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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혁명 2
막스 갈로 지음, 박상준 옮김 / 민음사 / 2013년 6월
평점 :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부지런히 프랑스 대혁명 2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혁명 세력이 1789년 바스티유 감옥을 점령한 것으로부터 루이 16세의 단두대 죽음까지… 그들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을 거야. 다소 과격하다고까지 생각되지만,
그들은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낸 것이란다.
자, 그럼 그 이후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란다. 당시 프랑스
대혁명을 주도했던 사람들도 그걸 느꼈을 거야. 백성들은 변화된 세상에서 원하는 것은 많지, 어제의 동지들이 사소한 의견 차이로 등을 돌리지… 프랑스 대혁명을
주도했던 자코뱅파의 로베스피에르. 그의 별명은 청렴인사였단다. 그
만큼 부정부패를 멀리하고 개인적인 사생활에서 원리 원칙을 중요시했어.
1권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자코뱅파는
원칙적이면서 급진적인 성향이었어. 그렇다 보니, 온건함을
보이는 지롱드파에 불만이 많았던 거야. 그리고 프랑스의 모든 사람들이 공화정을 원하는 것은 아니야. 서부지역에서는 왕정을 지지하면서 혁명에 반대를 하는 사람들이 모여 반혁명군을 결성하여 반란을 일으켰단다. 그들은 루이 17세를 왕으로 세우겠다면서 파리로 진격 시도도 했어. 그리고 프랑스 주변 국가에서도 동맹을 결성하여 프랑스 대혁명의 횡전개를 우려하여 프랑스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어. 국내외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었어. 1789년에서 몇 년이 지나갔지만, 국민들의 생활이 나아지는 것
같지도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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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2)
장 봉 생탕드레는 편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도처에서 사람들은 혁명에 지쳐 있습니다. 부자들은
혁명을 싫어하며, 가난한 자들에게는 빵이 부족하고, 비난해야
할 것은 우리라고 사람들은 그들을 설득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기력을 북돋우려고 우리는 모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시체들에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빵이 없지만 곡물이 부족한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곡물을 꼭 쥐고 놓지
않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살 길을 긴급히 내주어야 합니다. 그들이
혁명을 완수하도록 우리를 돕기 원한다면 말입니다......
방데와 그 인근의 도에서
생긴 혼란이 아마도 걱정스러울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위험한 것은 그들 모두의 가슴속에 자유에 대한
신성한 열정이 질식되어 있기 때문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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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난국을 해결하는 방법을 로베스피에르는 어디서 찾았을까?
1.
로베스피에르의 답은 공포 정치였단다. 먼저 루이 16세의 아내, 한
때 왕비였던 마리 앙투아네트를 재판소로 소환했단다. 오스트리아와 프랑스 전쟁 때, 오스트리아에 정보를 빼돌렸다는 의심을 샀고, 루이 16세를 타락시켰다는 죄목으로 기소되었고, 사형 선고를 받았단다. 그렇게 루이 16세에 이어 마리 앙투아네트도 기요틴이라고 부르는
단두대에서 삶을 마감했단다.
로베스피에르는 공안위원회를 만들었다. ‘공안’이라는 말이 우리나라에서도 군사정부 시절 때 많이 사용하던
말인데, 원래는 사회의 질서와 안녕이라는 뜻인데, 이 사회의
질서와 안녕을 핑계로 강력한 제재와 통제를 한다는 의미가 더 컸어. 공안위원회에서도 그런 일을 했어. 사회와 질서와 안녕을 해치는 자가 있다면 처벌을 했어. 그냥 감옥에
가두고 훈시를 해도 좋았겠지만, 대혁명 이후 혼란스러운 사회 공안을 유지하기 위한 강력한 방법은 처형이라고
그는 생각한 것 같구나.
처형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같이 프랑스 혁명을 이루었지만 반대진영에 있는 사람들마저 기요틴으로 보냈단다. 온건파였던 당통도 기요틴으로 보내 처형시켰단다. 당통이 사생활이
좀 문란하기도 했었는데, ‘청렴인사’였던 로베스피에르는 그런
당통을 늘 싫어했어. 반대 진영의 리더까지 단두대로 보내는 마당에, 잘못
몸을 사리면 다로 삶을 마감하는 그런 시대가 되었단다. 예전에 다른 책을 읽고 쓴 독서 편지에서 이야기했듯이
화학자로 유명한 라부아지에도 이 때 기요틴에서 처형당했다고 하는데, 머리 잘리는 것이 일상이던 시대였던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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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
구체제에서 손가락질을
받으며 국내 통관세 세무 관리 노릇을 한 징세 청부인 스물일곱 명을 죽였다.
그들 중에는 위대한 화학자
라부아지에도 있었다.
루이 16세의 누이인 마담 엘리자베트도 죽였다.
이는 복수의 살인이었다.
