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 통권 178호 - 2021년 5월~6월
녹색평론 편집부 지음 / 녹색평론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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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몇 번씩 이야기했지만, 이제 기후위기, 기후변화, 지구온난화는 미래가 아니고 현재가 되어버렸단다. 이런 위기가 올 것을 이미 수십 년에 다들 알고 있었고, 나름 심각하다는 것들도 알고 있어서, 국가 정상들이 모여서 몇 번씩 회의도 하고 그랬는데, 회의에서 나온 약속들이 잘 안 지켜졌기 때문에 그 위기가 생각보다 더 빨리 찾아온 것이라고, 아빠는 생각한단다.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2050년까지 우리나라도 탄소중립국가가 되어야 한단다. 탄소 중립이라는 말은 탄소 순배출량 ‘0’이 되어야 하는 거야. 탄소를 배출하지 않기 위해서는 화석 연료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단다. 지금으로는 불가능할 것처럼 생각이 드는구나. 난방비와 온수, 자동차 등 우리 일상에서 생각하는 것만 해도 엄청 많은데 말이야. 2050년 탄소 중립을 지키기 위해서는 오래 전부터 시작해서, 지금쯤이면 서서히 줄여나가야 있었어야 하는데, 계속 나중으로 미루다가 오늘날까지 왔고, 이제 30년도 안 남았는데 우리나라는 그 어려운 것을 해야 하는 직면에 놓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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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우리나라는 1차 에너지의 80%를 화석에너지를 태워서 쓰고 있다. 2017년 기준 이산화탄소 배출량 세계 7, 석탄 소비 세계 4, 석탄 해외투자 3, OECD 온실가스 배출 증가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런 나라가 30년 이내에 탄소중립을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한국사회는 지난 30년간 하는 체만 해왔던 기후위기 대응을 끝까지 버티다가 이제는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 상황까지 왔다. 그동안 정부와 산업계는 기후위기를 방관해왔다. 특히 전경련을 중심으로 한 산업계는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 규제를 강화하면 해외로 산업체를 이전하겠다고 정부를 압박했고, 정부는 그런 산업계에 끌려다녔다. 지금까지 정부와 기업이 행동하지 않음으로 인해, 한국사회 전체가 30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탄소중립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리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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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를 줄이기 위한 시도를 못한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경제였단다. 경제 성장과 탈탄소를 병행하기는 무척 어렵다 보니, 나라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전경련이 정부에 계속 압박을 주었던 거야. 그리고 국민들도 내용을 잘 모르다 보니 현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잘 모르고 있었을 거야. 오히려 지구 온난화가 되면 겨울이 좀 따뜻해지겠다면서 좋다고 하는 이들도 있으니까 말이야. 우리나라 정부에서도 2050 탄소 중립을 위한 여러 가지 정책들을 내놓고 있단다. 그 정책이 옳고 그른 것을 비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2050 탄소 중립을 해야 하는 이유를 국민들에게 계속 홍보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단다. 그래서 국민들이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공감을 갖게 되고, 그런 정책을 지지해 줄 있다고 생각한단다.

