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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의 고리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 창비 / 201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참 이상한 소설을 한편 읽었단다. 솔직히 말하면 읽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한글로 번역되어 있으니, 분명 활자를 따라 읽긴 했는데, 이 책에서 이야기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고, 소설이니 줄거리라도
정리가 되어야 하는데, 도통 모르겠구나. 분명이 소설이라고
전해 듣고 책을 펼쳤는데, 앞부분 수십 페이지를 읽어나가면서, 소설이
맞나? 아빠가 장르를 잘못 봤나 싶어서 책의 앞면을 다시 보기도 했단다. 그곳에는 분명 “W.G 제발트 장편소설”이라고 적혀 있었단다. 하지만 앞부분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여행 에세이
같았고, 읽으면서 점점 인문서적 같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어떤 부분에서는 현 사회의 비판적인 글을 만나
사회서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단다.
도대체 이 책의 정체를 아빠는 잘 모르겠더구나. 소설이라고 하니 소설이구나. 하고 읽어 나갔단다. 그렇다고 이게 다 허구인 것 같지는 않고, 사실과 허구가 경계 없이 섞여 있는 글들의 향연이라고 이야기해 볼 수 있겠더구나. 가뜩이나 집중력 레벨에 낮은 아빠가 읽기는 쉽지 않았어.
…
1.
책 제목이 토성의 고리다 보니 과학 관련 소설이나 SF 소설인가 싶었단다. 토성의 고리의 진실을 캐는 소설.. 토성의 고리가 생긴 유래를 밝히는
소설. 토성의 고리에 사실은 외계 생명체가 살고 있다는 소설… 이런
류의 줄거리를 예상하고 책을 폈건만, 토성의 ‘토’도 보이지 않더구나. 나왔는데, 아빠가
놓쳤을 수도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토성에 대한 이야기도, 토성의
고리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었단다. 책을 읽다가 하도 토성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질 않아서, 책 제목에 써 있는 ‘토성’이
아빠가 생각하고 있는, ‘수금지화목토천해’의 그 토성이 아니고, 동음이의어의 다른 ‘토성’, 예를
들어 흙으로 만든 성이라는 뜻인가 싶어서, 원제를 들여다 보니 낯선 독일어로 된 제목에 Saturn이라는 단어가 보이더구나. ‘수금지와목토천해’(명왕성 빼도 말하려니 아직 낯설구나.)의 토성이 맞긴 하더구나.
도대체 제목은 왜 ‘토성의 고리’인가? 끝까지 읽다 보면 나오는가? 하지만 끝까지 나오지 않는단다. 소설의 배경은 끝내 지구를 벗어나지 못했단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영국을 벗어나지 못했단다. 잠깐, 원제가 독일어로 쓰여 있으면
지은이는 독일 사람인가? W.G. 제발트. 아빠가 이 분의
책은 처음 읽는데,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이름이 왠지 멋져 보인다는 생각을 했었단다. 이렇게 난해한 소설을 쓰신 분은 도대체 누구인가 한번 뒷조사를 해보았단다.
독일 사람 맞다. 1944년생인 그는 2001년
안타깝게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하는구나. 그의 작품들만 남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단다. 우리나라에도 그의 많은 책들이 출간되었단다. 알라딘 인터넷 서점의
지은이 소개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문장이, “오늘날 세계적으로 가장 깊은 반향을 불러 일으키는 독일
작가 중 한 사람”으로 되어 있단다. 아빠는 그의 책을 한
권만 읽었지만(책 마지막까지 읽긴 읽었으니 읽었다고 치자) 그의
소개에 쓰인 ‘깊은 반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대충 감이
올 것 같구나.
…
책 뒷면에는 추천사가 있단다. 소설가 배수아님은 제발트 이전과 제발트 이후가 있다는 말로 극찬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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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제발트를 처음으로 알게 된 날의 풍경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날 나는 한 명의 제발디언(Sebaldian)으로부터 책을 한
권 선물받았다. 여전히 구름층이 두텁고 무겁게 드리워진 11월의
하늘 아래 응급환자수송차는 여느날과 다름없이 무섭게 귀를 찢는 싸이렌을 울리며 베를린 중심가를 빠른 속도로 질주했으며, 사각형의 건물들은 모르는 사람처럼 차갑게 우울하고, 애타게 기다리는
소식은 그 어느 방향에서도 들려오지 않았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정처없이 앉아 있는 까페테라스. 십년 전에도, 그리고 십년
후에도. 불안을 유발하는, 혹은 문학을 유발하는 어떤 장소들
중의 하나에 내가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홀로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도중 나는 은밀하고 남모르는
개인적인 위안이 현기증처럼 엄습했다가 사라지는 것을 경험했다. 설명할 수 없는 위안. 그런데 나는 오늘, 무엇을 만났던/읽었던
것일까! 그리고 점차 번갯불처럼 명료하게 형체를 드러내는 사실: 나는
제발트를 읽었다, 그 이후에도 하루들은 달라지지 않았다, 변한
것은 단 한 가지, 제발트 이전과 제발트 이후가 있을 뿐. –배수아(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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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것보다 공감이 가는 추천사가 하나 있었단다.
