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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평점 :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줄리언 반스의 신간이 출간될 때마다
많은 이들이 열광을 하더구나. 그의 소설들이 그렇게 좋은가? 아빠는
그의 소설을 한번도 읽은 적이 없었어. 많은 이들이 왜 그렇게 좋아할까? 2011년 맨부커상 수상을 비롯하여 여러 문학상들을 수상한 이력이 있더구나.
아빠도 한번 읽어보고 싶어서, 그에게 맨부커상 수상의 영광을 안겨준, 그의 대표작이자 영화로도 만들어진,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라는 소설을 읽었단다.
음..
이 소설은 나도 모르게 화가 나서 내뱉은 말이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단다. 그것도 정작 이야기하거나 행동을 한 이는 금방 잊었는데, 그것을 당한 이는 크게 상처 받은 이야기.
아빠는 영화는 보지 못했지만, 소설을 읽다 보니, 영화가 어떻게 그려질지 상상이 가더구나.
1.
주인공 토니 웹스터는 고등학교 시절
콜린, 앨릭스와 절친이었어. 늘 셋이 붙어 다녔지. 그러다가 전학 온 에이드리언 핀이 그들과 함께 어울려서 4인방이
되었어. 에이드리언은 다른 이들과 달리 지적이고 철학적이기까지 했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들은 각기 다른 대학교에 진학을 했어. 에이드리언은 명문 케임브리지
대학에 입학을 했단다. 토니는 스무 살에 베로니카라는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어. 첫사랑이었지. 여름 방학 때는 베로니카에 집에 가서 베로니카의 식구들과
지내기도 했고, 베로니카를 콜린, 엘릭스, 에이드리언에게 소개해 주기도 했어. 사랑스러운 애인이 생겼으니 얼마나
자랑하고 싶었겠어. 베로니카가 자신의 오빠 잭과 같은 학교에 다니는 에이드리언에게 관심을 보였다는 것이
살짝 마음에 걸리긴 했어.
…
토니는 베로니카와 2년 정도 사귀다가 헤어졌단다. 그런데 얼마 후 에이드리언으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어. 자신이 베로니카와 사귀어도 되냐고 말이지… 화가
난 토니는 에이드리언에게 절교하겠다는 편지를 보냈어. 그렇게 첫사랑은 짧고 허무하고 끝나고 잊혀져 갔단다.
2.
베로니카와 헤어지고 나서 얼마 후 토니는
미국 여행을 한창 동안 다녀온 일이 있었어. 집에 돌아오자, 충격적인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어. 에이드리언의 자살 소식. 충격적인
사건이었지만, 시간은 또 충격을 닳아 없어지게 만들었단다. 시간은
잘도 흘러 갔어. 토니는 마거릿을 만나 결혼을 했고, 수지라는
딸을 낳았어. 베로니카와 첫사랑은 그저 먼 과거 속에 한쪽도 안 되는 추억이 되었어. 결혼한 지 12년이 되었을 때 그는 이혼을 하고 그 이후에는 줄곧
혼자 지냈단다. 이혼한 다음에도 수지의 아버지 역할은 충실해 했으며,
마거릿과도 여전히 연락을 하며 지내고 가끔 만나 식사도 같이 하고 그랬어. 부부 사이에서
친구 사이가 되었다고나 할까. 시간은 잘도 흘러 육십 대, 머리
벗겨진 할아버지가 되었단다.
…
그런데 어느날 베로니카의 엄마인 포드
부인이 죽으면서 토니에게 500달러를 남겼으니 받아가라는 편지를 받았어. 왜? 베로니카의 엄마 사라 포드는 그가 베로니카의 집에 갔을 때
딱 한 번 본 것이 전부였는데.. 왜, 그에게 500달러를 남겼을까. 그런데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어. 40여 년 전 에이드리안의 일기를 포드 부인이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도
토니에게 전해주라고 했다는 거야. 그런데, 토니가 받은 것은 500달러뿐이었어. 토니는 궁금했어.
에이드리언이 왜 일기를 자신에게 전해주려고 했을까. 그리고 왜 에이드리언의 일기를 베로니카도
아닌 포드 부인이 보관하고 있었을까.
…
토니는 베로니카의 연락처를 알아내서
연락해 보려고 했지만, 토니의 연락을 받지 않았어. 법정
소송을 하면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을 받을 수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어. 토니는 그저 궁금했던 거야. 베로니카에게 계속 메일을 보냈지만, 계속 무시를 했어. 그러다가 연락이 왔어. 만나자고 했어. 그렇게 토니와 베로니카는 40여 년 만에 만났어.
