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운동 이후의 중국이 배경.
지식인 청년 라오리는 등장인물 중 유일하게 부정하고 암담한 현실을 인식하지만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탓에 어떠한 일도 실행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여준다. 자신을 끊임없이 탓하기만하고 무엇하나 제대로 지켜내지 못한다. 가족도 아내도 자신의 신념도... 읽는 내내 답답했다!

라오리는 불 옆에 앉아 물을 한 주전자 들이켰지만 마음의 갈증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머리가 쭈뼛 서고, 답답해서 가슴에 불이 날 것만 같았다. 그는 아내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비록 그녀가 추한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다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는 스스로가 제일 원망스러웠다. 어째서 샤오자오에게 밥을 사겠다고 나섰을까? 단지 친해 보이려고? 아니, 아내가 추해 보이는 것을 막고 싶었다. - P145

하지만 많은 돈까지 쓰고도 끝내 추한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아내가 추해 보이는 게 뭐가 대수였을까? 아무리 샤오자오가 떼를 써도 밥을 사지 말았어야 했다! 그런다고 제가 날 어쩌겠어? 그냥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주면 되는 거지! 피하고 숨겨서 뭐하게? 너야말로근본적으로 부패한 사회의 화신이야. 무료하고 쓸모없는 사회에 감히 맞서지도 못하다니. 너는 사람도 아니야! 왜 샤오자오그자의 면상에 냅다 술을 뿌리지 못했지? 그게 아니면 그 자식코를 쥐고 식초라도 부었어야지! 그저 혼자 답답해하기만 했을 뿐, 감히 제 마누라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어! 항상 자신은 신세대이고 이상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영락없는겁쟁이잖아. 별 볼 일 없는 과원들에게 틀렸다는 말도 제대로못 하고, 그들의 웃음거리가 돼도 아무 말도 못 하지! - P146

라오리는 가슴이 답답했다. 여자하나가 한 남자, 아니 어쩌면 여러 남자의 인생을 망칠 수 있어. 마찬가지로 남자들 또한얼마나 많은 여자들을 망가뜨렸을까? 이것은 남녀 개인의 문제가 아니야. 결혼 제도가 문제인 거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그저 나 자신이나 딩얼 영감을 보며 가슴 아파하는 수밖에 없는 거야. - P180

라오리는 실망보다 창피함이 더 컸다. 실망 속에는 그래도 희망이 있지만, 이런 종류의 자괴감은 모든 문제를 남 탓으로 돌리지 않는 이상, 그저 빨리 죽어버리라고 스스로를 저주하게 될 뿐이다. 묘회에서 간신히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다가갔는데, 결과는 깨진 기와 조각에 얻어맞고 거름 더미에 엎어진 격이었다. 그녀를 탓하면 화를 가라앉힐 수도 있겠지만, 라오리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오직 자신을 탓했다. 자신은 너무나 평범한, 아니 너무 평범해서 남들이 희한하게 볼 정도로 평범한 사람이어서 아무도 라오리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딩얼 영감도 나보다는 나을 것이다. 흥, 네 주제에 감히 낭만을 꿈꿔? 그렇게 오랜 시간 참고 참다가 마침내 모험을 감행했고 잠시나마 가슴이 뛰었는데 결과는 망신뿐이다! 둘을하나로 엮는다고? 누구 맘대로? 라오리는 전신주에 머리를 들이박고서야 길을 잘못 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 P187

장다거 일이 급했지만 쑨 선생이 가고 혼자만 남게 되자 라오리도 마지못해 나가는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쑨 선생이 한 말을 곰곰이 되씹었다. 남자는 이러면 안 된다. 그는 생각했다. 순진한 여자는 저 스스로 함정에 빠진 것이고, 예쁜 여자는 스스로 족쇄를 채운 셈이며, 못생긴 여자는 생지옥에 사는 거나 마찬가지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여자는 잘될 수가 없다. 남자가 못됐기 때문이다.

아니, 이것은 단지 남녀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보다 큰 문제이다. 절대로 개인의 문제로 생각해선 안 된다. 굳이 멀리서 예를 찾을 필요도 없이 관청 사람들을 좀 보라. 
소장이 어떤 사람인가? 관료 겸 토비다. 샤오자오? 사기꾼 겸 과원. 장다거? 남자 중매쟁이. 우 태극? 밥통 겸 무술쟁이. 쑨 선생? 건달 겸 베이핑 속담 수집가. 추선생? 고민의 상징 겸 과원. 이런 인물들 가지고 관공서를 꾸린다는 것 자체가 이미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 P209

그 부인들을 또 어떤가? 장다사오, 떡판, 쑨부인, 추부인,
거기에 내 마누라까지. 한 명도 제대로 된 여자가 없었다. 이런 남녀들이 사회의 중견 인물이고, 다음 세대를 키우고, 민족의 발전을 도모한다고? 웃기는 소리! 틀림없이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어.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처럼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인물들이 존재할 수 있겠어? 하지만 존재하는 게 엄연한 현실이니 그들이 쓸데없는 짓 말고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냐고.
- P210

