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 : 서울편 1 - 만천명월 주인옹은 말한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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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유홍준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권을 읽었단다. 9권과 10권은 서울을 이야기하고 있어. 서울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현대화된 도시이지만, 그런 현대화가 되기 전에 600년동안 옛조선의 수도였으니, 그 당시의 문화유물들이 많이 있단다. 그래서 할 이야기도 많을 테고 말이야. 유홍준님은 돌고 돌아 바야흐로 서울로 돌아왔다고 하시는구나. 예전에 6권에서 <경복궁>을 이야기해주시도 했는데, 이번 9권에서는 종묘와 창덕궁 창경궁 등 모두 서울의 문화 유산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단다.

궁에 서려 있는 옛이야기를 듣는 듯한 기분이었단다. 창경궁은 대학교 때도 가보고, 너희들과도 한번 가본 기억이 있는데, 종묘와 창덕궁은 앞길을 지나가기만 하고 간 기억이 없구나. 이 책을 읽고 나니 너희들과 함께 가보고 싶은데, 지금은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해야 하는 시기이니나중에 가보자꾸나. 유홍준님께서 이야기하기를 종묘는 봄여름보다 가을겨울이 좋다고 하니, 단풍이 예쁘게 든 늦가을에 한번 가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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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54)

종묘는 봄여름보다 가을 겨울이 더 좋다. 종묘의 단풍은 울긋불긋 요란스레 화려한 것이 아니라, 참나무 느티나무의 황갈색이 주조를 이룬 가운데 노란 은행나무와 빨간 단풍나무가 점점이 어우러져 가을날의 차분한 청취가 은은히 젖어들게 한다. 그때 종묘에 가면 아마도 인생의 황혼 녘에 찾아오는 처연한 미학을 느끼게 될 것이며, 그렇게 늙을 수만 있다면 잘 인생이라고 말하고 싶은 그런 가을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뒷산 너머에 있는 창덕궁 후원의 단풍이 화이불치(華而不侈,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라고 한다면 종묘의 단풍은 검이불루(儉而不陋,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다)’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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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종묘는 조선 왕조의 역대 국왕들과 왕후들의 신주를 모시고 제례를 지내는 곳이란다. 종묘가 종로 근처에 있다는 것은 알았는데, 종묘 근처에 그렇게 울창한 숲이 우거져 있는 줄 몰랐단다. 그리고 좌우로 길쭉한 고풍스러운 건물은 조선의 600년 역사를 다 담고 있는 진중함이 사진으로도 느껴지더구나. 지은이 유홍준님은 이 종묘를,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 로마의 판테온, 중국의 천단과 맞먹는 문화유산이라고 했어. 그래서 우리 국민들이 종묘를 잘 이해하길 바라셨어.

어떤 외국의 건축가는 종묘만을 보기 위해서 우리나라를 왔다고도 하는구나. 이렇게 종묘예찬을 늘어놓으니, 아빠도 너희들과 당장 달려가고 싶지만, 코로나19가 우리를 잡는구나. 종묘가 유네스코 유형 유산으로 등재될 때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도 함께 유네스코 무형 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은 각각 국가무형문화재로 등재되어 있는데, 종묘제례는 국가무형문화재 1호라고 하는구나. 종묘제례악은 국가무형문화재 50호이고 말이야. 이 책을 읽고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을 하는 장면을 유튜브로 잠깐 봤는데, 실재가 아니라서 확 와 닿지는 않더구나.

