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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밝은 밤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평점 :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우리나라에 많은 재능 있는 젊은 작가들이 있단다. 특히 여성 작가들이 많은 것 같아. (젊은 남성 작가들 분발 좀
하길…) 아빠가 오래 전에는 한국 여성 작가의 책을 많이 읽지 않았어.
묘사가 좀 지나치고 전개도 느린 것 같아서 아빠와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최근의 한국 여성 작가들은 소재도 다양하고 전개도 빠르고 아빠의 취향에 맞는 소설을 쓰시는 작가들이 많아졌더구나.
이번에 읽은 <밝은 밤>의 지은이
최은영 님의 소설들도 그랬어. 아빠가 읽은 것은 <쇼코의
미소>라는 단편집이랑 젊은 작가상 수상집에 실린 작품들이 전부였지만, 이름을 기억하게 하는 작품들이었단다.
<밝은 밤>은
최은영 님의 첫 번째 장편 소설인데 읽은 이로 하여금 긴장감 늦추지 않게 이야기를 잘 풀어 나가셨단다. 단편에서
보여준 저력을 장편에서도 보여주지 못하는 분들도 간혹 계신데, 최은영 님의 이번 장편은 아주 좋았단다. 그리고 소재도 굴곡진 우리나라 현대사를 온 몸으로 겪은 어떤 여인들의 이야기를 해주었단다. 우리 어머니, 할머니의 모습이 이러지 않았을까 하면서 읽게 되더구나. 그리고 이 책을 쓰면서, 최은영 님은 개인적으로 무척 힘든 시기를
겼었다고 하던데, 앞으로는 좋은 시기만 쭉 이어져 쭉 좋은 작품을 쓰셨으면 좋겠구나.
1.
이 소설에는 4대에 걸친 여인들이 등장한단다. 외증조할머니인 정선, 외할머니인 영옥, 엄마 미선, 그리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지연..
지연은 서른두 살로 얼마 전 남편과 이혼한 뒤, 때마침 희령의 천문대에
취업을 하게 되어 희령에 내려가서 살게 되었단다. 희령은 가상의 도시인데 강원도 속초 근처를 배경으로
했단다. 희령은 지연의 외할머니 영옥이 살고 있는 곳인데, 어렸을
때는 몇 번 놀러 왔었지만, 그 이후에는 온 적이 없고 할머니와도 연을 끊고 살았단다. 할머니와 연을 끊은 이유는 엄마 미선이 할머니와 무슨 이유인지 연을 끊고 살았기 때문에 지연도 덩달아 할머니와
연을 끊고 산 것이야.
…
희령이 조그마한 도시이다 보니 지연은 우연히 할머니를 만나게 되었어. 그
이후 집을 오가면서 자주 만났고, 할머니로부터 할머니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게 되었단다. 증조모는 일제 시대에 일본군인에게 잡혀 위안부로 끌려갈 뻔했는데, 증조부께서
증조모가 살고 있던 시골에서 증조모를 데리고 개성으로 도망을 갔고 그곳에서 결혼까지 하게 되었단다. 이런
걸 보면 증조부가 증조모에게 무척 잘 해줄 거하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결혼하고 나서 증조부는 증조모에게
그리 잘 해주지는 않았어.
증조모는 또 하나 콤플렉스가 있었어. 아버지가 백정이어서 늘 백정의
딸이라고 모욕을 많이 당했단다. 시댁 식구들도 백정의 딸이라서 증조모를 탐탁지 않게 보았단다. 다행히 새비 아주머니라고 불렀던 분와 무척 친했다고 하더구나. 새비
아주머니는 새비라는 마을에 살고 있어서 그렇게 불렀어. 지연의 할머니가 이야기해주는 것이다 보니 새비
아주머니라고 이야기하셨는데. 새비 아주머니와 증조모는 같은 세대이셨어.
친구라고 생각해도 돼. 새비 아주버니의 남편은 새비 삼촌이라고 불렀는데, 일제 시대 일본에 돈 벌러 갔다가 해방 후에 돌아오시긴 했는데, 그가
있었던 것이 히로시마였어. 몇 년 후 원폭 피해 후유증으로 그만 돌아가시고 말았단다.
