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를 그리며> 배리 로페즈 지음
첫 문장부터 ...


캘리포니아를 그리며
35년 전 나는 유타주의 그린강을 유람하는 친구의 보트 여행에 합류했다. 또 다른 일행도 있었는데 캘리포니아 중부에서 묘목장을 운영하는 이였다. 
그는 하루 일과를 맺을 때 혼자 강둑을 따라 산책하면서 소형 녹음기에 대고 뭔가를 구술했다. 그날의 감상을 기록하는 것이냐고 어느 날인가 내가 물어보았다. 그는 두 살배기 딸이 나중에 아빠가 아이를 매일같이 얼마나 생각하고 보고 싶어 했는지 알 수 있도록 녹음을 남겨두고 있다고대답했다. - P25

캘리포니아 이주담이나 성장담을 다룬 수많은 소설과 영화를 보면, 빛과 그림자의 주제가 이야기의 기본 뼈대를 이루고있다. 이 극적인 주제가 인간의 보편적 핵심을 파고든다. 끔찍한 경험 성적 학대의 트라우마, 폭력적인 결혼과 이혼, 부재하는 아버지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갈망은 사람을 상처 입히고, 그것으로부터 헤쳐 나오기까지는 수십 년이 걸린다. - P31

하지만 캘리포니아 보이로서 나에게는 무한히 용서하고 무한히 위로하는 빛이라는 중심축이 있었다. 유칼립투스 나뭇잎과 어도비 벽돌집의 옅은 벽면과 출렁이는 수면까지, 주위의 모든 것을 아름답게 적시는 빛이 내 존재를 지탱했다. 그 빛, 그리고 나를 하늘로, 나 자신의 바깥으로 끄집어내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던 새들이 내 삶에 희망이라 부를 만한 것을 가져다주었다. - P32

나는 유목형 인간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지금도 50 년째 오리건 시골의 같은 집에 살고 있다. 다시 남부 캘리포니아에가서 살지는 않았다. 내가 두고 떠나오기 싫었던 것은 그 장소 자체가 아니었다. 그보다 내가 애타게 그리워한 것은 내 유년기에 얽힌 1950년대의 분위기였다. 교외 주거 단지 끄트머리에서 맨발로 뛰어다니던 날들이 그리웠다.
- P32

그 때 묻지 않은 시절에 대한 갈망이 때로 걷잡을 수 없이 차오를지언정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렇게 내가 가졌던것, 혹은 가졌다고 생각했던 것보다 지금 나에게 있는 것을 더사랑하는 법을 배워간다.
하기는, 일곱 살 생일에 나에게 텀블러피전 여덟 마리를 선물한 건 그 아동 성도착자였다. 마치 총에 맞은 것처럼 일부러 날기를 포기하고 곤두박질치던 비둘기들, 그러다 지면까지 불과 몇십 센티미터를 남겨두고 그 하강에서 벗어나 다시 날개에 힘을 주고 너른 하늘로 솟구치던 나의 비둘기들.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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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6일 금요일, 그녀는 오후 3시에 출발하는 
여객선을 타고 다시 섬으로 갔다. 청바지와 큰 체크무늬셔츠를 입고, 맨발에 평범한 로퍼를 신은 채 손에는 새틴 양산과 손가방을 들고 있었다. 짐이라고는 커다란 비치백이 전부였다. 그녀는 부둣가에 줄지어 있는택시 중에서 소금기에 부식된 낡은 택시로 곧장 다가갔다. 운전기사는 친구처럼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며 그녀를 맞았고, 택시는 가난에 찌든 마을을 뒤뚱거리며 가로질렀다. 마을의 집들은 오두막처럼 초라했고,지붕에는 야자수 잎이 얹혀  있었으며, 불타는 바다 앞의 거리에는 뜨거운 백사장이 펼쳐져 있었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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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리 레인의 연인이었던 두 사내가 2월의 매운 추위를 등에 업고 화장장 밖을 서성이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했던 말들을 반복했다.
"몰리는 자기가 무슨 일을 당한지도 몰랐어."
"뭔지 알았을 땐 이미 늦었지."
"그렇게 순식간에."
"가엾은 몰리."
"음."
가엾은 몰리. 그녀의 증세는 도체스터 그릴 레스토랑 밖에서 택시를 잡으려고 팔을 들었을 때 찌르르 저려오는 느낌과 더불어 시작되었고, 이후로 그 느낌은 그녀를 떠나지 않았다. 
불과 몇 주 사이에 사물의 이름이 가물가물해졌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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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의 오리무중》 박지영 소설 중
‘장례세일‘
공정한 죽음 비용이라는 개념이 마음에 확 와닿았다. 그 전에도 물론 알고는 있었다. 장례를 치루는데도 돈이 들고 그것에도 등급이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화장을 할텐데 굳이 비싼 값을 치르는게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그런데 이 단편 ‘장례세일‘을 읽으며 망자에 대해 공정한 죽음 비용이란 것을 결정함에 있어 가치와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는 것을.
비록 어쩔 수 없음, 합리적 가격 결정 체계, 결국 불공정에 이르는 죽음 비용의 결정이라는 것이 고인이 창출해온 경제적, 비경제적 가치와 효용성에 대한 공정가라기보다 ˝대부분 유족의 능력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라 해도 말이다.

