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의 겨울은 건조하지만 아주 드물게 일 년에 한 번이나 될까 싶은 정도로 안개가 끼는 날이 있다. 밤에 일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을 때 안개가 끼어 있으면 아. 내가 아는 냄새다, 라는 생각이 든다. 십 년 넘게 살았던 밀라노의 풍물 중 무엇이 제일 그리우냐고 물으면 나는 곧바로 ‘안개‘라고 답할 것이다.  - P9

벌써 이십 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내가 살던 무렵만 해도 밀라노 사람들은 런던의 안개 따위 밀라노에는 명함도 못 내민다며 자부심이 대단했고, 런던을 잘 아는 이탈리아 친구들도 그 사실을 인정했다. 해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11월이 되면 눅진하고 정겨운 잿빛 안개가 찾아든다. 아침에 눈을 떠바깥 차 소리가 어쩐지 먹먹하게 들려오면 아, 안개인가 싶다. 눈 오는 날의 고요한 분위기와도 다르다. 아침이 되면 안개에 젖은 매연이 자동차 몸체에 착 들러붙는다. 그런 날이 며칠씩 이어지다보니 겨울에는 아무리 세차를 해도 소용이 없다. 밀라노 차는 더러워서 어디를 가나 금세 알아본다며, 사람들은 그런 일로도 은근히 안개를 자랑한다. - P10

저녁 무렵 창밖을 내다보고 있노라면 문득 안개가 자욱이 깔리곤 한다. 창에서 5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플라타너스의 가지 끝이 눈 깜짝할 사이 자취를 감추고, 끝내 굵은 줄기까지 짙은 안개속으로 사라진다. 가로등 밑을 생물처럼 달려가는 안개를 본적도 있다. 그런 날에는 몇 번이고 창으로 달려가 짙은 안개 너머를 내다본다.  -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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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인권은 여성에게도 남성과 같은 근대적 개인, 근대적 주체의 권리를 보장하라는 주장과 동시에, 기존 인권 개념의 기준 자체에도전한다. 양성 평등이 누구 중심의 평등인가는 언제나 논쟁거리이다.
정의(justice)로서 평등한 인권은 같아짐(same)이라기보다는 공정함(fairness)을 추구하는 것이다. 양성 평등한 인권은 여성이 남성과 같아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제까지 양성 평등은 남성이 여성과 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남성과 같아지는 것을 의미했다.
 여성은 ‘공적 영역‘으로 진출했지만, 남성은 그만큼 ‘사적 영역‘으로 진출하지않았다. 결국 이러한 남성 중심의 같음을 의미하는 ‘양성 평등‘ 이념은, 여성들에게 임금 노동과 가사 노동의 두 영역에서 이중 노동을 강요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 P179

같음의 기준이 남성의 경험에 근거한 것일 때, 여성은 남성과 같음을 주장해도 차별받고 다름을 주장해도 차별받는다. 이것이 소위 ‘차이와 평등의 딜레마‘이다. 예를 들어, 여성이 남성과의 차이를 주장하면 남성 사회는 그것을 차별의 근거로 삼고, 같음을 주장하면 사회적 조건의 다름은 무시한 채 남성의 기준을 따르라고 요구한다. 양성 - P179

평등을 "여자도 군대 가라", "숙직해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정함의 시각에서 평등은 기회의 평등에만 머물지 않고, 조건의 평등, 더 나아가 결과의 평등을 지향한다. 남성과 여성의 화장실이 5:5의 비율로 있는 것은 기회의 평등이지만, 남성과 여성의 서로 다른 사회적·역사적 상황을 고려하면, 기회의 평등은 평등이라고 할수 없다. 임신, 생리, 옷 구가 남성과 다르고 유아를 자주 동반하기때문에, 여성의 화장실 사용 시간은 남성의 두 배가 넘는다. 그러므로 이런 경우에는 5:8 정도의 비율로 여성 화장실을 넓게, 많이 만드는것이 실질적이고 공정한 평등 정책이다. - P180

이 같은 인권, 평등 개념의 재구성은 성별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과 두 발로 걷는 비장애인에게 동일한 조건에서 달리기 경쟁을 하라는 것은 평등이 아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우리 사회에서 ‘평등‘은, 장애인이 장애를 ‘극복‘하고 비장애인과 같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사회적 강자의 기준을 강요하는 것이지, 평등이라고 볼 수 없다.
 인권운동은 사회적 약자에게 인권의 개념이 확대 적용되는 것을 넘어, 기존의 인권 개념을 문제시, 재구성하는 것까지를 포함하는 ‘인권의 운동‘
 과정이기도 하다. 인권운동은 인권 개념의 운동을 낳고, 동시에 새로운 개념은 인권운동을 발전시킨다.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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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균,쇠>‘2부 식량생산의 기원과 문명의 교차로‘를 요점 정리 해보자. 오랜만에 공부하는 기분으로 읽으니 너무 재밌다. 물론 달달 외워서 시험보라면 괴롭겠지만!

