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143)

니체는 유혹하는 자 역으로 적격이다. 아니, 최고라고 할 수 있다. 그의 편이 되고 싶을 정도이다. 그는 내 귀에 대고 속삭이며 나를 오싹하게 하는 동시에 매혹시킨다. 넌 영광과 권력을 얻고 싶어 하고, 다른 이들로부터 존경받고 싶어 하고, 억만장자가 되고 싶어 하고, 혹은 세상 모든 여자들을 유혹하고 싶어하면서, 이런 생각들을 품는 자기 자신을 책망하지. 그래, 어쩌면 이것들은 천박한 열망들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실제적인 것들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이것들은 우리가 이기거나 질 수 있는, 승리하거나 패배할 수 있는 영역에서 펼쳐지는 반면 기독교적 모델에 따른 내적인 삶은 반박 받을 위험이 전혀 없는 이야기들을 스스로에게 들려주기 위한, 그리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스스로가 보기에 존경할 만한 존재가 되기 위한 확실한 테크닉이라 할 수 있어.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믿는 것은 순진하고 비겁하고 헛된 생각일 뿐이야. 모든 것을, 각 사람의 구원을 일종의 장애물 경주를 설정해 놓은 신이 마련한 시련들로 해석하는 것은 웃기는 망상일 뿐이라고. 사람들은 자신에게 헛된 이야기들을 들려주지 않는 능력으로 심판되어야 해 그리고 우리는 예수의 말과는 반대로 사람들을 심판해야 해. 현실을 대신하는 허구들, 위안이 되는 허구들이 아니라 현실 자체를 사랑하는 능력으로 심판되어야 해. 사람들은 각자가 감당할 수 있는 진실의 양으로 심판되어야 한다고.

(152)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는데, 그가 불쑥 입을 열더니 어린 시절에 자기를 무척 놀라게 한 일이 하나 있었다, 자기 할머니의 앵무새가 새장을 열어 주었는데도 도망가지 않아서 정말 놀랐다고 말한다. 앵무새는 날아가니 않고 바보처럼 그냥 거기 남아 있었단다. 할머니는 그 비결을 설명해 주었다. 새장 안쪽에다 조그만 거울을 하나 놓아두면 된다는 거였다. 앵무새는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는 게 너무 좋아 거기에 홀딱 빠져든 나머지, 활짝 열린 새장 문도, 날갯짓 한 번이면 도달할 수 있는 바깥과 자유도 보지 못한다는 거였다.

(160)

예수라는 인물은 우리에게 계시의 빛을 비추거나, 아니면 눈을 멀게 하거니 둘 중 하나이다. 나는 그것을 정면으로 접근하고 싶지 않다. 나중에 근원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야 할 필요가 있을지라도, 우선은 이 조사를 하류에서부터 착수하여, 바오로의 서신들과 <사도행전>을 최대한 주의 깊게 읽어 나가는 것부터 시작하고 싶다.

(359)

지금까지 내가 쓴 모든 것은 다들 알고 있고, 거의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얘기들이다. 나는 2천 년전부터 모든 기독교 역사가들이 해왔던 것을 나름의 방식으로 다시 한 번 해봤다. 즉 바오로의 서신들과 <사도행전>을 읽어 보고, 그것들을 서로 겹쳐 보고, 얼마 안 되는 비기독교 자료들과 대조할 수 있는 부분은 대조해 보았다. 나는 이 작업을 정직하게 수행했으며, 내가 얘기하는 것의 개연성의 정도에 대해 독자를 속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바오로가 카이사리아에서 보낸 2년에 관해서는 나는 아무것도 없다. 단 하나의 자료도 없다 따라서 나는 자유롭게 이야기를 꾸며 낼 수 있으며, 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535)

지금까지 나는 그에 대해서는 거의 얘기를 하지 않았다. 이제야 하려 하지만 좀 겁이 나는데, 왜냐하면 요한은 제1세대 기독교도 중에서 가장 신비스러운 인물이기 때문이다. 가장 파악하기 힘들고, 가장 다양한 얼굴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는 곧 네 번째 복음서와 묵시록을 쓴 사람으로 여겨지게 된다. 그는 곧 네 번째 복음서와 묵시록을 쓴 사람으로 여겨지게 된다. 하지만 동일한 사람이 네 번째 복음서와 묵시록을 썼다고 생각하는 것은, 20세기 프랑스 문학에 대한 모든 참고 자료가 없어진 상황에서 동일 인물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밤의 끝으로의 여행>을 썼다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586-7)

서기 70년까지, 기독교도는 일종의 유대인이었다. 이런 혼동은 기독교도들에게 나쁘지 않은 것이었으니, 제국은 유대인들을 모두 동일시하고, 또 대체로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처음으로 구별이 행해졌는데, 이 구별은 기독교도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았다. 로마 대화재에 대한 보복으로 불태워 죽인 것은 그들이었지, 유대인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반란이 진압되고 나서 유대인들이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여겨지고, 그동안 누려 왔던 기분 좋은 특권들을 모두 박탈당한 추방자의 위치로 전락했을 때, 기독교도들로서는 그들과 구분되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70년까지 그들 교회의 중심인물은 야고보와 베드로와 요한 등, 유대교의 전통에 충실한 유대인들이었다. 바오로는 그가 죽은 후에는 더 이상 아무도 입에 올리지 않는 비주류의 말썽꾼이 불과했다. 그런데 70변부터 모든 게 바뀐다. 야고보의 교회는 광야의 모래 속에 사랴져 버렸고, 요한의 교회는 편집광적인 비의주의자들의 종파로 변했다. 바오로와 그의 탈유대적 교회에게 때가 온 것이다. 이제 바오로 자신은 없었지만, 그의 지지자들이 세계 도처에 흩어져 있었다. 루카는 이 바오로의 기독교 내 중진 중의 하나였다. 고향에 돌아온 그는 자신은 완전히 은퇴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이야기는 끝났고, 게임은 진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옛 동지들이 아니냐, 모든 게 다시 시작돼, 우리에게 당신이 필요해,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676)

기독교는 하나의 살아 있는 유기체이다. 이것은 성장하면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어떤 것이 되었는데, 이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어떤 아이가 아무리 아름답다 한들, 그 아이가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기를 바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아이로 남아있는 아이는 죽은 아이, 기껏해야 지진아일 뿐이다. 예수는 이 유기체의 유년기였고, 바오로와 초기의 교회는 반항적이고 열정적인 청소년기였다. 콘스탄티누스의 개종과 더불어 서구기독교의 긴 역사가 시작된다. 다시 말해서, 무거운 책무들과 대단한 성공들과 엄청난 권한들과 타협들과 부끄러운 과오들로 채워지는 성인(成人)의 삶과 전문적 커리어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계몽사상과 근대성은 은퇴의 시간이 왔음을 알렸다. 이제 교회는 실무에서 물러났고, 전성기가 지났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우리가 아주 무관심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그것의 노년이 과연 고약한 치매증 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자신의 노년에 이르고 싶어 하는 적어도 나는 그렇다 그 빛나는 지혜 쪽으로 향해 가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우리들의 삶의 차원에서 이 모든 것을 경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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