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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2
이규정 지음 / 산지니 / 2017년 5월
평점 :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사할린> 2권을 해줄게. 일제시대 사할린은 일본말인 가라후토로 알려져
있었다고 하는구나. 이 책을 읽다 보면 가끔 가라후토라는 말이 나오는데, 사할린과 같은 지명이라고 생각하면 돼. 해방은 되었지만, 나라꼴은 가장 최악의 경우로 흘러갔단다. 해방이 되고 누가 이런
모습을 상상이나 했을까. 남과 북이 갈리고 왕래도 점점 어려워졌어. 주인공
이문근은 최숙경을 찾기 위해 최숙경이 되돌아 올 수 있도록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어. 어느덧
그의 나이 서른 다섯 살. 부모님뿐만 아니라, 절친 강화중의
계속된 설득으로 결국 강화중의 동생 복희와 결혼하기로 했어. 그래도 생사를 모르는 최숙경이 있는데, 더 기다려야 했다고 봐.. 10년도 안되었는데…
결혼 전 속죄라도 하듯 최숙경의 친정에 처음으로 인사 드리러
갔단다. 이문근과 결혼을 끝내 반대했었잖아. 그래서 한번도
찾아 뵙지 못한 장인어른과 장모님… 그 분들께 최숙경의 소식을 알리고 잘못을 빌어야 한다고 생각한 거야. 그리고 만의 하나 최숙경이 친정이 있는 개성에 와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하지만 그의 바램은 바램일 뿐이었어. 최숙경의 친정도 최악이었단다. 숙경의 부모님은 몇 년 전에 전염병으로 돌아가셨고, 부잣집이었던
가세도 많이 기울었고, 숙경의 동생들은 일하러 나가고 집은 숙경의 할머니 혼자 지키고 계셨단다. 문근은 차마 숙경의 일을 사실대로 이야기하지 못하고, 선의의 거짓말을
하고 숙경의 집을 떠났단다.
….
다시 집으로 돌아온 문근. 어느
날 보도연맹에 가입하라고 연락이 왔어. 보도연맹이 무엇인지 짧게 설명한다면, 과거에 좌익이었지만 지금은 전향한 사람들을 증명하기 위해 가입하는 단체였어.
그래야 나중에 무슨 일이 있을 때 좌익으로 몰리지 않는다고 말이야. 그런데 이게 자발적으로
가입하는 것 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고발로 반강제적으로 가입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었어. 문근도 그런 사례였단다. 가입을 거부한다면 자신은 좌익이었고 전향하지 않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거든.
그런데 문근은 좌익도 우익도 아니었고, 자신은 민족주의자라고 생각했어. 도대체 누가 문근을 리스트에 올리게 했을까. 아마 척을 두고 있었던 (1권에서 이야기했던) 그 초등학교 교장이었었을 거야. 문근은 고민 끝에 가입을 거부하는 것보다 가입하는 것이 그나마 나을 것 같아서 가입했단다. 절친이자 학교 동료 선생인 강화중도 똑 같은 입장이었고, 그도 가입을
했어. 강화중의 여동생 복희와 결혼을 얼마 앞둔 1950년 6월 하순… 정말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단다.
1.
전쟁. 북한에서
결국 전쟁을 일으켜 남으로 밀고 내려온 것이야. 해방 5년도
안되어 우리나라는 역사상 최악의 전쟁을 일으키고 말았단다. 어느 날 강화중이 찾아와 이상한 이야기를
했어. 우리나라 경찰들이 보도 연맹에 가입한 사람들을 놀래 끌고가 총살시킨다는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좌익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가입한 단체인데… 하지만, 어떤 흉악한 놈의
결정인지 모르겠지만, 그건 사실이었단다. 실제로도 그렇게
죽은 사람들이 엄청 많았어.