‘2부 식량 생산의 기원과 문명의 교차로‘에서는 인류가 식량 생산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기울인 기나긴 역사를 고찰한 기록이다. 야생 먹거리에서 작물화에 성공함으로써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비옥한 초승달 지역(서남아시아)의 기후와 여러 이점들을 뉴기니와 아메리카 지역의 원주민과 비교 분석하였고, 가축화한 동물들이 서남 아시아 지역이 유독 많았던 여러 원인들도 흥미롭게 설명되어 있다.

식량 생산의 기원은 총기, 병원균, 쇠의 탄생에서 나타난 지리적 차이를 이해하는데 핵심요소가 되기 때문에 중요하다. 또한 식량 생산이 독립적으로 시작된 지역은 크게는 아홉 곳, 어쩌면 고작 다섯 곳 밖에 없었기 때문에 식량 생산의 전파 과정도 중요하다.

1. 서남아시아 지역이 식량 생산에서 앞서 나갈 수 있었던 원인이 여러가지가 있다. 우선 그 지역이 겨울은 온난 다습하며 여름은 길고 덥고 건조한 이른바 지중해성 기후대에 속하기 때문에 식물성 생장이 빠르고 다양한 풍토 식물을 시험해보면서 작물화하기 용이했다.
두번째는 작물의 야생 조상이 이미 풍부하고 생산성이 높았기 때문에 수렵생산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큰 군락을 이루어 생활할 수 있었다. 세번째 이점은 이 지역은 암수한그루형 제꽃가루받이 식물의 비율이 높아 작물화가 쉽게 이루어졌고 특히, 최초로 작물화가 이루어진 밀과 보리 종류는 타지역의 종보다 단백질함량이 높아 영양적으로도 훌륭했다는 것이다.

˝가축화된 포유류의 중요성은 대형 육서 초식동물의 종수가 놀라울 만큼 적다는 사실에서 비롯한다(오직 육서포유류만이 가축화되었다... 수서 포유류를 사육하거나 번식하기 어려웠다는 자명한 이유 때문이었다). ‘대형‘이라는 말을 ‘체중 45kg 이상‘이라고 정의한다면 20세기 이전 가축화가 된 대형종은 모두 14종에 불과하다.˝(232면)

2. 가축화된 포유류는 인간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 음식(고기, 유제품 등)을 제공하고 비료, 육상 운송, 가죽, 근대의 공격용 탈 것, 쟁기를 끄는 힘, 털 그리고 노출된 적이 없는 민족들을 죽일 수 있는 병원균 등을 제공한 것이라 할 것이다. 가축화된 포유류의 대부분은 서남아시아를 비롯해서 유라시아산이었는데 이는 유라시아 사람들이 총기, 병원균, 쇠를 갖게 된 이유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가축화가 된 14종이 유라시아에 집중된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1)가장 중요하고 단순한 이유는 유라시아에는 가축화 되었든 아니든간에 육서 포유류의 종수가 가장 많았으므로 확률적으로도 가축화가 가장 많이 될 수 있었다. 다른 지역에서도 모든 야생 동물종은 한 번쯤 가축화가 될 가능성이 있었지만 여러 장애 요인들로 인해 그러지 못했고 영원히 야생종으로 남아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여기서 재미있는 ‘안나 카레리나의 법칙‘이 등장한다. 그 유명한 첫 문장!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이 문장에서 몇 마디만 바꾸면 ˝가축화할 수 있는 동물은 모두 엇비슷하고 가축화할 수 없는 동물은 가축화할 수 없는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230면)는 말로 대체하여 설명할 수 있다. ‘영원히 야생 상태로 남아 있을 운명‘이라고 한 조건에는 식성, 성장속도, 감금 상태에서 번식시키는 문제, 골치 아픈 성격, 겁 먹는 버릇, 각 동물의 사회적 구조 등에서 기인한다.
(2)오스트레일리아와 남북 아메리카에는 홍적세 말기에 닥친 엄청난 멸종의 파도 속에서 대부분 후보종을 잃고 말았다. 여기서도 서남아시아를 비롯한 유라시아의 동물종은 대부분 살아남았다.
(3)멸종 후 살아남은 종들 중에서 유라시아 대륙에 가축화에 적합한 후보종이 가장 많았다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이유가 될 것이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태복음 22장 1절) 라는 말씀으로 대변할 수 있을 것이다.