그렇게 공화국을 ‘정화했다.’
로베스피에르의 제안하에, 보클뤼즈와 부슈뒤론의 ‘연방주의자들’과 ‘왕당파들’의 재판을
위한 인민위원회를 오랑주에 창설했다. 이 위원회는 사형 332건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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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포 정치는 어떻게 끝이 날까? 그건 한가지 밖에 없어. 그 공포 정치를 행하는 자가 죽으면 되는
거야. 그 일은 오래 걸리지 않아 현실이 되었단다. 로베스피에르의
반대파들이 권력을 잡았어. 로베스피에르와 그의 측근들은 자살 시도로 삶을 마감하려고 했지만, 로베스피에르의 자살 시도는 턱이 날라간 상태에서 미수로 그쳤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로베스피에르도 결국 기요틴에서 삶을 마감했대. 프랑스 대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끈 것까지는 좋았지만, 이후 공포정치로 정적들을 마구 죽인 것은 좀 잘못된 판단이었던 것 같구나. 다같이
힘을 모아 쓰러진 나라를 세우는데 힘을 썼어야 하는데, 조금이라도 의견이 다른 이들을 모두 죽이고 혼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던 그 생각이 안타깝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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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264)
뤼오가 썼다. “오, 혁명에서 각 개인의 열정은 끔찍하고 수치스러운 것이다. 그 열정들은 가장 활발한 이들을, 이 혁명을 그 목적에 이르도록
이끌 능력이 가장 많은 이들을 사형대로 보낸다. 열정에 빠져 정신착란을 일으키는 이들은 사형 집행인의
손으로 서로를 죽이고, 자신들의 대의명분을 약화하며, 인류
역사의 이 놀랍고 숭고한 모험을 불명예스러운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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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로베스피에르가 죽고 난 프랑스. 여전히 혼란의 시기를 겪는단다. 오랫동안 이어져온 사회 불안이 하루
아침에 없어질 수가 없겠지. 파벌들의 권력 다툼은 여전했단다. 이런
시기 전쟁터에서 연승을 거두면서 점점 유명해지던 이가 있었으니,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란 사람이다. 워낙 유명한 사람이긴 하지만, 아빠가 학창 시절 참고서 표지 모델로도
유명했던 적이 있었어. 그 출판사는 이순신 장군도 아니고 왜 나폴레옹을 표지 모델로 했을까. 그의 말로가 썩 좋은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야. 아무튼, 그 나폴레옹이 전쟁의 승리를 통해서 민심을 얻었는데, 그도 로베스피에르파라는
의심을 사서 몸을 사려야 하는 시기도 있었단다. 자칫 하면 기요틴으로 가는 수가 있었으니…
…
로베스피에르를 죽이고 권력을 잡은 이들은 부르주아 집안의 젊은이들로, 그들은 온건파 세력들이었단다. 그들은 여러 명의 총재를 두는 총재
정부를 수립했는데, 그들 또한 정치적으로 아마추어였단다. 아무래도
부르주아 집안들이다 보니 가난한 백성들의 마음을 잘 알지는 못했을 거야. 여전히 나라는 산으로 가고, 빵 값은 계속 오르기만 하고… 심지어 로베스피에르의 시절을 그리워하는
이도 있었단다. 왕이 지배하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이도 있었고… 현재가
힘들면 과거의 힘듦을 잊고 어렴풋한 추억 하나만 믿고 과거를 찾는 모습들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구나.
그래서 최악의 정당들이 죽지 않고 다시 부활하는 것 같아.
당시 프랑스 나라 사정은 이렇게 안 좋지만, 다행히 나폴레옹 덕분에 나라 밖 외부의 침략에 의한 어려움까지는 직접 영향을 받지는 않았어. 나폴레옹이라는 이 사람도 권력욕이 있는 사람이었어. 하지만, 급진적인 것 같지는 않고 미래를 준비하면서 사태 추이를 지켜보는 듯 했어. 사람들을
보내서 총재 정부에 대한 민심을 듣고, 총재 정부의 상황을 알아보게 하기도 했어. 하지만, 총재 정부 사람들도 나폴레옹의 권력욕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를 프랑스에서 먼 지역인 이집트와 전쟁에 그를 보냈어. 나폴레옹이
육지에서 하는 전투는 강하지만, 바다 위에서 하는 전투는 약하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
나폴레옹이 프랑스 본토를 떠난 이후, 프랑스 군대는 영국 군대 등에게 패하게 되었어. 특히 지중해 해상권을
영국이 다 차지하게 되어, 프랑스와 이집트 원정을 떠났던 나폴레옹과 연락이 끊기게 되었어. 나폴레옹은 이집트 원정을 중도에 그만두고, 프랑스로 돌아오게 된단다. 그리고 여론을 살피고, 언론을 조정하면서 나폴레옹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어. 백성들이 들으면 기분 좋은 말도 잘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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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6)
그가 말했다. “시민 총재들이여, 나는 이 칼을 오로지 공화국과 그 정부의 보호를
위해서만 뽑을 것임을 맹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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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3-494)
보나파르트가 계속해서
말했다. “당신들은 내가 그대들에게 그렇게 빛나는 모습으로 남겨 놓았던 이 프랑스를 가지고 무엇을 했소? 나는 당신들에게 평화를 남겨 놓았소! 나는 전쟁을 재발견했소. 나는 당신들에게 승리를 남겨 놓았소! 나는 그 반대를 발견했소! 나는 당신들에게 이탈리아로부터 수백만 남겨 주었소! 나는 어디서나
약탈의 법칙과 빈곤을 발견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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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지지를 바탕으로 그는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게
되었단다. 그리고 통령 정부라는 새로운 형태의 정부를 수립하게 된단다.