“자연과 인간, 그리고 문학사에
대한 놀라운 문서 – 월스트리트 저널”
그래 아빠가 줄거리를 너희들에게 이야기는 못해주지만, 이 소설에는 분명 자연도 있었고, 인간도 있었고, 문학사도 있었단다.
그 외 역사도 담고 있고, 사회를 비판하기도 하고, 미래를
이야기하고 했단다. 그래, 곰곰이 생각해보니 조금씩 책의
내용이 생각나기도 하는구나. 받은 느낌은 진보 성향의 작가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영국 동부 써퍽 지역을 여행하면서, 떠오르는 생각들, 떠오르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적고, 그곳과 연관성 있는 역사들에
대한 이야기를 적고, 그렇게 화자의 생각이 쭉 나열되어 있는 것이 이 소설의 특징이란다. 그리고 직접 찍은 사진들도 첨부해 있는데, 이런 사진들 때문에 더더욱
소설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아빠가 소설의 전형적인 형식을 깬 여러 소설들을 읽어본 적이 있지만, 이 소설은 그런 형식을 깬 소설의 최고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단다.
….
2.
어떤 사람들은 가끔 어려운 책들도 읽어야 한다고 말하곤 한단다. 그리고 읽다 보면 고귀한 문구를
만나는 경우도 있다고 했어. 또 어떤 사람들은 읽다가 내용이 어렵다면,
읽기를 중단하고 나중에 다시 읽어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단다. 아빠는 읽기 어려운
책도 일단 집어 들었으면 끝까지 읽으려고 한단다. 중단한 책은 트라우마로 나중에도 다시 집어 들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야. 세상에 읽을 책들이 얼마나 많은데, 읽다
만 책을 다시 집어 들겠냐 말이야.
…
아빠가 이 책을 너무 읽기 어렵다고만 이야기를 했는데, 그래도 공감 가는 문단들은 있었어. 특히 그 환경에 대한 그의 인식이 마치 <녹색평론>을 읽는 느낌이었단다. 1990년대 이미 지구 환경을 걱정하며
책을 통해서 경고를 했지만, 세계의 권력자들은 ‘환경보다
권력’이니까… 그가 비료와 농약의 경고한 글을 한번 읽어보자꾸나. 환경학자라 불러도 손색이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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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매년 수천톤의 수은, 카드뮴, 납과 산더미처럼 많은 비료와 농약이 강을 거쳐 독일의 바다로 흘러든다. 대부분의
중금속과 여타의 독성 물질이 도거뱅크(영국 동북쪽 앞바다의 해역)의
얕은 수역에 침전되는데, 여기에 사는 물고기의 3분의 1은 이미 이상발육과 기형을 안고 태어난다. 면적이 수십 제곱마일에
이르고 깊이가 삼십 피트에 달하는 해안 가까이에 독성 해초무리가 자주 형성되는데, 바다 동물들은 여기서
떼로 고통스런 죽음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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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무분별한 산업 사회에 대한 잔혹성도 이야기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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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113)
그런데도 사람은 지구
표면의 어디에나 존재하며, 매시간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고, 높게
치솟은 탑으로 이루어진 벌집 사이를 움직이며, 모든 개인의 상상력을 훨씬 뛰어넘는 복잡한 네트워크에
점점 얽혀 들어가고 있다. 수천의 케이블과 권양기로 얽혀 있던 과거 남아프리카의 다이아몬드 광산에서도, 쉴 새 없이 지구 위를 몰려다니는 정보의 흐름에 휩싸인 증권거래소와 중개업소 사무실에서도 그러하다. 비행기가 해변을 지나 녹색 젤리처럼 펼쳐진 바다로 접어들 무렵, 나는
이런 고도에서 우리 자신을 내려다보면 우리가 우리의 목적과 결말에 대해 얼마나 아는 것이 없는지가 끔찍하리만큼 분명해진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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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에 대한 비판도 하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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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