왜 이런 것이 중요하냐면, 탄소 중립을 위한 정책들이 어떤 것은 우리 삶을 더 불편하게 만드는 것도 있기 때문이야. 그리고 또 경제적으로 불이득을 받을 수도 있고 말이야. 그래서 공감대가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탈탄소 정책을 해 나가면, 반감만 사고 정부 지지도만 떨어지고,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선거로 이용되고, 그러다 보면 다음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그런 중요한 정책들이 다시 휴지조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란다. 무엇보다 아빠는 국민들이 현 상황의 위기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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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어쩌다, 지금, 지구에서, 사는 우리는 한정된 지구에서 인간의 무한한 소비와 성장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경험하는 세대이다. 지구의 생태적 한계 내에서 살 만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탄소중립산회는 정부와 기업, 시민이 각자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성원들이 함께 합의해야 실현할 수 있는 사회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지, 무엇이 지금의 위기를 가져왔는지에 대해 뼛속 깊이 인식하지 않고서는 변화도 합의도 만들어내기 어렵다. 탄소중립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탄소중립사회를 위해 누가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하는지,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할지 등 우리가 바라는 사회에 대한 그림을 공유하는 시간을 거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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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럼 왜 지금까지 못하고 있었는가. 현재 경제 시스템은 부채를 기반으로 한 시스템이란다. 가지고 있는 돈을 가지고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려서 사업을 하게 되는 것이란다. 그러면 그 이자를 갚기 위해서는 늘 이익이 있어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사업은 망하기 때문이란다. 이런 것은 일개 개인의 사업이야기가 아니라 국가 전체의 경제 시스템도 그렇게 되어 있어. 그래서 늘 경제 성장이 이루어져 하는 거는 거야. 그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공장을 돌리고, 물건들을 전 세계로 날라야 하고그렇다 보니 화석에너지를 필수적이었던 것이지.

이제 와서 생존의 위협까지 느낄 상황이 되었지만, 정작 그렇게 만들어 놓은 이들은 영향을 적게 받을 거야. 물론 상황이 점점 어려워지면 화석 에너지의 가격이 급증할 거야. 하지만 부자들은 이런 것에 영향을 받지 않아. 가난한 자들만 더 피해를 입게 될 거야.. 하지만, 그것도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고 하는구나. 결국 모든 인간은 하나의 공동체이니까 말이야. 그런 사회가 왔을 때 얼마나 슬기롭게 이 위기를 풀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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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우리가 현재 향유하고있는 시장경제에 대해서, 호주 출신의 작가인 테드 트레이너는 물자가 부족해지면 부자만 그것들을 손에 넣을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는 기발한 장치라고 정의한 적이 있다. 우리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화석연료가 점차 부족해지면서 이 말은 진실로 밝혀질 것이다. 부유층은 어떤 식으로든 에너지를 충분히 갖고 사용하면서 부와 정치적 권력을 유지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도 오래가지는 못한다. 과거의 문명들이 그랬던 것처럼, 한 사회가 붕괴할 때 부유층 역시 가난한 이웃들과 운명을 같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만 좀더 오래 연명할 뿐이다. 이번에는 개발도상국에서도 선진국에서도 빈곤층은 조용히 사멸해가지는 않을 것이다. 세계화된 통신수단이 그럴 가능성을 없애버렸다. 가장 부유하고 가장 잘 방비를 한 엘리트일지라도 장단기적으로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사회적 정의(正義)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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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도 이야기했지만, 탄소 중립 사회로 가는 과정은 그리 쉽지 않을 거야. 지금까지 편리한 방향으로 이 사회가 발전을 했다면, 이젠 불편한 방향으로 발전을 해야 하거든.. 불편한 방향인데 발전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냐고 하겠지만, 지구와 우리 미래로 봤을 때는 그것이 진정한 발전인 것 같아.

어떤 정책들이 필요할까? 이 책에 제시한 정책들 중에 시민탄소할당제라는 것이 인상적이었단다. 점점 우리 사회가 사용할 수 있는 탄소의 양은 줄어들고, 그 탄소의 양을 온 국민들에게 똑같이 할당을 하고, 탄소를 적게 사용하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할당된 탄소를 판매할 수 있게 한다는 거야. 그것에 대한 수입이 많지 않겠지만, 어느 정도 가계에 수입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소득이 되어 마치 기본 소득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어. 자세히 생각해보면, 쉽지 않은 일들이겠지만, 나름 독창적인 생각이다 싶었단다. 이번 녹색평론을 읽으면서, 아빠도 작은 일부터 스스로 탄소 줄이는 운동에 동참해야겠다고 생각했단다. 전기 아껴 쓰기, 대중 교통 이용하기, 각종 에너지 아껴 쓰기, 또 뭐가 있을까?


