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 통권 160호 - 2018년 5월~6월
녹색평론 편집부 지음 / 녹색평론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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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지난 4 27일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있었단다. 몇 달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남북의 평화무드가 아주 빠르게 속도를 내고 있고, 그 첫 번째 정점이 남북정상회담이었어. 그리고 곧이어 이어진 북미정상회담 개최 소식그야말로 너무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어, 꿈인가 생시인가 싶을 정도였단다. 그러던 중 역시나, 그러면 그렇지남북 고위급 정상회담 연기로 잠시 브레이크를 밟았고, 예측하기 어려운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정상회담 취소

, 다시 뒤로 가는가 싶었는데, 북한에서 의외에 반응이 있었어. 과거와 같았다면 과격한 발언을 바로 터트렸을 텐데, 이번에는 상당히 절제되고 예의 바른 반응이 나왔단다. 그 반응으로 다시 트럼프의 마음도 흔들린 것 같고.. 그런 와중에 지난 토요일(5/26) 저녁에 글씨를 잘못 읽었나 싶을 정도의 뉴스가 나왔단다. 2차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고? “개최한다고”가 아니고개최되았다고?” 과거형…. 토요일 오후 3시에?

정말 놀라운 일이구나. 전세계 아무도 예상을 하지 못했던 일이 아닌가 싶구나. 정말 문재인 대통령님께서 열일을 하고 계신 것 같아. 그 소식 이후 아빠도 계속 뉴스를 봤어. 2시간 동안 이어진 2차 정상회담에 대한 내용은 일요일 오전에 대통령님께서 직접 이야기해주셨어. 그와 거의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은 다시 북미정상회담을 한다고 발표하고... 정말 드라마와 같은 극적 반전의 연속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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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이번에 읽은 녹색평론 160호 출간일이 5 2일이기 때문에, 4 27일에 있었던 남북정상회담의 내용에 대한 소견을 담기에는 시일이 부족했을 거야. 그래도 남북정상회담 소식은 그 전에 나왔기 때문에  그런 남북정상회담에 따른 꼭지를 몇 개 다루고 있단다. 그리고 이번 160호의 부제도 그에 걸맞게안보논리를 넘어서 평화체제로였어.

두 나라간의 외교라는 것이 어찌 보면 두 나라 간의 약속이라고 볼 수 있는데, 사소한 일로 일방적으로 없던 일로 해버리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 그것도 강대국이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거만하고 치사한 행동이지. 트럼프 대통령은 그런 것에 대해 일인자였기 때문에 이렇게 들쭉날쭉한 그의 행보를 보고 있는 세계사람들은 그러려니 할 것 같아. 북한으로서도 억울한 면이 있을 거야. 지난 1990년대부터 나름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을 했는데, 미국과 우리나라에서 정권이 바뀌면서 그 약속들을 폐기하다 보니 뿔이 날만 하겠지. 이번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도 김정은은 트럼프 대통령이 약속을 어기면 어떻게 하냐 그런 우려가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를 했다고 하는구나. 그동안 역사를 보면 약속을 번번이, 먼저 깬 것은 오히려 미국이었다고 하는구나. 우리나라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의 정상회담에서 마련한 10.4 선언도 MB가 그대로 폐기처분 해버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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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그런데 공교롭게도 부시가 북한을악의 축으로 규정했던 시점에, 북한은 핵과 미사일 관련 합의를 비교적 잘 지키고 있었다. 핵무기 개발을 중단키로 한 제네바 합의를 이행하고, 부시 행정부로부터도 중유를 받고 있었다. 2002년 말에 불거진 비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의 보유 여부는 여전히 논란거리이지만, 확실한 것은 부시가 북한을 악의 축으로 언급하기 전후에는 이에 대한 언급이 일절 없었다는 것이다. 북한은 탄도미사일과 관련해서도, 북미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발사를 유예하겠다고 약속한 1999년 베를린 합의 및 2000년 북미 공동코뮤니티를 준수하고 있었다. 9.11 테러의 주범으로 지목된 알 카에다와도 아무런 관계가 없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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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제어 불가의 트럼프가 또 어떤 말을 하면서 북미정상회담을 깰지 모른다고 하는구나. 아빠도 트럼프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오히려 비주류였던 트럼프라서 편견이 없을 수 없기 때문에 그런 트럼프의 성격을 잘 다스려서 조정한다면, 남부 관계 개선에 큰 도움이 될 거라는 평론도 있더구나. 트럼프 주변의 강경파와 일본 정부의 깐죽, 우리나라 제 1 야당의 시대에 역행하는 행동이 걸림돌이 될까 우려가 되긴 하지만…. 지금까지는 북미정상회담이 해피 엔딩 방향으로 잘 가고 있는 듯하여 기분이 좋구나.

