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중에 에밀리는 천사의 난폭함을 보이며 털어놓게 된다. 자신은 한번도 어머니를 가져본 적이 없다고. 어머니란 ‘우리가 불안에 사로잡힐 때 의지하게 되는 분‘이 아니겠냐고. 어머니란 무엇인가에 대한 완벽한 정의다. 우리가 무언가를 이해하려면 결핍보다 나은 것이 없다.˝(17쪽)

1886년 5월 15일, 아침 여섯 시가 채 안 된 시각, 정원에선 새들의 노래가 분홍빛 하늘을 흠뻑 적시고 재스민 향기가 대기를 정화하는 시각, 이틀 전부터 디킨슨가 사람들의 사고를 몽땅 마비시킨 소리가 멎는다. 힘들여 판지를 가르는 톱 소리랄지, 옹색하고 거북해도 꿋꿋한 숨소리다. 에밀리가 돌연 얼굴을 돌린 참이다. 2년 전부터 향 종이를 태우듯 그녀의 영혼을 소진시킨 보이지 않는 해를 향하여. 느닷없이 죽음이 방안을 가득 채운다. - P5
그 당시 부유한 가정에선 식구들 가운데 누가 죽으면 사진을 찍어 영원과 겨루는 게 관습이었다. 그날, 그런 사진은 없을 터였다. 임종을 지키던 이들의 안도 섞인 몇 마디, 그리고 백합꽃이 쏟아 내는 빛처럼 눈이 부시도록 흰 에밀리의 얼굴 앞에서 그들이 느끼는 놀라움이 있을 뿐. -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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