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일기
다니엘 페나크 지음, 조현실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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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단 한 편의 책으로 아빠의 마음을 빼앗아 버린 이가 있었으니, 다니엘 페나크라는 분이란다. 작년에 SNS에서 알게 되어 다니엘 페나크의 <소설처럼>이란 책을 읽었는데, 크게 감탄을 했단다. 어찌 이리 유쾌하고 재미있으면서 교양을 팍팍 심어주는 글을 쓸 수 있단 말인가. 그의 또 다른 책을 검색해 보니, <몸의 일기>라는 독특한 제목을 가진 소설이 있더구나. 일기를 책으로 출간하는 경우가 많은데, 누구누구의 일기가 아니고, 몸의 일기라니대충 어떻게 전개될 것이라는 생각은 들더구나.

일기.. 너희들도 가끔씩 일기를 쓰잖아. 사실 아빠도 일기를 쓰려고 노력을 한단다. 그래서 해마다 다이어리도 구입하고 그래. 그런데, 올해는 정말 일기를 제대로 쓴 날이 거의 없구나. 다이어리도 거의 새 것이란다. 일기뿐만 아니라 너희들에게 써야 할 독서편지도 사실 얼마나 밀렸는지 몰라. 회사 일 때문에 그렇다고 하면 핑계가 되려나. 사실 아빠는 하고 싶은 게 많고, 계산을 해보니, 집에 와서 샤워하고 난 다음 적어도 세 시간은 있어야 아빠가 하고 싶은 것들을 채울 수 있을 것 같구나. 사실 하고 싶은 것들 중에 여럿 포기하고 계산한 시간이란다. 그런데 올해도 여전히 일거리가 많고, 우리가 회사에서 좀 더 먼 거리로 이사를 오다 보니, 예전보다 퇴근 후 시간이 더 적어졌구나. 그렇다 보니 일기도 못쓰고 독서 편지도 말리고 그러는 것 같구나. 그렇다고 잠을 줄이는 것도 뭣하고아이고, 일기 이야기하다가 엉뚱한 곳으로 이야기가 빠졌구나. 아무튼, 아빠도 일기를 쓰려고 노력은 하고 있어..

그런데 일기라는 것이 주로 하루에 있었던 일과 그것에 대한 감상나의 생각들을 쓰는 것이 일반적이잖아. 그런데, 이 책의 주인공은 자신의 몸의 변화를 중심으로 쓰고 있단다. 십대 소년이 팔십 대 노인이 될 때까지 몸의 변화이 책을 읽다 보면, 당연이 자신의 모습도 되돌아보게 된단다. 아빠도 그랬어. 주인공이 쓴 일기들의 나이 때, 나도 그랬었지, 아니 나는 이랬었지이런 생각이 많이 떠올랐단다.

1.

이 책에는 자라면서 겪는 신체 변화를 솔직하게 적어두고 있단다. 주인공은 1923년생이야.. 1차 세계대전의 아픔이 곳곳에 남아 있던 시절이었지. 주인공의 아버지도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후유증으로 일찍 돌아가셨어. 돌아가시기 전에 주인공과 애틋한 정이 많이 남아 있어, 주인공의 일기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많이 담겨 있었단다. 아버지도 오래 살 것이라 예상을 했는지 주인공인 아들과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어. 첫 몽정을 할 것을 대비해서도 너무 놀라지 말라고 미리 이야기를 해주었단다. 그 부분을 읽고, 아빠도 우리 막둥이에게도 나중에 아래처럼 이야기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쑥스러움을 타는 아빠가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노골적인 것 같기도 하니, 조금은 편집해서 이야기해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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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아빠가 미리 얘기해줬었다! 하지만 아는 것과 실제로 일이 닥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난 잠에서 깨자마자 침대에서 뛰어내렸다. 잠옷 바지가 젖어 있었고 두 손도 온통 끈적끈적했다! 이불에도 묻어 있었다. 사실상 온 사방에 묻어 있었다는 게 정확한 말일 것이다.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바지를 벗으면서 난 아빠가 얘기해줬던 걸 떠올렸다. 그걸 사정(射精)이라고 해. 밤사이에 그 일이 일어나더라도 겁먹지 마라. 다시 오줌을 싸기 시작한 건 아니니까. 그건 새로운 미래가 시작된다는 신호야. 놀라지 말고 얼른 적응하는 편이 나아. 넌 앞으로 평생 정자를 만들어낼 테니까. 처음엔 뜻대로 조절이 안 될 거야. 성기를 만지작거리며 쾌감을 느끼는가 싶다가 어, 어느새 끝나버리지! 그러다 점차 익숙해지면 절제할 줄도 알게 되고, 결국엔 최선의 요령을 깨우치게 될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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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를 거치고 본격적인 젊음으로 들어오면, 누구나 겪는 사랑. 다들 겪는 사랑의 종류는 다양하고 다르지만, 그 사랑을 겪지 않는 사람은 없을 거야. 그리고 그 사랑을 할 때는 피곤하지도 않고, 세상의 중심이 내가 되고,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린다고 느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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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

