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클린느 뒤 프레 : 예술보다 긴 삶
캐럴 이스턴 지음, 윤미경 옮김 / 마티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몇 년 전에 풍월당 박종호님이 쓴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3 )>을 재미있게 읽었었어. 그리고 그 책을 통해서 여러 음악가들을 새로 알게 되었단다. 얼마 전에 책을 읽고 이야기해주었던 글렌 굴드도 그 책을 통해 알게 되었던 것이고, 오늘 너희들에게 이야기해주려고 하는 자클린느 뒤 프레도 그 책을 통해 알게 된 음악가였어. 자클린느의 삶이 너무 기구해서 특히 기억에 남았단다.

하늘에서 내린 듯한 천재적인 첼로 실력의 소유자였던 자클린느.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만남. 그 사람과 함께 연주를 하며 행복한 시간은 영원할 것 같았으나, 정점의 시간에 찾아온 무서운 병. 그 이후 죽기 전 14년 동안 그 병과의 싸움. 그 책을 읽고 나서 자클린느가 연주하는 모습을 찾아 보기도 했었어. 그리고 언젠가는 그녀의 전기를 한번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다가 몇 년이 지난 이제서야 읽어보게 되었단다. 그럼 너희들에게 간단히 자클린느에 대해 이야기를 해줄게.

 

1.

자클린느의 엄마도 음악을 하셨고, 자클린느의 언니 힐러리도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했단다. 특히 피아노에 뛰어난 소질을 가지고 있었어. 하지만 자클린느의 뛰어난 재능에 묻히게 되었단다. 힐러리는 나중에 바이올린도 연주하고 나중에는 플롯으로 전향했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음악을 그만두었다고 했어.

자클린느는 세 살 때 첼로 음악을 처음 듣고 첼로를 연주하고 싶다고 했대. 엄마는 자클린느에게 첼로 수업을 받게 했는데, 그때부터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다고 했어. 엄마도 자클린느의 재능을 키우기 위해 올인을 했어. 어쩌면 그것 때문에 힐러리의 재능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어. 자클린느는 학교에 들어간 이후에도 첼로 수업에 특화된 시간표를 짜서 다른 수업들은 제대로 받지 않았어. 그렇다 보니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기도 했대. 후에 자클린느는 교육을 제대로 못 받은 것에 대해 후회도 했지만, 그것이 첼로와 함께한 시간이었기 때문에 이해한다고 했고, 첼로가 자클린느의 유일한 친구였다고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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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100)

자클린느는교육을 제대로 못 받은 것에 대해 자주 후회를 하지만, 첼로와 보낸 시간에 대해서는 한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첼로는열일곱 살이 될 때까지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자신만의 세계를 가진다는 것, 필요할 때마다 홀로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알지 못한다. 첼로는 나의 멋진 비밀이었다. 생명이 없는 대상이었지만 나는 첼로에게 나의 슬픔과 문제들을 모두 다 말하곤 했다. 그것은 내가 필요로 하고 원하는 건 뭐든 다 주었다. 첼로를 연주하는 일이 가장 좋았다. 연주를 할 때면 어떤 일이 일어나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첼로 연주를 통해 사람들을 대하는 법을 알 수는 없음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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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클린느는 그야말로 첼로밖에 몰랐어. 1959, 자클린느가 1945년생이니까 14살 남짓 첫 번째 공연을 하였고, 1961년에는 런던 위그모어 홀에서 데뷔무대를 가졌다고 하는구나. 엄마가 피아노를 치면서 함께 연주를 하기도 했대. 17살의 자클린느는 집에서는 여전히 어린 아이를 취급 받았지만, 밖에서는 이미 연주가로서 어른 대접을 받았대. 십대 후반이 되면서 음악이 아닌 다름 것들도 접하게 되었는데, 음악 하는 친구들과 교제도 늘어나서 그러면서 사랑이라는 감정도 생겨나고 그랬지.

 

2.

그녀의 명성은 영국뿐만 아니라 해외로도 퍼졌어.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순회공연을 하였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러시아 모스크바에서는 로스트로포비치에게 지도를 받기도 했대

, 이제 그러면 자클린느의 사랑 이야기도 해보자꾸나. 친구 집에서 친구들과 모여 연주도 하곤 했는데 그때 이스라엘의 피아노 천재인 다니엘 바렌보임을 만나게 되었어. 다니엘 바렌보임도 유명한 음악가로써 천재 피아니스트로 불렀고, 그는 지휘도 잘하는 지휘자이기도 했어. 그가 그의 이런 재능으로도 유명하지만, 자클린느의 남편으로도 더 유명해졌지. 당대 최고의 두 천재 음악가의 사랑은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깃거리가 되었어. 그들의 사랑은 곧 결혼으로 이어졌단다..

다니엘의 국가인 이스라엘은 당시 전쟁 중이었는데, 사랑의 힘은 대단했어. 이스라엘에 가서 결혼식을 하고 그곳에서 연주도 같이 했단다. 자클린느는 결혼 후 다니엘의 종교인 유대교로 개종하였는데, 이것은 부모님과 갈등의 씨앗이 되기도 했대.