종묘에는 조선의 역사가 길어지면서, 증축을 하곤 했는데, 마지막 증축이 헌종이었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그 증축이 마치 조선의 마지막을 예상한 것처럼 딱 맞아떨어졌다고 하는구나. , 좀더 지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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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흥미로운 것은 헌종 대의 증축이 마치 왕조의 마지막을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맞아떨어졌다는 사실이다. 조선왕조의 종말과 함께 정전과 영녕전의 신실이 모두 채워지고 더 이상의 빈 공간이 없어졌다. 정전의 마지막 신실인 제19실에는 순종을 모셨고, 영녕전의 마지막 칸에는 영친왕을 모시면서 16개 신실이 다 찼다. 그러고는 더 모실 신위도 빈 신실도 없었으니 왕조의 종말은 거의 운명적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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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선의 궁궐이라고 하면, 경복궁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단다. 태조가 조선을 건국하고 가장 먼저 만든 궁궐이 경복궁이니 말이야. 하지만, 조선의 왕들이 가장 많이 생활한 궁궐은 태종이 만든 창덕궁이라고 하는구나. 아버지 태조가 경복궁을 만든 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왕궁을 만들었냐고? 아빠가 전에 다른 책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조선 건국 이후 왕이 되려고 하는 태조의 아들 이방원(태종)이 형제들을 죽이는 등 난리가 일어나고 수도를 개경으로 옮겼다가 다시 한양으로 옮기는 등 혼란을 겪으면서, 태종은 아버지와도 사이가 안 좋아지고 경복궁은 자신이 죽인 정도전이 지은 궁궐이기도 해서 경복궁으로 돌아오는 것은 찜찜했을 거야. 그래서 창덕궁을 지었다고 하는구나. 경복궁은 난리와 전쟁으로 인해 불에 타 있는 경우도 많고 해서, 조선의 왕들은 창덕궁에서 더 많이 지냈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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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돌이켜보건대 경복궁이 창건된 것은 태조 4(1395)이고 창덕궁이 창건된 것은 태종 5(1405)이었다. 조선 개국 후 10년 사이에 전혀 다른 성격으로 지어진 두 궁궐은 피비린내 나는 정치적 비극의 소산이었지만 결국 우리 문화유산의 큰 자산이 되었다. 당시 이 엄청난 두 차례의 대역사(大役事)에 동원되어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했던 조상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당신들의 희생이 헛된 것만은 아니었다는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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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유홍준님은 창덕궁뿐만 아니라 창덕궁 후원도 하나의 챕터로 뽑아 이야기해주었단다. 창덕궁도 다른 궁궐과 마찬가지로 한옥의 아름다움을 알 수 느낄 수 있는데, 젊었을 때는 크게 감흥을 느끼지 못했는데, 최근에는 사진만 봐도 한옥의 멋스러움과 아름다움이 보이더구나. 저런 집에서 살아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지은이는 창덕궁의 여러 전각들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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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건축의 눈이 밝지 않은 분이라도 여기서 바라보면 한옥의 다양한 아름다움과 멋을 한눈에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임금이 정무를 보는 선정전은 엄숙하고, 손님을 맞이하는 희정당은 우아하면서도 화려하고, 왕세자의 공간인 성정각은 밝고 안온해 보인다. 전통 한옥의 모든 것이 집약적으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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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민들은 늘 봐오던 건축물이라 무덤덤하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외국 사람들의 눈에는 그런 건축물들이 색다르게 보이나 보구나. 소위 국뽕이 될만한, 외국 건축가가 평가한 우리나라 건축물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보자꾸나. 자부심이 절로 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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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

이에 대해 우리나라를 방문한 프랑스 건축가협회장 로랑 살로몽(파리 벨빌 건축학교 교수)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국의 전통 건축물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자연이고 풍경이다. 인위적으로 세운 것이 아니라 자연 위에 그냥 얹혀 있는 느낌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전통 건축은 미학적 완성도가 아주 높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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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다른 책에서 우리나라 정원이 중국이나 일본의 정원과 다른 점을 읽은 적이 있단다. 우리나라 정원은 사람이 만들었지만, 자연과 잘 어울린다는 점이었어. 창덕궁 후원 곳곳을 설명하면서 사진도 함께 실었는데, 그 사진들을 보니 정말 자연과 잘 어울려서, 그것에 만든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런 모습을 가지고 있는 듯 했단다. 창덕궁 후원도 꼭 가보고 싶구나. 유홍준님이 가이드한대로 코스를 잡아서 구경을 해보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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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

서양인은 한결같이 인간적 체취를 말한다. 가는 곳마다 지금도 사람이 살면서 사용하는 것 같다고 한다. 중국과 일본을 경험하고 온 분들은 한국의 미학이 따로 있음을 창덕궁 후원에서 비로소 느낄 수 있다며 이곳 하나를 본 것만으로 이번 방문에 만족한다고 한다. 이런 창덕궁 후원을 곁에 두고 사는 것은 진정 서울 사람의 복이자 큰 자산이다.

