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황현산 지음 / 난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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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황현산님의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이란 책을 읽었단다. <밤이 선생이다> 이후 황현산님의 책은 이번이 두 번째였어. 아빠가 황현산님을 알게 된 것은 노회찬님 덕분이란다. 노회찬님이 청와대를 방문하면서 김정숙 영부인께 책 선물을 한 권 하셨는데, 그 책이 <밤이 선생이다>라는 책이었거든. 그래서 그 당시 아빠도 <밤이 선생이다>라는 책을 읽었어.  

2018년 여름 황현산님의 신간 소식을 들은 지 얼마 안되어 아빠가 존경하는 노회찬님이 세상을 떠나셨고, 그리고 얼마 안 되어 황현산님도 지병으로 돌아가셨어. , 가슴이 아프구나. <밤이 선생이다>라는 책을 읽고 있을 때는 두 분다 생존해 계셨었고, 그들의 좋은 글들과 말씀을 오랫동안 만나길 기대했었는데…., 그리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을 읽을 때는 두 분 모두 이 세상에 안 계시다니그렇게 생각하니 슬프고도, 세월의 무상함도 느껴지는구나. 두 분이 지금쯤 어딘가에서 만나 담소를 나누고 계셨으면 좋겠구나.

 

1.

뒤늦게나마 황현산님을 기리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단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황현산님의 책은 이번이 두 번째였는데, 지난 번에 읽은 책보다 이번이 더 좋았단다. <밤이 선생이다>와 마찬가지로 이 책 역시 여러 매체에 실었던 글들을 모아 놓은 것이었어. 나이를 먹으면 보수적으로 변하기도 하는데, 황현산님은 그렇게 변하시지 않고, 우리 사회를 냉철한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미래 시대를 걱정을 해주시는 따뜻한 마음을 지닌 분인 것 같았어.

이 책을 읽는데, 계속 떠오른 단어가정갈하다라는 말이었단다. 글이 정갈하다라는 뜻도 정확히 모르면서 그 단어가 계속 떠올랐단다. 정갈하다 : 깨끗하고 말쑥하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이렇게 뜻이 정의되어 있더구나. 그러면 아빠가 이 책을 보면서 느낀 감정을 제대로 느낀 것 같았어. 깨끗하고 말쑥한 글들이었어. 그리고 이 책은 이 시대의 역사라고 할 수도 있단다. 이 책은 2013년부터 2017년까지 그의 글들이 실려 있단다. 역사라 이야기하기에는 5년은 짧은 기간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참 많은 일들이 있어났던 기간이고, 암흑의 시대에서 빛의 시대로 대반전이 일어난 시기가 아니더냐. 아빠도 시민의 한 사람으로써도 이 시절은 평생 잊지 못할 시기 중에 하나이니까 말이야.

이 책을 읽다 보면, 암흑의 시대에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시스템에 대한 날 선 비판들이었어. 그 암흑의 시대를 지나서 나서 그 글들을 읽으니, 분개가 덜 했던 것 같았어. 만약 암흑의 한 가운데서 언제 빛의 시대가 올 지 모르는 그 시절에 황현산님의 글들을 읽었다면 절대 공감을 하면서도 더욱 분개를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들었단다. 2013, 2014, 2015, 2016우리가 얼마나 많은 일들로 가슴 아프고, 억울해했었니.. 다시는 그런 암흑의 시대로 돌아가지 않도록 더욱 정신을 바싹 차려야 한단다. 빛의 시대에 오래 살다 보면 빛의 고마움을 모르게 될 수도 있어. 그리고 많은 언론과 거짓 정치인의 입 발림에 속을 수도 있거든. 그들은 예전에도 그런 작전이 성공해서 암흑의 시대로 만든 기억을 아직 가지고 있고 말이지.

문득 황현산님을 비롯하여 나이를 먹음에도 보수적으로 변하지 않고 진보의 가치를 가지고 계신 분들은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생각해 보았어. 그들의 공통점은 꾸준히 공부하고 책을 많이 읽고 글을 많이 쓰고 계시는 것 같았단다. 아빠도 그들처럼 나이 먹고 변하지 않고,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서더욱 열심히 공부하고, 더욱 열심히 읽고 더욱 열심히 써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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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은 어떨까? 게으름과 진보의 관계는? 아빠가 게으름을 좀 고쳐보려고 하는데 쉽지 않거든 말이야.  이 책을 읽은 지가 언제인데, 이제서야 너희들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있으니 말이야. 앞으로는 독서편지가 밀리지 않게 노력을 조금은 해볼게. 기억이 좀더 온전할 때 너희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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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참, 오늘은 책에 대한 내용은 많이 못해주었구나. 이 책에서 아빠가 인상적인 구절을 잔뜩 발췌해 놓은 글이 있으니 책에 대한 내용은 그 글로 대신하자꾸나.