 

1.

아빠가 좋아하는 역사학자 한홍구님의 글이 실렸단다. 한홍구님의 글은 앞뒤 눈치 안 보고, 팩트를 기반을 해서 속 시원한 평론을 적어주셔서 늘 좋았어. 이번 160호에 실린 그의 글은 한국 개신교가 왜 보수세력의 상징이 되었는가에 관한 글이란다. 그 역사는 광복 직후로 거슬러 올라 간단다. 광복 후 공산당의 핍박을 받은 서북출신월남개신교들이 남쪽으로 내려와서 폭력적으로 적선을 접수하면서 기반을 잡게 된대.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은 자신이 기독교여서 그런지 내각의 상당수는 기독교도로 채워 기독교 내각을 세웠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4.3 사건 때 민간인들에게 만행을 저지른 이들 중에 서북청년단이 핵심이었는데, 그들이 바로 서북출신 월남개신교도들이었어. 한국 전쟁 이후 기독교는 기독교는 반공, 친미, 국가권력과 결탁을 하면서, 급격하게 팽창을 했어. 1970년대 일부 분파가 민주화 운동을 했지만, 그야말로 소수였여. 1987년 민주항쟁 이후 더욱 보수화되었고, 1989년 한기총이 출범하고, 순복음교회 등 대형화가 되면서 더욱 보수화되었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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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9)