2.

녹색평론에는 매달 여러 편의 시들을 소개해 주고 있단다. 이번 달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를 해주었으면 하는 시가 두 편 있었단다. 이병철이라는 시인께서 쓰신 <그 죽임의 삽질을 내려 놓아라>라는 시와 지리산 버들치 시인으로 유명한 박남준 시인의 <지리산은 지리산의 자리에서 노래하네>라는 시야.

먼저 이병철 시인의 시는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에 대한 비판을 시로 쓰셨는데, 시의 일부를 소개해볼게. 아빠도 사실 이 공항이 왜 필요한지 잘 모르겠거든. 그저 정치적 논리 때문에 지어지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 정치인들이 해야 할 일들은 이런 자연 파괴가 아니고, 어떻게 하면 탄소 중립 사회를 잘 꾸려나갈까 이런 걸 고민해야 하는데 말이야. 몹쓸 인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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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122)

온 나라, 온 세계가 코로나 역병의 비상사태로 코와 입을 막은 채

형제간의 만남조차 제지되는 자리에서

수백만 수천만의 가축들이 역병 방지라는 이름으로 무차별 살처분되고

미세먼지 하늘과 플라스틱 바다와

기후위기와 종의 대멸종으로 인류의 생존 자체가 절박한 이 엄중한 시기에

한때의 정권을 위해

한갓 선거의 매표행위를 위해

생명을 담보로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을 만들고 통과시킨 자들

그들에게 다시 묻는다

그 파괴와 죽음으로 만들고자 하는 그 신공항

누구를 위한 신공항인가.

무엇을 위한 신공항인가

얼마나 더 많은 생명이 죽어가야

얼마나 더 숱한 생령들을 죽음으로 내몰아야

그 삽질

그 탐욕

그 피 묻은 손 내려놓을 수 있을까

지금 우리 모두 죽어가고 있다

인제 그만두어라

그 죽임의 굿판 제발 걷어치워라

그렇게 모두가 죽어간 뒤에 남겨질 것이 무엇인가

- 이병철 <그 죽임의 삽질을 내려놓아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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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남준 시인의 시는 시들을 소개해주는 꼭지에 나온 것은 아니고, 지리산 환경 파괴를 하는 하동 군수를 비판하는 글에 삽입된 시란다. 박남준 시인의 시는 일개 하동 군수가 추진하고 있는 지리산 모노레일, 케이블카, 산악열차 건설을 비판하는 시인데, 이런 일들이 왜 자꾸 일어나는지 모르겠구나. 이 하동군수 참 나쁜 사람이로구나. 하동군수면 하동군이 너무 자신의 땅인 줄 아는가. 지리산은 명백히 국립공원이므로 국가 소속이고, 그 이야기는 전국민들이 모두 공유하고 있는 산이란 말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아빠도 화가 치오르는구나. 지리산을 한번이라도 가본 사람이라면, 지리산 그대로의 모습이 더욱 멋지고, 고귀함마저 드는데, 거기에 철탑을 박고 케이블카를 설치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인간의 어떤 본성에 나오는 것일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로구나. 아빠도 지리산을 무척 사랑하는데 제발 지리산은 지리산 그대로 모습으로 지켜지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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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

