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바도르 아옌데 - 혁명적 민주주의자
빅터 피게로아 클라크 지음, 정인환 옮김 / 서해문집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우리나라와 지구 정반대 편에 있는 칠레. 작년부터 그곳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이 간간이 인터넷 뉴스를 통해서 들려오고 있단다. 지하철 요금 50원 인상으로 시작했다는 시위. 그 동안 칠레 국민들 마음 속에 쌓이고 쌓였던 것이 폭발한 것이겠지. 아빠는 인터넷 뉴스의 헤드라인을 통해서만 뉴스를 접해서 자세한 내막은 잘 몰랐어.

칠레에서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라는 궁금증이 일어서 뉴스를 찾아 읽어보기도 했단다. OECD 국가 중에 가장 빈부격차가 심한 나라이고, 공기업이 했던 사회기반산업 대부분이 사기업으로 넘어가 버려서 물가가 치솟았다고 했어. 전기나 건강보험 등 국민들의 복지와 관련된 사업은 부의 재분배 차원에서 공기업에서 운영하고, 모자란 금액은 세금으로 충당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데, 그런 것들이 전부 사기업으로 넘어가 버리면, 그들의 이익 창출을 위해 금액이 비싸질 수밖에 없게 된단다. 칠레 사정이 딱 그런 상황이었어.

우리나라도 빈부격차의 양극화가 큰 사회문제로 대두되어 있는데 그 해법을 찾지 못한다면, 칠레의 일이 남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단다. 정부와 정치권은 칠레 사태를 보면서 그런 것을 깨달아야 할 텐데. 요즘도 자기들 밥그릇이나 챙기려고 국회를 장악하고 있는 꼴불견 정당을 보고 있으면 겨울임에도 열불 받게 하는구나.

문득 칠레 시위를 보면서, 칠레의 유명한 대통령 아옌데가 떠올랐단다. 예전에 아빠가 즐겨 듣던 팟캐스트 지대넓얕에서 아옌데 대통령을 다룬 적이 있는데, 너무 재미있게 들어서, 아옌데 대통령을 다룬 책을 구입하기도 했었거든. 구입만 해놓고 읽지를 않고 있었는데, 최근 칠레 사태를 보면서 그 책을 읽어보면 좋겠다 싶어서 읽었단다.


1.

아옌데는 1908 6 26일 칠레의 항구 도시 발파라이소에서 태어났어. 아버지는 변호사였고, 할아버지가 의사였다고 하는구나. 아옌데는 진로를 선택함에 있어 변호사와 의사 중에 갈등을 하다가 의사가 되기로 했다는구나. (, 둘 다 되기 어려운 직업인데 둘 중에 선택을 하다니, 오늘날 대한민국 고등학생들이 이를 알면, 한 소리 듣겠구나..) 유년시절에 그는 충분히 부와 권력의 환경에서 자랄 수 있는 환경을 갖고 있었지만, 노동운동과 아나키즘에 영향을 받으면서 자라나서 그것이 정의라고 생각했어.

그가 청소년기였던 1920년대 칠레는 경제적, 사회적으로 혼란기였다고 하는구나. 그 와중에 카를로스 이바녜스 대통령이 1927 97% 지지를 받으면서 대통령이 되었지만, 이 사람이 이탈리아 파시즘의 영향을 받고 나서 독재를 하고 나섰다는구나. 대학생이 된 아옌데도 독재에 맞서는 학생 운동을 했어. 의대학생회장이 되기 했단다. 그는 자본론과 마르크스에 관련된 책을 섭렵해서 읽었어. 학생 운동으로 인해 감옥에 갇히기도 했단다. 그의 대학시절에 관한 내용을 읽다 보면 마치 1970년대와 80년대 우리나라 대학생들에 관한 이야기를 읽는 것 같구나. 우리나라에도 그렇게 독재에 맞서 학생운동을 했던 이들이 얼마나 많았니

독재체제에 대한 시위는 총파업과 대규모 시위로 이어졌고, 결국 대통령이 사임하게 되었어. 칠레에서도 일찍이 민주화 시위가 있었구나. 이바녜스가 불러나고, 전 내무부 장관인 에스테반 몬테로가 정권을 잡았어. 개혁을 위해 긴축 재정을 한다는 것이 군인인 수병들의 월급을 감축하는 바람에 수병들이 반란을 일으켜서 2500여명이 죽기도 했대. 아무튼 독재는 끝났지만 혼란기가 이어졌어. 독재가 끝이 나고 망명하고 있던 마르마루케 그로배라는 장군이 돌아왔는데, 그가 공군참모총장이 되었고, 이후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았고, 칠레를 사회주의공화국으로 선언했어. 이 사건은 미국과 영국을 충격에 빠뜨렸다고 하는구나. 남미에 사회주의공화국이라니.. 미국으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고, 칠레 정치에 직접적으로 간섭하는 계기가 되었어.


