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그 전문성을 취사선택하는 것은 우리가 해야 된다는 것을 시민들에게 설명해야 합니다. 전문가를 뽑는 게 아니라 어떤 전문적 의견이 나한테 좋은가를 선별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시장에 가면 구두 장인들이
여럿 있지만 내 발에 맞는 구두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은 내가 제일 잘 안다는 거예요. 전문가들이 만들어낸
정책 중에 내가 선택해야 된다, 최종적으로는 탁월한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이 결정해야
된다는 것이요. 우리가 말입니다. 법률이든 정책이든 결국
내가 혜택을 입고 내가 피해를 입으니 내가 결정해야 한다, 그렇게 접근해서 설명해야 되지 않나 싶습니다.
(30-31)
숙의민주주의나 시민의회를 가장 싫어하는 건 제가 보기에 관료집단인 것 같아요.
그로 인해 권력이 가장 줄어드는 것이 관료이니까요. 행정관료는 물론이고 판사, 검사도 결국 관료입니다. 물론 선출직 정치인들도 자기 권한이 침해
당한다고 생각하지만 관료집단보다는 덜한 것 같아요. 그리고 그걸 넘어설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게
정치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한국 정치인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시민들에게 권력을 진정으로 돌려주는
것입니다. “대신해서 잘 결정해주겠다”가 아니라요. 그런 측면에선 진보적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 몹시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32)
민주주의 이야기할 때 흔히 자유민주주의라고 그러잖아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결합된 것이죠. 그런데 불완전하게 결합되어 있어요. 실은
자유주의자들은 민주주의를 반대했습니다. 자유주의자들이 소위 부르주아혁명 이후 권력을 잡은 부르주아들인데, 이 사람들은 노동자들이 권한을 갖는 것을 거부했어요. 영국에서는 1830년대 이후 100년 동안 투쟁한 후에야 노동자들이 보통선거권을
쟁취합니다. 자유주의자들은 민주주의를 마지못해서 받아들였어요. 그런데
최근에 전세계적으로 극우세력 증오정치가 활성화되면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다시 분리될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즉
자유 없는 민주주의가 될 수 있어요. 포퓰리즘으로 분명히 사람들 표를 받기는 했는데 결과가 사람들의
자유를 박탈하는 경우가 있잖습니까? 미국의 트럼프가 그렇고, 유럽에서도
그런 사례들이 있습니다. 스위스에서도 주민투표로 이슬람식 첨탑을 가진 사원을 못 짓게 했습니다. 민주주의 방식이기는 하지만, 이슬람교 사람들의 기본권을 박탈한 사례입니다. 이게 자유 없는 민주주의입니다. 또하나는 자유는 있는데 민주주의는
없는 경우입니다. 박정희, 전두환 때죠. 민주주의는 없는데 대신 경제활동의 자유는 있었죠. 말하자면 부르주아
자유주의 같은 것입니다.
(37)
대의정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으니까. 정치체계 안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과 정당이 하나의 이익집단이 되어버렸어요. 자기들 이익을 우선시하고 있어요. 스포츠로 치면 링 위에 복서 두 명이 엉켜서 서로 껴안거나 반칙만 하고 있는 거예요. 심판이 나와서 떼어놓고 경기를 제대로 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정치에서
선거 매커니즘이 작동하지 않으면 국민들이 나설 수밖에 없어요. 시민들이 나서서 떨어져라, 공정하게 경기를 하라고 명령해야 합니다.
(40)
1958년 3월 하와이
마우나로아 관측소에서 세계 최초로 측정한 이산화탄소 농도는 313pp이었다. 1992년의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평균은 357pp,. 산업화
이전 지구 평균 이산화탄소 농도는 대략 280ppm. 산업화의 엔진에 발동이 걸리고 200여 년 동안 33pm이 높아졌는데, 관측이 시작되고 리우회의까지 34년 만에 44ppm이 증가했다. 2013년
5월 마침내 마우나로아 이산화탄소 측정값은 400ppm을 넘어섰다. 리우회의로부터 20여 년간
43ppm이 증가한 것이다. 마우나로아 관측소가 발표한
2020년 11월 평균 이산화탄소 측정값은
412.89ppm, 2019년 11월 410.25ppm이었다.
(46)
새로운 기후 신세계는 아마도 독재와 풀뿌리 민주주의 두 갈래 길이 가장 유력할 것이다. 현명한 독재자가 강력한 권력을 휘둘러 온실가스 배출 넷제로의 국가로 급속하게 전환할 수도 있다. 이런 기후독재정치를 많은 사람들이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플라톤이
주장하는 철인정치는 말이 좋아 철학자 정치지 왕이나 절대자가 하루아침에 마음을 바꾸는 일은 역사상 부지기수이다.