바다가 바다인 것은 바닥으로

가장 낮은 곳으로 향하는

강물을 품어주기 때문이네

산이 산인 것은 지리산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네

변치 않는다는 것이지

돌 속에서 돌을 꺼내 돌의 자리에 세우고

나무속에 나무를 꺼내

나무로 자라게 했기 때문이네

제자리에 있어야 하네

사람은 사람의 자리에

반달가슴곰은 반달가슴곰의 자리에 있어야 하네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

산자락마다 깨알처럼 모여 사는 마름과 마을을

능선과 능선 너머

푸르고 푸른 첩첩의 산능선을

그리하여 사람의 처음처럼 거기 서 있는 지리산을

그 곁을 따라 그대와 나의 마른 꿈을 적시며

골짜기마다 풀어놓은

논과 밭을 키우고 흐르는 섬진강을

정녕 그대를 보지 못하는가

    - 박남준 <지리산은 지리산의 자리에서 노래하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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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녹색평론에서는 그 동안 지속적으로 다뤄왔던, 기본 소득에 관한 이야기, 농촌 살리기에 관한 이야기, 지속 가능한 삶에 대한 이야기, 탈성장에 관한 이야기들은 생략할게.

아빠가 탄소중립사회라든가, 탈탄소 등에 관한 것을 자세히 모르고 있었는데, 이번 녹색평론에서 좀더 자세히 알게 된 것 같아 좋았단다. 탄소중립사회로 가는 정책들이 불편하더라도 우리 식구들 모두 지지를 해주자꾸나. 그리고 조금씩이라도 탄소 줄이는 생활을 몸에 익혀보자꾸나. 너희들의 미래를 위해지구를 위해


PS:

책의 첫 문장 : 오늘도 아침부터 온갖 매체를 통해서 알고 싶지 않은 뉴스가 전해진다.

책의 끝 문장 : 다만 그것이 마지막 이사라는 우리 부부의 다짐과, 그곳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산과 들이 있는 곳이라는 아이들과의 약속과, 그래야만 생명과 인간을 존중하는 삶에 가까울 수 있다는 믿음을 새기며 아름다운 상상력을 키워갈 것입니다.


석탄발전소, 자동차 등록대수, 주유소, 산업단지, 소 사육두수. 상징적인 주요 온실가스 배출원이다. 지난해 정부는 ‘2050 탄소 중립’을 발표했는데, 순배출량 ‘0’를 탄소중립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도무지 감을 잡기 어렵다. ‘2050 탄소중립’은 간단히 말하면 2050년까지 온실가스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앞으로 30년 안에 석탄발전소, 내연기관 차량, 주유소 같은 화석연료 기반 시설은 완전히 사라지고 산업단지에서 사용하는 에너지를 전환해야 하며, 소 사육두수는 획기적으로 줄이는 것을 의미한다. 2018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의 1.5도 특별보고서를 계기를 본격 등장한 ‘탄소중립’은 지금껏 지구에서 인간이 구축해온 화석에너지 기반의 경제 사회 체제를 완전히 뒤흔드는 일이다. - P5

피크오일로 인해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좀더 지속가능하고 재생가능에너지로 동력을 얻는 경제로 옮겨 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런데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커다란 간극을 뛰어넘어야 한다. 그 사이에 디딤돌은 없다. 저편의 세상은 이쪽과 매우 다를 것이다. 또 달라야 한다. 그러므로 급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전면적인 개조 말고는 대안이 없다. 소심하게 조금씩 바꾸어나가려는 정책, 실패하고 있는 체제를 조금 개량하고자 하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 P43

오늘날 우리는 인류세를 살고 있다고 한다. 이는 한편으로 인류가 자연자체를 바꾸는 환경적 힘이 되었다는 것을 가리키지만, 다른 한편으로 인간 행위의 결과로 인간의 존재 자체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을 말하기도 한다. 다행히 이를 막기 위해 탈탄소화를 비롯해서 생태적 전환이 긴급하게 필요하며, 이는 정의로운 전환이어야 하고 또 정의로운 전환일 경우에만 가능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존재는 저마다의 의미와 존엄을 가지고 있다는 보편적 정의가 없다면 우리의 생태적 전환은 불가능하거나 인간의 파멸을 유예시키는 일에 불과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인류세까지 오게 된 것은 인간 존재를 자연과 분리하여 특권화시키고 분리된 자연을 격하시켰기 때문인데 이를 회복하지 않고는 생태적 전환이라는 말로 우리가 달성하고자 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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