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리커버)
심채경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평점 :
품절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가끔 과학 교양 서적을 읽곤 하잖아. 이번에도 그런 책 중에 괜찮다고 소문난 책 한 권을 읽었단다. 이번에는 과학 중에서도 천문학에 관련된 책이란다. 그런데 읽고 나서 느낀 점은, 과학 책이긴 한데 감성적이고 따뜻한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글들로 가득 차 있더구나. 따뜻한 과학 에세이. 지은이는 심채경이라는 분인데, 책은 처음 출간하신 것 같은데, 글을 참 따뜻하고 재미있게 잘 쓰시더구나. 천문학을 전공하셨다면 이과 출신일 텐데 말이야 ㅎ. 아빠가 이과 출신을 비하하는 것은 아니고, 아빠를 비롯하여 아빠가 알고 지내는 이과 출신들 친구들과 비교해서 그렇다는 거지~ 이 책을 읽다 보면 지은이가 왜 글솜씨가 좋은 줄 알겠더구나. 그 이유는 어렸을 때부터 오랫동안 일기를 꾸준히 써왔다고 하는구나. 책도 많이 읽고 말이야.

그리고 심채경 님의 글쓰기의 특징 중 하나는 디테일에 강한 것 같더구나. 사소하게 지나칠 수 있는 일상에 의미를 부여해서 이야기해주는 것도 좋았어. 지은이 심채경님은 천문학자이고 행성과학자인데, 지은이 소개를 하는 부분에 유명한 과학학술지 <네이처>가 달 착륙 50주년을 맞아 달 과학을 이끌어갈 차세대 과학자로 지목했다는 내용이 있어. 지은이는 이것을 두고 추천을 받은 것이라며 겸손하게 말씀하셨지만, 천문학을 사랑하고 연구하시는 멋진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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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144)

