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레사의 오리무중》 박지영 소설 중
‘장례세일‘
공정한 죽음 비용이라는 개념이 마음에 확 와닿았다. 그 전에도 물론 알고는 있었다. 장례를 치루는데도 돈이 들고 그것에도 등급이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화장을 할텐데 굳이 비싼 값을 치르는게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그런데 이 단편 ‘장례세일‘을 읽으며 망자에 대해 공정한 죽음 비용이란 것을 결정함에 있어 가치와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는 것을.
비록 어쩔 수 없음, 합리적 가격 결정 체계, 결국 불공정에 이르는 죽음 비용의 결정이라는 것이 고인이 창출해온 경제적, 비경제적 가치와 효용성에 대한 공정가라기보다 ˝대부분 유족의 능력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라 해도 말이다.

순정 씨가 남은 할인 가격표를 마저 붙이며 덧붙였다.
"살면서 있잖니, 내 맘대로 결정할 수 있는 가격이란 게 하나도 없더라. 여기 반찬 가게에서 일하면서도, 현서 이모가 있을 때는 내 맘대로 할인 가격 하나제대로 못 붙인 거 너도 알잖아. 너 현서 이모가 전에일하던 급식실 폐암 산재 문제로 단체 소송 중이라 가게 안 나오는 건 알지? 자기 목숨값조차 그렇게 함부로 에누리당하고 자기 손으로 결정 못 하는 게 사람인데, 내가 유일하게 내 맘대로 가격 정할 수 있는 건 고작 내가 내 손으로 만든 반찬 몇 가지뿐인데, 그냥 이것만큼은 내가 생각하는 공정한 방식으로 가격표 붙이면 안되는 거니? 나도 알아. 고작 이런 걸로 세상의 가치들이공정한 가격으로 
거래되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내가 만든 건 내가 생각하는 공정한 가격 정도는 지켜주고 싶다고. 그러니까, 그냥 좀 놔두면 안 될까?" - P160

순정 씨의 기세에 현수는 대꾸할 말이 없었다.
뭐 엄마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래도 미역줄기와잘 팔리는 소시지 부침에 똑같이 30퍼센트 할인율을 적용하는 게 꼭 공정한 것인가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았지만, 그래 그게 엄마가 생각하는 공정한 가격이라면, 잘 안 팔리는 미역줄기와 가지무침도 때로 
찾는 사람이있다는 이유로 제외시키지 않고 만들어놓았다가, 떨이로 가격을 후려치지 않고 공정하다 믿는 가격을 붙여주어야만 엄마가 스스로 당당해진다면, 그건 그것으로 좋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 P161

독고 씨의 죽음이 시간이 지나면 쉬어버리고 말
미역줄기무침보다 못할 것은 없었다. 독고 씨의 죽음역시 보다 공정한 가격표가 붙을 자격이 있는 거였다. 그의 삶이 남긴 업적이 대단하거나 대단히 조명할 만한 죽음이어서가 아니라, 다만 하나의 죽음에는 그에 따른 정당한 애도의 몫이 있을 테니까. 그렇게 현수는 독고 씨의 죽음에 너무 일찍 ‘그래도 싼‘ 가격표를 붙인 것은 아닌지 돌아보기 시작했고, 독고 씨의 죽음에 대한 진짜 공정한 가격은 무엇인지 다시 고심해보기로 했다.
아직 시간은 있었다. - P163

그러고 보니 그날의 기억에는 이런 장면도 있었다. 현수가 먼저 집에 가려 하자 순정 씨가 민영과 먹으라며 명란계란말이와 잡채를 봉투에 담아 건네주었다.
인기 있는 반찬이어서 늘 가장 일찍 떨어지는 품목들중 하나였다.
"어떻게 이게 여태 남았어?"
현수가 묻자 순정 씨가 말했다.
"남은 게 아니라 남긴 거. 너희들 먹으라고, 따로 빼둔 거."
그러니까 아껴둔 것. 그래서인지 순정 씨가 준
명란계란말이와 잡채에는 정가도, 할인 가격표도 붙어있지 않았다. 세상에는 그런 가격도 있는 거였다.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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