새비 삼촌이 돌아가신 다음에 새비 아주머니는 시대에서 핍박을 받다가 쫓겨나게 되었어. 그래서 새비 아주머니는 딸 희자와 함께 증조모 집에 들렀단다. 외할머니
영옥과 희자는 세 살 차이로 어렸을 때부터 친하게 지냈단다. 새비 아주머니와 딸 희자를 증조모 님에
받아주었으면 좋았겠지만, 증조모 집도 그리 넉넉하지 못했어. 대구에
있는 고모댁에 간다는 새비 아주머니를 빈 말이라도 여기 있으라고 말하지 못한
것이 가슴에 계속 걸렸다고 했단다. 그렇게 증보모와 새비 아주머니는 멀리 떨어지게 되었단다.
2.
그런데 한국전쟁이 일어났단다. 증조모님 가족도 남쪽으로 피난을 가게
되었어. 서울 친척집이 종착지였지만, 그 친척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그곳도 안전하지 못했단다. 결국 갈 곳이 없는 증조모네는
대구로 가서 새비 아주머니가 머무르고 있는 새비 아주머니의 고모댁의 문을 두들겼어. 고모는 수녀여서
가족들은 없었고 새비 아주머니 모녀와 함께 생활하고 있었어. 넉넉하지 못했지만, 증조모 가족들을 떨칠 수는 없었단다. 새비 아주머니의 고모님 성함이
명숙이라서 할머니 영옥은 명숙 할머니라고 불렀어. 할머니는 명숙 할머니로부터 재봉틀을 배웠고, 재봉틀에 재능이 있어 보이는 할머니에서 명숙 할머니는 친절하게 가르쳐 주셨단다. 전쟁통이긴 하지만 이곳에서 할머니는 희자와도 친하게 지내며 가난하지만 행복한 생활을 했단다.
전쟁이 끝나고 강원도 희령에 증조부의 식구들이 내려와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증조모 식구들은 대구를 떠나 희령을
갔단다. 대구를 떠날 때 정든 새비 아주머니, 희자, 그리고 명숙 할머니와 헤어지는 것이 무척 슬펐어. 특히 할머니 영옥은
명숙 할머니와 이별을 무척 힘들어했어. 겉으로는 의연한 척 했지만 말이야. 희령에 도착한 증조모 식구들… 그곳에는 소식과 달리 증조부 식구들은
없었어. 다시 대구로 내려갈 수도 있었지만, 증조부와 증조모는
희령에 정착하기로 했단다.
그곳에서 자란 할머니는 길남선이라는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딸 미선을 낳았어.
그 미선이 바로 지연의 어머니시고 말이야. 그런데 길남선이라는 이 사람이 사실은 유부남이었던
거야. 북에서 이미 결혼을 했는데, 본처가 북한에 남을 줄
알고 총각 행세를 하고 결혼까지 하고 아이까지 낳은 거지. 뒤늦게 길남선의 어머니와 아내가 찾아오게
되고 할아버지 길남선은 할머니를 떠나 본처의 집으로 가 버렸단다. 대구를 떠나온 뒤 희자와는 가끔 편지를
주고 받았는데, 희자는 공부를 잘해서 이화여대에 수학과에 수석 입학을 했다는 소식도 들었어.
새비 아주머니도 오랫동안 만나 뵙지 못했는데 어느 날 희령에 찾아왔단다. 종조모, 새비 아주머니, 할머니는 셋이 아주 즐거운 시간을 갖고 잊지 못할
추억거리도 하나 만들었단다. 그런데 그 추억이 새비 아주머니와 함께 했던 마지막이었단다. 대구로 돌아가신 다음 얼마 후에 돌아가셨지… 그 이후로 희자와 연락이
더 뜸해지게 되었어.
3.
지연이 어느 날 교통사고를 당해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어. 할머니가
와서 보살펴 주곤 하셨지. 그런데 엄마도 지연의 병문안을 왔다가 할머니와 만나게 된단다. 오랜 세월 무엇 때문에 연을 끊고 살았는지 모르겠지만, 할머니와
엄마는 잠시 마주하고 짧은 대화를 나주고 헤어졌는데, 그 분위기가 나쁘지는 않았단다. 나중에 할머니와 엄마도 다시 화해를 하게 되었어.
사실 엄마와 지연도 사이가 좋지 않아서 늘 티격태격했어. 그리고 지연에게는
언니가 한 명 있었는데, 그 언니가 어렸을 때 죽어서 그 이후 가족 분위기는 늘 엉망이었지. 최근에는 지연이 이혼을 해서 엄마는 더욱 지연을 멀리하려고 했어. 그래도
식구인데… 어려움이 있을 때면 늘 엄마를 먼저 찾고, 딸을
먼저는 찾는 법이지.
