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곤충의 성공은 너무나 위대해서, 문자 그대로 지구를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의 알량한 자존심이 우리로 하여금 지구와 도시와 기술과 문명을 지배한다고 착각하게 하지만, 우리는 지구의 상태를 개선하기보다는 파괴하는 데 골몰하고 있는 듯하다. 인류는 지구상에서 패악질이나 일삼는 악종 정도로 간주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만약 인류가 멸종한다면, 대부분 종들의 생활 여건이 대폭 개선되러 것이다(머릿니, 몸니, 사면발이와 같은 몇 가지 종만이 예외다). 이와 반대로, 지구에서 모든 곤충이 멸종한다면 어떻게 될까? 하버드 대학교의 유명한 곤충학자 에드워드 O. 윌슨에 의하면, 그럴 경우 육상 환경이 붕괴되어 혼돈 속으로 빠져들 것이라고 한다. 인류의 문명은 고작해야 최근 수천 년 동안 형성된 것이지만, 곤충은 무려 4억 년 동안 육상 생태환경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며 성공적으로 공진화해 왔다. 곤충은 생태계의 필수 구성원으로서, 쓰레기를 청소하고 영양소를 순환시키고 토양을 비옥하게 하며, 사실상 모든 유기물을 섭취 활용한다. 다리가 여섯 개 달린 퇴적물 섭식자는 죽은 식물, 죽은 동물, 동물의 배설물을 소비하여 생분해 속도를 크게 상승시킨다. 곤충은 포식자인 동시에 포식기생자로서, 다른 곤충들(초식곤충, 청소부곤충)을 먹어 개체수를 감소시키기도 한다. 곤충의 가장 강력한 천적은 역시 곤충이어서, 대부분의 곤충집단은 다른 곤충집단에게 잡아먹힘으로써 개체수가 조절된다.


(28)

이 같은 조작적 정의(operational definition)에 대해 고생물학자인 데이빗 라우프는 언젠가 이렇게 비꼰 바 있다. “하나의 종이 탄생하려면, 영향력 있는 분류학자가 그렇다고 우기면 된다.”


(46-47)

만약에 외계의 관찰자가 지구의 생물학사를 다시 쓴다면 좀 더 간단명료하게 기술할 것이다. “처음 약 30억 년 정도의 시기는 세균의 시대였고, 그 나머지 시기(캄브리아기부터 현재까지는)절지동물의 시대였다.”라고 말이다. 다세포동물이 등장한 이래 다양성으로 보나 개체수로 보나 가장 성공적인 집단은 단연코 절지동물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곤충은 유구한 다양성의 역사를 갖고 있는 만큼, 지난 3억 년의 시기는 곤충의 시대라고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다. 이에 비해 인간이 문화를 건설한 역사는 겨우 1만 년이다. 세균과 절치동물(특히 곤충)이 지구를 지배해 왔던 장구한 세월에 비하면 찰나에 불과하다.


(78)

동물의 육지 상륙은 인간의 달 착륙보다 훨씬 더 기념비적인 사건이다. 왜냐하면 최초의 동물들이 바다에서 나왔을 때, 건조한 육지에서는 매우 열악하고 험난한 환경이 줄지어 나왔을 때, 건조한 육지에서는 매우 열악하고 험난한 환경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육지에서 생활하려면 많은 도구들이 필요했다. 첫째, 육상환경의 스트레스를 견뎌내기 위한 골격계와 자유로운 이동을 위한 운동계가 필요했다. 둘째로, 자외선, 더위와 추위, 탈수로부터 몸을 지켜줄 표피계와 물과 공기 중에서 모두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호흡계가 필요했다. 셋째로, 무엇보다도 동기였다. 오랫동안 안락한 보금자리였던 바다를 뒤로하고 적대적 환경으로 진출하려면 뭔가 결정적인 동기가 필요했다.


(88-89)

지금까지 전갈에 대한 온갖 험담을 늘어놓았으니, 그들에게 사죄하는 뜻에서 이제 전갈의 매력을 하나 알려드리고자 한다 암컷 전갈은 매우 훌륭한 어머니다. 사실 암컷 전갈은 가장 오래된 자녀양육의 모범사례로 유명하다. 대부분의 암컷 절지동물들이 알을 낳은 다음 새끼들에게 각자도생의 길을 걷게 하는 것과는 달리 암컷 전갈은 수정란을 몸 안에 품고 다닌다. 암컷은 여러 달 후에 6~90마리의 새끼를 낳는데, 어미의 축소판처럼 생긴 새끼들은 태어나자마자 어미의 등 위에 올라타 일주일 이상 머문다. 새끼들은 첫 번째 탈바꿈을 마칠 때까지 어미의 보호를 받다가, 뿔뿔이 흩어져 각자 제 살길을 찾는다.


