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미술관 - 가볍고 편하게 시작하는 유쾌한 교양 미술 방구석 미술관 1
조원재 지음 / 블랙피쉬 / 2018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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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인터넷 서점과 책 관련 SNS을 돌아다니다 보면 눈에 가는 책이 눈에 띠곤 해. 그렇게 알게 된 책 <방구석 미술관>이라는 책을 이번에 읽었단다. 제목이 독특하다고 생각했는데, 책소개를 읽어보니 지은이 조원재라는 분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제목이라고 하는구나. 아빠도 가끔 팟캐스트를 듣는데, 미술 관련된 팟캐스트까지 들을 생각은 해보지 않았어. 그래도 가끔씩 아주 가끔씩 미술에 관련된 책을 읽곤 했었잖아. 미술에 대한 것을 알고는 싶지만, 워낙 커다란 분야이다 보니 쉽지 않은 분야이기도 하고... 얼마 전에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을 읽고 한번 더 좌절했었잖아. 이 책은 제목에서 오는 분위기가 그리 어렵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 인기 있는 팻캐스트를 진행하고 있는 이의 책이라고 하니... 더욱 더 읽어볼 만하다고 생각했단다.

이 책은 유명한 화가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주고 있단다. 14명의 화가를 소개해주고 있는데, 각 화가들의 숨겨진 에피소드가 재미있었어. 몰랐던 화가들을 알게 되는 것도 좋았단다. 이 책에서 읽은 내용을 잘 기억하고 있다면, 너희들에게 화가들의 숨겨진 에피소드들을 재미있게 이야기해줄 수도 있겠다 싶었단다. 기억력이 문제이지만 말이야.


1.

그럼,이 책에 실린 몇몇 화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게. 14 명의 화가들을 다 이야기하기에는 아빠의 인내력이 부족하고

절규라는 유명한 작품을 그린 유명한 화가 뭉크라는 작가가 있단다. 그 그림을 보면 아름다움보다는 보는 사람마저 공포감을 느끼게 해주는 그림이야. 그런 그림을 그리는 이라면 죽음 같은 것도 왠지 초연할 것이라는 편견을 갖게 되는데, 그건 정말 편견이란다. 어린 시절 관절염이 생겨 평생 관절염으로 고생하고, 어린 시절에 엄마와 누나를 연이어 잃은 뭉크는 평생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졌다고 하는구나. 그뿐만 아니라 세 번의 사랑의 아픔을 겪고 나서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하고, 평생 독신으로 살았대. 그리고 81살까지 장수를 했다고 하는구나. 이 책에 죽기 4년 전 그린 자화상이 실려 있는데, 그의 삶이 얼굴에 담긴 듯 초라하고 늙은 모습에 애잔함이 느껴졌단다.

프리다 칼로. 아빠는 처음 들어본 화가인데 멕시코 출신의 세계적인 화가라고 하는구나. 멕시코 지폐에도 실려 있는 사람이라고 하는구나. 화가로서는 명성을 얻었지만, 칼로의 삶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을 것 같구나. 열여덟 살 때 교통사고로 인해 온 몸의 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받았고, 그로 인해 평생 아이도 낳지 못하고 불편한 몸으로 살아야 했어. 그런 힘든 시기에 그림을 만나면서 그 어려움을 이겨나갔지. 그리고 칼로는 22살 연상의 디에고 리베라라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된단다. 아무리 사랑이라는 것은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지만, 22살의 연상의, 그리 잘 생기지 않은 소문난 바람둥이와 결혼이라니그것도 리베라의 세번째 결혼아마 칼로는 리베라라는 사람보다 리베라의 그림을 사랑했던 것은 아닌지디에고 리베라는 멕시코의 국민화가로 부르던 사람이거든

하지만 디에고 리베라의 엽기적인 바람기는 멈추지 않았어. 프리다 칼로의 여동생과 바람을 비웠다고 하는구나. 칼로가 화가 나서 맞바람을 피웠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상처가 아물겠니. 칼로는 우연히 여러 화가들이 공동으로 여는 전시회에 자신의 작품을 전시했는데, 그 작품들이 크게 히트를 쳐서 뉴욕과 파리에서 개인 전시회를 여는 등 크게 성공하였다고 하는구나. 프리다 칼로의 작품들을 보면 엽기적인 모습을 띠기도 하는데, 아마추어의 눈을 가진 아빠는 그것이 그리 대단한 작품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런데 그런 화풍을 갖게 된 이유가 바로 디에고 리베라가 바람을 피워서 그랬다고 하는데, 리베라의 바람이 아니었다면 프리다 칼로의 작품도 없었을 것이라고 지은이는 이야기하는구나. 그리고 비록 리베라가 바람을 피웠지만, 프리다 칼로의 재능은 인정하고 칼로가 무명일 때부터 칼로의 작품을 여기저기 소개하기도 했다는구나. 그렇다고 용서를 할 수는 없지.

….