후원의 관람 코스는 낙선재 옆 출입구에서 시작하여 부용정, 애련정, 존덕정, 옥류천, 연경당을 두로 관람하고 규장각 위쪽 산길로 해서 출구로 돌아나가는 한 시간 반 정도의 즐거운 산책이 된다. 나의 창덕궁 후원답사기는 앞으로 찾아올 분들을 위해 이 코스대로 따라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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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에 낙선재를 곳이 있다고 하는구나. 낙선재의 주인공은 헌종이라고 하는데, 헌종은 조선의 24대 왕이지만 단명하고 짧은 왕위 생활로 존재가 미미한 왕이란다. 헌종의 주요 업적이 뭐냐고 질문을 받는다면 아빠도 할 말이 없단다. 그 헌종의 왕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어. 1827년에 태어나 아버지 효명세자가 일찍 죽어서 순조에 이어 여덟 살에 왕위에 올랐어. 열다섯 살에 친정을 하게 되었지만, 당시는 세도정치가 득세하던 시절이었대. 왕이지만 왕이 힘을 쓸 수 없던 왕이었더구나. 그 헌종이 지시하여 지은 건물이 창덕궁 안의 낙선재라고 하는구나. 그곳에서 헌정은 많은 글을 쓰고 문인들과 어울렸대.. 헌종은 추사 김정희의 열렬팬으로 김정희와 어울렸다고 하는구나. 나중에 낙선재에서 헌종과 문인들이 함께 어울리고 봤던 많은 책들이 발견되었대. 헌종이 23살에 요절하지 않았다면 어떤 왕이 되었을까. 낙선재는 해방 후 왕족의 후손들이 지내며 쓸쓸한 최후를 맞이하기도 했대.

3.

창덕궁 후원에 존덕정이라는 정자가 있다고 하는구나. 인조 때 만들어진 이 정자는 이후 많은 왕들이 시와 문장을 남기면서 풍류를 즐긴 곳이래. 그 왕들 중에 정조가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이라는 제목을 쓴 글이 있다고 하는구나. 아빠가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우리나라 역대 왕 중에 아빠가 가장 좋아하는 왕이 정조잖아. 그런 정조께서 쓰신 글이라서 천천히 읽어보았는데, 뒤로 가면 갈수록 감동이 철철 넘치더구나. 우리나라 각계 여러 곳에서 리더라고 지칭하는 사람들이 꼭 읽어봤으면 하는 글이었단다. 겸손하면서 이해심이 많은 리더가 되고 싶다면 가슴에 깊이 새겨야 할 글이었단다.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라는 말은 만 개의 냇물에 비치는 달의 주인이라는 뜻인데, 이 글을 읽다 보면 제목을 왜 그렇게 지었는지 알 수 있어. 아빠가 좋은 글을 읽으면 컴퓨터로 직접 치면서 발췌해 두곤 하는데 이 문장은 긴 문장이지만, 다 적어보았단다. 나중에 시간이 되면 펜으로 필사를 한번 해보고 싶은 명장이구나. 이 발췌글 때문에 오늘 독서편지가 길어도 이해해주렴. 이런 글들은 너무 좋아서 꼭 실어보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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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9-301)

나는 물과 달을 보고서 태극, 음양, 오행의 이치를 깨우친 바 있다. 달은 하나뿐이고 물의 숫자는 1만 개나 되지만 물이 달빛을 받을 경우, 앞의 시내에도 달이요, 뒷 시내에도 달이어서 달과 시내의 수가 같게 되므로 시냇물이 1만 개면 달 역시 1만 개가 된다. 그러나 하늘에 있는 달은 물로 하나뿐이다.