다니엘은 포부가 큰 사람이었어. 결혼은 했지만, 그보다 자신의 야망이 더 중요한 사람 같았어. 두 사람은 사적인 둘만의 시간을 갖기 어려웠어. 늘 음악 연주 스케줄이 꽉 차 있어서 세계를 돌아다녀야 했지. 같이 하는 공연뿐만 아니라 다니엘만 하는 연주회도 자클린느도 함께 했어. 그들의 생활은 리허설과 공연, 그리도 다시 이동으로 이어졌단다. 어쩌면 이런 생활이 자클린느의 몸을 조금씩 망가뜨리고 있었는지도 몰라. 그리고 자클린느는 누구보다도 아이를 원했지만, 결혼하고 3년이 지나서 하게 되었대. 다니엘이 좀더 자클린느를 배려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어. 이런 빡빡한 스케줄에서는 어쩌면 아이를 가질 수도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

 

 

3.

자클린느는 자주 피곤이 몰려왔단다. 빡빡한 연주 일정 때문일 거라고 단순히 생각했어. 쉬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자클린느가 걸린 다발성경화증이라는 병은 그 어떤 병보다 초기에 진단하기 어려운 악마의 병으로 불렀거든. 초기 증세가 그냥 피곤하다는 게 전부였으니까. 피곤은 아빠도 달고 사는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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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8)

다발성경화증은 가장 초기 단계엔 진단조차 어려운 악마의 측면이 있다. 증상이 나타났다 돌연 사라지기도 하고 대수롭지 않을 수도 있으며, 잠깐 나타났다가는 어느새 그랬냐는 듯 없어져서 쉽게 잊어버리기도 하며, 혹은 자클린느의 경우처럼 신경쇄약의 징후로 보이기도 한다. 그녀가 호주에 있을 때 좀처럼 피로가 사라지지 않고 가끔 오른쪽 눈에 사물이 두 개로 겹쳐 보여서 진찰을 받았을때 의사는사춘기 외상장애라고 일축하고, 긴장을 풀 수 있는 취미를 시작해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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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무서워 보이는 병, 다발성경화증. 그 병은 가벼운 초기 증세와 달리 엄청 무서운 병이란다. 우리 몸을 몰래 조금씩 못쓰게 만드는 병이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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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6-357)

다발성경화증은 뇌의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신경섬위의 절연체와 척수를 침범하는, 중추신경계에 일어나는 만성적이고 점진적인 질병이다. 손상을 입은 곳은 신경섬유를 감싸는 수초가 두껍고 딱딱한경화성상처 조각으로 대체되어, 뇌에서 근육과 장기로 전달되는 메시지들을 방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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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클린느는 몸에 이상이 생겨서 병원에 가보았지만, 그저 휴식을 취하라는 이야기뿐이었어. 하지만 에이전트에 의한 계약이 있어 쉬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자클린느는 견딜 수 없는 무력감에 결국 6개월간 활동 중단을 했어. 6개월을 쉬었다고 해서 몸이 좋아진 것은 아니야. 다발성경화증이라는 병은 고칠 수 있는 병이 아니고 상태가 계속 악화될 수박에 없대. 하지만 여전히 자클린느는 자신이 다발성경화증에 걸렸다는 것은 모르고, 6개월을 쉬었으니까 이제 좀 괜찮겠지, 하고 복귀를 했어. 하지만 예전의 자클린느가 아니었어. 연주회에서 사소한 실수를 하고, 뉴욕에서 한 공연은 큰 실패를 하고 언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어. 병원에 다시 사보았지만 여전히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했단다.

책을 읽는 아빠가 다 답답하더구나. 자클린느는 다시 계획되었던 공연을 취소했어. 자클린느는 점점 자주 넘어지고, 계단 오르기도 힘겨워지고조페라고 하는 의사가 처음으로 다발성경화증을 의심하고 검사를 받아보니, 그 무서운 병에 걸린 것을 알게 되었지. 원인도 모르고, 치료법도 없고병에 걸린 사람의 15퍼센트는 급속히 진전되어 완전 마비 증세를 보인다고 했어. 그렇게 아픈 자클린느에게 필요한 것은 따뜻한 사랑이었지만, 다니엘은 가부장적인 사람이었고, 무엇보다 음악이 먼저였던 사람이야. 여전히 외국 순회 공연에 자클린느를 돌볼 겨를이 없는 사람이었어. 의사와 간호해주는 사람이 대신 그를 대신했단다.

그를 처음 보살펴주던 의사 조페가 심장마비가 갑자기 세상을 떠서 자클린느가 큰 상처를 입기도 했지만, 아담 리멘타니라는 착한 의사가 뒤를 이어 자클린느를 보살펴주었어. 자클린느가 세상을 뜰 때까지 13년간 함께 했고, 물리치료사 소니아 또한 자클린느를 보살펴 주었단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자클린느는 스마일리라는 별명답게 다시 미소를 찾았단다. 그래서 방송에 참여하기도 했어. 그런 자클린느의 모습은 같은 병을 가진 사람들에게 힘이 되기도 했을 거야.