3.
베로니카는 40년이 지나도 여전히 차가웠어. 예전 그 모습이었지. 토니가 오랜 만에 만난 첫사랑과 어색한 분위기를 깨보려 이야기를 해보았지만,
냉담한 분위기만 풍기던 베로니카.. 토니가 만나자고 했던 이유, 일기장을 전달해달라고 했어. 베로니카는 차가운 시선 그대로 유지한
채 일기장을 태워버렸다고 했어. 그래도 첫사랑이고, 세월이
한참 흘러서 황혼기에 다시 만났는데, 좀더 부드러운 분위기로 만날 수 있을 것 같은데, 베로니카는 웃음 한번 짓지 않고 차가운 시선만 보내다가 금방 자리를 일어났단다.
그런 만남이 두어 번 있었는데, 모두 비슷한 분위기였어. 왜 그럴까… 그리고 베로니카가 편지 하나를 전해주었어. 집에 와서 토니는 편지를
펴봤어. 아주 오랜 전에 토니가 베로니카와 에이드리언에게 보낸 편지였어. 하지만, 자신은 기억하지도 못하는 편지였어. 에이드리언이 베로니카와 사귄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고 나서 보낸 편지 같은데,
토니는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었어. 버림을 받아서 화가 난 상태에서 보낸 편지였으니
내용이 좋지는 않았겠지. 40여 년이 지나고 나서 읽어본 내용은 낯 뜨거울 정도의 내용이었어. 그들을 조롱하고 욕하는 것을 넘어서 저주의 말들을 쏘아붙였어. 이제
와서 미안해하고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
…
베로니카가 토니를 데리고 어떤 보호소를
데리고 갔어. 그곳에는 정신 지체를 가지고 있는 한 어른이 한 명 있었는데, 누가 봐도 에이드리언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단다. 에이드리안과
베로니카의 아들인 것 같았어. 그러나 정상이 아니고 지체 장애라니..
토니는 다시 한번 자신이 썼던 편지 내용이 떠올랐어. 자신이 쏟아 부은 저주의 말이 씨가
된 것 같았거든. 그런데 더욱 충격적인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었어. 그
에이드리언의 아들의 엄마가 베로니카가 아닌 사라 포드였다는 거야. 진실을 알면 알수록 토니는 괴로워했고, 이 모든 것들이 자신이 우발적으로 쓴 편지도 영향을 주었을 거라 생각했어. 진심으로
베로니카에게 사과를 해 보았지만, 지금 와서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어.
그러면서, 토니는 인생의 참 모습을 생각해 보았단다. 우리
인생은 고통이지, 그 고통 속에서 또 의미를 찾아가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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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
인생에 대해 내가 알았던 것은 무엇인가, 신중하기 그지없는 삶을 살았던 내가. 이긴 적도, 패배한 적도 없이, 다만
인생이 흘러가는 대로 살지 않았던가. 흔한 야심을 품었지만, 야심의
실체를 깨닫지도 못한 채 그것을 위해 섣불리 정착해버리지 않았던가. 상처받는 게 두려웠으면서도 생존력이라는
말로 둘러대지 않았던가. 고지서 납부를 하고, 가능한 한
모든 사람들과 무난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았을 뿐, 환희와 절망이라는 말은 얼마나 지나지 않아 소설에서나
구경한 게 전부인 인간으로 살아오지 않았던가. 자책을 해도 마음속 깊이 아파한 적은 한 번도 없지 않았던가. 이 모든 일이 따져봐야 할 일이었고, 그러는 동안 나는 흔치 않은
회한에 시달렸다. 그것은 상처받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큰소리쳤던 인간이 비로소 느끼게 된 고통, 그리고 바로 그랬기 때문에 느끼게 된 고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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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은 참 덧없고, 세월은 참 빠른 것 같구나. 아빠도 무심결에 내뱉은 말 한 마디로
후회하는 경우가 참 많단다. 혹시 아빠도 모르게 던진 말이나 행동이,
누군가에 깊은 상처가 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문득 들더구나. 줄리언 반스의 소설은 처음
읽어본 것인데, 나름 괜찮았던 것 같아. 짧은 소설 속에
괜찮은 문장들도 많이 담겨 있었단다. 스토리를 쫓아가는 것 외에도 그의 문장 속에서 잠시 읽던 책을
멈추고, 생각에 잠기게 하는 문장도 많아서 좋았단다. 예를
들어… 아래 이야기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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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그러나 시간이란… 처음에는 멍석을 깔아줬다가 다음 순간 우리의 무릎을 꺾는다. 자신이 성숙했다고 생각했을 때 우리는 그저 무탈했을 뿐이었다. 자신이
책임간 있다고 느꼈을 때 우리는 다문 비겁했을 뿐이었다. 우리가 현실주의라 칭한 것은 결국 삶에 맞서기보다는
회피하는 법에 지나지 않았다. 시간이란… 우리에게 넉넉한
시간이 주어지면, 결국 최대한의 든든한 지원을 받았던 우리의 결정은 갈피를 못 잡게 되고, 확실했던 것들은 종잡을 수 없어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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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S:
책의 첫 문장: 특별한 순서 없이, 기억이 떠오른다.