내가 많은 사람을 겪어보았는데 아침에 들어왔다가 저녁에 나가고 무리 지어 쫓아다니며 가는 것인지 오는 것인지 모르는 자도 있었다. 모양이 얼굴빛과 다르고 눈이 마음과 다른 자가 있는가 하면 트인 자, 막힌 자, 강한 자, 유한 자, 바보같이 어리석은 자, 소견이 좁고 얕은 자, 용감한 자, 겹이 많은 자, 현명한 자, 교활한 자, 뜻만 높고 실행이 따르지 않는 자, 생각은 부족하나 고집스럽게 자신의 주장을 하는 자, 모난 자, 원만한 자, 활달한 자, 대범하고 무게가 있는 자, 말을 아끼는 자, 말재주를 부리는 자, 엄하고 드센 자, 멀리 밖으로만 도는 자, 명예를 좋아하는 자, 실속에만 주력하는 자 등등 그 유형을 나누자면 천 가지 백 가지일 것이다.”

처음 이 글을 읽을 때 나는 가슴에 찔리는 바가 있었다. 윗사람에게 나는 어떤 유형의 인간이었던가 생각하니 아차 싶었다. 그러나 정조는 이 모두를 끌어안는 너그러움을 말한다.

내가 처음에는 그들 모두를 내 마음으로 미루어도 보고 일부러 믿어도 보고, 또 그의 재능의 시험해보기도 하고 일을 맡겨 단련도 시켜 보고, 혹은 흥기시키고 혹은 진작시키고 규제하여 바르게도 하고, 굽은 자는 교정하여 바로잡고 곧게 하면서 그 숱한 과정에 피곤함을 느껴온 지 어언 20여 년이 되었다.

근래 와서 다행히도 태극, 음양, 오행의 이치를 깨닫게 되었고 또 사람은 각자 생김새대로 이용해야 한다는 이치도 터득했다. 그리하여 대들보감은 대들보로 기둥감은 기둥으로 쓰고, 오리는 오리대로 학은 학대로 살게 하여 그 천태만상을 나는 그에 맞추어 필요한 데 쓴 것이다. 그의 단점은 버리고 장점만 취하고, 선한 점은 드러내고 나쁜 점은 숨겨주며, 잘한 것은 안착시키고 잘못한 것은 뒷전으로 하며, 규모가 큰 자는 진출시키고 협소한 자는 포용하고, 재주보다는 뜻을 더 중히 여겨 양쪽 끝을 잡고 거기에서 가운데를 택했다.”

이어서 정조는 신하들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에 대하여 말했다.

트인 자를 대할 때는 규모가 크면서도 주밀한 방법을 이용하고 막힌 자는 여유를 두고 너그럽게 대하며, 강한 자는 유하게 유한 자는 강하게 대하고, 바보 같은 자는 밝게 어리석은 자는 조리 있게 대하며, 소견이 좁은 자는 넓게 얕은 자는 깊게 대한다. 용감한 자에게는 방패와 도끼를 쓰고 겁이 많은 자에게는 창과 갑옷을 쓰며, 총명한 자는 차분하게 교활한 자는 강직하게 대하는 것이다.

술에 취하게 하는 것은 뜻만 높고 실행이 따르지 않는 자를 대하는 방법이고, 희석하지 않은 순주(醇酒)를 마시게 하는 것은 생각은 부족하나 고집스럽게 자신의 주장을 하는 자를 대하는 방법이며, 모난 자는 둥글게 원만한 자는 모나게 대하고, 활달한 자에게는 나의 깊이 있는 면을 보여주고 대범하게 무게가 있는 자에게는 나의 온화한 면을 보여준다. 말을 아끼는 자는 실천에 더욱 노력하도록 하고 말재주를 부리는 자는 되도록 종적을 드러내지 않도록 하며, 엄하고 드센 자는 산과 못처럼 포용성 있게 제어하고 멀리 밖으로만 도는 자는 포근하게 감싸주며, 명예를 좋아하는 자는 내실을 기하도록 권하고 실속만 차리는 자는 달관하도록 면려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정조는 다음과 같이 결론지어 말한다.