3. 식량생산의 전파 경로도 중요한데 유라시아는 횡(동서 방향)으로의 전파, 아프리카와 남북 아메리카는 종(남북 방향)으로의 전파를 보이고, 대륙마다 서로 전파시기나 속도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작물화 과정에서는 하나의 종이 우세하고 변이 과정도 한번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단순한 변이 과정은 전파에도 유리해서 넓은 지역이었음에도 동서로의 전파가 빠르게 일어날수 있었다. 반면 아메리카 지역이나 아프리카에서는 하나의 종이 여러 번의 변이 과정을 거치고 따라서 전파에 있어서도 더딜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동서로의 전파가 그렇게 빠르게 일어날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1)유라시아의 동서축 : 같은 위도상에 동서로 늘어서 있는 지역들은 낮의 길이가 길고 같고, 계절의 변화도 똑같다. 그리고 질병, 기온과 강우량 추이, 생식지나 생물군계(한 지역의 동식물을 아우르는 생물 구조를 일컬으며 대개 그 지역에 특징적인 식물 형태를 가리킴) 등도 서로 비슷한 경향이 있는데 식물이 가지고 있는 유전적 프로그램이 비슷한 위도에서 잘 자랄수 밖에 없고 이는 동물들도 같은 위도와 관련된 기후 특성에서 더 잘 적응한다. 이것이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가축과 작물이 서쪽과 동쪽으로 그렇게 빨리 전파된 한 가지 이유였다.
(2)역사의 수레바퀴는 각 대륙의 축을 중심으로 회전했다 : 같은 위도라고 해도 기후가 같지 않다. 또한 각 지역의 지형적.생태적 장애물도 확산을 방해한다. 각 지역에 끼어 있는 농업에 부적합한 사막, 열대성 기후, 비가 내리는 시기가 다른 점, 지극히 좁은 육지의 폭(파나마) 등은 위도 차에 못지않게 작물과 가축의 확산을 막는 요인이다.
각 대륙에 따라 달랐던 축의 방향은 식량생산 뿐 아니라 기타 기술, 발명품의 확산에도 영향을 미쳤다.(문자, 바퀴, 야금술 등)


2부의 고찰을 읽다보니 결론적으로 말해서 오늘 날, 누구(백인)는 그렇게 많은 화물을 가지고 있고, 누구(흑인)는 화물을 적게 가질 수 밖에 없었던 근본 원인이 각 지역 원주민의 탓이 아니라 지역의 생물상과 기후, 지형에 기인한 것이 거의 절대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도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지금 못가진 자(특히 흑인)는 영원히 가진 자가 될 수 없다는 것 아니겠는가! 최소한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엔 말이다.

이런 슬픈 사실이 있을 수 있나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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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말로 표현하라면 절대 안될 것 같다. 여러번 읽어서 좀 기억해 두어야겠다.



2부 여성의 눈으로 다시 보는 인권
-무엇이 인간의 권리인가?

성매매에 반대하는 여성들의 입장을 ‘(비장애)여성 이기주의‘, ‘장애인차별‘, ‘비장애인 중심주의‘의 일환으로 보는 일부 남성 장애 인권운동가의 전제는 모든 인간에게는 같은 인권이 있으므로 장애 남성도 비장애 남성처럼 성을 살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다음의 세 가지 측면에서 ‘보편적 인권‘에 위배된다.

첫째, 사회가 장애 여성의 성적 권리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는 점에서, 장애 여성이 남성의 성을 살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는 점에서, 이 입장을 남성과 여성을 모두 포함하는 보편적인 장애 인권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또한 인신매매되어 감금 성매매를 강요당하는장애 여성이 있다는 점에서, 장애 남성들의 이러한 주장은 같은 장애여성을 억압하는 것이기도 하다. - P175

둘째, 이러한 주장은 인간의 성 활동(여기서는 성매매), 섹슈얼리티가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이고 생물학적인 것이라고가정하고 있다. 만일 장애인을 위한 사회복지시설을 확충한다면, 교육·문화·의료·직업 훈련 등의 시설이 우선적으로 필요할까? 성매매시설이 우선적으로 필요할까? 이에 대한 대답은, 한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에 의한 판단과 선택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다시 말해, 여성의 성을 사는 것이 본능이기 때문에 장애 남성의 인권을 위해 성매매시설이 당연히 필요한 것이 아니라, 성매매 시설 필요 여부는 사회적선택이라는 것이다. 사랑이든 성폭력이든 성매매든, 성과 사랑에 관한인간의 실천은 특정한 제도와 규범에 의해 형성된 것이지, 자연 발생적인 것이 아니다. 성매매는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선택하지 않으면 사라질 수도 있는 사회적 관행의 하나일 뿐이다. - P175