….
할머니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지연은 희자 할머니를 찾기로 했어. 그래서
할머니와 다시 만나게 해드리려고 했단다. 수소문 끝에 희자 할머니께서 계신 곳을 알게 되었단다. 대학을 졸업하고 독일로 유학간 희자 할머니는 그곳에서 정착을 하셨고, 유명한
암호학자가 되셨어. 그래서 오래 전에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에도 나오셨다고 하는구나. 지연은 희자 할머니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답장이 왔단다. 희자 할머니도 한국에 왔을 때 할머니를 찾으려고 했지만 연락처도 없고 해서 찾지 못했다는 답 메일이 왔어. 다시 연락이 닿았으니 한국에 오신다고 했어. 그리고 지연과 할머니가
희자 할머니를 마중 나가는 장면으로 소설은 끝이 났단다.
한 권이기 하지만 몇 권짜리 대하 소설을 본 기분도 들었단다. 4대에
걸친 여인들의 굴곡진 삶에서 따뜻한 사람 향기도 느꼈고, 가족의 사랑도 볼 수 있었고, 아픔을 치유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단다. 최은영 작가님의 다음 작품도
기대가 되는구나.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나는 희령을 여름 냄새로 기억한다.
책의 끝 문장: 할머니는 내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잘 안다는 듯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 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 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놓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마음이 햇볕에 잘 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지.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하곤 했다. - P14
열일곱은 그런 나이가 아니다. 군인들에게 잡혀갈까봐 두려워하며 잠들지 못하는 나이, 아침마다 옥수수를 삶아 한 광주리를 이고 팔러 다녀야 하는 나이, 죽음을 목전에 둔 엄마의 공포와 노여움과 외로움을 지켜봐야 하는 나이, 영영 자기 혼자 남겨질 것이라는 예감을 하는 나이, 백정이라는 표지 때문에 길을 지나갈 때면 언제나, 어김없이 조롱당하고 위협당하는 나이, 엄마를 버려야 하는 나이, 엄마의 임종조차 지키지 못하고 멀리서 소식을 들어야 하는 나이. 그렇지만 증조모의 열일곱은 그런 나이였다. 할머니는 증조모가 그 나이의 자신을 버리지 못한 채 계속 붙들고 살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 P47
우리는 둥글고 푸른 배를 타고 컴컴한 바다를 떠돌다 대부분 백 년도 되지 않아 떠나야 한다. 그래서 어디로 가나. 나는 종종 그런 생각을 했다. 우주의 나이에 비한다면, 아니 그보다 훨씬 짧은 지구의 나이에 비한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삶은 너무도 찰나가 아닐까. 찰나에 불과한 삶이 왜 때로는 이렇게 길고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참나무로, 기러기로 태어날 수도 있었을 텐데, 어째서 인간이었던 걸까. - P130
그때의 내 마음은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었다. 인간이 측량할 수 없는 무한한 세계가 지구 밖에 있다는 사실은 나의 유한함을 위로했다. 우주에 비하자면 나는 풀잎에 맺히는 물방울이나 입도 없이 살다 죽는 작은 벌레와 같았다. 언제나 무겁게만 느껴지던 내 존재가 그런 생각 안에서 가벼워지던 느낌을 나는 기억했다. 무리를 이루는 듯 보이는 밤하늘의 별들도 철저히 혼자이며, 하나의 점으로 응축되어 있던 물질들이 팽창하는 우주 속에서 빠른 속도로 서로에게서 멀어져 가고 있다는 사실은 내가 어린 시절부터 줄곧 느껴왔던 슬픔을 설명해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의 그 순진무구한 사랑은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차츰 빛을 잃어갔고, 그 자리는 현실적인 크기의 희망으로 대체됐다. 나의 숨쉴 구멍이었던 존재가 일이 되고, 나의 가능성이 한계가 되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P158
하지만 할머니는 그날 그 자리에서 불안을 느꼈다. 경계하지 않을 때, 긴장하지 않을 때, 아무 일도 없으리라고 생각할 때, 비관적인 생각에서 자유로울 때, 어떤 순간을 즐길 때 다시 어려운 일이 닥치리라는 불안이었다.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터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전전긍긍할 때는 별다른 일이 없다가도 조금이라도 안심하면 뒤통수를 치는 것이 삶이라고 할머니 생각했다. 불행은 그런 환경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겨우 한숨 돌렸을 때, 이제는 좀 살아볼 만한가보다 생각할 때.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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