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우선 대부분의 왕들은 평화를 도모하는 훌륭한 방법보다는, 나로서는
능력도 없고 관심도 없는 전쟁술에 더욱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왕들이란 자기들이 이미 소유하고
있는 영토를 잘 통치하는 일보다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새로운 영토를 손에 넣는 일에 고심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왕의 고문들은 모두 대단히 영리해서 다른 사람의 학식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적어도 당사자들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총신의 영향력을 통해서 국왕의 측근이 되려고 총신들의 지극히 어리석은
발언을 그대로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심지어 거기에 아부까지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이 최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물론 당연한 일입니다. 어미 까마귀는 자기 새끼가 제일 귀엽다고 하고 원숭이는 자기 새끼가
제일 귀엽다고 한다지요.
(31)
그래서 추기경님 앞이지만 내가 감히 이렇게 한마디 했습니다. <이상할
게 전혀 없습니다. 도둑을 교수형으로 처벌하는 것은 우선 정의에 어긋나고, 또한 어떤 경우에도 공익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처벌 차제가 지나치게
가혹하고 게다가 효과적인 억제책도 못 됩니다. 단순 절도는 목숨을 앗아 가야 할 정도로 중한 범죄가
아닙니다. 그리고 제아무리 가혹한 처벌로도 먹을 것을 구할 다른 방법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도둑질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이 문제에 있어서는 잉글랜드뿐 아니라 다른 많은 나라가 마치 학생을 가르치기보다는
매질을 하려 드는 도둑질을 하다가 목숨을 잃게 하는 대신에 모든 사람들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일거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도둑질에만 가혹하고 끔찍한 처벌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40)
만약 이러한 악폐의 치유책을 찾지 못한다면 절도에 대한 가혹한 처벌을 자랑한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현 정책이 피상적으로는 공명정대하게 보일지는 모르지만 실제로는 공정하지도 않고 실용적이지도 않습니다. 아이들을 엉망으로 키워서 어릴 적부터 기질적으로 점점 타락하며 자라도록 방임한다면, 그리고 초년의 습성에 따라 저지른 범죄에 대해 그들을 성인으로서 처벌한다면,
그렇다면 이는 먼저 도둑으로 만들어 놓고 나서 도둑질을 했다고 나중에 처벌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묻고 싶습니다.
(63)
국왕의 명예와 안위는 국왕 자신의 재산이 아니라 백성들의 재산에 의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백성들은 국왕의 노고로 자신들이 안락하고 안전한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국왕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을 위해서 국왕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내가 말한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까닭은, 자신보다는 양들을 먹이는 일에 더욱 관심을 갖는 것이 목자의 의무이듯이, 자신의 안녕보다는 백성들의 안녕을 더욱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이 국왕의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백성의 빈곤이 공공의 안녕을 보장한다는 말은 완전히 틀린 소립니다. 역사는
그와 정반대를 보여 줍니다.
(64)
만약 백성의 극심한 증오와 경멸의 대상이어서 학대와 약탈과 몰수를 통해서만 통치가 가능한 왕이라면, 그러한 상황에서는 왕의 권력은 갖고 있지만 왕의 존엄은 모두 상실하므로, 차라리
왕위를 양도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왕이란 번영과 행복을 누리는 백성들을 통치할 때만 존엄성을 지니며, 걸인들을 대상으로 권력으로 행사할 때 왕으로서의 존엄성은 없는 것입니다.
(68)
당신이 나쁜 아이디어를 뿌리째 뽑지 못하고 오래 지속되어 온 악폐를 완전히 치유할 수 없다고 해서 폭풍 속에서
배를 저버리지는 마십시오. 그리고 당신과는 다른 방향으로 생각이 굳어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면서
그런 사람들에게 당신의 낯선 아이디어를 오만하게 강요하지 마십시오. 정책에는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상황은 요령 있게 처리하도록 최선을 다하여야 하며, 좋게 만들 수 없는 것은 가능한 한 최소로 나쁘게 만들도록 힘써야 합니다. 모든
사람을 좋은 사람으로 만들지 않는 한 모든 제도를 좋은 제도로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그리고
모든 사람이 좋은 사람이 되는 날이 그리 빠른 시일 내에 오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습니다.
(73)
그러므로 사유 재산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한 공정하고 올바른 재화의 분재는 있을 수 없으며 국민이 행복하게
살도록 통치하는 국가도 있을 수 없다고 나는 확신합니다. 사유재산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한 수많은 국민이, 그것도 가장 선량한 국민들이 근심과 걱정의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압박을 받습니다. 이러한 부담이 어떤 제도를 통해 다소 가벼워질 수도 없다는 점에서 나의 생각에 변함이 없습니다. 누구도 일정 한도 이상의 토지를 소유할 수 없다든가 일정 액수 이상의 소득을 벌어들일 수 없다는 법을 만들
수 있겠지요.
(95~96)
일하는 데 여섯 시간만 할애하니까 생필품의 공급이 부족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지요. 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들의 노동시간은 생필품의 생산뿐 아니라
생활의 편리를 도모하는 물품까지 생산하고도 남을 정도로 충분합니다. 다른 나라들에서 인구의 상당 부분이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우선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자들의 대부분이 직업을 가지고 있지 않거나, 여자가 일을 하는 경우라면 남편 되는 사람들은
침대에 누워서 코나 골고 있지요. 그리고 신부들과 소위 종교인이라는 게으른 대집단이 있습니다. 여기에다가 모든 부자들을, 특히 신사나 귀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지주들을 첨가해 보십시오. 이들에게 소속되어 거들먹거리면서 주먹이나 휘두르는 무리인 시종들도 포함해
보십시오. 마지막으로, 나태에 대한 핑계로 병을 가장하고
살아가는 건장하고 원기 왕성한 걸인들의 수효도 계산에 포함하십시오. 그러면 우리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물품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적은 수의 사람들에 의하여 생산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겁니다.
