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그러다가 성인이 되어 우연찮게,
썩 탐탁지 않은 마음으로, 룰도 제대로 모른 채 축구를 시작한 여자들이 있다. 그들은 숨이 턱에 찰 때까지 넓은 피치 위를 뛰어다니고, 공 다루는
섬세한 기술들을 하나둘씩 익혀가고, 팀원들끼리 호흡을 맞춰 골대를 향해 공을 착착 몰고 가는 재미에
푹 빠지며 ‘아, 사실 나는 운동을 좋아하는구나’를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운동에 대한 깊고 오랜 오해 하나가 풀렸을
뿐인데 그녀들에게 축구를 시작한 이후의 시간들은 전과 다른 시간이 되었다.
(34)
이렇게 운동 효과 면에서나 대외 이미지나 일상 활용성에서 모두
애매하디 애매한 운동이면서, 결정적으로 접근성까지 낮다. 다른
운동처럼 여기저기 배울 곳이 있고 정보가 널려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저런 경로로 열심히 검색해 봐야 하나씩 겨우 나온다. 이 모든 것이 여자들이 그라운드로 진입하는 것을 겹겹이 막으며 철통 수비하고 있다. 축구로 입문하는 과정 자체가 이미 하나의 축구인 것이다.
(36-37)
나는 어느 날 우연히 호나우두가 스텝오버하는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보통 헛다리를 짚을 때는 달리는 속도가 확 줄기 마련인데 그런 기색 하나 없이 수비수들을 휙휙
제치고 죽죽 나아가고 있었다. 아니, 저게 가능한가? 물리학적으로 말이 되나? 마지막에는 골키퍼까지 스텝오버로 제치고
골을 꽂아 넣는데, 축구가 저렇게까지 아름다울 노릇인가 어이없을 정도였다. 우아한 헛다리와 그물 안으로 감겨들어 가는 공의 궤적과 관중들의 얼굴에 역력한 감동의 흔적. 어마어마한 규모의 관중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지만 세상이 잠시 숨을 죽인 것 같은 시간이었다. 그때부터 축구에 본격적으로 빠져들어 오랫동안 호나우두를 따라다니며 해외 축구를 찾아봤다. (새벽 중계가 대부분이어서 오랜만에 AM 김혼비가 맹활약했다.)
(43)
반면 남의 축구는 거의 보지 않는 이 ‘축구하는 여자들’ 머릿속에 뜨는 것들은 본인이 넣었던 첫 골, 본인이 경기 중 저지른 뼈아픈 실책, 우리 팀이 역전승하던 날, 우리 팀 유니폼 같은 것들일 것 같다. 그 속에는 오직 나 자신, 내가 속한 팀만이 있다. 어느 프로 축구팀의 어느 유명 선수가 끼어들
틈 없이. ‘축구’와 관련해서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자신의
몸에 새겨진 경험들로만 꽉 채워져 있는 여자들. 오, 생각해
보니 이건 이거대로 멋있잖아?
(64)
이게 다 아웃사이드 드리블 때문이다. 아웃사이드 드리블은 발 바깥쪽을 이용해서 새끼발가락이 공 밑 부분에 살짝 들어가듯 차, 공을 밀어내며 전진하는 것을 말한다. 이 드리블 최고의 장점은 수비를
속일 때 아주 유용하다는 점이다. 이쪽으로 갈 것처럼 몸을 기울여서 상대 선수가 덩달아 그쪽으로 몸이
기운 틈을 타 반대쪽으로 휙 빠져나가기 좋기 때문이다. 축구에서 가장 짜릿한 순간이라면 단연 ‘슛! 골인’이겠지만, 수비를 휙휙 제치며 빠져나가는 순간도 그 못지않게 매력적이다. 나를
축구로 확 끌어들인 장면도 호나우두의 골이 아니라 헛다리 짚기 아닌가! 로빙슛의 그날, 우리 주장이 보여 줬던 현란한 페인트 동작은 또 어떻고!
(67)
공을 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는 순간 어쩐지 공을 헛
찰 것 같고, 발, 발등,
새끼발가락, 땅을 딛고 있는 반대편 다리로 온 신경이 분산되면서 스텝이 엉키거나 힘이 지나치게
들어가 공을 이상하게 차고 만다. 인간이란 무언가를 의식하는 순간 그 의식의 대상에 필요 이상으로 파괴적인
힘을 주는 게 틀림없다.
(102-103)
오버래핑은 후방에 배치되어 있는 수비수가 공격 지역으로 달려
나와 공격에 가담하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해 수비수가 잠시 공격수가 되는 것이다. 실력도 활동량도 탁월한 선출들은 공격수 자리에 고정시켜 놓는 것보다 수비를 기본으로 하다가 때때로 공격에 가담하도록
하는 것이 팀 전력에 훨씬 도움이 된다. 감독님의 해맑은 전술 ;수비도
잘다고 공격도 잘하자.’가 곧 오버래핑 정신의 구현인 것이다! (물론
감독님이 그걸 의도하고 말했을 리는 절도 없다.)