촌극은 그렇게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몇 주 뒤 인터뷰가 실린 호가 출판되자 국내 여러 언론과 매체에서 연락을 해왔다. 내가 <네이처>가 선정한 젊은 달 과학자 다섯 명에 들었다나. 그렇게 해석할 수 있다니 흥미로웠다. <네이처>에서 무슨 엄청난 심사나 평가를 거친 것도 아니고 그저 기자가 여기저기 묻고 물어 몇몇 나라의 연구자들과 인터뷰를 했을 뿐인데, 그리고 기사를 읽어보았다면 엄청난 실력자를 골라내려는 목적의 인터뷰가 아니라는 것을 알 텐데, 대단한 침소봉대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하필이면 당시 나는 대학에서 학술연구교수로 일하고 있었다. 이 직급의 이름 풀이를 해보자면 호봉이 높은 박사후연구원이요, 연차나 경험은 조금 더 많지만 비정규 계약직 연구전담 인력이기는 매한가지라는 뜻인데 그걸 언론에서 약칭해 교수로 부르자 갑자기 설국열차의 꼬리 칸에서 앞칸으로 옮겨 탄 효과가 났다. 어이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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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에는 지은이가 학창 시절 천문학을 전공하게 되고, 박사까지 되는 과정도 이야기해주고 있어. 학부생때부터 행성실이라고 하는 대학원 연구실에 들락거리면서 대학원 선배님들과 같이 공부했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은 토성의 위성 중에 하나인 타이탄에 대한 연구를 했대. 그런데 본인 스스로도 타이탄 전문가라고 하더구나. 하지만 천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대부분 그런 전문 분야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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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상당한 시간을 컴퓨터 앞에서 보낸 후, 국내에서 유일무이한 타이탄 전공자가 되어 대학원을 졸업했다. 물론 모든 박사는 유일무이한 존재다. 남의 연구를 그대로 따라 하는 사람에게 주는 학위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유일무이하다고 감시 말할 수 있는 이유는 한국에서는 타이탄에 관심을, 학위논문 주제로 삼을 만큼의 관심을 갖는 자가 나 이후로는 아직까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내 연구가 그렇게 지루해 보였나. 하하, 난 괜찮으니 혹시 지금 안쓰럽다는 표정을 하고 있다면 거두길 바란다. 국내 천문학계는 대단히 좁은데, 천문학의 범위는 천문학적으로 넓어서 관심을 줄 대상이 너무 많다. 그리고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는 것은 외롭지만 아주 흥미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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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엄마의 역할, 아내의 역할도 함께 해야 하는 여성 과학자로 겪는 여러 어려움도 이야기도 해주셨고, 최근 대학 사회의 문제점에 대한 자신의 생각도 이야기했단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가는 곳, 스펙 쌓기 바쁜 곳아빠 때도 대학이 당시 문제점을 안고 있었지만 그때와는 다른 문제점이 있는 것 같구나. 아빠 주변에 대학을 다니고 있는 이들이 없어서, 아빠는 잘 모르겠지만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지은이가 잘 알 수 있지 않을까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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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학생들은 대학에 학문을 배우러 오지 않는다. 초등학교 다음 중학교 다음 고등학교에 간 것과 같이 고등학교를 마쳤으니 대학에 진학할 뿐이다. 차이가 있다면 과거의 학비보다 열 배는 비싼 등록금이요, 모두가 입어야 하는 교복 대신 모두가 가져야 하는 스펙을 등에 업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의 젊음은 싸구려 술과 술값보다 비싼 커피와 크고 작은 성추행과 미필자조차 향유하는 선배들의 군대식 갑질, 전공과목 들을 시간을 뺏는 교양 강의와 대학생다운 교양을 쌓을 틈을 주지 않는 전공 강의, 토익 시험과 한국사 시험과 각종 컴퓨터 자격증과 크고 작은 기업의 공모전과 인턴 경력에 소모된다. 과제로 수많은 보고서를 작성하지만 제대로 된 글쓰기를 연습할 기회는 별로 없다. 대신 비문으로 A4 용지 다섯 장을 채워내는 끈기, 남의 것을 베끼되 표절 여부를 자동으로 검사하는 프로그램에 걸리지 않게 몇몇 표현을 바꿔치기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그 비용과 시간과 어처구니없는 문화와 그 젊음은 대체 무엇을 위한 제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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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을 전공하신 분답게 천문학에 관련된 이야기, 천문학자들이 어떤 생활을 하는지에 관한 이야기 등도 해주었어. 요즘에는 직접 망원경으로 직접 밤하늘을 관측하는 것보다 장비가 좋은 외국에 있는 망원경으로 촬영한 것을 받아서 본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책 제목을 그렇게 정하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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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요즘은 우주탐사선 자료를 쓰고, 직접 관측하더라도 CCTV를 보며 원격으로 망원경에 명령을 보내기 때문에 그렇게 온몸으로 관측하는 일이 드물다. 심지어 망원경을 미국에 설치해놓았더니 시차 덕을 본다. 대낮에 내 연구실에 앉아 미국의 밤에 뜬 달을 관측하니까 밤을 지새울 필요도 없다. 그래도 하늘이 유난히 맑은 날이면, 노을도 차분히 지고 공기가 신선한 날이면 나는 관측하기 딱 좋은 날이네하고 중얼거린다. 그러고는 관측자의 일과를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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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명왕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마칠게.. 아빠가 학교 다닐 때 태양 주변을 돌고 있는 행성을 수금지화목토천해명으로 외웠어. 너희들은 어떻게 배울지 궁금하구나. 여전히 행성의 앞자리 말을 떼어내어 외우려나. 그런데 명왕성이 이제는 행성 지위를 잃어버렸으니, “수금지화목토천해이렇게 여운을 남긴 채 끝내면서 외우려나? 어디서 그런 결정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굳이 명왕성을 행성 지위를 박탈할 이유가 있었는지 모르겠구나. 감성 없는, 원리 원칙만 내세우는 냉정한 과학자들이 주장했겠지? 명왕성이 행성이던 시절에 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여전히 막내 꼬마 행성으로 남아 있지 않을까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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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245)