그리고 그 유명한, 아빠도 좋아하는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단다. 그가 왜 노란색에 빠질 수밖에 없고, 그가 왜 정신적으로 그런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었는지 이야기기를 해주었어. 그것은 바로 파리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술 압생트 때문이라고 하는구나 고흐가 파리로 와서 당시 파리에서 유행하던 술 압생트에 빠졌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압생트라는 술에 산토닌이라는 성분이 있었는데, 이 산토닌이라는 성분에 중독이 되면 황시증, 그러니까 세상이 노랗게 보이는 병에 걸릴 수 있다고 했대. 그리고 산토닌 중독이 되면, 정신착란, 간질 발작과 환청 증세까지 보일 수 있었대. 고흐가 환청에 시달리다가 자신의 귀까지 자른 것이 바로 모두 이것 때문이었던 것인가. 결국 1915년 프랑스는 압생트를 금지하는 법령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중독이 되었고, 그중에는 고흐도 있었던 거야. 고흐는 자신의 상태를 인지하고, 스스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갱생의 노력을 했지만 결국 그 병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한 것이로구나. 황시증으로 색을 제대로 보지 못한 고흐는, 아이러니하게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어내며 명작을 그리게 되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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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색을 표현해야 하는 화가가 색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는 건 어쩌면 저주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반 고흐는 그것을 영삼의 원천으로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부를 수 있는 가장 순도 높은 고음의 노랑을 찾아냅니다.

노란 높은 음에 도달하기 위해서 나 스스로를 좀 속일 필요가 있었다.”

그는 이 말을 알코올 중독 수준이 너무 심각하다며 자신을 나무란 의사에게 했다고 합니다. 활활 타오르는 노랑을 보기 위해 자신을 속이며 압생트를 계속 마셔야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자신의 예술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던질 수 있었던 반 고흐가 생명을 활활 태우며 꽃피운 대표작이 바로 <해바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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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클림트. 이 화가도 키스라는 그림으로 무척 유명한 화가인데, 그를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19세기 말 오스트리아 미술계의 반항아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고 하는구나. 그의 나이 20대까지만 해도 착한 그림을 아주 잘 그리는 그림 천재였대. 하지만, 30살에 동생을 잃고 얼마 후 아버지마저 잃은 그는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었어. 그리고 이후 그는 반항의 아이콘이 되었대. 빈 미술협회와 의견 충돌을 보이면서, 따로 떨어져 나와 분리주의 그룹을 만들었대. 그와 뜻을 함께 한 이들과 함께 문제작들을 잇달아 발표했는데, 당시에는 많은 악평이 쏟아졌지만, 나중에는 새로운 예술의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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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117)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미술 천재 클림트. 고전주의 양식을 따라 그리기만 해도 마음 편히 먹고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타협하지 않고, 시대의 반항아로 살았습니다. 예술가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새로운 예술의 시대를 빈에도 꽃피우기 위해, 스스로 황금빛 창을 들고 아테나 여신이 되기를 자처했습니다. 그리고 온갖 반발과 저항을 이겨내고, 결국 새로운 예술의 씨앗을 심었습니다. 그의 분리주의 정신은 곧 에곤 실레, 오스카 코코슈카라는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또 다른 거장들을 탄생시키는 인큐베이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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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곤 실레. 에곤 실레는 화가는 이름은 들어본 것 같기도 한 이름이었단다. 그의 작품은 어떤 것이 있는지는 전혀 몰랐어. 그런데 이 책에 실린 에곤 실레의 작품을 보니 어디선가 많이 본 화풍이더구나. 일본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이라는 소설이 있는데, 민음사에서 이 책을 출간하면서, 책표지에 실은 그림이 하나 있었는데, 그 그림과 비슷한 그림들을 실레가 그렸어. 그래서 아빠가 함 찾아보니 민음사의 <인간실격> 표지에 실린 그림도 에곤 실레의 그림이더구나. 이런 내용도 책에 실렸다면 좋았을 텐데, 이런 생각을 했단다. 에곤 실레를 설명하는 부분은 공공장소나 너희들과 함께 책을 볼 때 적당하지 않겠다 싶었단다. 외설적이라고 생각할 정도의 작품들도 있었거든. 실레가 아버지를 무척 사랑했는데, 그런 아버지가 성병이 죽고 말았대. 그것에 대해 큰 충격을 받고 그런 외설적인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단다. 그의 삶도 무척 불우했다고 하는구나. 아내와 뱃속의 아이가 죽고 난 뒤 에곤 실레도 젊은 나이에 스페인 독감으로 죽고 말았대. 정말 불쌍하구나.

폴 고갱이라는 유명한 화가가 있지. 한때 고흐와도 같이 지냈던 사람. 그런 그가 잘 나가던 증권맨이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단다. 그것도 10년이나 증권회사를 다니고 있었고 돈도 잘 벌었대. 이후 화가로 전향했대. 이제 막 화가로 들어선 사람이 돈을 잘 벌 리 없고, 이내 가난해졌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아내는 아이들 다섯은 데리고 친정으로 가버렸다고 하는구나. 그렇게 가족보다 그림을 선택할 정도로 그림에 미쳐 있던 고갱. 이후 고갱은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려고 평생을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구나.