"라오추, 자네 보기에 이렇게 사는 게 재미없는 것 같지 않아?"
추 선생은 한참을 어리둥절해하다가 이내 웃었다.  "재미없지! 삶이란 것이 울타리에 갇히게 되면 마치 새장에 갇힌 새처럼 재미가 없어져. 꼭 내가 어렸을 적엔 거친 야생마였지만, 나이가 들어 장가들고, 일을 하게 되면서 아주 뺀질뺀질한 당나귀로 변한 것마냥. 나중엔 더성먼德勝門 밖으로 끌려가 큰솥에서 삶겨 고기로 팔리겠지. 이제는 울타리 밖으로 도망칠 수도없어. 누구도 못 해. 지금은 그저 순간순간 뜨거워졌다 차가워졌다 하며 사는 거지. 뜨거워졌을 때에는 발끈했다가, 차가워지면 살살 비위를 맞추는 거야. 학질 걸린 삶이야. 방법이 없어. 내가 처음부터 말단 관료가 되고 얌전한 남편이 되려고 했던 것은 아니야.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또 어쩌겠어?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자네가 나보다 단수가 높기는 해도 그래 봤자 거기서 거기야. 그저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결국 똑같이 한 솥 안의 요리 신세인 거지. 이런 얘기 그만하고, 잡담이나 하자고. 그저 잡담할 때가 제일 즐거워."
내가 라오추를 잘못 알았구나. 그도 자신이 누군지 알고 있고 있었던 것이다. - P237

"리 선생님, 리 선생님, 다 끝났습니다. 생각보다 아주 쉽더라고요. 아주 쉬워요! 리 선생님, 일이라는 게 처음 마음먹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막상 하고보니 꼭 못 할 것도 아니더군요."
라오리는 그 말의 의미를 바로 알아차렸다. 딩얼 영감을 보니 문득 그가 입은 모시 다산이 새하얀 광채를 발하는 것 같았다. "일이라는 게 처음 마음먹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이 한 마디가 연신 그의 귓가를 맴돌았다. 마치 깊은 연못에 바위가 떨어지면서 튀어 오른 물방울처럼 가벼우면서도 힘이 느껴졌다
샤오자오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당얼 영감 자체가 기적이라는 느낌만 들었다. 딩얼 영감조차 그저 밥 먹고 차 마시고 관청에 나가는 것 말고 다른 일을 할 수있다니! 그는 술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켜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찔끔 마신 술은 목구멍에 달라붙어 넘어가질 않았다. - P341

라오리는 그저 술잔을 든 채 딩얼 영감이 술을 들이켜는 것을 쳐다보기만 했다.
독한 술맛에 목을 추켜세우는 딩얼 영감의 표정이 아주 의기양양해 보였다. 
"그 자식, 보내버렸습니다. 정말 쉽더군요. 슈전 아가씨가 너를 기다리고 있으니 허우하이에서 만나자고 했지요. 그가 왔더군요. 얼마나 신나 하던지. 여자들 능력이 참 대단합니다. 제가 잘 알고말고요. 별로 어둡지는 않았는데 다행히 주위에 사람이 없더라고요. - P342

저는 미리 와서 갈대숲속에 숨어 있었는데 모기가 되게 많았어요. 온몸이 물어뜯겨서여기저기 큼지막하게 부풀어 올라도 꼼짝 않고 있었네요. 

그때 그가 오더군요.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어휴, 가슴이 쿵쾅거리는데 꼭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더라고요. 정말로요! 제 앞을 지나칠 때까지 기다리다가 귀신이 사람 몸 가로채듯 두 손으로 그의 목을 꽉 졸랐지요. 거의 혼이 빠질 뻔했지만 그래도다른 것은 다 잊고 오직 두 손만 생각했습니다. 그랬더니 그가, 이 두 귀로 똑똑히 들었는데, 마치 잠자는 강아지가 가끔 낑낑대듯이 두어번 낑낑대더라고요. 그게 다였습니다요. 발도 제대로 버둥거리지 못하고 아주 얌전해지데요. 이 딩얼보다도 더 얌전하더란 말입니다요! 갈대밭 속으로 끌고 들어가 몸을 뒤졌더니 이 집문서가 나오데요. 지갑하고 시계는 건드리지도 않았습니다. 
일을 끝내고 나니 맥이 풀려서 나오지 못하겠더라고요. 걷지도 못하겠던걸요. 그가 반듯하게 누워 있는데 얼굴이 뚜렷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어요. 되게 무섭더군요. 갈댓잎이 한 번 흔들릴 때마다 마치 누가 뒤에서 내 목을 조를 것 같아 깜짝깜짝 놀랐습니다요."
딩얼 영감은 다시 술을 한 모금 들이켜고는 목덜미를 더듬었다. 목이 제대로 붙어 있는지 확인하는 것 같았다.
- P343

라오리의 희망이 사라졌다. 
세상은 한 점 빛도 없는 암흑천지였다. 더 이상 이곳에서 살 수 없었다. 이 정원도 저 괴물 관청과 마찬가지로 무료하고 무의미했다. 라오리는 딩얼 영감을 깨웠다. 가슴속에 있는, 어렴풋하지만 분명히 아름다운 시골의 풍경을 그에게 들려주었다. 
"좋지요, 리선생님과 같이 시골로 갈래요, 암요! 베이핑에서는 조만간 총에 맞아 죽을 것 같아요!"
딩얼 영감은 당장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 P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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