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100)

천만에, 그럴 리가. 그저 하나의 세계일 뿐이고, 우리는 두 번째 기회를 얻은 것뿐이지. 이유를 일러 준 사람은 없다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우리가 지구에 존재했던 이유를 일러 준 사람도 없지 않나. 그러니까, 다른 지구 말이야. 자네들이 온 지구. 그런 이제 그 지구 이전에도 다른 지구가 있었는지 알 도리가 있겠나?”


(123)

못 할 거라 생각하십니까? 우리 지구인은 크고 아름다운 것들을 망치는 일에는 일가견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집트 카르나크 신전 한복판에 핫도그 가판대를 세우지 않은 이유는, 그저 너무 외딴곳이라 대규모 상업단지 조성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집트는 지구에서도 작은 지역에 지나지 않지요. 그러나 이 행성은 모든 곳이 오래되었고 색다릅니다. 당연히도 이곳 어딘가에 정착해서 오염시키는 작업을 시작해야겠지요. 우리는 저 운하를 록펠러 운하라고 부르고, 저 산을 킹 조지산이라 부르고, 저 바를 듀폰해라 부를 겁니다. 그리고 루스벨트와 링컨과 쿨리지시키가 탄생하고 올바른 이름으로는 영영 돌아가지 못하게 될 겁니다. 제각기 적절한 이름이 있는 곳인데 말입니다.”


(141)

평범한 미국인은 어딘가 이상한 존재는 쓸모없는 것으로 여깁니다. 시카고식 하수도 갖춰져 있지 않으면 사람 살 곳이 못 된다고 여기는 겁니다. 이해가 되나요! , 신이시여,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요! 그뿐 아니라 전쟁도 있지요. 우리가 떠나기 전에 한 의회 연설은 들으셨겠지요. 저들은 일이 잘 풀리면 화성에 원자력 연구 시설 겸 핵무기 보관소를 세 곳이나 건설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이 지어지면 화성은 끝장입니다. 이 모든 눈부신 것들이 사라질 겁니다. 화성인이 찾아와서 백악관 바닥에 술 냄새 풍기는 토사물을 쏟아 낸다면 기분이 어떨 것 같습니까?


(142)

지구의 비뚤어지고 끝도 없이 계속되는 탐욕스러운 계획에 저 홀로 맞서야 하는 상황입니다. 저들은 그 지저분한 원자폭탄을 이리고 싣고 와서, 전쟁 기지를 확보하려고 싸움을 벌일 겁니다. 행성 하나를 이미 망쳤는데도 다른 행성까지 망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거지요. 다른 이들의 여물통에까지 오물을 쏟을 필요가 있습니까? 단순무식한 떠버리들 같으니. 여기까지 올라오니 놈들의 소위 문화라는 것뿐 아니라, 놈들의 도덕과 관습에서도 해방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는 놈들의 준거 규범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제가 할 일은 당신들을 전부 죽이고 홀로 살아가는 것뿐이겠지요.


(144)

우리는 신앙을 잃고 삶의 의미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술이란 것이 좌절 속에서 욕망을 분출하는 행위일 뿐이라면, 종교가 자기기만일 뿐이라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신앙은 언제나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을 제공했지요. 그러나 프로이트와 다윈 덕분에 이제는 전부 배수구로 쓸려 내려갔습니다. 우리는 과거에도 지금도 길 잃은 종족일 뿐입니다.


(146-147)

근원을 살펴보면 과학이란 우리가 설명할 수 없는 기적에 대한 탐구에 지나지 않으며, 예술이란 그 기적의 해석이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과학이 미학을, 그리고 아름다운 존재를 파괴하도록 방치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은 단순히 정도의 문제입니다. 지구인이라면 이런 식으로 생각합니다. ‘저 그림에는 사실 색채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거야. 색채는 특정 물질의 입자가 특정 방식으로 배열되어 빛을 반사하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것이고, 그 사실은 과학으로 증명할 수 있으니까. 따라서 색채란 내가 목격하는 실체의 일부분이라고는 할 수 없는 거지.’ 하지만 훨씬 똑똑한 화성인은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훌륭한 그림이군. 영감을 받은 인간의 손과 정신에서 창조된 거야. 저 착상과 색채는 생명 그 자체에서 온 거지. 이건 훌륭한 작품이야.’


(216)

제 생각에는 모든 행성마다 저마다의 진실이 존재할 듯합니다. 언젠가 특별한 날이 찾아오면 그 모든 진실이 퍼즐의 조각처럼 짜맞춰질지도 모르지요. 참으로 영혼을 뒤흔드는 경험이었습니다. 이제 다시는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페러그린 신부님. 이곳의 진리도 지구의 진리만큼이나 진실되며, 서로가 대등한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계속 다른 행성으로 걸음을 옮기며 진실의 조각을 그 총합에 더해 나가야 합니다. 언젠가 새로운 날의 광명 앞에 온전한 진실이 모습을 드러낼 수 있도록 말입니다.


(407)

나의 삶의 방식을 태우고 있는 거다. 바로 그 삶의 방식이 지금 지구를 깨끗이 태우고 있는 것처럼 말이야. 정치인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이해해다오. 어쨌든 나는 과거에 주지사였고, 정직하다는 이유로 저들의 증오를 샀던 사람이니까. 지구의 삶은 결국 최선의 결과를 내놓지 못했단다. 과학은 우리 모두를 너무 빨리 앞질러 달려갔고, 인간은 기계의 황무지에서 길을 잃고 아이들처럼 온갖 소도구며 헬리콥터며 로켓 따위 예쁘장한 물건들에 사로잡혀 버렸지. 잘못된 요소에 심취했어. 기계를 사용하는 방법이 아니라, 기계 자체를 본질로 여기게 된 거다. 전쟁은 갈수록 커지다가 마침내 지구를 죽여 버렸지. 아무 소리도 안 나는 라디오는 그런 의미란다. 우리는 그런 모든 것에서 도망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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