2.

1933년 아옌데는 칠레 사회당 창당에 참여하는 등 정치 활동을 본격적으로 했단다. 칠레 사회당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졌는데, 그로 인해 잡음도 많았다고 하는구나.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미국이 남미에 간섭하기 시작했다고 했잖아. 그것은 남미 전역에 걸쳐서 이루어졌단다. 미국이 배후에서 조정한 우파 정권에 의한 독재가 이루어졌어.

================================

(68)

지구촌 차원의 경제위기가 촉발한 혼란 속에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 압제가 시작되고 있었다. 브라질에서는 제툴리오 바르가스 독재체제가 들어섰다. 베네수엘라, 페루, 아르헨티나도 권위주의 정권이 수립됐다. 엘살바도르에서는 마르티네스 장군이 소규모 공산당을 짓밟고 3만여 농민을 학살했다. 니타라과에서는 1933년 소모사가 아우구스토 산디노를 암살하고 독재체제를 강화했으며, 도미니카 공화국에서는 트루히요가 집권했다. ‘볼셰비즘에 위협을 느낀 미국은 이들 정권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1930년 경제위기의 여파로 차관과 쌍무협정을 통한 간접 통제에 기반을 둔 경제체계가 형성됐다. 미국이 힘이 약한 라틴아메리카 국가를 11로 맞상태하면서 우위를 점하는 정치적 체제도 마련됐다.

================================

아옌데는 독특하게도 비밀단체로 알려져 있는 프리메이슨에 가입도 했다고 하는구나.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람들과 현재에도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프리메이슨에 가입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아옌데가 프리메이슨에 가입한 것은 그 이유가 있었단다. 자유, 평등, 박애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고, 이것이 칠레의 사회복지제도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 것이야.

================================

(74)

현실적인 보탬이 되는 것과는 별개로 아옌데는 프리메이슨에 고결하고 숭고한 사명이 있다고 여겼다. 프리메이슨 회원은 현대적 기준을 활용해 자유, 평등, 박애의 원칙을 규정하고, 이를 통해 소외도 실업도 저임금도 없는 사회, 예방 가능한 질병으로 고통받지 않는 사회를 건설해내려 했다. 이를 위해 제대로 기능하는 효과적인 사회복지제도를 만들어 모든 이들에게 폭넓은 문화적 혜택의 문호를 열어젖혀야 한다는 것이다. 아옌데는 이 같은 내용을 프리메이슨의 사명으로 채택할 것을 줄기차게 요청했다. 또한 노동계급 출신과 청년 지식인 회원을 더 많이 받아들이고, 운영의 민주화에도 더욱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

그리고 1937년 처음으로 선거에 의한 하원 의원으로 당선이 되었어. 칠레의 좌파 계열 정당들은 인민전선이라는 연합을 만들었고, 좌파와 우파의 대결 양상의 첫 대통령 선거를 치렀다고 하는구나. 미국이 배후에서 조정한 우파의 모략에도 불구하고, 인민전선의 후보인 페드로 아귀레 세르다라는 사람이 승리해서 대통령이 되었대. 그의 정권 하에서 아옌데도 1939년 보건부 장관이 되었어. 진보 정당은 지금이나 예나 분열에 상당히 취약한 것 같구나. 인민전선도 분열이 되어 같은 좌파까지 탄압하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하는구나. 결국 사회당도 인민전선에서 떨어져 나와 소수정당이 되었고, 아옌데는 사회당 부활을 위해 노력을 했지만, 한동안 역부족이었어.

...