몸은 사랑의 에너지 덕을 어느 정도로나 보는 걸까. 요즘은 모든 게, 정말 모든 게 다 잘 풀린다. 직장 일에서도 지치는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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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랑의 결실은 결혼과 출산이 아닐까 싶구나. 이 책의 주인공도 아이가 생겼을 때의 이야기가 있는데, 그 글을 읽으면서 너희들이 태어났을 때가 기억이 나는구나. 아주 생생한 기억. 너희들과 처음 만났을 때의 기쁨 말이야. 아빠가 서툴러서 너희를 안아주는 것도 처음에는 어려워하고, 기저귀 하나 가는 것도 낑낑 매던 시절이 있었지. 이 책의 주인공도 그런 시절이 있었고, 하지만 위험이 닥쳤을 때, 그것이 자신의 실수이긴 했지만, 자신의 몸이 다치는 한이 있더라고 아이의 안전을 생각하는 몸의 움직임은 본능이 아닐까 싶더구나. 세상 모든 아빠는 슈퍼맨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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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9)

손님들 앞에서 이 세상의 여덟번째 기적이라고 자랑하며 브뤼노를 흔들어대다가, 아기를 안고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것이다. 앞쪽으로 넘어지면서 바닥까지 굴렀다. 정확히 열한 계단. 난 본능적으로 브뤼노를 감쌌다. 계속 구르는 중에도 아기의 머리를 내 가슴팍에 붙이고, 팔꿈치와 이두박근과 등으로 보호했다. 난 아들을 덮고 있는 껍데기였다. 모두가 비명을 지르는 가운데 우린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손님들이 모두 달려들었다. 손등, 골반뼈, 무릎뼈, 발목, 등뼈, 어깨, 전부 다 계단 모서리에 부딪혔다. 하지만 난 구르는 와중에도, 가슴이 파이고 배가 움츠러드는 와중에도, 브뤼노가 내 품 안에서 완벽하게 안전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난 본능적으로 인간 완충장치로 변신했던 것이다. 브뤼노가 매트리스 싸인 채 굴렀다 해도 더 안전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난 유도를 해본 적도 없고 낙법을 배운 적도 없는데. 부성애의 놀라운 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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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그런 아이들이 십대 반항아가 되어 괴롭히기도 하지.. 그렇게 세월은 무섭게 지나간단다.

2.

그리고 책의 주인공은 지금의 아빠의 나이에 다다르게 된단다. 아빠도 지금까지는 큰병 걸리지 않고 잘 살아왔던 것 같구나. 평범하고, 평균적인 건강을 가지고 말이야. 최근 들어 평균적인 몸무게에서 조금씩 오버하지만 말이야.. 그런데, 앞으로는 어떨까? 주인공이 지금의 아빠의 나이를 넘어가면서 쓰는 몸의 일기는 있잖니, 무척 슬프게 했단다.

이제 아빠의 남은 날들은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보다 점점 건강은 안 좋아질 것이고, 병원도 자주 자게 될 거야. 지금도 건강은 잘 모르겠지만, 이미 체력은 예전만 못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고, 기초 대사량도 줄어든 느낌이 들더구나. 먹는 양이 크게 늘지 않고 비슷한데도 살이 붙는 것을 보니 말이야. 노화에 대한 경험을 하나 둘 겪고 일기에 고스란히 적혀 있단다.

이명. 귀에서 끊임없이 나는 소리. 아빠도 이명이 생긴지 무척 오래되었는데, 처음에는 걱정도 많이 했는데, 아주 크지는 않고, 청력 검사를 해도 정상이고 해서 그냥 함께 살아가고 있는데, 사실은 정적이 그리울 때도 있단다. 아빠는 정적을 느껴본 지 꽤 오래되었어. 지금도 키보드 치는 소리는 이명 건너편에서 고막에 도착하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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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1)

그에 따르면 이명은 아주 적응이 잘 되는 병이라고 한다. 아니, 더불어 사는 거라고 봐야지, 그가 말을 고쳤다. 그래도 어쨌든 고요함은 포기하는 수밖에 없어. 에티엔도 나와 마찬가지로 처음엔 엄청난 공포를 느꼈다고 한다. 그러면서 나와 똑 같은 비유를 했다. 꼭 내 몸이 켜진 라디오에 연결돼 있는 것 같더라고. 스피커 신세로 살아가야 한다는 게 정말 달갑진 않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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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늙어가면서 겪는 경험들도 슬프고, 젊은 시절 함께 했던 친구들, 친척들이 먼저 저 세상으로 가는 장면도 슬펐단다. 이런 일들이 앞으로 아빠의 인생에서 경험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니, 인생의 삶을 누가 설계한 것이라면 너무 잔인한 설계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있는 동안,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지내는 것이 아닐까 싶구나. 그러기 위해서는 잠도 충분히 자고 그래야 하니, 너희들에게 보내는 독서 편지도 짧게 쓰고 잠을 청해야겠구나.^^ …

