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주는 괴물들 - 드라큘라, 앨리스, 슈퍼맨과 그 밖의 문학 친구들
알베르토 망겔 지음, 김지현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알라딘 인터넷 서점의 공식 블로그 알라딘 서재에서 한 때 알베르토 망겔이라는 분이 쓴 책들에 대한 포스팅이 한창 올라온 때가 있었단다. 아빠는 처음 보는 사람인데, 포스팅되는 글들을 보면 이 사람이 무척 유명한 사람이고, 책도 재미있게 잘 쓰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나중에 지은이 소개를 보니, 작가이자 번역가이자 편집자이자 비평가로 일하면서, 스스로 자신을 독서가로 소개한다고 하는구나. 그만큼 많은 책을 읽는 사람인가 보구나. 그래서인지 알베르토 망겔이 쓴 책들도 보면 책에 관한 책들도 많았어. 그래서 더욱 아빠의 구미를 당겼단다.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그의 책 두 권을 샀단다. 그 중에 한 권을 이번에 읽었단다. 끝내주는 괴물들. 제목부터 찬란하구나.


1.

그가 쓴 책들은 책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아서, 이번 책도 그런 종류의 책이라고 생각했고, 제목을 보고 추측하기로는 책 속에 나오는 괴물들만 따로 추려서 이야기를 해주는가 싶었단다. 그런데 괴물들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고, 지은이 알베르토 망겔이 뽑은(기준은 잘 모르겠지만) 문학 작품 속 37명의 캐릭터를 이야기하는 그런 책이란다. 그렇다고 주인공들만 추려서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야. 문학 작품 속에 조연이나 까메오로 등장하는 그런 캐릭터들도 소개를 해주고 있단다. 아빠도 분명 읽은 책인데 그런 등장인물들은 잘 생각이 나질 않는 인물들도 소개를 주고 있단다.

첫 번째로 소개한 보바리 씨도 그런 사람 중에 한 명이었지. 보바리 씨는 아빠도 읽은 <보바리 부인>이라는 소설의 주인공 보바리 부인의 남편이란다. 그렇듯 익숙한 소설인데, 잘 기억나지 않는 등장인물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어 흥미로웠단다. 이 책이 아니라면 그 소설을 다시 읽더라도 관심을 두지 않을 사람들인데 말이야. 그렇다고 조연급들만 소개하는 것은 것은 아니고, 빨간 모자, 드라큘라, 로빈슨 크루소 등 주연급 캐릭터도 많이 이야기하였단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이야기할 때는 그 캐릭터들의 일반화 객관화되어 있는 의견들 말고, 자신만의 시각으로 그 캐릭터들을 설명하고 있었단다. 아빠가 그 캐릭터들의 일반화되고 객관화된 지식이라도 잘 알고 있어야. 알베르토 망겔가 바라보는 캐릭터의 주관적 설명과 어떻게 다른지 깨닫고 그의 생각에도 일리가 있어, 그렇게 생각할 텐데, 아빠가 알베르토 망겔이 소개하는 캐릭터들에 대해서 잘 몰라서 책을 읽는 재미가 반감된 것 같더구나. 아빠도 나름 책을 즐겨 읽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독서량은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2.

책을 읽다가 중반쯤 가다 보면 이 책에 소개된 37명의 캐릭터 중에 반가운 캐릭터가 한 명 나온단다. 아빠가 책 차례를 제대로 안보고 읽기 시작해서, 그 캐릭터가 나왔을 때 약간 놀라기도 했단다. 왜냐하면 그 등장인물은 우리나라 고전 소설 김만중의 <구운몽>의 주인공 성진이었거든. 아빠는 고등학교 때인가 교과서에서 일부 발췌된 것을 보고,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완독을 했었는데, 그 구운몽 속 주인공이 등장해서 반가웠단다. 알베르토 망겔은 어떻게 <구운몽>을 읽게 되었을까도 궁금하고, 그가 정말 많은 책을 읽는가 보다 하는 생각도 들었단다.