1950년 한국의 기독교 신자 수는 50만 명이었는데, 1991 800만을 넘어섰다. 1990년 초까지 10년 단위로 두 배씩 팽창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기독교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급팽창했지만, 양적인 성장이 곧 질적인 성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성장을 향해 돌진해간 한국의 기독교는 종교적인 내면화를 거칠 겨를이 없었다. 한국 기독교의 팽창은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조금 오래된 1993년 통계이지만, 전세계 50개 대형교회의 거의 절반인 23개가 한국에 있고, 서울은 대형교회 신자 수에서 단연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 같은 경향은 25년가량이 지난 지금 더욱 강화되었을 것이다. 강남개발 등 부동산 붐과 맞물린 대형교회의 출현은 중소 교회의 몰락을 가져왔다. 대형교회의 팽창은 신자가 늘어난 것보다는 중소 교회 신자의 수평이동에 의거한 것이다. 세계 최대의 대형교회는 조용기 목사의 여의도순복음교회이고, 그 다음은 조용기의 동생 조용목 목사의 은혜와진리교회이다. 조용기 목사는 한때 주류 기독교에서 이단시했으나, 그 엄청난 신도 수 때문에 한국 개신교의 주류에 당당히 진입하였다. 하나님을 믿고 구원을 받으면 영혼과 육체, 물질적 축복이 따른다는 조용기의 삼박자 구원론은 급격한 근대화 과정에서 불안에 떠는 대중들을 사로잡아 순복음교회를 단시간에 급성장시켰다. 순복음교회의 성장은 성장주의와 반공주의의 굳은 결합의 산물로서 개신교를 넘어 한국사회를 이해하는 필수적인 창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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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교회들 중심으로 보수 권력에 빌붙고, 정치적인 영향력을 보이려고 하는 경향도 있고, 내부적은 비리와 권력투쟁으로 다른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해.. 그런 개신도가 과연 앞으로 내부 개혁을 거쳐 종교 그 순수한 목적을 되찾아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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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한국 개신교가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하고 밝음과 짠맛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문제는 한국 개신교가 밝음과 짠맛을 스스로 회복할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한 채, ‘개독교라고 사회로부터 지탄과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단지 이 글에서 다룬성조기 휘날리며의 문제만이 아니다. 이 사회의 영적-정신적 지도력과는 거리가 먼 기복신앙, 다른 종교를 배려하거나 인정하지 않는무례한 종교’, 주류 개신교에서는 이단이라 하지만 일반 사회에서는 기독교 분파로 인식되는 집단들의 사회적 문제 야기, 주류 개신교 내에서 벌어지는 세습과 탈법과 재산싸움과 성추문 등등 개신교가 안고 있는 문제는 끝이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할 힘은 개신교 내부로부터 나와야 한다. 1970년대의 유신 시기, 개신교는 우리사회의 억눌린 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데 앞장섰었다. 개신교가 사회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정상이지, 시민들이 개신교의 거듭남을 위해 기도할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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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낮아지는 출산율…. 왜 이것이 걱정거리가 되는 것인가? 인구절벽이라는 말이 있어. 15세에서 64세까지의 생산활동이 가능한 인구가 급속도로 줄어드는 현상을 말해. 일부 보수 경제학자들은 이 연령대의 인구 감소는 생산 활동에 영향을 준다고 했어. 하지만, 사람의 노동시간은 기계의 발달로 인해 줄어들 거라는 것은 그 옛날 사상가와 경제학자들도 예견한 바 있단다. 얼마 전에 아빠가 읽은 책들을 통해 이야기한 것처럼 토머스 모어는 1일 여섯 시간만 하면 충분하다고 했고, 케인스는 더 나아가 1일 세 시간만 하면 된다고 했어. 그러므로 인구가 줄어든다고 해서 일부 경제학자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생산 측면에서는 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돼.

그들이 실제로 걱정하는 것은 바로 소비 인구의 감소란다. 케인즈가 노동 시간이 줄어들면서 소비 감소에 대한 대책도 이야기했었어. 그것은 바로 사회적 부를 나눠주면 되는 거야. 그러니까 인구절벽에 대한 걱정의 해법으로 인구를 무조건 많이 낳아라 할 것이 아니라, 올바른 분배를 어떻게 하느냐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지. 그 인구절벽이 특정 인구의 줄고 노인층 등이 늘어나는 것이라면, 그 늘어나는 노인층이 마음 놓고 소비할 수 있는 풍토를 마련 것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해. 문제에 대한 접근법이 잘못되었다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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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자본이 인구절벽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소비의 침체라고 했다. 문제가 소비의 침체라면, 해법은 단순히 인구를 늘리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본질은 고령화에 접어든 노인들이 마음 놓고 소비할 수 있는 풍토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당연히 강력한 노인복지 시스템이다. 그리고 왕성한 소비를 즐길 40대에게는 걱정과 불안, 공포보다는 안정적인 삶을 보장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후보 시절 내세운 캐치프레이즈는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였다. 우리가 인구절벽을 고민하는 자본가들에게 해줄 말도 이와 비슷하다. 지금 우리에게 당면한 문제는 절대로 인구감소가 아니다. “문제는 복지와 분재야, 이 바보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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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위기는 맞아. 인구 고령화에 따른 잉여 인간의 급증우리나라도 곧 1300만의 잉여 인간이 생긴다고 하는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잉여 인간이라는 것은 생산 능력 여부와 상관이 없어. 잉여 인간은 소비 능력 여부로 결정이 되는 거야. 모든 사람들이 소비 능력만 있다면 별 문제는 없어. 하시만 소비 능력이 떨어진 사람들의 수가 많아지면 폭동 야기의 가능성도 높아지게 되지. 이런 인구구조의 변화여 여전히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기반으로 답을 찾으려고 하면 안돼. 탈 시장 경제 사회로 전환해야 하는 거야. 그러면서 공동체 영역을 다시 회복해서 하고, 공동체 노동을 제도화하고 시민수당이나 조건부라도 기본소득제도를 세우는 것만이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가 있단다.

