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어느 날 찾아온 기괴하지만 특별한 세계
---> 카프카
**그 어떤 해석도 허락하지 않는 <시골의사>
난해한 작품을 해석해 놓으니 이제 읽어볼수 있을거 같다.




.... 카프카가 쓴 대부분의 소설들은 어떤 맥락에서 고려하더라도 하나의 해석이 다른 해석들보다 명백하게 더 설득력을 얻도록 만들어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또 일부 작품들은 아예 그 어떤 해석도 허락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의 대표적인 사례가 「시골의사」다. - P279

「시골의사는 매우 짧은 편소설로서 기괴하기 짝이 없는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눈보라 치는 밤에 한 시골의사가 위급한 환자에게 와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급히 출발하려는 의사는 지난밤에 마차를 끌던 자신의 말이 죽었다는사실을 깨닫는다. 이에 의사의 하녀 로자가 마을에서 말을 빌리려 하지만 이마저 실패하고 만다. 그때 난감해하던 의사 앞에 갑자기 한 마부가 나타나 의사의 마구간에서 말 두마리를 데리고 나온다. 자신도 모르고 있던 말이 있었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워하는 의사가 마차에 타자 마부는 마차를 출발시키고, 마부는 의사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하녀를 덮친다.
- P279

마차는 마치 날기라도 하듯 순식간에 환자의 집에 도착한다. 집에는 한 소년이 침대에 누워 있는데, 소년은 아픈곳이 없다. 이에 당황한 의사 
앞에서 사람들은 합창을 하고 의사에게 소년을 진찰하도록 한다. 그러자 의사는 갑자기 소년의 옆구리에서 끔찍한 상처를 발견한다. 
이제 사람들은 의사의 옷을 벗기고 그를 소년 옆에 눕힌다. 소년은 의사에게 자신은 아름다운 상처를 가지고 왔으며 나을 수 없을 것이라 말한다. 의사는 소년에게 억지 위로의 말을 전하고는 자신의 옷을 창밖으로 던져 마차에 걸고 자신도 창밖으로 뛰어내려 알몸으로 말을 타고 도망친다. - P280

만약 초자연적 사건이 없는 환상문학이 존재한다면, 아마도 제일 먼저 손에 꼽히는 작품이 바로 「시골의사」일 것이다. 이 작품을 읽는 독자는 우선은 이러한 개연성 없는 기괴한 줄거리에 놀라고, 곧 이 소설을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지 몰라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문학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품을
 ‘해석‘해야 한다고 알고 있는, 훈련받은 독자라면 아마도 더 큰 당혹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 P281

시골의사의 기이한 이야기는 꿈이 아닐까?
많은 연구자들은 바로 이 비유적 표현에서 「시골의사」를 정신분석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연결고리를 찾는다. 그리고 실제로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이 소설을 들여다보면 불가해하게만 여겨졌던 소설의 많은 부분들이 무언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 P284

의사를 ‘자아‘로, 의사 집을 ‘정신‘의 상징으로 이해한다면 어디서인지 갑자기 나타나 로자를 덮치는 마부와 남성성의 상징인 말은 모두 시골의사의 무의식 속에 숨어 있는 (로자에 대한) 성적 욕망의 의인화된 형태로 해석할 수 있다. - P284

우선 이 모든 일들이 벌어지는 곳은 꿈이거나 꿈과 유사한 상태라고 추정할 수 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꿈이야말로 욕망에 대한 의식의 통제가 약해져 무의식 속에 억압되어 있던 욕망이 모습을 드러내는 곳이기 때문이다. 꿈속이라고 해도 욕망은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기에 자아의 다른 모습인 시골의사는 무의식 속에 숨어 있던 욕망을 말과 마부의 형태로 만나게 되는 것이다. - P284

시골의사의 이야기를 꿈이라고 가정하면 갑작스런 장소 이동 같은 황당한일도 쉽게 
이해된다.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의 번개 같은 전환은 우리가 꿈속에서 매번 겪는 일이다. 이 때문에 시골의사가 마차에 타자마자 환자 집에 도착하는 장면은 우리 자신의 꿈을 삼인칭 시점에서 관찰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처음에는 발견하지 못했다가 말 두 마리가 창문으로 얼굴을 불쑥 내밀고 나자 눈에 띄는 소년의 상처 역시 사건 진행의 개연성과 내적 논리가 파괴된 꿈의 내러티브와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 P285

그런데 이때 말 두 마리가 창문으로 얼굴을 내미는 장면은, 우리가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이 작품을 해석하고자 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의미심장하다. 
남성성을 상징하는 말의 갑작스런 등장은 욕망의 발현, 혹은 욕망의 분출을 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해주는 것은, 말이 다시 등장하고 나서야 소년의 상처가 눈에 띄는데, 이 상처가 여성 성기를 상징하는 구멍의 모습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분홍빛이라는 사실이다. 독일어로 ‘분홍색‘은 하녀 이름과 같은 ‘로자‘다.
이 장면은 욕망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욕망 대상이 되는 하녀 로자가 상처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 P285