젊을 때 근본 사회주의였던 사람이 어느 순간 정반대 태극기 부대원으로 변신하는 것을 보면 이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70)
그러므로 생태주의가 오늘날의 환경운동을 넘어서서 혁명적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카스토리아디스에 따르면, 현대인들의 삶에 대한 심리사회적 태도에서
심원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삶의 목적이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하는 것밖에
없다는 사고방식-터무니없을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모멸적인-은
기각되어야 한다. ‘합리적’이라고 하는 자본주의적 가정들, 무한한 확장이라는 개념은 폐기되어야 한다. 특히 그런 심오한 변화는
풀뿌리 수준에서만 성취될 수 있다는 점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개별적 개인이나 단체들은 기껏해야 가능한
방향을 그려 보여주고 사회가 변화하도록 자극을 줄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생태주의적, 즉 본질적으로 혁명적인 운동은 사회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는 것이다.
(74)
그저 정말로 문제가 되는 사안들에 대해서 민중이 모여 진정한 토론을 하는 세상-바로
이것이 시민의회가 약속하는 것이고, 이것은 세계 전역에서 가속적으로 도입되고 있다. 이들 의회는 투표가 이니라 추첨을 통해서 구성된다. 이들은 미디어
앞에서 가식적으로 행동하고, 상대방에 대해서 비열한 비판을 일삼고, 로비스트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는 대신, 진정한 숙의기구로서 기능한다. 이
아이디어는 엉뚱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실은 서구문명 그 자체만큼 역사가 긴 정치제도이다. 그리고 이것이
시행된다면 역사상 가장 민주적인 시대가 열릴 것이다.
(87)
지금부터 그리 멀지 않은 미래의 어느 날을 그려보자. 우편으로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우리 공동체에 봉사하도록 선택되었습니다.” 기분이 어떨 것
같은가? 운 좋게도 우리는 추측할 필요가 없다. 시민의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압도적으로 그 경험이 긍정적이었다고 말한다. 배심원 의무와 마찬가지로 압도적 다수의
시민들이 사안의 무게를 인식하고 자신의 책임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어느 집단에나 가끔 있기
마련인 미치광이도 잘 제어한다. ‘평민들’에게 의사결정을
맡기는 일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주장들(민중의 무지하다, 민중은
비이성적이다, 민중은 쉽게 조종당한다!)은 과거에 흑인, 여성, 무산자 백인 남성들에게 투표권을 주어선 안된다고 했던 이유와
정확히 같다. 그런 주장은 그때에도 틀렸고 지금도 틀렸다. 사람은
어름으로 취급하면 어른처럼 행동한다.
(100-101)
요컨대,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처음에는 권력이 통합되어 있었지만 정치적 영역과 경제적 영역으로 나뉘게 되었고, 그리고 1970년대에 브레턴우즈체제가 종식된 이후에는 경제영역도 산업영역과 긍융영역으로 나뉘고 또 증식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권력은 금융역역의 손에 남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제가 했던 질문 기억하세요? 왜 정치인들이 20년, 30년, 40년 전보다 무능해 보이는 것일까요? 그 답은 정치영역이 완전히 힘을 잃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제 힘을
갖고 있는 영역은 경제영역이고, 특히 금융영역입니다. 젊고
유능하고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라면 (이념이나 역사관은 그다지 없다고 한다면) 어떤 길을 밟을까요? 미국 대통령이 되려고 할까요, 골드만삭스 CEO가 되려고 할까요?
후자이겠죠.
(119)
<역사 정치 교육 및 학교 교육의 목표, 목적 및 실천으로서의 민주주의> 권고안을 살펴보면 독일 학교는
‘살아있는 민주주의의 장소’로서 ‘서로의 존엄성을 자원으로 하여, 타인에 대한 관용과 존중이 행해지고, 시민적 용기가 강화되고, 민주적 절차와 규칙이 지켜지고, 갈등이 비폭력적으로 해결되는 곳’으로 정의된다. 따라서 독일의 학교에서는 지식도 민주적으로 배워야 하며, 학교에서
겪는 다양한 경함 역시 민주주의를 익히고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여긴다. 그래서 학교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은 독일 기본법에 근거하여 경쟁과 성취에 따른 비교보다는 민주주의의 장점과 혜택을 경험하고 자유, 정의, 연대 및 관용과 같은 민주주의의 기본가치가 경시되거나 무시되어선 안된다는 것을 체험한다. 다만 이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자유와 의견을 존중함에
있어 무조건적인 중립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146)
패전국 일본의 처지는 전혀 달랐다. 유럽과는 달리 동아시아의 전후처리는
미국이 독주했다. 전승국들이 대등하게 분할해서 점령한 독일의 경우와는 달리 일본은 미국이 사실상 단독으로
점령했다. 이를 위해 미국은 일본도 독일처럼 분할 지배하자던 소련의 요구를 물리쳤고, 대신 민주 쪽으로 남하해 오던 소련군에게 한반도 38도선 이북을
마음대로 떼어주며 무마했다.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남북 분단이 거기서 시작됐고, 일본 패전의 짐을 엉뚱하게 일제의 피해자인 한반도와 오키나와가 뒤집어쓴 형국이 됐다. 한반도 주변에는 영국도 프랑스도 없었다. 장제스 국민당의 중국도
연합국 대접을 받긴 했으나 아무런 힘이 없었고, 그마저 국공내전에서 밀리면서 공산화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