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공산당을 비롯한 좌파에 대한 탄압이 전세계적으로 거세지면서, 칠레도 좌파의 영향력은 극도로 줄어들게 되었어. 한동안 우파 진형의 대통령이 정권을 잡았단다. 아옌데는 1952년부터 1964년까지 세 번이나 대선에 출마를 했지만, 고배를 마시게 되었단다. 1970년 다시 한번 대선에 나온 아옌데. 오랫동안 정권을 잡지 못했던 진보진영은 정신을 좀 차렸어. 분열을 해서는 정권을 잡지 못할 거라고 이제서야 깨달은 것인지사회당과 공산당은 연합하여 인민연합을 결성하였단다. 아직 공산당은 불법이었기 때문에 활동이 쉽지는 않았어. 공산당은 그래서 아옌데에게 희망을 걸었어. 그가 대통령이 되면 공산당도 합법의 길이 열리니까 말이야. 그런 이유 때문인지 정작 아옌데의 정당인 사회당보다 공산당으로부터 더 많은 지지를 받았대.

아무튼, 1970년 대선에서 아옌데는 2%의 박빙의 승부로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단다. 오랜만에 정권을 잡은 진보 진영..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갖게 했단다. 자유주의 노선을 주장하는 보수 진영보다, 그래도 복지에 대해 관심이 많은 진보 진영이 일반 백성들에게는 도움이 될 텐데, 전세계적으로 아직도 진보 진영이 당선되기가 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구나.


3.

드디어 대통령이 된 아옌데. 사회 전반적으로 많은 개혁이 필요했지만,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구리광산의 국유화라고 생각했어. 예나 지금이나 구리가 칠레의 경제 수익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다국적 기업이 구리 광산을 차지하고 있어서, 국부 유출이 심했다고 했어. 그걸 먼저 국유화하려고 했단다.

================================

(110)

아옌데는 구리 업계가 막대한 이익을 내고 있는 사이, 칠레 정부가 차관을 얻기 위해 외국 정부에 고개를 숙여야 하는 현실에 대해서도 분개했다. 또 정부 내 어느 누구도 미국과 칠레 간 불평등한 구리협정이 체결됐다거나, 미국계 구리 업계와도 별도의 협정을 맺었다는 점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점에 대해서도 분노를 금치 못했다. 그는 이런 현실은 칠레를 먹여 살리고 있다는 구리 업계의 오만한 태도와도 모순되며, 칠레의 국가적 자존심에도 먹칠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구리 재벌 6명이 쥐락펴락하고 있는 칠레를 포함한 국제 구리 시장은 제국주의의 전형적인 사례라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아옌데는 구리 생산을 감독하고, 생산된 구리를 국제시장에 수출하는 업무를 총괄할 국영 구리 기업 창설을 추진했다. 이를 통해 구리 생산원가를 파악함으로써, 칠레 경제의 중요한 부문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이었다.

================================

그밖에 유아사망률을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어린 아이들에게 우유를 무료를 배급하고, 일부 부유층에 몰려 있는 토지에 대한 개혁안도 내놓았어. 이에 다국적 기업들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겠지. 그리고 미국도 좌파 정권인 아옌데 정권을 미워했어. 그들에게는 다음 선거까지 기다릴 틈이 없었고, 인내도 없었어. 어떻게든 아옌데 정권을 무너뜨리려고 했어. 먼저 언론을 장악했어. 칠레 언론은 아옌데 정권을 공격했어. 읽으면 읽을수록 우리나라 보수 언론들과 비슷하구나. 진보 진영은 옳고 그름을 떠나 무조건 깨고 거짓 선동하는 꼬락서니가 어쩜 이리 똑같은지이런 칠레 언론의 선동 공작의 뒤에는 미국의 검고 커다란 손이 있었단다.

================================

(141)

칠레 언론의 선동 공작은 아옌데를 악마로 만드는 데 집중됐다. 미국은 아옌데의 정적을 적극 지원했다. 필요한 공작금은 아낌없이 투입했다. 오랜 세월 칠레 언론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는 했지만, 미국이 이 정도 규모로 개입한 것은 칠레 선거 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CIA 칠레 지부는 1953년부터 우파 뉴스통신사와 교양 잡지, 주간 신문들을 지원해왔다. 1961년부터는 주요 정당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한편, 반공 선동전을 확산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하기에 이른다. 이른바 선거관리위원회가 워싱턴과 산티아고에 설치되어, 칠레의 민주적 선거 절차를 전복하기 위한 미국의 개입 방식을 조율했다.

