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또 하나의 ‘이름 없는 문제‘ 중에서...

오늘날에는 어느 집을 봐도 일과 가정, 직업 세계와 가정 생활사이에 균형을 잡느라 부부들이 이만저만 고전 중이 아니다. 이전 어느 때보다 더 그렇다. 우리 사회는 돌봄영역caregiving이 현 세대와 미래 세대에게 갖는 중요성과 가치를 정신이 번쩍 들게 깨닫고 있다.
또한 우리 사회는 돌봄의 부담이 개개인에게 일으키는 전체 비용도더 온전히 깨닫기 시작했다. 돌봄의 책임은 한부모 가정의 엄마나 아빠에게 특히 막대한 부담이 될 뿐 아니라, 다른 가정에도 소득의 상실, 커리어의 정체, 공평한 부부 관계를 희생해야만 하는 선택(이성커플, 동성 커플 모두 마찬가지이다)과 같은 형태로 비용을 일으킨다. 코로나 전에도 몰랐던 건 아니지만, 코로나 상황에서 너무나 극명하게체감되면서 이 문제는 이제 우리 사회의 긴요한 관심사가 되었다. - P9

1963년에 베티 프리단Betty Friedan 은 대학 나온 여성들이 ‘전업맘‘이 되어 느끼는 좌절을 묘사하면서 이들이 ‘이름 없는 문제‘를 겪고 있다고 언급했다. 60년 가까이 지난 오늘날에는 대학 나온 여성 대부분이 직장에 다니지만, 똑같이 대학 나온 남자들에 비해 한참 못 미치는 소득과 승진을 보면서 여전히 옆으로 밀쳐지고 있다고 느낀다. 이 여성들도 이름 없는 문제를 겪고 있다. - P10

우리는 남녀의 경제적 평등이 전례 없이 달성된 시대를 살고 있지만 어느 면에서 우리 시대는 여전히 암흑시대다. 오늘날 노동과 돌봄의 구조는 남성만 커리어와 가정을 둘 다 가질 수 있었던 과거의유물이다. 우리의 경제 전체가 낡은 작동 양식 때문에 덫에 묶여 있고 의무를 분담하는 고릿적의 방식 때문에 훼손되고 있다.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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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성과 지성: 아이엠 낫 유어 니그로 중에서 ...

아이엠 낫 유어 니그로 ˝나는 흑인일 뿐이다.˝
미국 문학, 민권운동의 한 축으로 평가받는 흑인 작가 제임스 볼드윈을 기억하자.
˝마주한 모든 것을 바꿀 순 없지만, 마주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다.˝
<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 각본집도 읽어봐야겠다!




‘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라는 제목은 맞는 주장이지만 코언의 노래와 달리 불편한 언설이다. 다소 자기 비하의 느낌도 있다. 한국의 매체들은 이 문장을 "나는 당신들의 검둥이가 아니다. 나는 인간이다"로 소개했는데(물론 이 대사가 나오기는 한다), 이 작품의 의미를 최악으로 전달했다고 생각한다. 

코언의 노래(I‘m your man)와 이 작품에 공통적으로 들어간 2인칭 소유격 대명사 ‘your‘는 의미심장하다.‘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에서 ‘your‘는 
나(흑인)는 당신(백인)이라는 주체(one)가 규정한타자(the others)가 아니라는 뜻이다. 

흑인은 흑인이지 백인과의 관계에 의해 정의될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므로 "나는 무엇이 아니다"가 아니라 "나는 흑인일 뿐이다"라고 말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백인 사회의 신문(訊問)에 대한 대답이 아니라, 누가 인간이고 그것은 누가 결정하는가를 되묻는 일이다.

인간(백인, 남성, 이성애자, 비장애인.....…)의 기준을 바꾸지 않은 상태에서 "나도 인간이다"라는 주장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누가 그 사회의 성원권을 갖춘 인간인가. 기준은사회마다 다르고, 매일매일 다르다. "태아는 인간이다/아니다" "짐승도 그런 짓은 안 할 것" "어떻게 인간이 그럴 수가 있냐"... ... 이처럼 인간의 개념은 보편적이지 않을뿐더러, 더 중요한 문제는 인간의 범주를 누가 정하는가라는 정치적 질문이다. 그것은 투쟁으로 정해지는 대단히 유동적인 개념이다.

인간과 인권의 개념은 선재하거나 당위적인 것이 아니라 맥락적이다.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사유를 요구하는 개념이다. ‘인권‘은 만사형통의 언어가 아니라 그 반대다. 상황이 발생한 맥락을 논의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다.

"백인도 인간, 흑인도 인간"은 규범이지 현실이 아니다. 〈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는 흑인의 인간 선언이 아니다. 흑인의 삶을 문제화(‘차별 고발‘)하는 텍스트가 아니라 백인의 시각을 근본적으로 질문하는 텍스트로 읽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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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들> - 암브로스 아델바르트
세번째는 중편정도의 분량으로, 암브로스 아델바르트 할아버지는 미국 이민자이다.
죽는 순간까지도 품위를 잃지 않았던 분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마지막 문장을 남겨본다.