여기까지 막스 갈로의 <프랑스 대혁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이란다. 지은이 막스 갈로는 나폴레옹이 다시 황제를 지칭하게 되니까, 그 시점까지가 프랑스 대혁명의 종점이라고 생각한 것 같구나.
…
나폴레옹은 이후 황제라고 자칭하고, 러시아 원정에서 패배하여 엘바 섬으로 쫓겨났다가 다시 돌아와서 백일천하를 이루었다가 워털루 전쟁에서 패배하여
다시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유배를 가서 삶을 마감하게 되는 뒷이야기가 있단다.
…
아빠가 이 책을 쉽게 읽은 것이 아니라서,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있어서, 이해한 부분만 이야기를
했어. 그렇다 보니 잘못된 부분도 있을 텐데 이해바라고, 나중에라도
그런 부분을 알게 되면 아빠한테도 알려주길 바람. 그럼, 이상.
PS:
책의 첫 문장 : 이전의 프랑스 왕이요, 루이
16세였던 루이 카페는 1793년 1월 21일 월요일, 아침 10시 20분 조금 전에, 그렇게 단두대에 올랐다.
책의 끝 문장
: 인생은 얼마나 짧은지! 세상의 변화는 얼마나 느린지!
산악파는 열이면 열 모두 사형에 표를 던졌고, 평원파의 38퍼센트가 그들과 함께 찬성표를 던진 반면, 오로지 14퍼센트의 지롱드파만이 시역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자코뱅 당원들 중 가장 결연한 자들 눈에는 지롱드파의 이 ‘신중함’이 위태한 이 시기에 비난받아 마땅한, 위험한 계산일 뿐이었다. - P12
뤼오가 결론지었다. "얼마나 이상한 국가인가. 모든 일에서 극단을 달리다니! 프랑스는 왕을 숭배했다가, 마지막 왕을 죽였다. 가톨릭 신앙의 멍에 아래 기꺼이 숙이고 들어갔다가, 막 완전히 뒤집어 엎었다. 중간 조치는 전혀 모른다……. 이 모든 것의 마지막은 무엇일까? 비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안녕, 나의 친애하는 친구여, 더 보지 않으려 내 눈에 띠를 맨다네……" - P138
전에는 신권을 가지고 있던 왕이, 왕비가, 1788년 자유를 위해 일어났던 바르나브가, 마르세유 대표자들과 함께 1792년 8월 10일 튈르리 궁 공격에 나섰던 바르바루가, 브리소가 그들의 ‘머리를 창문’에 내놓았다면, 그들처럼 널빤지 위에 굴러떨어지지 않으리라 확신한다고 할 수 있는 이가 누구겠는가? 로베스피에르 자신도 외쳤다. "사람들이 나에게도 역시 공포의 생각을 심으려 했으나, 위험이 나에게 뭐 그리 중요한가? 나의 생명은 조국의 것이고, 내 심장은 걱정에 사로잡히지 않으며, 내가 죽는다면 그것은 나무랄 것도, 수치스러워할 것도 없는 일이 될 것이다." - P155
"혁명 정부의 동력은 덕이며 동시에 공포입니다. 덕이 없으면 공포는 파국을 초래합니다. 공포가 없다면 덕은 무력합니다." 기요틴은 사람들을 고결하게 만드는 기계와 같은 것이었다. - P170
나폴레옹이 형 조제프에게 썼다. "나는 삶에 큰 애착이 없으며, 큰 애정을 갖고 삶을 바라보지도 않고, 항상 전투 전야의 마음 상태로,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해 죽음이 한가운데 있을 때 걱정이나 한다는 것은 미친 짓이라는 생각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계속된다면, 형님, 나는 결국 지나가는 마차에게 길을 비켜 주지 않게 될 것입니다. 나의 이성은 종종 이런 것에 놀랍니다. 그러나 이는 이 나라의 도덕적 광경과 습관적 우연이 나에게 만들어 놓은 경향입니다." - P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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