이런 자클린느의 이야기가 해피엔딩으로 끝이 났으면 좋았겠지만 다발성경화증은 자클린느를 점점 죽음으로 데리고 갔단다. 그리고 42살 젊은 나이에 자클린느는 삶을 마감하고 말았단다. 풍월당 박종호님이 이야기했던 것이 생각나는구나. 자클린느는 첫번째 14년은 첼로의 신동으로, 두번째 14년은 최고의 첼로 연주자로, 그리고 마지막 14년은 불우의 병과 싸웠다고 말이야. 마지막 그 병마를 이겨대고 다시 14, 아니 그보다 더 오랜 세월 연주를 들려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자클린느는 많은 사람들의 바램을 뒤로 하고 하늘로 떠났구나. 그는 떠났지만, 여전히 그를 잊지 못하는 이들이 오늘도 인터넷 검색창에 그의 이름을 타이핑하고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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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

자클린느는 자신이 연주한 슈만의 협주곡 음반을 사랑했다. 어둡고 감상적인 그녀의 해석은 표현할 수 없는 것까지 표현했다. 슈만 협주곡의 연결된 세 악장은 정류해낸 순수의 감정이다. 졸라는 이를절망의 관능이라 했다. 첫 악장은 갈망으로 채워지고, 두 번째 악장은 부드럽고 시적이다. 마지막을 향해 가면 이행부가 있고 그 뒤 오케스트라와 첼로가 함께, 마치 슈만이 자신의 삶이 저물어가는 걸 지켜보기라도 하듯, 조용히 향수에 젖은 연주를 시작한다. 엔딩은 강력하고, 폭발적인 마지막 작별인사로 우리 모두를 울게 한다. 그리고 우리를 위로한다.

아직도 음악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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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의 첫 문장 : “악기를 연주하다보면 영혼이 몸 바깥으로 빠져나와 저 높은 곳의 자유롭고 행복한 황홀경 속으로 들어간다.”

책의 끝 문장 : 아직도 음악은 흐른다. 



(40)

자클린느의 정수 – 너그럽고, 밝고, 재능 있고,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큰마음 – 는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그녀는 마음 저 깊숙한 곳의 어떤 감정들이 용인되지 않음을 어릴 때부터 알았고 그래서 그런 감정들을 미소 띤 얼굴로 감추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해맑은 웃음 뒤에는 사적이고, 역설적인 성격이 있었으며 그중 일부는 그녀조차 꿰뚫어볼 수 없는 불가사의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부분이 자클린느 자신을 통해 그리고 그녀의 삶에서 다양한 역할을 한 사람들의 통찰력과 관찰을 통해 조금씩 베일을 벗었다. 마치 용액 속의 사진처럼 차츰 하나의 모습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116)

지난 몇 주, 런던의 청중들은 전도가 유망한 다소 어린 솔리스트들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이들 가운데 지난밤 위그모어에서 첼로를 연주한 자클린느 뒤 프레 양은 열여섯 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렇게 어린 연주자라고 믿기 어려운 기량을 가졌기에 그녀의 공연 논평을 쓰면서 전도유망을 언급한다는 것이 모욕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155)

그녀의 가장 절친한 친구인 첼로는 도대체 만족이라곤 모르는 가혹한 공사감독이 되어버렸다. 헌신, 직관 그리고 타고난 재능이 그녀를 여기 멀리까지 데려왔고 더 멀리 나가기 위해서는 명료한 선택이, 일상의 삶을 넘어 완벽한 연주를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필요해 보였다. 음악적 통찰력을 더욱 날카롭게 하려면 삶의 무게, 경험의 무게가 필요할 터였다. 하지만 과거에 그랬듯이 앞뒤 보지 않고 오로지 연주만 계속한다면 언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딜레마는 더 깊은 고립감을 안겨주었다. 조운 클루이드가 그녀를 이해해주었지만, 자클린느에게는 자기 세대의 누군가로부터의 지지가 필요했다. 그녀는 조지 데버넘에게 눈을 돌렸고, 그는 흔쾌히 그녀에게 지지를 보냈다.

(446)

나는 그 놀라운 양면성을 지켜보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사랑스럽고 유쾌하고 아무 걱정 없는 소녀가, 계속해서 울어댈 이유가 있지만 그럼에도 항상 사랑스럽고 따뜻하며 잘 웃어대는 이 소녀가 있습니다. 반면에 우울해하는 모습을 본 건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전 몇 년간 뿐이었으니까요. 그녀는 말하곤 했지요. ‘왜 내게 이런 병이 생긴 걸까?’ 처음에는 이렇게 대꾸하지요. ‘ 오 세셍에, 너무 두렵지?’ 하지만 나중에는 깨닫게 됩니다. 아무런 할 말이 없다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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