이문근도 그날 밤 집을 떠나 일단 피하려고 했단다. 바로 그날 경찰들이 찾아올 줄 꿈에도 몰랐지. 옷도 챙겨 입지도
못하고 경찰서로 끌려간 이문근. 이미 많은 사람들이 끌려와 있었어. 문근은
도망갈 틈을 보았지만 쉽지 않았어. 몇 명 도망가려고 시도한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총에 맞고 죽었단다. 그들이 끌려간 곳은 어느 산골짜기… 그들 앞엔 깊이 파인 구덩이가
있었어. 수십 명씩 총알세례를 받고 죽었단다. 얼마나 억울할까. 하라는 대로 하고, 오라는 대로 왔을 뿐인데, 가족들한테 연락도 못하고 항변 한번 못하고 죽어야 하니까 말이야. 문근은
그 총알 세례에 정신을 잃고 죽은 줄 알았어. 하지만 기적적으로 그는 살아났단다. 그 총알 세례가 문근을 피해갔던 거야. 이렇게 소설뿐만 아니라 실제
그런 무서운 경험을 했던 사람들 중에 이렇게 기적적으로 살아난 사람들이 있었단다. 정말 아프고 부끄러운
역사로구나.
…
기적적으로 살아난 문근은 무조건 도망을 갔단다. 어떤 절에 들어가서 스님의 도움으로 승복을 입고 승려 행세를 하기도 하고, 미군을
만나 한동안 미군 통역으로 일하고 하고, 인민군 포로가 되었다가 우연히 처남 친구를 만나기도 했어. 그 처남 친구는 이문근의 사연을 듣고 허가증을 주었어. 이문근이
최숙경을 찾기 위해 사할린을 가기 위해 북쪽으로 가겠다고 했었거든. 그의 신분을 보장해는 그런 허가증이었어. 이문근은 그렇게 북으로 가서 함경도 땅까지 갔지만 그곳에서 사할린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은 없었어.
방법으로 찾아보려고 평양으로 왔단다. 평양에서 우연히 경성사범학교의 동창과 문근의 친척 형님인 준근을 만났어. 하지만
그들도 사할린으로 가는 방법을 잘 몰랐어. 그나마 가장 좋은 방법이 일본을 통해서 가는 방법이라고 해서, 문근은 다시 부산까지 내려와서 밀항선을 타고 일본으로 갔단다. 부산으로
가면서도 그는 고향집에는 들르지 않았어. 그는 이미 보도연맹 사건으로 죽은 것으로 되어 있고, 살아 왔다면 다시 끌려가 죽을 수도 있으니 말이야.
2.
문근이 이렇게 동분서주하고 있는 동안 최숙경은 1951년 집에 돌아왔단다. 아,,,
엇갈리는 운명… 문근이 조금만 더 똑똑해서 일본으로 떠나기 전에 고향집에 밤에 몰래 다녀갔더라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집에 돌아온 최숙경을 기다리고 있던 소식은 문근의 사망 소식이었어. 그렇게 힘들게 오랜 시간을 기다려 집에 돌아온 이유는 문근이었는데, 그가
죽고 없다니… 삶의 의미가 사라졌단다. 최숙경은 자살 시도를
했다가 실패하기도 했어. 남은 인생 아무 의미도 없이 살다가 1971년
이른 나이에 삶을 마감했단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이 불쌍한 삶을 살았지만, 아빠가 생각하기에 가장 불쌍한 사람이 아니었나 싶구나.
3.
이젠 사할린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해방 후에도 6만명의 조선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고, 해방이 되고 5~6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5만명 이상이 그곳에 살고 있었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그들은
결국 그곳에서 정착할 수밖에 없었어. 그들은 그곳에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살았단다. 고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최악이었어. 전쟁이라니, 같은 민족끼리 전쟁이라니.. 완전히 미쳤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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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
특히 조선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 이야기는 그들 모두 남조선 출신이지마는 남조선 당국에 대하여 심한 욕을 퍼부었다. 6만 명
가까운 조선 사람들을 이 사할린에 팽개쳐 둔 채 전쟁을 일으켜 북침을 하다니, 조국의 통일도 중요하지만
조국이 불행했던 시절에 외지에 끌려나와 온갖 수모를 당하고 있는 조선 사람들을 구해 갈 생각은 하지 않고 전쟁 놀음이나 벌이다니! 해방 전에는 왜놈들로부터 갖은 구박과 수모를 당했더니, 해방이 되자
로스케 놈들이 건너와, 들어온 놈이 동네 팔아먹는다고 오래전부터 살아온 조선 사람들을 얼마나 천대하고
멸시했는가. 왜놈들이 조선을 조센징이라고 멸시했듯이 이놈들도 조선 사람들에 대하여, 까레이 혹은 까레스키, 하면서 천대와 구박을 마음대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을 생각하면 최해술은 말할 것도 없고, 나이
젊은 허남보 같은 사람도 울분과 슬픔으로 절로 주먹이 불끈불끈 쥐어지면서 눈물까지 고였다.