(141)

데본기 후기와 석탄기에 특별히 많은 식물자원이 축적되어 오늘날 우리에게 막대한 양의 석탄을 선사할 수 있었던 것은 습한 기후 조건 때문만도, 고농도의 이산화탄소로 인한 엄청난 식물 성장 때문만도 아니었다. 그런 요인에 더하여, 초식동물의 소화력을 능가하는 바이오매스가 수백만 년에 걸쳐 생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최초의 중요한 나무 소비자인 갑옷바퀴가 등장한 것은 석탄기 후기 이후였고, 뒤를 이어 깍지벌레가 나타났다. 마루를 갉아먹는 딱정벌레들이 다양하고 출현한 것은 페름기에 이르러서였다.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더욱 복잡한 나무 소비자 집단이 진화했고, 이에 따라 석탄기에 이루어졌던 식물 자원의 전 지구적 대량 생산을 두 번 다시 되풀이되지 않았다.


(199)

마지막 남은 삼엽충 한 마리가 얕은 조수 웅덩이에서 먹잇감을 찾다가 맥없이 그 자리에서 고꾸라졌다. 잠시 후 그의 시신은 물 위로 떠올랐고, 다른 삼엽충 시신들과 함께 조수에 휩쓸려 해변 한 구석에 나동그라졌다. 잠시 후 조그만 다리를 가진 곤충들이 하나둘씩 나타났다. 아마도 최초의 바퀴벌레쯤 되는 것 같았다. 그들은 해변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진 삼엽충의 시신을 발견하고 우르르 달려들어 갉아먹기 시작했다. 때마침 근처의 고목에 걸터앉아 한가롭게 더듬이를 고르던 딱정벌레 한 마리가 이 장면을 목격하고, 잽싸게 날아와 잔칫상에 끼어들었다. 식사를 마친 딱정벌레는 날개를 펼치더니 숲 속으로 되돌아왔다.


(252)

첫 번째 특징은 성충기가 길어서 적어도 두 세대 이상의 공존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대부분의 비사회적 곤충들은 성충이 알을 낳고 죽어 버리므로, 대부분의 부모들은 생전에 유충들을 공동으로 양육한다는 것이다. 즉 성충들은 다음 세대에게 먹이를 공급하고, 노폐물을 제거해 주며, 포식자와 기생충으로부터 보호해 준다. 성충들의 지극한 보살핌을 받은 유충들은 무럭무럭 자라 사회의 노동력을 구성하게 된다. 세 번째 특징은 구성원의 역할 분담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역할 분담은 엄격한 신분제로 이어진다. 대다수의 구성원들은 생식능력이 없는 노동자들은 둥지를 짓고, 먹이를 구하러 다니고, 자라나는 유충을 먹여 살린다. 한편 둥지를 지키는 일은 병정들의 몫이다. 병정들은 커다란 머리와 구기의 소유자로, 둥지를 지키는 일에 전념하고 먹이는 노동자들에게 의존한다. 병정들 역시 생식능력이 없다. 마지막으로 흰개미 사회에서 새끼를 낳을 수 있는 개체는 극소수의 왕과 여왕들뿐이다. 이들은 지구 역사상 최초로 등장한 왕족으로, 일단 왕국을 건설하여 1세대 노동자들을 양성해 놓은 다음, 평생 동안 노동자들을 착취한다.


(297-298)

적응방산은 신생대에만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생명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자연선책이 적응방산을 추동한 사례와, 새로운 생명체들이 생태적 틈새를 차지하여 다양화한 사례를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선캄브리아기의 경우, 영양분이 풍부한 바다에서 미생물들이 크게 증가했다. 산소가 풍부한 캄브리아기에는 호흡을 하는 다세포생물들이 번성하여, 다양한 외골격 동물들이 바다를 메웠다. 실루리아기에는 풍부해진 오존이 유해한 태양 광선을 여과해준 덕분에 동식물들이 육지로 진출했다. 실루리아기의 동식물들은 해안지대의 틈새로 이주하여 성공적으로 정착해, 최초의 육상생태계를 건설했다. 데본기에는 육상식물들이 내륙과 고지대로 영역을 넓혔고, 식물과 곤충이 서로 상대방의 다양화를 촉진했다. 석탄기에는 날개 달린 곤충이 급속도로 증가하여 공중으로 진출했다. 페름기에는 완전변태를 하는 곤충들이 증가하여, 그때까지 아무도 밟아 보지 않았던 생태적 틈새를 개척했다. 페름기 말에는 최악의 대멸종 사건이 일어났지만 생명체, 특히 곤충들은 위기를 잘 극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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