삶은 얼마 안 남겨두고 쓴 주인공의 일기가 다시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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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8)

내 몸과 나는 서로 상관없는 동거인으로서, 인생이라는 임대차 계약의 마지막 기간을 살아가고 있다. 양쪽 다 집을 돌볼 생각을 하지 않지만, 이런 식으로 사는 것도 참 편안하고 좋다. 그러나 최근의 혈액검사 결과를 보며, 이젠 마지막으로 펜을 들 때가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평생 자기 몸에 관해 일기를 써온 사람이 마지막 가는 길을 거부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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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도 일기를 쓰긴 하지만 아주 좋아하는 것 같지 않은데, 조금 번거롭더라도 일기는 쓰면 좋을 것 같구나. 나중에 커서 그 일기를 읽어보면 좋을 테니 말이야. 아빠도 너희들 만할 때 비록 숙제로 쓰긴 했지만, 일기를 썼었는데, 안타깝게도 다 사라지고 말았단다. 지금이라도 다시 조금이라도 시간을 내서 다시 일기를 써보려고 노력해야겠구나. 인생 후반전열심히 기록으로 남겨볼게. 그 일기에는 우리 식구들의 행복만 가득 적혀 있길 바라며오늘은 이만 마칠게..

PS:

책의 첫 문장 : 지금쯤 넌 장래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있겠구나.

책의 끝 문장 : 겁먹지 마, 너도 데려가줄게.


청결함에 관해선 아빠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어느 날 내가 아빠 등을 때수건으로 밀어주고 있을 때 아빠가 말했었다. 우리가 벗겨낸 이 때는 다 어디로 갈까? 너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 적 있니? 우리 몸을 깨끗이 하느라고 우린 또 뭘 더럽히고 있는 건지. - P31

눈물은 자아의 배설이다. 그 엄청난 양이란! 우리는 울면서 오줌 눌 때보다 훨씬 더 시원하게 자신을 비운다. 맑은 호수에 몸을 던지는 것보다도 더 깨끗이 자신을 청소한다. 그 정화의 과정이 모두 끝나고 나면 종착역에 정신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눈물로 표현된 정신은 비로소 몸과도 좋은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 낸 몸도 오늘 밤엔 잠을 잘 것이다. 안도의 울음을 실컷 울었으니. 이제 끝났다. - P140

건강염려증: 몸의 상태에 대해 과도하게 신경 쓰는 비정상적인 정신 상태. 자신이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가 되는 망상. 정신과 몸이 서로에게 술책을 부리는 것. 어쨌든 처음 경험하는 느낌이라 일시적인 증상의 희생자일까? - P154

순전히 정에 겨워 아기를 어르는 것과 울음을 그치게 하려고 어르는 것 사이엔 이런 차이가 있다. 첫번째 경우, 아이는 자신이 사랑의 중심에 있다고 느낀다. 두번째 경우엔 아이를 창밖으로 던져 버리고픈 충동을 느낀다. - P190

흠잡을 데 없는 똥. 딱 한 덩어리뿐이다. 완벽하게 매끈하고, 모양도 반듯하다. 차지면서도 끈끈하진 않고, 냄새는 나되 악취는 아니고, 단면이 깔끔하며 균질의 갈색을 띠고 있다. 딱 한 번 힘줘서 쑥 빠져나왔다. 휴지에도 아무 흔적을 남기지 않았으니, 이거야말로 완벽한 장인의 솜씨다. 내 몸아, 참 잘해냈다. - P224

시선을 피하며 머리를 위아래로 가볍게 흔든다.
: 계속 이야기해봐, 관심 있으니까.
시선은 어느 한 지점에 고정하고 손가락으로 식탁 위에서 피아노 치는 시늉을 한다.
: 그 얘긴 벌써 백 번도 더 했잖아요.
속으로 어렴풋이 미소를 지으며 시선은 테이블보에 고정되어 있다.
: 내가 말은 하지 않지만, 나도 다 생각이 있다고요.
빈정거리는 미소
: 내가 맘만 먹으면 박살을 내줄 텐데.
눈의 역할
: 눈을 돌리는 건 자기 맘을 몰라줘서 답답하다는 의미, 눈을 크게 뜨는 건 믿지 못하겠다는 의미, 눈꺼풀이 축 처지면 지쳤다는 의미……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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