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강의부터 시작이다.
아주 쉽게 읽힌다. 언급되는 헤세의 작품도 다 읽어서 그런지 더 이해가 쏙쏙 된다. ‘독일 문학의 이해‘ 정도의 개론 수업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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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수많은 『데미안 독자들은 어쩌면 모두 인생의 중요한 한순간을 공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순간을 공유하고 있는 이들은 그 어떤 다른 설명 없이도 죽어가는 순간에 『데미안』을 읽고 있었다던 친구를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데미안은 책장 속에 꽂혀 있는 여러 소설들 중 하나가 아니라 삶의 가장 개인적인 부분에 연결되어 있는, 어쩌면 지나간 삶의 일부인지도 모른다. - P24
내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중학교 2학년 때 작은누나가 읽어보라며 무심하게 책상 위에 툭 던져놓고 간 삼중당문고 한 권은 내 삶의 방향을 영영 바꿔놓고 말았다. 그때까지 전자기기와 컴퓨터와 코딩에 푹 빠져있던 나는 손바닥만 한 책 한 권,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Narziss und Goldmund (당시 삼중당문고판 번역 제목은 ‘지와 사랑이었다)를 읽고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사로잡혔다. 이런 세계가있구나. ‘나‘가 누구인지, 삶이란 무엇인지, 죽음이란 무엇인지, 끝없이 머릿속을 맴돌지만 그 대답의 실마리조차 찾을 수 없었던 질문들에 대한 답을 그 안에서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P24
‘문학에 답이 있다.‘ 어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어느 순간 나는 독일문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독일문학 연구자로서 나는 늘 헤세와 데미안에 거리를 두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독일에서도 헤세는 토마스 만이나 카프카 등 동시대의 다른 유명한 작가들처럼 많이 연구되는 작가가 아니었고, 나 자신도 그 사이에 보다 흥미를 끄는 작가와 작품들, 주제들을 알게 된 탓에 헤세는 내 공부와 연구 대상이 되지는 못했다. - P25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또 다른 이유가 내 마음속에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 같다. 문학작품을 학문적으로 연구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에, 나는 내 삶의 일부와도 같은 작가와 작품을 분석과 치밀한 해석의 틀 안에 밀어 넣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의 각별한 과거를 당시 그대로의 기억으로 내버려두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작가와 시대에 대한 자료와 그간의 연구들을 바탕으로, 또 더 이상은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 아닌 연구자의 시선으로 작품을 다시 읽었을 때, 어릴 적 내가 작품을 잘못 이해했음을, 잘못된 이해를 바탕으로 멋대로 감동하고, 위안을 받고, 삶의 방향을 바꿔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까봐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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