특히 조선 사람들이 하나같이
남조선에 대하여 적의를 품게 된 이유는 북조선 사람들의 입김과, 그 입김을 그대로 전달하고 있는 소련
당국의 영향이 무엇보다도 컸다. 남쪽에서 불법 북침을 했다는 것도 북조선에게 전해진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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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이 사할린을 빠져나가지 못하는 상황에 이상한 사람이 한
명 나타났다는 소식이 전해졌어. 조선 사람 한 사람이 사할린에 왔다는 거야. 그래, 이문근이 일본에 갔다가 선박회사에 취업한 후 끝내 사할린에
도착한 거야. 사할린에 와서 문근은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서 아내 최숙경을 찾아보았어. 최숙경을 아는 사람들도 만났어. 1권에서도 나왔던 최해술, 박판도이 문근에게 숙경의 소식을 알려주었어.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말이야. 힘들게 왔지만…. 다시 일본으로 돌아갈 방법은 쉽지
않았어. 그는 일단 사할린에 있으면서 돌아갈 길을 알아보기로 했어.
…
최해술, 박판도
등 사할린에 정착한 이들은 사할린 조선 민족 학교를 세우기로 했는데, 이문근은 이 일에 많은 도움을
주었단다. 그렇게 사할린에 있으면서, 이문근은 조선 귀국을
위해 소련 정부에 탄원서를 보내는 등 방법을 찾았지만, 여기서도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어.
..
일본 정부는 사할린에 억류된 일본인들의 국내 귀환을 위해 소련
정부와 협상하기도 했어. 여기에 기대를 하고 일본 정부에 조선인 귀환도 요청했지만, 매몰찬 답변만 돌아왔단다. 이제 너희들 정부가 있으니 그쪽에서 알아서
알 것이라고 말이야. 어느덧 시간은 흘러 1960년에 들어섰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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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0)
일본에 있는 ‘사할린 억류 귀환 한국인회’에서는 혼신의 힘을 다쏟아 일본 정부에
재사할린 조선인의 귀환을 교섭했지만 일본 정부 당국자의 변명을 이러했다.
“당신들의 고충이나 간절한 희망은 충분히 인정하지만 이 일은 정부가
수립되어 당당한 독립국이 된 당신네들의 나라 한국정부에서 맡아 할 일이거나 한국 국민 전체가 나설 일이 아니겠소.
당신들의 소망이 이처럼 절절한데 당신네들 국민을 대표하는 정부가 왜 말 한 마디 없겠소.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 주시오. 일한 간에 관계가 좀 더 본궤도에 올라 정상 가동되면 당신들의 희망은 보가 전향적으로
고려될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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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사할린> 2권의 이야기가 끝이 났단다. 소설이 소설로 끝이 아니고 실제
일어난 일들이라고 생각하니 너무 안타깝고 무능했던 옛 우리 정부를 생각하니 참 답답했단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곧 3권의 이야기도 해줄게…
PS:
책의 첫 문장: 1949년 겨울방학, 문근은 화중과 함께 경부선 기차를 타고 개성으로
가고 있었다.
책의 끝 문장: 조선동포들이 연명으로 소련 서기장 브레즈네프에게 보낸 탄원서도 헛수고, 김형개가
애지중지 키운 딸로, 자신의 명예는 물론 조선 민족의 자존심과 영광까지를 생각하던 김형개의 꿈도 헛수고, 늦게야 아내를 얻어 인생살이의 또 다른 행복을 맛보겠다던 정상봉의 꿈도 모든 것이 헛수고로 끝나고 말았다.
"나는 북조선 편을 드는 조총련에도 가입하지 않았네. 사실은 무슨 주의, 무슨 주의 그런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거네. 미국과 소련이 없으면 자본주의도 없고 공산주의도 없는 거네. 우리에게는 무슨 주의가 중요한 게 아니고, 어떻게 하면 사람이 사람답게 잘 살아 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 아니겠는가. 미국의 자본주의는 죄가 얼마나 많으며, 소련의 공산주의 또한 죄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 통일이 돼도 나는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닌 그런 통일이 돼야 한다고 보네. 자네 생각은 어떤까?" -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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