셋째, 위와 같은 일부 장애 남성들의 주장은, 비장애 남성으로부터받는 차별을 비판하기보다는 비장애 남성의 ‘남성다움‘, "정상성을 욕망하는 것이다. 이제까지 비장애인 남성이 누려 왔던 권력이자 잘못인 성폭력, 성매매를 장애 남성도 똑같이 하는 것이, 장애 남성과 비장애 ‘남성의 평등‘인가? 이런 식의 논리대로라면, 양성 평등은 여성도 남성이 저질러 왔던 살인과 전쟁, 고문, 폭력을 똑같이 하겠다는 것이고, 장애 여성과 비장애 여성의 평등은 장애 여성도 비장애 여성처럼 남성의 성적 대상이 되자는 주장이 될 것이다. 비장애 남성의 성기 중심적인 섹슈얼리티가 인간의 섹슈얼리티를 대표하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이나 장애인들은 기존의 성을 실천할 몸이 없는 성적 타자들이다. 때문에 이들은 성적 주체가 아니라 남성을 위한 성적 대상이거나 무성적(asexual) 존재로 간주되어 왔다. 장애여성, 비장애 여성, 장애남성은 비장애 남성 섹슈얼리티의 ‘공동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 P176

섹슈얼리티와 관련한 인권 개념의 재구성은, 이제까지 지배 규범이었던 비장애 남성 섹슈얼리티를 "우리도 똑같이 하자."는 것이 아니라 성적타자들이 연대하여 대안적인 성 문화를 생산할 때 가능하다. 즉, 남성의 ‘성을 살 권리‘를 비판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비장애 여성의 인권과 장애 남성 인권의 충돌은 불가피할 것이다. 대안적 인권 개념을 고민하기 위해서는 기존 인권 개념의 확대 적용에 그치지 않고, ‘무엇이 인간의 권리인가?‘에 대한 새로운 물음이 요구된다. 이제까지와는 다른차원의 정치적 상상력과 언어가 필요한 것이다.
- P176

그러나 성적 자기결정권은 성폭력이 사적인 문제가 아니라 성별 제도, 젠더라는 사회적 구조에서 발생하는 범죄라는 여성주의의 주장과모순된다. 여성이 성적인 권리를 스스로 결정, 선택해야 한다는 논리에서는, 성폭력 피해의 책임 역시 여성이 지게 된다. 이때 성폭력은 (본래부터)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진 남성과 (투쟁으로 획득한)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진 여성, 두 사람 사이에서 발생한 개인적인 문제가 된다.
-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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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오전부터 책이 너무 안읽힌다.
어제 그제 너무 가열차게 보내서 그런지 오랜만에 피곤함을 느끼는 월요일이다.
집안일 대충 팽개쳐놓고 잠시 짧은 드라이브 다녀왔다.
집에서 15분 정도 걸리는 북카페 [생각을 담는 집]
가서 바로대출 신청했던 <시간이 걸리더라도...>를 빌려왔다.

무겁지 않고 가볍게 읽으니까 힐링이 된다.
동시 같은 예쁜 시어들이 마음을 차분하게 해준다.
살짝 졸음이 몰려왔었는데 맘 편히 읽으니 졸음이 좀 가셨다.


그 북이 그 북

할머니가 밭에서 일하고 계셨어.
˝할머니 뭐 하세요?˝
˝뭐 하긴 고추에 북 주지.˝
˝북이요? 북이 뭔데요?˝
˝북도 몰라?˝
˝모르는데요?˝
˝에이, 헛똑똑이야. 흙을 이렇게 뿌리 위에 덮어 주는 걸 북 준다고 하는 겨.˝
˝아 그렇구나. 근데 북 주면 뭐가 좋은데요?˝
˝북을 주어야 고추가 더 튼튼해지고 쑥쑥 잘 자라는 겨.˝
아 그렇구나. 그래서 북을 주는구나.
북 주는 건 좋은 거구나!

그래서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북돋아 준다고 하는 거구나.
그 북이 그 북이 아니더라도
이제부터 그 북이 그 북이라고 생각할 거야.
(046)

이러고 옆면에 손으로 고추 북 주는 판화 그림
<땅의 손>이 나온다.^^
서로 잘 어우러진다.

이 책은 총 3개의 챕터로 나뉜다.
‘신기한 일, 이런 꽃 저런 꽃, 기억하는 마음‘인데
각 챕터의 표제어에 어울리는 시와 그림들로 묶여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의 시는 첫번째 챕터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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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3-06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쁜 이야기네요. 할머니의 이야기를 읽는데 밭에서 북주는 할머니의 그림이 떠올라 저도 힐링이 됩니다. ^^

은하수 2023-03-06 22:47   좋아요 1 | URL
수록된 시 하나하나 다 음미하며 떠올리며 읽을 수 있어요
이 글 읽다보면 뇌가 엄청 활발하게 활성화 될것 같아요 머릿 속으로 그림 그리듯 상상이 너무 잘되거든요
우리 아이들 어렸다면 저녁마다 읽어주었을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