==========================

(123)

이 치정 모험극을 읽다 보면 우리가 현실 세계라고 생각했던 곳이 도리어 꿈같음을 암시하는 단어들이 많이 나온다. “눈은 두 귀보다 더 많은 진실을 봅니다.” 양소유는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들은 직후 귀신 행세를 하는 어느 미녀에게 속아 넘어간다. 그 미녀는 나중에 진짜 사람이었음이 밝혀지지만, 무엇을 무엇으로 속인 것인지는 여기서 중요하지 않다. 아가씨가 귀신인지, 귀신이 아가씨인지 말이다. 이후 그녀가 양소유에게 설명하기를, “사람과 귀신의 길은 각각 다르지만 사랑은 그 둘을 합칠 수 있지요.”라고 한다. 궁극적으로 중요한 진실은, 감각적 세계는 비실재적이고 영혼의 세계야말로 실재적이라는 것, 전자는 환상에 지나지 않으며 오로지 후자야말로 의미 있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

그리고 더 읽다 보니 <서유기>에 나오는 사오정도 이야기를 해주고 있단다. <서유기>에서 엉뚱함을 담당하는 사오정. 알베르토 망겔의 눈에는 사오정이 돈키호테와 비슷한 관점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고개를 마구 끄덕이게 하였단다.

==========================

(253)

그러나 오늘날 독자들 중에는 모험으로 가득한 <서유기>의 세계에서 카프카의 악몽 같은 음울한 부조리성을 연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설령 관료제에 대한 풍자라고 해도 그것은 실존주의적인 의미에서 이해된다. 즉 위에서부터 내려온 규칙과 규정, 우리가 이해할 수 없음에도 따라야 하는 법에 우리 존재가 얽매여 있다는 문제의식 말이다. 사오정의 동료들은 요괴와 신과 왕자들을 물리치기 위해 사이비 군사 전략을 동원하지만, 사오정이 제시하는 해결책들은 이성적이고 윤리적으로 반응하는 것만이 최선의 생존 전략임을 알려준다. 그는 도덕군자연하는 이들의 비위를 맞춰주는 위로가 아니라 올바른 것을 정직하고 강직하게 추구하는 기개를 전해준다. 사오정의 세계관에 입각해서 보면, 겉보기에 올바른 것이 실은 악으로 가는 길일 수 있고, 약하게만 보이는 것이 알고 보면 올바르고 참된 길일 수도 있다(돈키호테도 이와 같은 관점을 갖고 있다).

==========================


3.

이 책에 소개된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작품들 중에는 아빠가 읽지 않은 작품들이 읽은 작품들보다 물론 더 많았단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몇몇은 꼭 읽어봐야겠다는 소설들도 있었단다. 책을 덮고 나서 그런 생각을 해봤어. 아빠도 소설을 즐겨 읽는 편인데, 지금껏 읽은 소설 중에서 마음에 드는 등장인물들을 소개하라고 하면 누굴 뽑아야 하나지금껏 소설을 읽을 때 줄거리가 재미있네, 재미없네이러면서 책을 읽었지, 등장인물에 대해 크게 관심을 가져보지 않았던 것 같구나. 심지어 무척 재미있게 읽은 소설들의 주인공 이름조차 생각나질 않는구나. 마음에 드는 캐릭터 10명만 뽑아봐라 해도 뽑지 못할 것 같구나. 한번 시간 내서 지금까지 읽은 소설 속 등장인물 중에 맘에 드는 인물 열 명을 한번 뽑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그리고 앞으로 소설을 읽을 때, 등장인물들의 이름에 좀더 관심을 가지고 마음에 드는 등장인물이 나오면 그 이름을 따로 적어두면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단다. 그래서 나중에 어떤 소설에 나오는 아무개가 정말 멋지더라이렇게 너희들에게 이야기해줄 수도 있고 말이야.