책의 끝 문장: 거기엔 축적이 있다. 책임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 너머에, 혼란이 있다. 거대한
혼란이.
우리는 시간 속에 산다. 시간은 우리를 붙들어, 우리에게 형태를 부여한다. 그러나 시간을 정말로 잘 안다고 느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지금 나는 시간이 구부러지고 접힌다거나, 평행우주 같은 다른 형태로 어딘가에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이론적인 얘길 하는 게 아니다. 그럴 리가, 나는 일상적인, 매일매일의, 우리가 탁상시계와 손목시계를 보면 째깍째깍 찰칵찰칵 규칙적으로 흘러감을 확인하는 시간을 말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초침만큼 이치를 벗어나지 않는 게 또 있을까. 하지만 굳이 시간의 유연성을 깨닫고 싶다면, 약간의 여흥이나 고통만으로 충분하다. 시간에 박차를 가하는 감정이 있고, 한편으로 그것을 더디게 하는 감정이 있다. 그리고 가끔, 시간은 사라져버린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이 정말로 사라져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내 학창시절에 대해선 그다지 관심이 없기 때문에 결코 그때가 그립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 - P12
그렇다면 문제는, 수많은 것들이 걸린 그런 문제로 인한 손실에 어떻게 대처할까이다. 상처를 인정할 것인가, 아니면 억누를 것인가. 또 그 상처는 우리의 대인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가. 상처를 받아들여 중압감을 덜어보려는 사람도 있을 테고, 상처받은 이들을 돕는 데 한평생을 바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더 이상 상처받지 않는 것을 주된 목표로 삼는 사람도 있다. 이들이야말로 피도 눈물도 없는 부류이자, 가장 조심해야 할 부류다. - P81
젊을 때는 서른 살 넘은 사람들이 모두 중년으로 보이고, 쉰 살을 넘은 이들은 골동품처럼 느껴진다.그리고 시간은, 유유히 흘러가면서 우리의 생각이 그리 크게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해준다. 어릴 때는 그렇게도 결정적이고 그렇게도 역겹던 몇 살 되지도 않는 나이차가 점차 풍화되어간다. 결국 우리는 모두 ‘젊지 않음’이라는 동일한 카테고리로 일괄 통합된다. 내 경우는 그런 문제로 신경 쓰인 적이 한 번도 없지만. - P107
마거릿은 여자는 두 종류라고 말하곤 했다. 매사에 분명한 여자와 미스터리를 남겨두는 여자. 그리고 이는 남자가 여자를 볼 때 가장 먼저 감지하는 것이자, 가장 먼저 그를 매료시키거나 그렇지 않게 하는 요소였다. 남자들마다 끌리는 유형은 각기 다르다.
- P116
시간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마흔은 아무것도 아니야. 쉰 살은 돼야 인생의 절정을 맛보는 거지. 예순은 새로운 마흔이야… 시간에 대해 내가 아는 건 이 정도다. 객관적인 시간이 있다. 그리고 주관적인 시간도 있다. 가령 손목의 요골동맥 바로 옆에 시계의 앞면이 오도록 차는 경우, 이런 사적인 시간이야말로 진정한 시간이며, 기억과 맺는 관계 속에서 측정될 수 있다. 그래서 이 기묘한 일이 일어났을 때 – 새로운 기억이 느닷없이 나를 엄습했을 때 – 는 마치 시간이 거꾸로 흐른 것만 같았다. 그 순간, 마치 강물이 역류한 것 같았다. -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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