비망록에 적힌 할아버지의 마지막 기록은 성 스테파노의날(12월 26일)에 쓴 것이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뒤 코즈모는 심한 열병을 앓았지만 차츰 회복되는 중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할아버지는 그 전날 오후 늦게 눈이 내리기 시작했으며,
호텔 창가에 서서 찬찬히 내려앉는 어스름 속에 하얗게 떠있는 도시를 보자니 옛날 생각이 많이 난다고도 적어놓았다. - P185

그는 나중에 이런 글귀를 추가했다. 
기억이란 때로 일종의 어리석음처럼 느껴진다. 기억은 머리를 무겁고 어지럽게 한다.
시간의 고랑을 따라가며 과거를 뒤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끝간데 없이 하늘로 치솟은 탑 위에서 까마득한 아래쪽을 내려다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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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들> -암브로스 아델바르트
분명 독일소설 장르로 분류되어 있건만 소설 같지 않고 실제 일어난 일을 쓴 에세이 같다.
제발트는 여기의 사진들을 대체 어떻게 구했을까? 사진을 구하고 거기에 맞게 스토리를 구현한걸까?
참으로 알쏭달쏭 알 수 없게 사실과 허구를 교묘하게 섞어놓은 듯한 소설?이다!


내 앞에는 아델바르트 할아버지의 비망록이 놓여 있다. 내가 겨울에 씨더 글렌 웨스트를 방문했을 때 피니 이모가 준것이다. 비망록의 표지는 붉은 와인색의 부드러운 가죽으로되어 있으며, 대략 가로 8센티미터, 세로 12센티미터의 크기다. 1913년용으로 제작된 이비망록은 8월20일에 밀라노에서 시작되고 있으므로, 아델바르트 할아버지가 이 비망록을산 곳도 아마 밀라노였을 것이다.  - P161

첫 페이지는 이렇게 시작된다. Palace H. 3 p.m. Signora M. Abends Teatro S. Martino, CorsoV. Em. I tre Emisferi. 여기서도 볼 수 있듯이 할아버지의 메모들은 여러 언어들을 번갈아 사용하고 있는데다 글씨가 아주작아서 해독하기가 쉽지 않았다. 거의 팔십년 전 기록의 뜻이서서히 저절로 밝혀지지 않았더라면 나는 끝내 해독하지 못했을 것이다. 뒤로 갈수록 기록이 상세해졌는데, 아델바르트할아버지와 코즈모가 8월 말에 베네찌아를 떠나 범선을 타고그리스와 콘스탄티노플을 향해 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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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들> 헨리 쎌윈 박사-기억은 최후의 것마저 파괴하지 않는가의 첫문장~~
헨리 쎌윈 박사와의 첫 만남부터 그와의 대화들, 그리고 그의 마지막 모습까지 ...
읽고 나니 참으로 놀라운 만남의 이야기들이었단 생각이 든다.





1970년 9월 말, 영국 동부에 있는 노리치 (노퍽주의 주도로 대학도시다. 제발트는 1970년부터 이 도시의 이스트앵글리아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다)의 새 일자리에서 근무를 시작하기 직전에 나는 살 집을 찾느라 클라라와 함께 힝엄으로 갔다. - P8

 우리 둘 말고는 아무도 없는 줄 알고 그렇게 서있다가, 높이 뻗은 백양목이 정원의 남서쪽에 넓게 드리운 그늘 아래 어떤 사람이 미동도 없이 가만히 엎드려 있는 것을알게 되었다. 늙은 남자였는데, 구부린 팔에 머리를 괴고 바로 눈앞에 있는 한치의 땅만 넋을 잃고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는 그에게로 다가갔다. 잔디가 푹신하여 놀랍도록 걷기가편했다. 우리가 코앞까지 다가가도록 아무것도 모르던 그는이윽고 우리를 알아차리고 어색한 몸짓을 하며 일어섰다.  - P11

그의 동작들은 뻣뻣했지만 완벽한 격식을 갖추고 있었다. 그가 자신을 헨리 쎌윈 박사라고 소개하는 방식도 이미 오래전부터 볼 수 없었던 구식 예절을 따르고 있었다. 틀림없이 집을 보러 오신 거겠지요.라고 그는 덧붙였다. 그가 아는 바로는 아직 집이 나가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자신의 부인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 거라고 했다. 아내가 집주인이고, 자신은 그저 정원에 기거하는 일종의 장식용 은둔자(a kind ofornamental hermit)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첫마디를 나눈 뒤에 우리는 공원과 집의 정원을 분리하는 철망을 따라걸으며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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