순정 씨가 남은 할인 가격표를 마저 붙이며 덧붙였다.
"살면서 있잖니, 내 맘대로 결정할 수 있는 가격이란 게 하나도 없더라. 여기 반찬 가게에서 일하면서도, 현서 이모가 있을 때는 내 맘대로 할인 가격 하나제대로 못 붙인 거 너도 알잖아. 너 현서 이모가 전에일하던 급식실 폐암 산재 문제로 단체 소송 중이라 가게 안 나오는 건 알지? 자기 목숨값조차 그렇게 함부로 에누리당하고 자기 손으로 결정 못 하는 게 사람인데, 내가 유일하게 내 맘대로 가격 정할 수 있는 건 고작 내가 내 손으로 만든 반찬 몇 가지뿐인데, 그냥 이것만큼은 내가 생각하는 공정한 방식으로 가격표 붙이면 안되는 거니? 나도 알아. 고작 이런 걸로 세상의 가치들이공정한 가격으로 
거래되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내가 만든 건 내가 생각하는 공정한 가격 정도는 지켜주고 싶다고. 그러니까, 그냥 좀 놔두면 안 될까?" - P160

순정 씨의 기세에 현수는 대꾸할 말이 없었다.
뭐 엄마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래도 미역줄기와잘 팔리는 소시지 부침에 똑같이 30퍼센트 할인율을 적용하는 게 꼭 공정한 것인가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았지만, 그래 그게 엄마가 생각하는 공정한 가격이라면, 잘 안 팔리는 미역줄기와 가지무침도 때로 
찾는 사람이있다는 이유로 제외시키지 않고 만들어놓았다가, 떨이로 가격을 후려치지 않고 공정하다 믿는 가격을 붙여주어야만 엄마가 스스로 당당해진다면, 그건 그것으로 좋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 P161

독고 씨의 죽음이 시간이 지나면 쉬어버리고 말
미역줄기무침보다 못할 것은 없었다. 독고 씨의 죽음역시 보다 공정한 가격표가 붙을 자격이 있는 거였다. 그의 삶이 남긴 업적이 대단하거나 대단히 조명할 만한 죽음이어서가 아니라, 다만 하나의 죽음에는 그에 따른 정당한 애도의 몫이 있을 테니까. 그렇게 현수는 독고 씨의 죽음에 너무 일찍 ‘그래도 싼‘ 가격표를 붙인 것은 아닌지 돌아보기 시작했고, 독고 씨의 죽음에 대한 진짜 공정한 가격은 무엇인지 다시 고심해보기로 했다.
아직 시간은 있었다. - P163