 

PS:

책의 첫 문장 : 박새를 민간에서는 흔히 머슴새라고 부른다. 저녁 어스름이나 해가 뜰 무렵에 이랴낄낄! 이랴낄낄! 소를 몰아 밭 가는 소리로 크게 울어대기 때문에 붙은 별칭이다.

책의 끝 문장 : 장석남은 새해에 쉰셋이 된다.


(22-23)

긴말이 필요 없이 우리에게 전쟁은 민족의 공멸을 뜻한다. 남북의 삶이 뿌리까지 파괴되고 민족이 돌이킬 수 없는 불행에 빠지게 된다면 경제적으로 부를 쌓은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으며, 젊은 두뇌들이 학문을 연마하고 재주 많은 사람들이 문예의 꽃을 피운들 그게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민족의 한쪽이 나쁜 결정을 내리지 않도록 도와야 하는 것은 우리다. 남북은 가장 가까운 핏줄로 연결되어 있고, 수천 년 동안 같은 운명 앞에 거 있었고, 또다시 긴박한 위험을 목전에 두고 같은 운명을 고뇌하고 있다. 함께 번영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실천하는 지혜가 진정한 앎이며, 한쪽의 동포가 비극적인 결단을 내리지 않도록 도울 수 있는 힘이 진정한 국력이다. 거기에서가 아니라면 한 국가의 자존심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2013.4.13)

(44)

‘곤반불레’라는 풀이 있다. 눈이 녹고 밭고랑의 보리 순이 생기를 얻기 시작할 때, 우리네 들판 어디서나 파랗게 돋아나는 풀이다. 전라도 남쪽 지역에서는 초봄에 그 어린 풀을 보리 순과 섞어 된장국을 끓인다. 깊은 향취가 있다. 홍어 내장을 조금 넣는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46)

문학의 언어는 고백의 언어이면서 동시에 토론의 언어다. 이를테면 시의 여러 기능 가운데는 방언을 떠나서는 표현될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의 은밀한 구석에 선명한 이미지를 만들어주고 그것을 공공의 언어로 표현하는 일도 포함된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방언을 버리고 시를 써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한 사람에게 진실인 것은 어느 날 다른 사람에게도 진실이 되듯이, 지극히 은밀한 방언의 정서도 공공성의 빛 속으로 개화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74)

악마는 용의주도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그렇게 아우성을 쳤고 여전히 아우성을 치건만, 저 위험한 배를 비정규직들이 몰아도 그것을 예삿일로 여기도록 끝내 세상을 훈련시켰다. 악마는 제 시선을 벗어난 사람들이 그 몰상식을 고발하더라도 그들을 ‘종북 빨갱이’로 몰도록 프로그램된 사람들을 높은 자리, 낮은 자리에 뿌려놓았다. 악마의 친화성도 한몫을 했다. 기우뚱거리는 배에 수많은 사람을 태워 바라도 내보내는 회사에 그것을 감시해야 할 사람들이 상을 주었다. 감시해야 할 사람들과 또 그것을 감시해야 할 사람들을 악마가 차례차례 포섭한 것이다.

(97)

언어는 사람만큼 섬세하고, 사람이 살아온 역사만큼 복잡하다. 언어를 다루는 일과 도구가 또한 그러해야 할 것이다. 한글날의 위세를 업고 이 사소한 부탁을 한다. 우리는 늘 사소한 것에서 실패한다.

(101)

인간의 깊이란 의식적인 말이건 무의식적인 말이건 결국 말의 깊이인데, 한 인간이 가장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으면서도, 그 존재의 가장 내밀한 자리와 연결된 말에서만 그 깊이를 기대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학문이, 특히 인문학이 제 나라 말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어떤 언어로 표현된 생각은, 그 생각이 어떤 것이건, 그 언어의 질을 바꾸고, 마침내는 그 언어를 일상어로 사용하는 세상을 바꾼다. 정의라는 말이 없다면 우리의 인간관계와 제도가 달라졌을 터인데, 정의를 ‘저스티스’라고 한다고 해서 그 내용이 훼손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의’를 세상에 실현하기 위해 쏟아 부은 온갖 역사적 노력과 그 말을 연결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학문에서 제 나라 말을 소외시킨다는 것은 제 삶과 역사를 소외시키는 것과 같다.(2014.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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