카프카의 작품들은 정답에 해당하는 해석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해석 자체를 허락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카프카의 작품은 셀 수 없이 많은 해석을 유도한다. 단지 그중 어떤 하나가 정답이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뿐이다. 따라서 카프카의 작품을 해석한다는 것은 카프카의 작품을 올바로 이해하는 수단이라기보다는 작품을 즐기는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어에 ‘카프카에스크kafkaesk‘라는 단어가 
있다. ‘카프카 같은‘이라는 뜻을 갖는 형용사이자 부사다. 굳이 의미를 설명하자면 ‘기괴하고, 뜻을 파악하기 어려운‘ 정도가 될텐데, 카프카의 작품들이 그 어떤 기존 단어로도 설명할 길 없는 독특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생겨나고, 통용된 단어일 것이다. - P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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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슬픔‘이라는 책 제목으로 다 담지 못하는 극강의 슬픔과 고통을 체험할 수 있다.
그리고 너무 무섭다. 끔찍한 전쟁의 상황이 계속된다. 밤에 읽다 무서워서 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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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강의부터 시작이다.
아주 쉽게 읽힌다. 언급되는 헤세의 작품도 다 읽어서 그런지 더 이해가 쏙쏙 된다. ‘독일 문학의 이해‘ 정도의 개론 수업 수준.




이 세상의 수많은 『데미안 독자들은 어쩌면 모두 인생의 중요한 한순간을 공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순간을 공유하고 있는 이들은 그 어떤 다른 설명 없이도 죽어가는 순간에 『데미안』을 읽고 있었다던 친구를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데미안은 책장 속에 꽂혀 있는 여러 소설들 중 하나가 아니라 삶의 가장 개인적인 부분에 연결되어 있는, 어쩌면 지나간 삶의 일부인지도 모른다. - P24

내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중학교 2학년 때 작은누나가 읽어보라며 무심하게 책상 위에 툭 던져놓고 간 삼중당문고 한 권은 내 삶의 방향을 영영 바꿔놓고 말았다. 그때까지 전자기기와 컴퓨터와 코딩에 푹 빠져있던 나는 손바닥만 한 책 한 권,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Narziss und Goldmund (당시 삼중당문고판 번역 제목은 ‘지와 사랑이었다)를 읽고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사로잡혔다. 이런 세계가있구나. ‘나‘가 누구인지, 삶이란 무엇인지, 죽음이란 무엇인지, 끝없이 머릿속을 맴돌지만 그 대답의 실마리조차 찾을 수 없었던 질문들에 대한 답을 그 안에서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P24

‘문학에 답이 있다.‘ 어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어느 순간 나는 독일문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독일문학 연구자로서 나는 늘 헤세와 데미안에 거리를 두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독일에서도 헤세는 토마스 만이나 카프카 등 동시대의 다른 유명한 작가들처럼 많이 연구되는 작가가 아니었고, 나 자신도 그 사이에 보다 흥미를 끄는 작가와 작품들, 주제들을 알게 된 탓에 헤세는 내 공부와 연구 대상이 되지는 못했다. - P25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또 다른 이유가 내 마음속에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 같다. 문학작품을 학문적으로 연구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에, 나는 내 삶의 일부와도 같은 작가와 작품을 분석과 치밀한 해석의 틀 안에 밀어 넣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의 각별한 과거를 당시 그대로의 기억으로 내버려두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작가와 시대에 대한 자료와 그간의 연구들을 바탕으로, 또 더 이상은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 아닌 연구자의 시선으로 작품을 다시 읽었을 때, 어릴 적 내가 작품을 잘못 이해했음을, 잘못된 이해를 바탕으로 멋대로 감동하고, 위안을 받고, 삶의 방향을 바꿔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까봐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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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하야."
모로 누워 마주 보면서 수미는 서하를 불렀다. 
아홉살, 어쩌면 열살인 서하가 불안한 눈으로 
수미를 보았다. 수미는 그런 서하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나는 니 아빠를 사랑하지 않아."
확인사살을 하듯 수미는 말했다.
"엄마 아빠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어."
그 말을 듣자마자 서하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아홉살, 어쩌면 열살이었던 서하는 어떤 질문도, 소리도 없이 바로 눈앞에 누운 엄마의 말을 그대로 받으며 울었다. - P303

내가 그랬어, 나리야. 내가 서하한테 그랬어.
수미가 공방에 찾아와 그런 일화들을 하나씩 쏟아놓으면 어떤 날에는 마음이 아팠고 어떤 날에는 화가 났다. 그만 좀 하라고, 자책 말고 이젠 다른 걸 좀 하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자기혐오의 연장선에서 니 딸을 혐오해왔던 시간에서 이제 벗어나라고, 너의 혐오와 자책에서 이제 니 아이를 보내주라고, 다른 아이를 구한 것처럼 너의 아이도 구하라고.
하지만 나는 수미의 그 토로들이 수미가 겪고 넘어가야하는 시간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지난 봄처럼 그 시간을 부서뜨리기만 하진 않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 P304

마음이 수없이 헤집어지더라도 나는 수미와 서하가 겨우내 서로를 충분히 겪길 바랐다. 두려움을 껴안고서라도 마주 보길 바랐다. 수미가 실감할 수만 있다면 나는 언제까지고 내 공방 문을 열어놓을 수 있었다. 