이제 앞으로 경제 성장이 없는 시대가 올 거야.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이런 시대 진보는 탈산업사회를 주장해야 해그러면서 몇 가지 준비 자세라고 할까? 그런 것을 제시하고 있어.. 경제 성장의 불확실성이 점점 커질 테니 이것에 대해 미리 면역력을 높여야 한다고 했어. 그리고 계층 간의 장벽이 없는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어. 도시를 설계 함에 있어 도시 공간에 녹색이 가득 차게 설계에 해야 하고, 국가 간의 적대 관계를 완화해야 한다고 했어. 경제를 중시하여 생산을 계속 하려고 한다면 지구의 미래는 붕괴만기 기다리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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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역설적이지만, 환경문제는 국제관계를 평화적으로 만드는 길이 될 수도 있다. 환경위기 때문에 운명공동체라는 개념이 강화될 수 있는 것이다. ‘문명의 충돌이라는 논리를 고집하는 새뮤얼 헌팅턴 등의 논객은 문명이 늘 상호의존적인 과정을 통해서 전개돼온 역사를 망각하고 있다. 벤자민 프리드먼은 행복감에 관한 국제적인 조사를 통하여 그와 같은 문명 간의 교류를 고찰했다. 1960년대에 쿠바, 미국, 나이지리아는 각자의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행복도는 동일했다. 오늘날 행복감에 관한 국제적 조사를 보면, 나라 안에서는 부자일수록 행복감이 높듯이, 국민의 행복도도 타국과의 비교에서 순위가 결정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장 그럴듯한 설명은 프리드먼의 설명이다. , 일찍이 사람들은 자신을 이웃 사람들과 비교했지만, 지금은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덕분에 거리를 먼 공동체에서 이상적인 모델을 찾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타인을 닮고 싶은 욕구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급증시킬 염려가 있다는 점에서는 이것은 나쁜 소식이다. 그러나 앞으로 인간은 지구적 차원에서 자신들의 사회적 관계를 고려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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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난 지 7년이 지났단다. 그 이후에는 비상식적이게도 우리나라 핵발전소는 계속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란다. 문재인 정부가 다행히 탈핵을 선언을 했지만, 그 선언이 현재 건설되고 있는 핵발전소을 멈출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앞으로도 핵발전수 수는 계속 늘어나게 된다고 하는구나. 법 개정을 바꾸거나 시민들의 강력한 요구 또는 시위가 있어야 핵발전소 건설을 멈출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것은 희망적이지 않구나. 유독 우리나라와 일본만이 핵발전소에 대한 투명도가 무척 떨어지는 것 같아. 일본은 후쿠시마 핵발전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비밀을 누설했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게 된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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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일본은) 2013년 제정된 비밀보호법은비밀을 누설한공무원과 그 밖의 사람들을 최고 10년의 징역형으로 처벌하고, ‘누설을 부추긴사람들, 특히 저널리스트들은 최고 5년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경 없는 기자회가 발표한 2014년 언론자유지수 순위를 보면, 일본은 세르비아와 보츠와나보다도 하위로 떨어져 있다. 일본변호사연합회에 의해 날카로운 비판을 받고 있는 이 비밀보호법은투명성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가 특히 높아진 시기에 제정된, 심히 부끄러운 전체주의적인 법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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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본에서, 그것도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멀지 않은 곳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한 국제올림픽위원회 사람들도 반성을 해야 할 것 같구나. 2020년 올림픽이 다가오면서, 방사능의 문제로 올림픽 출전을 포기하는 선수들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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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7)