그가 그리려는 것은 원시대 야생을 그리려고 했어. 그래서 원시대 야생을 찾으러 곳곳을 돌아다니다가 멀리 타히티에 가서 정착해서 그곳에서 그림을 그렸다고 하는구나. 누군가 보면 미쳤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런 똘끼가 그를 유명한 화가로 만든 것은 아닌가 싶구나. 예술가의 삶은 기나긴 고난의 길이라고 이야기하는 그의 말은 공감하면서, 절대 발을 들여놓고 싶지 않은 길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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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

예술가의 삶은 기나긴 고난의 길이다! 우리를 살게 만드는 것도 바로 그런 길이리라. 정열은 생명의 원천이고, 더 이상 정열이 솟아나지 않을 때 우리는 죽게 될 것이다. 가시덤불이 가득한 길로 떠나자. 그 길은 야생의 시를 간직하고 있다.” – 폴 고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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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 마네. <악의 꽃>으로 유명한 시인 보들레르의 영향을 받고 도발적인 그림들을 그리면서 많은 비판을 받았대. 당시 <악의 꽃>이라는 시와 보들레르가 많은 비판을 받았는데 그에게 영향을 받아 그린 마네 역시 많은 비판을 받았던 것이지. 마네는 모네, 르누아르, 세잔 등 다음 세대 유명한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대.

….

클로드 모네. 마네에게 영향을 받은 모네. 마네, 모네.. 이 비슷한 이름을 가진 화가들은 시험공부를 하는 학생들을 많이 헛갈리게 할 것 같구나. 모네는 어렸을 때부터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고, 십대 중반 때부터 캐리커처를 그려 돈을 벌었다고 하는구나. 부댕과 용킨트라는 화가를 만나면서 그림 실력도 더 늘었고, 빛을 중시하는 풍경화를 많이 그렸대. 하지만 당시에는 많은 인정을 받지 못해 시대를 앞서 간 화가로 평가를 받았단다.

폴 세잔. 세잔의 사과로 유명하다고 하는데, 아빠는 잘 모르겠더구나. 그리고 그 사과 그림이 정말 잘 그린 것인지도 잘 모르겠고 말이야. 점점 현대로 오면서 그림 속에 다른 것을 봐야 하는 것 같았어. 세잔식 인상주의라고도 하는 후기 인상주의의 대표주자라고 하는데, 그런가 보다 했단다. 세잔식 인상주의의 특징은 기존 인상주의에 조화와 균형을 담았다고 하는데, 이런 화풍을 설명하는 부분은 크게 감동을 받지 못하겠더구나.


2.

화가들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 하고 오늘 편지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뒤샹이라는 사람이 황혼의 나이에 인터뷰를 한 내용이 있는데, 예술가의 정의를 멋지게 정의한 것이 발췌해보았단다. 비단 예술가뿐만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며 사는 삶. 정말 멋진 삶이 아닌가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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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

어느덧 거장의 칭호를 받는 79세 뒤샹은 한 인터뷰에서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예술가로 살며 가장 만족스러웠던 것은 무엇이었나?” 그는 이렇게 답합니다.

살아 있는 동안 그림이나 조각 형태의 예술 작품들을 만드는 데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차라리 내 인생 자체를 예술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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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의 첫 문장 : 혹시 오늘, 죽음에 대해 생각해봤나요?

책의 끝 문장 : ‘Life’란 무엇인가?’


평생 죽음을 의식했던 뭉크는 예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자신의 심장을 열고자 하는 열망에서 태어나지 않은 예술은 믿지 않는다. 모든 미술과 문학, 음악은 심장의 피로 만들어져야 한다. 예술은 한 인간의 심혈이다." - P13

"자기신뢰야말로 용기의 초석이고, 자기신뢰는 위험이란 요소와 친하게 되어 있습니다. (중략) 용기란 고뇌하며 위험에 맞서는 정신을 의미합니다. (중략) 삶은 거센 물결과 고통을 헤치고 나아가는 투쟁이자, 끝없이 밀려드는 적들과의 투쟁이라고 했지요. 인간은 누구나 자연이 각자에게 선사한 것을 즐기기 위해 홀로 투쟁해야 합니다."

이것이 열아홉 살 에곤 실레의 정신입니다. 자신이 자연에게 준 것을 삶에서 즐기기 위해 스스로를 믿고, 용기를 내, 위험을 기꺼이 껴안으며 투쟁하는 것. 그 의지는 끝내 그만의 솔직하고 뜨거운 예술 세계로 실체를 드러냅니다. - P130

"삶에서처럼 예술에서도 사랑에 뿌리를 두면 모든 일이 가능합니다." – 마르크 샤갈 -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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