서하를 보고 있는 어른이 너뿐이 아니라고, 너만이 아니라고, 가족이어서 해줄 수 없는 게 있다는 걸 받아들이라고, 가족이 아니어서 할 수 있는 게 있다는 걸 믿어보라고, 가족 아닌 그이들이 저기 있다고, 수미가 체감할 때까지 나는 언제까지고 말해줄 수 있었다. - P304

보라고, 서하는 해변에 가려 한다고. 
마음을 접어버리지 않았다고. 너한테 계속 자기 자신을 얘기하고 있다고.
너한테 순응하지 않았다고. 
너를 포기하지 않았다고. - P304

맨발인 채로 얼음 위로 올라서자마자였다. 수미와 나는 뜨거운 불을 딛고 선 것처럼 비명을 지르며 양 발을 번갈아 들어올리다 신발을 벗어놓은 바위 위로 뛰어올라갔다.
참을성이 조금도 없는 서로가 웃겨서 한참을 웃다가 다시 맨발로 얼음 위를 디뎠고, 몇걸음을 걷다가 또 비명을 지르며 언 강과 바위를 뛰어다녔다. - P312

그러다 우리는 누가 더 오래 서 있는지 내기라도 하듯 얼음 위에 맨발을 고정하고 섰다. 일초가 지나고 이초가 지나고 삼초가 지나고, 발이 얼얼해지고 얼얼해지다가 감각이 사라진다 싶은 찰나였다. 발바닥에서부터 시작된 금이 핏줄처럼 번져오르며 몸을 쪼개는 느낌이 찾아왔다.
그것은 아주 순간적으로 몸을 관통해 정수리를 터뜨리듯 사라져버렸지만 그 짧은 순간에 나는 온몸의 감각이 놀라울 정도로 깨어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 P312

발을 먼저 뗀 것은 나였다. 수미는 겨울 협곡의 주술에 걸린 듯 발바닥부터 머리끝까지 그대로 얼어붙어 있었다.
나는 수미가 깰세라 소리없이 뒤를 돌았고, 신발을 벗어놓은 바위로 걸어갔다. 나란히 놓인 수미와 내 신발을 내려다보다가 나는 호흡을 가다듬었고, 수미의 신발에 발을 넣어보았다.
오로라와 나비가 있는 언 발을. 고스란히. - P313

협곡에서 돌아온 뒤 나는 수미와 내가 낯설고 추운 북쪽 소읍에서 사과를 사 먹었던 날을 자주 떠올렸다. 그날 나는 다른 사람의 신발에 발을 넣어보았다. 그것이 다른 사람의 모자를 써보거나 다른 사람의 장갑을 껴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무게로 실감된다는 것을 나는 그 협곡에서 알게 됐지만, 내가 나를 온전히 감각해본 순간을 거치고서야 수미의 신발에 발을 넣어볼 용기를 낼 수 있었다는 것은 시간이 더 흐른 뒤에야 알게 되었다. - P314

보고 싶은 이들이 공방으로 소식을 보내올 것 같은 예감이 들면 나는 여전히 두 손이 아닌 얼굴로 커튼을 가르고 들어간다. 커튼 안엔 내 연료들이 있다. 눈꽃 같은 왁스와 불꽃을 품은 심지가 있다. 포장 끈과 시약통. 시나몬스틱과 석고가루. 꼬질꼬질한 지우개 하나와 고릿한 호리병도 하나 있다. 까슬까슬한 광목천을 이마로 가를 때마다 나는 그게 꽤 좋다고 생각한다. 내게 필요한 것들이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게 좋다. 오늘도 지나가던 이들이 문을 열고 들어와보는 이곳은 나리공방, 기정로 349번길 
25에있다. - P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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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른 사람의 신발에 발을 넣어본 적이 있다.
그때 난 겨울이 2월의 마지막 날에 끝난다고 믿었다.
2월 28일. 가끔은 2월 29일.
아무리 춥거나 눈이 와도 2월이 지나면 그건 겨울이 아니지.
아닌 거야.
그렇게 생각했다. - P8

나는 얼음 위를 걸어본 적이 있다.
오직 겨울에만 볼 수 있다고 니가 말했다.
헤엄을 치거나 배를 타고서는 갈 수 없는 어떤 바위 아래를, 물이 얼면 갈 수 있다고 했다. 얼음 위를 걸어서.
나는 너의 신발에 발을 넣어볼 것을 모른 채, 너를 따라언 강 위로 올라갔다.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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