내가 바라는 것은 성인을 배우는 일이다. 비유하자면 달이 물속에 있어도 하늘에 있는 달은 그대로 밝은 것과 같다. 달은 각기 그 형태에 따라 비춰줄 뿐이다. 물이 흐르면 달도 함께 흐르고 물이 멎으면 달도 함께 멎고, 물이 거슬러 올라가면 달도 함께 거슬러 올라가고 물이 소용돌이치면 달도 함께 소용돌이친다. 거기에서 나는 물이 세상 사람들이라면 달이 비춰 그 상태를 나타내는 것은 사람들 각자의 얼굴이고 달은 태극인데 그 태극은 바로 나라는 것을 알았다. 이것이 바로 옛사람이 만천(萬川)의 밝은 달에 태극의 신비한 작용을 비유하여 말한 뜻이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내가 머무는 처소에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이라고 써서 나의 호로 삼기로 한 것이다. 때는 무오면(1798) 12 3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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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정조가 있다면 오늘날은 노무현 대통령이 있단다. 여러 사람들이 정조와 노무현 대통령을 비교할 만큼 비슷한 점도 많았단다. 두 분 모두 진보 성향으로 당대를 개혁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끝을 보지 못하신 분들로 어떤 이들은 실패라고 이야기하지만, 아빠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단다. 그들이 개혁하려는 노력만으로도 사회를 변화시켰다고 생각해. 혹시 지은이 유홍준님도 정조의 이야기를 하다가 노무현 대통령님이 떠오르신 것인가. 노무현 대통령님과 일화를 실었단다. 노무현 대통령님의 유머 감각을 볼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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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6)

어디까지가 권력기관입니까?

윗분이 말씀하시는데 말을 끊는 것은 예가 아니었지만 노 대통령은 나를 불경하게 생각하지 않고 지체 없이 내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국정원, 검찰청, 경찰청, 국세청, 그리고 언론기관입니다. 쉽게 말해서 전화 와서 받았는데 기분 나쁘면 다 권력기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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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한때는 창경원이라고 불렀어.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제 침입하고 나서 우리의 궁궐 창경궁에 동물원을 만들어 창경원으로 불렀다고 했어. 나쁜침략을 해도 예의는 지켜야지문화유산을 그렇게 훼손을 하다니.. 1980년대 창경원에 있던 동물들을 과천으로 옮겨 서울대공원을 만들고, 창경원은 다시 창경궁이 되었다고 하는구나. 창경궁은 그럼 언제 만들었고, 어떤 사람들이 이곳에서 지냈는가? 세종이 태종을 모시기 위해 지었으며, 그 이후 여러 대비들이 많이 지내셨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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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332)

세종은 즉위하면서 상왕으로 물러난 아버지 태종을 모시기 위해 1418년 창덕궁 곁에 수강궁(壽康宮)을 지었다. 이것이 창경궁의 시작이다. 그뒤 성종은 무려 세 분의 대비를 모시게 되었다. 할머니인 세조 비(정희왕후 윤씨), 작은어머니인 예종 계비(안순왕후 한씨), 생어머니인 덕종 비(소혜왕후 한씨) 등이다.