그러고 보니 그날의 기억에는 이런 장면도 있었다. 현수가 먼저 집에 가려 하자 순정 씨가 민영과 먹으라며 명란계란말이와 잡채를 봉투에 담아 건네주었다.
인기 있는 반찬이어서 늘 가장 일찍 떨어지는 품목들중 하나였다.
"어떻게 이게 여태 남았어?"
현수가 묻자 순정 씨가 말했다.
"남은 게 아니라 남긴 거. 너희들 먹으라고, 따로 빼둔 거."
그러니까 아껴둔 것. 그래서인지 순정 씨가 준
명란계란말이와 잡채에는 정가도, 할인 가격표도 붙어있지 않았다. 세상에는 그런 가격도 있는 거였다.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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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크레우사
트로이아의 여인 크레우사 편 -- 트로이아 사람들은 그리스군이 온 이유가 부유한 도시 트로이아를 무너뜨리기 위해 왔다고 생각했다. 헬레네를 찾기 위해 왔다는 것은 명분일 것이라고. 도망쳐 온 여자
하나 때문에 ˝천척의 배˝를 띄워 대양을 건너올 리는 없다고. 스파르타의 왕이 의도적으로 헬레네를 파리스에게 딸려 보냈을 것이라고.
그리스군이 물러난 그 밤, 그들이 머물렀던 해안에는 나무로 만든 거대한 조상彫像 같은 것만 하나 남아 있었다. 그냥 두지 말고 침략군의 유물이니 즉시 불태워 버렸다면 재앙을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전날, 도시 전체에 물든 축제 분위기에 크레우사도 들떴었다. 10년만에 처음으로 트로이아 성문이 활짝 열렸다. 마지막으로 도시 밖에있는 스카만드로스평원에 나왔을 때 크레우사는 겨우 열두 살짜리어린아이였다. 부모님은 크레우사에게 그리스군은 해적이자 용병이며 쉬운 먹잇감을 찾아 반짝이는 바다 위를 휩쓸고 다닌다고 말했다.
프리기아에 오래 머물지는 않을 거라고, 다들 말했다. 뭐하러 그러겠나? 그들이 내세운 구실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프리아모스의 아들 가운데 한 명을 따라 도망 온 여자를 되찾으러 왔다는 말을•터무니없는 말이었다. 저렇게 셀 수 없이 많은 배가, "천척에 달하는 배"가 여자 하나 때문에 대양을 건너와서 도시를 포위한다고? - P26

크레우사도 그 여자를, 긴 금발을 늘어뜨리고 옷단 가장자리마다 금실 자수를 놓은 붉은 드레스를 입고 목과 팔에 금장식을 두른 "헬레네"라는 여자를 보았지만, 그래도 이 여자를 데리러 대군이 그 먼 길을 왔다는게 믿기지 않았다. 그리스군이 바다로 나선 꿍꿍이는 빤했다. 약탈한 물건으로 금고를 채우고, 잡아 온 노예로 집안을 채우려는 거였다. 그렇지만 트로이아로 온 것은 도를 넘은 행동이었다. 트로이아는 부유할 뿐 아니라 방비가 잘 갖춰진 도시임을 몰랐던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늘 그런 식이야, 크레우사의 부모가 말했다. 저들은 그리스인이 아니면 다 똑같다고, 다 야만인이라고 생각해. 트로이아가 미케나이, 스파르타, 이타케 등등 자기들이 고향이라 부르는 도시보다 발달한 도시일 수 있다고는 생각도 해 보지 않은 거야. - P27

트로이아는 그리스군에게 성문을 열지 않을 것이다. 크레우사는아버지가 어두운 눈빛으로 어머니에게 프리아모스왕의 결정을 전하는 모습을 보았다. 트로이아는 싸울 것이다. 그 여자도, 여자의 황금이나 옷도 돌려주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기회주의자, 아버지는 말했다. 겨울에 비바람이 몰아쳐 배를 강타하기 전에 떠날 거라고. 트로이아는 유복하기로 이름난 도시였다. 프리아모스왕의 쉰명의 아들과 쉰 명의 딸, 무한한 부, 드높은 성벽과 충성스러운 동맹국들. 그리스인들은 그런 도시가 있다는 말을 들으면 무너뜨리지 않고는 못 배긴다. 그게 그들의 본성이다. 트로이아인은 그리스군이 온이유가 그것이라고 생각했다. 헬레네를 되찾아가겠다는 건 명분일뿐이라고. 트로이아 여인들은 물가에 모여 빨래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스파르타 왕이 의도적으로 헬레네를 파리스에게 딸려 보냈을 거라고. 원정에 필요한 구실을 만들기 위해서. - P27

정찰병들이 그리스군은 한 명도 남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해안에는 사람도 배도 없었다. 제물로 바쳐진 무언가, "나무로 만든 거대한 조상彫像" 같은 것만 하나 남아 있다고 했다. 그리스인들이 그걸 누구에게, 왜 바쳤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집까지 무사히 항해하게 해 달라고 포세이돈에게 바쳤겠지, 크레우사는 남편에게 말했다. -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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