이른바 퇴근 뒤에도 멈출
줄 모르고 머릿속을 맴도는 끝없는 생각, 잘못된 실을 붙잡았다는, 꿈속까지
파고드는 느낌이 사람을 막다른 골목과 낭떠러지로 몰아가는 이해하기는 쉽지 않으리라. 이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는데, 직조공들이 그렇게 정신병을 앓았던 반면, 산업혁명이
시작되기 직전의 몇십년 동안 노리치의 제조공장에서 생산된 많은 비단들은 – 비단 브로케이드와 물결무늬의
태비넷, 쌔틴과 쌔티넷, 캠블릿과 채버렛, 프루넬라와 플로렌틴, 디아망테와 그레나딘, 블론딘, 봄바진, 베르아일과
마르띠니끄 등 – 실로 환상적인 다양성과 말로는 거의 묘사할 수 없고 빛깔이 연신 아른거리며 변하는, 새의 깃털처럼 자연이 스스로 만들어낸 것 같은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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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으로 오늘 편지를 마치려고 해. W.G. 제발트의 다른 책들을 더 읽어봐야 하나 고민이
생기더구나. 고생을 또 해가며 읽어야 하나 싶어서…
.
PS:
책의 첫 문장: 한여름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던 1992년 8월, 다소 방대한 작업을 끝낸 뒤 나는 내 안에 번져가던 공허감에서
벗어나고자 영국 동부의 써퍽 카운티로 도보여행을 떠났다.
책의 끝 문장: 그리고 비단 상인의 아들이었으니 비단을 보는 안목이 있었을 토머스 브라운은
<널리 진실로 오인되는 견해들>의 내가 다시 찾아내지는 못한 어느 부분에서 당대의
네덜란드 습속에 대해 적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당시 그곳에서는 망자의 집에 있는 모든 거울과 풍경이나
사람 혹은 들판의 열매가 그려진 모든 그림들을 슬픔을 표현하는, 비단으로 만든 검은 베일로 덮는 습속이
있었고, 이는 육신을 떠나는 영혼이 마지막 길을 가면서 자기 자신을 보거나 다시는 보지 못할 고향을
보고 마음이 산란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저택을 둘러본 뒤 다시 바깥으로 나왔을 때, 대부분의 문이 열려 있는 큰 새장 안에 외로이 남은 중국 메추라기 한 마리가 새장 오른쪽 측면의 창살을 따라 연신 왔다갔다하는 것을 보고 나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치매에 걸린 것이 분명한 그 새는 뒤돌아설 때마다 도대체 어떻게 자신이 이런 암담한 상황에 빠지게 된 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곤 했다. 서서히 어둠 속으로 침잠해가는 저택과 달리 주위의 녹지는 쏘머레이톤의 영예롭던 시절이 끝나고 나서 한 세기가 지난 지금, 바야흐로 그 진화의 정점에 도달해 있었다. 물론 그 시절에 화단과 묘상들은 더 화려하고 손질이 잘돼 있었겠지만, 모든 폐토가 심어놓은 나무들은 이제 녹지 위의 하늘까지 가득 채우고 있었으며, 더러 4분의 1모르겐(약 이천오백 평에 해당하는 과거 땅넓이의 단위)에 이를 만큼 넓게 몇몇 가지를 뻗어 당시에 이미 방문객들을 놀라게 한 삼나무들은 이제 저마다 하나의 완전한 세계를 이루고 있었다. - P49
상상하기도 어려운 이런 막대한 양에도 불구하고 자연사학자들은 인간이 생명의 순환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파괴의 작은 일부에만 책임이 있으며, 독특한 생리학적 조직 덕택에 청어는 고등동물이 죽을 때 느끼는 몸과 영혼이 두려움과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놓았다. 하지만 실은 우리는 청어의 감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우리가 아는 것이라고는 청어의 골격이 이백 개가 넘는 다양하고 지극히 복잡하게 구성된 연골과 뼈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뿐이다. - P73
때로는 우리는 이 지구에서 사는 데 결코 적응할 수 없는 종류의 인간들이고, 삶이란 끝없이 진행되는, 이해할 수 없는 거대한 실수라는 생각이 듭니다.(It seems to me sometimes that we never got used to being on this earth and life is just one great, ongoing incomprehensible blunder) -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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