================================

미국은 아옌데 집권이 칠레 하나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 남미의 여러 나라에 영향을 절 것이라고 생각했어. 그만큼 칠레의 아옌데 정권을 하루라도 빨리 무너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 결국 그들은 무리수를 두었어. 군사쿠데타. 아무런 명분도 없이 무력으로 친정권을 잡겠다는 의도였어. 아옌데는 보수파와 밀당을 하면서, 한가지를 실수를 하게 되는데, 육군참모총장에 친미극우파인 피노체트를 임명한 것이었어.

왜 그랬을까. 설마 군사쿠데타까지 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을 거야. 하지만, 피노체트는 군사쿠데타를 감행했단다. 탱크를 몰고 대통령궁으로 향했어. 그저 겁만 주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포탄을 날렸단다. 아옌데는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대통령궁에서 대비시켰단다. 최소의 경호원들만 남겨둔 채 말이야. 대통령궁에서 라디오 전파를 이용하여 방송할 수 있었는데, 그는 끝까지 국민들에게 자신의 뜻을 이야기했으며, 쿠데타가 얼마나 불법인지 설명을 했단다. 그 장면을 한번 상상을 하면 얼마나 두려우면서도 힘들었을까 싶구나. 하지만 그는 죽음을 불사하고 항전했단다.

================================

(229)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군부 절대다수가 반란에 가담했습니다. 이 어두운 시기에, 지난 1971년 제가 드렸던 말씀을 여러분께 상기시키고자 합니다. 차분하고 평정심을 유지한 채 말입니다. 저는 사도도 아니고 메시아도 아닙니다. 저는 순교자의 자질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저는 인민이 제게 부여한 과업을 완수하려는 사회적 투사일 뿐입니다. 하지만 역사를 되돌리는 세력, 칠레 절대다수 인민의 의지를 무시하려는 세력이 깨닫도록 할 것입니다. 순교자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저는 여기서 단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반역의 무리에게 알리겠습니다. 듣게 하겠습니다. 깊이 새기도록 하겠습니다. 칠레 인민들이 제게 부여한 사명을 완수한 뒤에야 저는 모네다궁을 떠날 것입니다.

================================

(236)

조국의 노동자 여러분, 저는 칠레와 칠레의 운명에 대한 믿음이 있습니다. 반역이 우리에게 강요한 이 잿빛의 쓰디쓴 순간도, 누군가는 반드시 이겨낼 것입니다. 그 점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그리 머지않은 장래에, 자유로운 인간이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당당하게 걸어갈 드넓은 길을 열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칠레 만세! 인민 만세! 노동자 만세! 이것이 제가 여러분께 드리는 마지막 말입니다. 제 희생이 헛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적어도 제 희생을 통해 범죄자와 비겁한 자, 반역자는 반드시 처벌받아야 한다는 도적적 교훈을 얻게 될 것입니다.

================================

그리고 아옌데 대통령은 결코 그들에게 죽을 수 없다며 자살을 선택하게 된단다. 대통령이 된 지 3년만에 그는 군사쿠데타에 의해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했으며, 칠레의 개혁도 마감되었고, 칠레의 민주화도 죽고 말았단다. 그렇게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피노체트는 이후 1990년까지 17년간 군사독재를 하게 된단다. , 우리나라의 군사쿠데타 후 독재 정권을 18년동안 하신 그 분이 저절로 떠오르는구나. 젠장.

피노체트는 17년 군사 독재를 하면서, 칠레를 오늘날 이 모양으로 만들어 놓게 된 거야. OECD 1위 양극화 국가. 그리고 1980년대 중후반부터 민주화 시위가 거세지고, 그는 결국 하야했단다. 인터넷을 좀 찾아보니, 그는 2006 91세의 일기로 사망했다고 하는구나. , 못된 짓을 하는 이들이 장수를 하는 것을 보면, 절대자라는 존재가 진짜 있는 것인지 모르겠구나. 아니면 죽어서 가는 곳이 정말 행복한 곳이라서 못된 놈들은 최대한 늦게 데리고 가려는 것인지

….


4.