뉴호라이즌스의 책임연구자 앨런 스턴 박사는 요즘도 명왕성을 행성이라 칭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우리가 명왕성을 행성이라 부르든 왜소행성이라 부르든 134340이라 부르든, 사회에서 의도적으로 따돌림받고 소외당하며 존재 자체를 위협받는 자의 심정을 명왕성에 이입시켜려 하든 말든 명왕성은 상관하지 않는다. 그 멀고 어둡고 추운 곳에서, 하트 무늬처럼 보여 지구인에게만큼은 특별한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거대한 얼음평원 스푸트니크를 소중히 품은 채 태양으로 연결된 보이지 않는 중력의 끈을 잡고 있을 뿐이다. 그 곁에 오랫동안 지켜온 위성 카론은 명왕성의 위성으로 보기에는 너무 덩치가 커서 위성이 아니라 명왕성과 이중행성계를 이루고 있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카론 역시 자신을 무엇이라 부르든 개의치 않는다. 명왕성, 그리고 자신보다 더 작은 여러 위성 친구들과 서로 중력을 주고받으며 아주 오랫동안 멈추지 않을 자신들만의 왈츠를 추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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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의 첫 문장: 오랜 친구 중에 화가가 된 이가 있다.

책의 끝 문장: 이 한 권의 책에는 작은 구두점이지만, 어느 별 볼 일 없는 천문학자에게는 또하나의 우주가 시작되는 거대한 도약점이다.


76년마다 돌아오는 핼리혜성도 우리나라 사료에 기록이 많이 남아 있다. 989년 고려 성종 때의 기록을 시작으로, 조선시대 말인 1835년까지 매번 핼리혜성을 관측하고 기록했다. 아, 성실한 공무원들이요. 우리 세대도 선조들 못지않게 훌륭하다.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사 데이터베이스에는 <조선왕조실록>을 위시하여 수많은 사료가 인터넷으로 무상 제공되고 있다. 본래의 기록은 한자로 된 것이었지만 아주 많은 부분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다. 주제별로 열람할 수도 있고 검색도 할 수 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숙제로 내기 딱 좋다. - P50

학자들은 교류를 통해 지식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 자신을 기록을 발표한다. 지역적으로 가까운 사람들끼리만 학문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멀리 있는 학자들과도 교류하기 위해서 편지 형식을 취했던 것이 오늘날 논문의 전신이다. 논문에서는 과거 다른 사람이 발견하고 연구하고 논했던 내용을 정확히 밝히며 인용한다. 남의 업적을 내 것인 양하는 태도는 국가나 가족에 대한 긍지를 느낄 때나 쓰는 것이요, 남의 글 베끼기는 타자 연습할 때나 하는 일이다. - P59

부모 중 누군가가 본인의 일을 잠시 포기하면서까지 아이를 위해 달려가는 것은 양육자로서의 의무다. 아이가 아플 때 엄마가 일을 포기하고 달려가는 건 누군가는 가야 하는데 남편이 안 혹은 못 달려가기 때문이다. 현실이 그런 걸 누가 비난할 수 있겠나. 비난의 대상은 아픈 아이도, 달려가는 엄마도, 못 달려가는 아빠도 아니다. 갈 수 있으면서 안 달려가는 아빠가 있다면 그를 비난할 수 있을 뿐이고, 그런 경우엔 그게 아빠가 아니라 엄마라도 비난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남의 가정 일에 비난할 자격과 기회가 있다면 말이다. - P107

우주 탐사에는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데, 당장 상업적으로 이윤을 남길 수 있는 아이템은 아니기 때문에 대기업이 돈을 대는 일은 드물다. 정부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그러려면 정부에 우주 탐사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그것이 국가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비전을 제시해주는 자문단이 필요하다. 그 조언을 바탕으로 정책을 만드는 전문가, 이를 승인하는 최고결정권자와 국회, 그리고 그 실무를 담당하는 수많은 공무원이 현장을 방문하고, 공문서를 작성하고 낸 세금을 기꺼이 우주 탐사에 쓰도록 허락하고, 공감하고, 지지하고, 애정 어린 눈길로 지켜봐주는 국민이 필요하다. 당신이 꼭 필요하다. 천문학자가 아니라도 우주를 사랑할 수 있고, 우주탐사에 힘을 보낼 수 있다. 우주를 사랑하는 데는 수만 가지 방법이 있으니까.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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