이에 성종은 수강궁을 중건하고 정전인 명정전, 정무를 보는 문정전 등을 지어 궁궐의 격식을 갖추고 창경궁이라 했다. 창경궁은 빛나는 경사라는 뜻이며 궁의 둘레가 4,325척이었다. 창경궁은 창덕궁과 담장을 맞대고 있어 둘을 합쳐서 동궐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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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얼마 전에 우리나라의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좀비 드라마 <킹덤> 시즌 2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단다. 아빠도 그 소식을 전해 듣고 시즌1과 시즌2를 연속해서 다 보았단다. 사람들이 왜 극찬을 하는지 알겠더구나. 아빠가 갑자기 왜 드라마 이야기를 하냐고? 그 드라마가 조선의 궁궐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보니, 궁궐이 많이 나오는데, 이 책을 얼마 전에 봐서 그런지 이 책에 본 사진들이 많이 나와서 반갑더구나. 창덕궁의 인정전을 비롯하여 여러 전각들이 나왔고, 아빠가 창덕궁 후원에서 가장 좋게 생각했던 정자 관람정과 그 옆에 있는 연못이 나와서 반가웠단다. 그 아름다운 연못에 몰래 죽인 시체들을 숨겨 놓는다는 설정이 섬뜩했지만 말이야.

보는 만큼 보인다는 유홍준님의 어록처럼, 설명을 들으면서 사진을 보니 더 아름답게 보이더구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서울편 2권도 봐야겠구나. 그 책에는 또 서울의 어떤 곳으로 우리를 초대할까.

PS:

책의 첫 문장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돌고 돌아 바야흐로 서울로 들어왔다.

책의 끝 문장 : 신세대들이 구세대의 이런 독백을 과연 이해해줄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오랜 세월을 거쳐 완성된 <국조오례의>의 내용을 요약해보면 길례는 조상과 대자연에 복을 기원하는 종요, 사직, 선농(先農), 선잠(先蠶), 기우(祈雨), 산천(山川)에 지내는 제례다. 가례는 기쁨의 의식으로 명절 의식, 왕비 책봉, 왕자와 공주의 혼례, 원로대신에 베푸는 양로잔치인 기로연(耆老宴) 등이며 흉례는 장례의식으로 국장(國葬)을 비롯한 상례(喪禮)다. 빈례는 외교 의식으로 중국, 일본, 유구(지금의 일본 오키나와) 등 외국 사신을 맞이하는 의식이고 군례는 군대 의식으로 임금이 참석하는 활쏘기, 군대의 열병(閱兵), 무술 시범식이다. - P61

창덕궁을 제대로 답사할 양이면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 앞 월대(月臺)에서 시작해야 한다. 궁궐의 모든 주요 건물 앞에는 지표에서 높직이 올려쌓은 평편한 대가 있는데 이를 월대라 한다. 달 월(月) 자에 받침 대(臺)자를 썼으니 그곳에 서면 달빛이 스포트라이트를 비춘 듯 하늘이 열린다는 뜻일 것이다. 언어의 묘미가 물씬 풍기는데 중국에서는 기차역 플랫폼을 월대라 부른다. - P106

건축적으로 대조전은 용마루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건축 형식을 무량각(無樑閣)이라고 하는데 궁궐 건축에서만 보인다. 확실한 예기는 아니지만 임금이 머무는 대조전에 용마루가 없는 것은 임금이 곧 용이기 때문에 두 용이 부딪치지 않도록 한 것이라는 속설이 있다. 경복궁의 강녕전과 교태전, 창경궁의 통명전 등 왕과 왕비의 생활과 관련된 건물이 대개 무량각인 것을 보면 아주 근거 없는 이야기도 아니다. 분명한 것은 그 형식이 구중궁궐 안에서도 지밀한 건물임을 도드라지게 한다는 것이다. - P163

우리나라 정원에서 건물은 마치 자연이라는 거실에 배치된 가구 같아서 건물이 있음으로 해서 경관이 생기고 건물의 크고 작음에 따라 다양한 표정이 만들어진다. 부용지를 거실이라고 치면 연못은 폭넓은 화문석(花紋席) 같고, 규장각 주합루는 듬직한 반닫이와 기품 있는 의걸이장 같고, 부용정 정자는 화려한 화초장(花草欌) 같고, 영화당은 단아한 서안(書案) 같고, 비각은 곱상한 연상(硯床) 같다.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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