(99)
모든 사람들이 유용한 직종에서 일을 하고 아무도 과소비를 하지 않아서 모든 것이 풍족합니다. 보수 작업이 필요한 도로가 생기면 많은 사람들이 길에 나가 일을 합니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공공사업조차 없을 경우에는, 시민들에게 불필요한 노동은 절대로 강요하지 않기 때문에, 관리들이 하루 노동 시간을 단축시킨다고 선포합니다. 이 나라 헌정의
주요 목적은, 모든 시민은 육체노동에 투여하는 시간과 정력을 가능한 한 아끼어 이 시간과 정력을 자유와
정신의 문화를 누리는 데 쓸 수 있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이들의 생각으로는 사람의 진정한 행복입니다.
(109)
이렇듯 유토피아인들에게는 빈둥거리거나 시간을 낭비할 기회가 없으며 일을 회피할 구실도 없고, 술집도 없고 맥줏집도 없고 사창가도 없고, 타락할 기회도 없고, 숨을 곳도 없고 비밀리에 만날 장소도 없습니다. 만인이 보고 있는
상황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일상적인 자기 일을 하든지 아니면 건전한 방법으로 여가를 즐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생활 양식의 결과로 삶에 유용한 것들 것 당연히 풍족하게 되고, 따라서 그 누구도 빈곤하다거나 구걸을
해야 하는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118)
유토피아인들의 사고방식과 태도는 그러한 어리석음과는 완전히 대조적인 사회 제도 내에서의 성장과 교육과 좋은 독서를
통하여 얻어진 것입니다. 각 도시에서 노동을 면제받고 학문에만 몰두하도록 지정되는 사람들의 수호는 비록
많지 않지만(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비범한 두뇌와 학문에의 헌신을 보여 준 사람들입니다), 이 나라에서는 모든 아이들이 좋은 책을 접할 기회를 가지며, 상당수의
사람들은 남녀 모두 일생 동안 여가 시간을 독서로 보냅니다.
(121)
사실 유토피아인들은 행복이란 모든 종류의 즐거움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선하고 정직한 즐거움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덕 자체가 우리의 본성을 최상의 선으로 이끌어 가며, 마찬가지로 우리를 그러한 종류의 즐거움으로 이끌어 간다고 이들은 말합니다. 이와는
달리 덕은 그 자체로서 행복이라고 주장하는 학파도 있습니다.
(132)
모든 종류의 즐거움 중에서 유토피아인들은 주로 정신적 즐거움을 추구하며 이것을 가장 높이 평가하는데, 그 까닭은 대부분의 정신적 즐거움은 덕의 실천과 선한 삶을 인식하는 것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육체적 즐거운 중에서는 건강을 최고로 여깁니다. 먹고 마시는 것에서
얻는 기쁨은 이러한 행위가 오로지 건장을 위해서일 때만 바람직한 육체적 즐거움으로 간주합니다. 먹고
마시는 것 자체는 즐거움이 아니라 오로지 질병의 은밀한 공격을 이겨 내기 위한 수단입니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병의 훌륭한 치유법을 얻기보다는 아예 병에 걸리지 않도록 할 것이며, 진통제를 구하기보다는 고통을 방지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치유법이나 진통제로 위안을 얻는 즐거움은 아예 필요하지 않은 것이 더 좋겠지요.
(149)
유토피아에는 법이 몇 개밖에 없는데, 그 까닭은 최소한의 법 외에
다른 법의 필요성은 느끼지 않을 정도로 교육이 훌륭하기 때문입니다. 유토피아인들이 보는 다른 나라들의
가장 큰 결함은 무한한 양의 법률서와 해설서를 가지고도 국사를 올바로 처리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너무
많아서 다 읽을 수도 없고 너무 난해해서 이해할 수도 없는 법률들로 사람을 결박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부당하다는 것이 유토피아인들의 생각입니다. 변호사로 말하자면, 변호사들이란 사건을 조작하고 말싸움이나 다양하게
요리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부류의 사람들이라서 유토피아인들에게는 전혀 쓸모가 없습니다.
(191)
생계에 대해서 아무 걱정도 없고 모든 불안에서 자유로우며 기쁘고 평화롭게 사는 것보다 사람한테 무엇이 더 큰
재물일 수 있겠습니까? 남편은 돈에 대한 아내의 짜증이나 불평에 시달리는 일이 없으며, 아버지는 아들의 가난을 걱정하거나 딸의 지참금을 마련하려고 애쓸 일이 없습니다. 모든 남자는 자신의 생계와 행복만이 아니라 자기 가족 전체의 생계와 행복이 확실하게 보장되어 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아내, 아들, 손자, 증손자, 고손자 등 양민들이 머릿속으로 그려 보기를 무척 좋아하는
긴 계열의 후손들까지도 포함됩니다. 한때 일을 했었으나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된 사람들조차도 마치
아직도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똑 같은 보살핌을 받습니다.
(193)
더 나쁜 것은 부자들이 개인적인 사기 행각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국가의 조세법을 통해서 이 사람들의 하찮은 임금의
일부를 착취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는 사실입니다. 국가로부터 최상의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
최소의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 최소의 보상을 받는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정의에 위배됩니다. 그러나
이제는 자기들의 착취에 법의 색깔을 입혀 놓음으로써 정의를 한층 더 왜곡하고 타락시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불의를 <법적>인 것으로 위장하여 놓습니다. 오늘날 번영하고 있는 여러 나라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려 볼 때, 그러한
나라들 안에서 내가 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국가라는 이름하에 자신들의 이익을 축적하고 있는 부자들의 음모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