올림픽이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열릴 것이므로 지금은 공중의 시야에서 가려져 있지만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알아두는 일이 필요하다. 일본 올림픽위원회가 올림픽에 참가할 선수들과 관중들에게 방사능 위험에 관련된 자료를 알려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국제올림픽위원회가 3기의 원자로가 100% 멜트다운 상태에 있는 상황을 무시하고 2020년 하계 올림픽 개최지로 일본을 선정했을 때, 그 기준은 무엇이었던가? 그 결정이 무모해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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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더 이야기할게. 헌법 개헌에 대한 이야기야. 30년도 넘은 대한민국 헌법. 세 번이나 변한 이 강산의 시대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헌법. 분명 바뀌어야 하지만, 그 주체들의 이해관계로 인해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란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발의를 했지만, 국회에 상정도 하지 못하고 시일이 지나가버렸단다. 국회에는 정부가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반대하는 괴물 같은 정당이 하나 있어 국회의 절차를 따지는 사안이 있으면 좌초하고 있는 것이 현 실정이란다.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를 하셨다고 하지만, 이 헌법 개정안을 위해서 많은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아빠는 이번 녹색평론 160호를 통해서 알게 되었단다. 그 중에 이번 개헌안을 위해 무작위로 추첨한 시민들로 이루어진 국민헌법자문위원회가 있었다는 거야. 추첨으로 시민들을 선정했다는 점에서 아빠가 지지하는 추첨 민주주의의.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는 것이고, 이것은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의 큰 걸음이라고 생각해.

개헌안의 내용보다 그 개헌안을 도출하기 위한 이 방법론에 아빠는 더 큰 의미를 두고, 점수를 주고 싶구나. 그런데 이런 국민헌법자문위원회의 존재에 대해서 언론에서는 이야기를 했었나? 아빠는 그런 소식을 본 적이 없었는데 말이야. 아쉽구나. 그 국민헌법자문위원회에 전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을 맡았던 하승수님께 부위원장을 맡았었대. 그래서 국민헌법자문위원회에서 있었던 일을 정리해서 이번 녹색평론 160호에 실었단다.

헌법 개정을 하면서, 토지공개념에 대한 의견이 있었는데, 그 토지공개념에 대해서 소위 보수 정당이라는 곳에서는 게거품을 물고 비판하며 반대를 했었단다. 그들의 논리를 들어보면 토지공개념에 대한 내용을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고, 무작정 자신들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반대하는 모습으로 비추어졌어. 안쓰럽기까지 하더구나. 아빠도 토지는 공공재로 취급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 왜 이유를 이번 160호에 내용을 실었는데, 일부 부분을 발췌해 보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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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5)

이해관계를 떠나서 생각해보자. 토지는 사람이 만들지 않았다. 토지가치는 땅 주인의 노력이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낸 가치다. 재생산이 불가능한 토지는 모두가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공급량을 조절할 수 있고 인간이 만들어냈으므로 생산자가 그것의 이익을 향유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반 재화와는 달리, 토지에는 공적 개념을 강하게 적용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지금 이상식을 헌법에 넣으려는 지극히 정상적인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이 상식이 뿌리내려야 올바른 사유재산제를 구현할 수 있고, 투기 없는 자유시장경제를 실현할 수 있으며, 부동산 투기를 근절하고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게 된다. 지금의 헌법으로는 토지투기도, 토지로 인한 불평등 심화도, 주거 불안정도 해결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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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어떻게든 개헌을 해야 할 거야. 국회의 그 괴물들의 방해 공작이 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시민들의 더 큰 관심이 필요할 시기란다. 그 괴물들이 허튼 짓 못하도록 감시도 해야 해. 그리고 좀더 나아가 헌법 개정을 할 때 이번 160호에서 소개한 녹색헌법의 내용들도 포함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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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연재되고 있는 <스승과 제자>에서 이번에는 함석헌과 그의 스승 유영모에 관한 이야기를 했어. 거기서 함석헌의 시 한 편을 소개해 주었는데, 괜찮아서 적어보았단다. 제목은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너희들도 이 시를 잘 읽어보고 ‘그 사람이 있기를, 그리고그 사람;이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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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만리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함석헌이 1947 7 20일에 쓴 시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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