오늘은 이만 마칠게. 안녕.


PS:

책의 첫 문장: 이건 어린이야!

책의 끝 문장: 어쩌면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피의 사도이자, 밤의 군주이며, 내밀한 침실에서 쉬는 이들의 잠 속에 침입하는 드라큘라 백작은 무덤으로 돌아갈 숙명을 지고 있음에도 죽을 수가 없다. 이 금제 앞에서는 반 헬싱 박사의 작전들도 힘을 잃는다. 작가가 직접 쓴 소설의 결말도 아무 소용이 없다. 십자가와 마늘도, 드라큘라를 두려워하지 않는 척하는 각종 패러디와 우화들도, 그의 존재를 부정하는 과학 법칙들의 엄정함도 마찬가지다. 드라큘라 백작은 이 모든 수법을 물리치고 반드시 돌아온다. 소설가와 영화 제작자들이 아무리 드라큘라라는 이름 대신 온갖 가명을 지어내도, 앤 라이스와 스테프니 메이어가 아무리 새로운 모험을 상상해내도, 막스 슈레크, 벨라 루고시, 톰 크루즈가 그의 외모를 아무리 다양하게 재구성해도 그의 존재는 그대로다. 우리는 드라큘라 백작이 이 암울한 시대에 필수 불가결한 괴물이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 P49

20세기 초에 조지 버나드 쇼는 돈 후안에 대한 희곡에서 자신만의 슈퍼맨을 창조했다. 쇼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정치적 역량을 키우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로 망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더 오래된 대안들이 실패하는 바람에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채택하게 된 제도다. 독재주의는 유능하고 자비로운 전제군주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실패했다지만, 인구 전체가 유능한 투표자여야 하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돌아갈 가능성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쇼의 친구이자 적수였던 G.K. 체스터턴은 슈퍼맨에서 더 깊은 진실을 알아차렸다. 비인간적이고 초자연적인 연약함이 그것이다. - P78

돈 후안은 연인이라기보다는 유혹자이고, 유혹자라기보다는 수집가이며, 수집가라기보다는 저격수에 가깝다. 돈 후안과 일견 유사해 보이는 다른 바람둥이 인물들은 명확한 목적에 따라 애정 행각을 벌인다. 대개는 <위험한 관계>의 혐오스러운 발몽이라든지 사드의 우화에 나오는 음흉한 주인공들처럼 사악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돈 후안은 다르다. 그의 행각에는 동기가 완벽하게 결여되어 있다. 이 유명한 바람둥이가 육체적 쾌락을 누리기는 했는지조차 확실하지 않다. - P86

고대인들은 괴물들과 교제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존재에 책임감을 느꼈다. 미노타우로스는 파시파에의 욕정 때문에 태어났고, 인어들은 뱃사람들이 금단의 영역을 넘어가지 못하게 막으려고 생겨났다. 역사학자 폴 벤느는 "당연히 고대인들은 신화를 믿었다!"고 말하면서도, 그렇다고 그들이 신화를 진실이라고 생각했느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한다. "진실이란 권력을 향한 의지로부터 우리를 갈라놓은 얇은 막 같은 집단적 자기만족이다." - P145

책은 네모를 지식으로 안내하고 인류 공통 경험의 견본들을 보여주었지만, (독서가들이라면 알다시피) 책이란 한 권이든 1만 2천 권이든 간에 읽는 사람이 선택한 길만을 비춰줄 수 있다. 책은 독서가에게 어떤 의무적인 목표를 정해줄 수도, 심지어 특정한 방향을 강요할 수도 없다. 훗날 베른은 <신비의 섬>에서 자신의 아나키스트 주인공이 환멸 속에서 패배를 인정하는 이야기를 썼다. "고독, 고립…… 이런 것들은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슬픈 일이로구나. 나는 혼자만의 삶이 가능하리라 생각했던 탓에 죽는구나!" 네모는 고통스러워하며 토로한다. - P23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