 성격을 한 마디로 설명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 자신을 몽상가라고 생각하는 ‘나’라는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전개되는 소설이란다.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하다
보니 주인공에 더 쉽게 감정 이입할 수 있었어. 아빠도 소설을 읽는 동안은 사랑에 빠진 몽상가가 되어
보았단다.
1.
주인공 ‘나’ 는 뻬제르부르크에
살고 있는 26살 남자란다. 소위 숙맥이었으며, 사랑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했고, 고백 조차 한번 해보지 못했단다. 스스로 자신이 몽상가라고 생각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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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이
모퉁이에는 이상한 사람들, 즉 몽상가들이 살고 있습니다. 몽상가, 좀 더 자세히 정의하자면 그는 인간이 아니라, 그러니까 이를 테면
무슨 중성적인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대체로 다른 사람이 근접할 수 없는 구석에 정착합니다. 마치 한낮의 햇빛까지도 피하려는 듯이 그 속으로 기어드는 거죠. 그리고
일단 자신의 안식처에 숨어들면 달팽이처럼 아예 자기 구멍에 찰싹 들러붙습니다. 적어도 이 점에서 그는
생물이자 동시에 집이기도 한 저 흥미로운 동물, 거북이라 불리는 것과 유사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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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길을 걷다가 울고 있는 한 여인 나쓰쩬까를 보게 된단다. 그런데
그 나쓰쩬까가 불한당에게 곤경에 처하게 되는데, ‘나’가
나쓰쩬까를 구해주게 되는 인연으로 말을 섞게 되었단다. 그리고 ‘나’는 나쓰쩬까를 첫눈에 반해서 고백까지 하였단다. 하지만, 나쓰쩬까는 사랑은 안 된다, 친구로서는 만나겠다 이렇게 선을 그었어.
사실 나쓰쩬까가 울고 있던 이유가 있었어. 1년 전 모스크바로 떠난
남자친구와 1년 뒤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했는데, 그 날이
바로 약속한 날이었고, 남자친구가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아서 울고 있었던 것이란다. 그런 상황에서 사랑고백을 받았으니 나쓰쩬까 입장에서도 ‘나’에 호감이 있더라도 ‘나’의
고백을 바로 받아줄 수는 없었지. 아무튼 그들은 그렇게 친구가 되었단다. 다음날도 만나기로 약속을 하는데, ‘나’는 들뜬 상태로 나쓰쩬까와 만날 것을 기다렸단다.
…
2.
다음날 다시 만나 그들은 많은 이야기를 나눈단다. ‘나’는 자신이 살아왔던 이야기를 하고 몽상가로 외로웠던 지난 날에 솔직히 이야기도 했어. 나쓰쩬까는 자신이 함께 해주겠다면서 위로해 주었단다. 그러면서 자신의
이야기도 꺼냈단다. 그러면서 ‘나’에게 ‘오빠’와 같은 입장에서
조언을 해달라고 했어. 나쓰쩬까는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었대. 2년 전에 새로운 하숙집 주인이 왔는데, 그 하숙집 주인은 무척
젊은 사람이었고, 나쓰쩬까는 그 하숙집 주인과 사랑에 빠지게 된 거야.
그랬다가 앞서 이야기했듯이 모스크바로 가게 된 것이고.. 이런 사연을 ‘나’에게 이야기를 해주었단다. 그러면서 1년이 지나고 약속한 날로부터 3일이 지났는데, 아직 연락이 없다면서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이야기를 했어.
‘나’는 그녀에게 편지를
써보라고 조언을 해주었단다. 속으로 계속 나쓰쩬까가 마음이 바뀌어 자신을 사랑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얼마나 조마조마 했을까. 나쓰쩬까는 ‘나’의 조언에
따라 편지를 썼지만 그 이후에도 연락이 없었어. ‘나’와
나쓰쩬까는 매일 밤 만났는데 네 번째 되는 날, ‘나’는
다시 고백을 했어. 친구가 아닌 연인이 되고 싶다고 말이야. 나쓰쩬까는
더 이상 남자친구를 기다릴 수 없다면서, ‘나’의 사랑 고백을
받아주었어. 그러면서 둘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까지 이야기를 했단다. 하지만, 그때 놀랍게도 모자이크에 갔다고 한 나쓰쩬까의 남자친구가
나타났어. 나쓰쩬까는 ‘나’를
외면하고 그 남자친구에게 가버렸단다. 그래, 그 남자친구가
빨리 나타나서 다행일 수도 있겠구나. 더 늦게 나타났더라도 나쓰쩬까의 선택은 같았을 것 같구나. 그나마 아픔이 적은 게 ‘나’에게
낫지…
그렇게 헤어지고 며칠 뒤, 나쓰쩬까로부터 편지가 왔어. 결혼한다고. 용서해달라고. 고맙다고. 앞으로 친 오빠처럼 사랑해 달라고. ‘나’는 나쓰쩬까를 원망하지 않았단다. 그리고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스쩨까 덕분에 지극한 행복을 느낀 것으로 만족했단다. 진정 몽상가라면
그 순간의 행복으로 오랫동안 버틸 힘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어. 주인공 ‘나’에게 다시 사랑이 찾아올까 궁금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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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그러니까
나쓰쩬까, 너는 내가 모욕의 응어리를 쌓아 두리라 생각하는가! 내가
너의 화사하고 평화스러운 행복에 어두운 구름을 드리우게 할 것 같은가, 너를 신랄하게 비난하여 너의
심장에 우수의 칼을 꽂을 것 같은가, 너의 가슴이 비밀스러운 가책으로 고통받고 행복의 순간에도 우울하게
고동치도록 만들 것 같은가, 네가 사랑하는 이와 함께 제대(祭臺)를 향해 걸어갈 때 너의 검은 고수머리에 꽂힌 저 부드러운 꽃 중에 단 한 송이라도 나로 인해 구겨져 버리게
할 것 같은가…… 아, 천만에, 천만에! 너의 하늘이 청명하기를,
너의 사랑스러운 미소가 밝고 평화롭기를, 행복과 기쁨과 순간에 축복이 너와 함께하기를! 너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득 찬 어느 외로운 가슴에 행복과 기쁨을 주었으니까!
오, 하느님! 한순간 동안이나마 지속되었던 지극한 행복이여! 인간의 일생이 그것이면 족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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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의 소설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이 어느 정도 다 들어간다고 하는데, 지은이
도스또예프스키 자신의 젊은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것인지 궁금하더구나. 그래서 주인공 이름도 밝히지
않고 ‘나’라고 했던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고 말이야. 거장 도스또예프스키의 사랑 이야기, 재미있었단다. 오늘은 이상.
PS:
책의 첫 문장: 아름다운 밤이었다.
책의 끝 문장: 인간의 일생이 그것이면 족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