아옌데가 군사쿠데타로 죽게 되고, 이후 들어선 군사쿠데타의 독재 정권이 오늘날의 칠레를 만들어놨고, 독재 정권이 물러난 다음에 민주정권이 들어섰지만, 오랜 독재 정권 기간에 만들어진 시스템을 돌이키기는 쉽지 않았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단다. 만약 아옌데가 계속 대통령을 했었다면, 오늘날 칠레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았단다. 선거에 의해 몇 번 정권 교체가 되었더라도 지금의 모습은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래도 희망을 걸어본단다. 그 옛날 아옌데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의식 있는 국민들이라면 지금의 잘못된 시스템도 바로잡을 수 있는 힘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단다. 부디, 그들의 민주화 투쟁에 값진 열매가 열리길 바래 보면서 오늘 편지를 마칠게.


PS:

책의 첫 문장: 정치인들은 대체로 살아생전에 한 일 때문에 유명해진다.

책의 끝 문장: 살바도르 아옌데와 인민연합이 남기고 간 유산에 기대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옌데는 부와 권력에 쉽게 다가설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랐다. 그럼에도 발파라이소에서의 삶의 현실적 어려움을 익히 알고 있었고, 당시의 요동치는 정세는 아옌데를 부촌인 비냐델마르가 아니라 자랑스러운 프롤레타이아트의 항구도시에 걸맞게 했다. 1972년 레지스 드브레와의 인터뷰에서 아옌데는 스스로를 발파라이소 항구 출신을 일컫는 자랑스러운 ‘포르테뇨’이자, 포르테뇨 출신 첫 대통령이라고 표현했다. - P40

라틴아메리카의 지지가 필요한 것은 신생 국제연합(유엔) 무대에서뿐만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필수 천연자원을 싼값에 조달해온 상황을 지속할 필요가 있었다. 미국이 전후 유럽 재건을 위해 마련한 마셜 플랜에 들어간 막대한 재원을 제공한 것도 결국 라틴아메리카 나라들이었다. 그러니 공산당에 대한 탄압이 재개된 것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다. 칠레 소수 지배계급의 히스테리에 가까운 반공의식은 이제 미국 정부 및 미국계 다국적 기업과 공유됐다. 이때부터 이들 세 부류는 이른바 공산주의의 위협에 맞서 함께 싸우게 된다. - P92

당시 연설에서 아옌데는 칠레의 기존 민주주의 체제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조목조목 거론했다. 그는 "현재 칠레 사회 구성원들이 누리는 자유는 허울일 뿐이며, 권력과 생산수단을 손에 쥔 극소수만이 자유를 누리는 게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철저한 현실 인식’에 기초에 ‘지금으로서는’ 칠레에서 사회주의 실현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사회당이 칠레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를 존중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현행 민주주의 체제가 선거 결과와 노동조합, 사회적 권리를 존중하는 한, 그리고 사상의 자유, 결사의 자유, 언론의 자유라는 민주주의의 원칙을 보장하는 한 우리는 법체제 안에서 활동해나갈 것이다." - P94

그는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불의에 항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뜻합니다. 부족한 것을 채울 수 있는 기회이며, 지속적으로 나아지기를 열망하는 정신적 태도이기도 합니다. 존경하는 의장님, 민주주의는 원칙과 사상, 이념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의식적 노력의 결과물이지, 단순히 정책을 통해 달성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 P95

아옌데의 집권은 칠레에서 마르크스주의 정부가 들어서는 것을 막으려 했던 미국의 노력이 실패했음을 뜻했다. 아옌데 취임 이틀 뒤인 11월 6일 닉슨 미 대통령은 국가안보회의를 소집해 아옌데 정부를 붕괴시킬 방안을 논의했다. 닉슨에게는 라틴아메리카 전체에 아옌데가 끼칠 영향이 위험천만해 보였다. "남아메리카의 잠재적 지도자들이 칠레와 유사한 시도를 하거나,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내버려두면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라틴아메리카가 아예 우리 손에서 떠나간 것은 아니다. 라틴아메리카를 미국 수중에 유지하기를 원한다." 닉슨은 이런 식으로 말을 이었다. 이날 회의에 따라 결정된 사항은 표면상 ‘냉정하고 적절한’ 입장을 이해하고, 칠레에 맞서기 위한 미국의 노력에 협조할 수 있도록 하며, 칠레의 모든 대외경제, 금융 분야 협력을 봉쇄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 P17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