(142)
그 뒤로도 생각만큼 쉽게 잠잠해지지는 않았다. 얼굴 어딘가에 도발적으로 도사리고 있는데 긴 머리에 가려져 제대로 발현되지 못하고 있는 게 분명할 상큼함과
신선함이 단발을 하는 순간 후두두둑 튀어나올 것만 같고, (하지만 긴 머리가 가리고 있던 건 단지 얼굴, 단지 그냥 얼굴뿐이었다는 슬픈 사실을 곧 마주하게 된다.) 머리
감고 빗는 시간이 줄어 편할 것 같고, (하지만 바쁜 출근 시간에 그놈의 뻗친 머리 펴느라 한참을 낑낑대고
나면 긴 머리보다 훨씬 손이 많이 간다는 사실 또한 마주하게 된다.) 잘려 나간 머리카락 무게만큼 마음도
홀가분해질 것 같고, (반짝 그런 효과가 있지만 앞의 사실들을 마주하면서 점점 무거워진다.) 등등, 어쩐지 삶 구석구석에 작게 뭉쳐 가끔씩 성가신 통증을 유발하는
근육들을 단발이 산뜻하게 풀어 줄 것만 같은 순간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해 봤자 별 거 없다는 걸 알아도
‘이번에는 다르지 않을까?’라는 알 수 없는 희망은 어찌나
잘 생기는지.
(176)
골키퍼의 선방에 막혀 튀어나온 공을 리바운드해서 골로 연결하는
것, 그러니까 내가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바라 마지않았고, 하려고
노력했던 ‘툭 쳐서 주워 먹기’를 드디어 성공했는데, 하필 골키퍼가 나였다. 저 시나리오에서 골키퍼도 내가 되고 주워
먹는 사람도 내가 될 수 있었다니, 정말 생각지도 못한 대반전이다. 마치
폴란드 영화 학교 2학년생이 실존주의에 대해 고민하다가 써낸 단편 영화 시나리오 같다. 살면서 내가 골을 넣는다는 것도 매우 현실성 없는 불가능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는데, 살면서 내가 자책골을 넣는다는 것은 아예 상상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던 일이었다. 그리고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났다. 축구가 진짜 이렇게 전복적인 종합 예술이시다.
(210)
신체 조건상 남자 축구에 비해 힘과 속도가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여자 축구만의 독특한 색깔이 나온다 남자 축구는 뭔가 휙휙 재빠르게 지나가 버리는 느낌이라면, (물론 그게 또 재미지만) 여자 축구는 ‘상대적으로’ 느리고 정적인 몸동작과 전개가 선수들과 공이 만들어 내는
축구의 전체적인 그림을 좀 더 명확하게 보여 준다. 패스 워크라든지,
오프더볼 상황에서의 움직이라든지, 역습 때의 호흡 같은 것들을 그때그때 섬세하게 읽어 내는
재미가 있다. 툭툭 주고받는 짧은 패스들이 중간에 끊기는 일 없이 호쾌한 슈팅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차근차근
따라가다 보면, 한 장 한 장 엇갈리게 섞인 트럼프 카드가 둥그렇게 만든 손 모양을 따라 폭포처럼 아래로
좌르륵 떨어지며 반듯하게 정리되는 것을 볼 때처럼 살짝 황홀하고 근사한 기분이 된다.
(261)
정말 그랬다. 감독님
말이 맞았다. 좀 전에 나는 똑똑히 봤던 것이다. 내 발끝에서
튀어 오른 공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갈 때 내리쬐는 햇빛을 받아 순간적으로 하얗게 빛나던 것을. 그것은
정말 하얀 달 같았다. 허공에서 공이 달이었던 그 짧은 순간, 그
달을 보면서 우리 팀 모두가 제발, 제발, 한 골만 들어가
달라고 소원을 빌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루어졌다. 달빛처럼
은은하지만 환하게 빛나는 1대0 승리였다.
(264)
스토피지(Stoppage) 타임. 멈춰 있는 시간. 전광판의 시계는 멈춰 있지만 피치 위로는 시간이
계속 흐른다. 그 어느 때보다 밀도 높은 시간이. 앞으로
나의 축구도 그럴 것이다. 책 속 나의 이야기는 여기서 멈추지만, 그
아래로 김혼비 축구의 시간은 계속 흐를 것이다.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원래 추가 시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거니까. 하지만 축구와
함께 어디서든 즐거울 것이다. 무엇보다 김혼비는 추가 시간에 강하니까.
(273)
그러다 보면 지금은 너무나 아득해서 보이지도 않는, 축구처럼 아직까지도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다른 많은 분야들에서 끊임없이 인식의 구획에 틈을 내고 틈을 넓히는
많은 사람들과 마침내 아무 구획도 없는 넓은 광장에서 만나는 그 날을 조금이라도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
‘초개인주의자’인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지만, 그렇다 인간은 모일수록 좋은
것 같다. 적어도 축구공 앞에서, 특히 여자들은. 무엇보다 축구는 재미있으니까. 너무 재미있으니까. 뭐가 됐든 재미있으면 일단 된 것 아닌가. 정말이지, 이거, 기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